13화
이런 유럽 각국의 움직임은 석유 카르텔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별로 손을 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분자 화합물 생산.’에 대한 라이센스만 획득한다면 저들의 기술은 고작 자동차 연료로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사막의 전통적인 국가들은 세가지 라이센스를 모두 획득하고자 한다면 유럽쪽에서는 두번째와 세번째 라이센스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출시되는 자동차는 새로운 전기 자동차의 표준 경쟁으로 불꽃 튀고 있었다. 사실상 석유가 고갈되지 않는 시대에 진입하면서 자동차의 표준은 완전 전기 자동차와 하이브리드식 전기 자동차 사이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완전 전기 자동차는 강현의 축전지를 닮은 신형 배터리의 압도적인 능력에 힘입어 경량화 되어 상용화를 눈앞에 두었으나 역시나 땅이 넓고 자연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메리트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태양 전지 판넬을 붙여 보았지만 현재까지 나온 태양 전지 판넬로는 그다지 충분한 전력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날씨가 흐려지면 충전도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식은 완전히 달랐다. 일단 강현의 신형 엔진(제조사들은 이를 플라워 엔진이라고 부른다.)과 석유 제조 설비에 힘입어 강력한 표준형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일부 업체는 여전히 보통의 자동차를 출시하기는 했지만 교토 의정서에 의해 촉발된 각국의 이산화탄소의 배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극대화된 연비를 가진 가동차가 필요했고 그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하이브리드 방식의 자동차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고작 운송 수단의 혁신만으로 세상은 그렇게 잘 변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들은 좀 세상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정작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에 있었던 인터넷의 상용화, 대중화 만큼 크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런 변화가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내? 아즈삭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을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요?”
NASA의 기획부장 이레이는 강현을 설득하기 위한 수많은 서류를 가지고 들어왔다.
“Dr. Kang. 이는 당신에게도 매우 좋은 일입니다. 일단 한 대당 가격이..”
그러나 돈은 일단 강현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수요는 있나요?”
“충분합니다! 일단 기존 슈퍼 컴퓨터는 거의 다 대체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드웨어만 충분히 확충하면 대용량 서버 역시 완전히 대체 가능해요! 강현! 당신은 천재입니다!”
이레이는 말을 하다가 흥분하고 말았다. 세상에! 현재 존재하는 CPU제조 회사들은 강현의 뉴로칩 제조 라이센스를 획득하지 못하면 초고성능 컴퓨터 시장에서는 완전 퇴출이다! 그들은 가정에 그저 그런 성능의 컴퓨터를 팔거나 가격을 낮추어 제3세계에 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요? 하지만 아즈삭의 강점은 사용시의 유연함에 있지 연산 속도는 전통적인 디지털 방식으로 하는 슈퍼 컴퓨터가 더 빠를 텐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용자 편의성을 따지고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는 속도는 둘 다 비슷하죠. 그리고 복잡한 연산일 수록 아즈삭이 좀 더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그리고 서버 같은 경우에는 아즈삭이 계산 속도가 훨씬 빠르고요. 이를 테면 클라우드 컴퓨팅을 슈퍼 컴퓨터 가지고 한다는 느낌입니다.”
“슈퍼 컴퓨터로 클라우드 컴퓨팅을 한다? 그 정도 성능은 안 나올 텐데요?”
“지금의 하드웨어로는 그렇죠. 좀 더 뉴로칩을 개선하고 규모를 크게 하면 능가할 수도 있습니다.”
강한 이레이의 주장에 강현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뭐 다운 그레이드 형을 팔던 말던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아즈삭으로 충분히 재미를 보고 있고 다른 연구에 관심이 더 많으니 판매 문제 같은 경우 알아서 하라는 태도다.
“아! 그런데 유지 보수할 인력은 있나요? 설마 저 보고 판다는 건 아니죠?”
“걱정 마세요. 이미 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확보는 해 놨습니다.”
“혹시 컴퓨터 개발부에 있는 알론과 잭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 아니죠?”
알론은 개발부장이었고 잭은 위장 취업은 했지만 일단 개발부 직원으로 있었다.
“맞습니다만.. 그게 혹시 문제라도 됩니까?”
“아니요. 벌써 그 정도로 시스템을 이해 했다고 하니까 감탄해서요. 역시 NASA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네요.”
“하. 하. 하.”
제 얼굴에 금칠을 하는 천재의 모습에 이레이는 어색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도 잭처럼 자주 강현을 만나게 되면 강현이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말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잭처럼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댁 잘났수.’
그러면 강현은 다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잘나기는 무슨. 5차 연립 미분방정식도 못 푸는데. 그리고 여전히 폰 노이만처럼 수학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는데 잘났다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야.’
그러면 이레이는 잭이 그러는 것처럼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그의 등을 밀고는 식당으로 향할것이다.
수학의 경계. 과거 누군가 폰 노이만에게 어느 정도 현대 수학을 이해하고 있는지 물었고 이에 폰 노이만은 진지하게 28%라고 대답했다. 이는 그가 현대 수학의 윤곽을 어렴풋이 나마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폰 노이만을 이상적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강현에게 자신이 잘났다는 말은 정말로 말도 안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결국 강현의 허락을 받아 아즈삭의 다운 그레이드 형이 발표 되었다. 발표 자리에는 수많은 컴퓨터 제조 회사의 CEO들과 바이어들, 그리고 각국에서 온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면 아즈삭의 성능 시연이 있겠습니다.”
성능 시연은 크게 세가지 주요한 포인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연산속도, 하나는 유연성, 하나는 사용성이었다.
반(半) 인공지능 형태인 아즈삭은 그 자리에서 간단한 원자 충돌 모형을 계산하고 결과를 도출했다. 특정 조건에서 수소 핵융합이 일어날 확률을 약 한 시간 만에 계산을 하고 계산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는 명령 처리의 유연성과 편리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시연했다.
특히 유연성은 많은 사람들의 감탄사를 자아냈다. 특히 간단히 코드를 분석해 내어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해석하는 능력은 보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들의 눈을 번쩍이게 하였다.
그렇게 아즈삭의 다운그레이드 형인 아즈삭D의 시연히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구입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특이하게 그들 대부분이 각국 정부에서 왔다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아즈삭D의 보안 프로그램(강현의 코딩 분석 프로그램)에서 어떤 가능성을 읽었다. 그것은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그렇게 아즈삭D는 출시하자마자 약 30대가 팔렸다. 겨우 30대 뿐이었지만 한 대당 약 1000억원의 가격이었기에 NASA는 순식간에 3조원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문제가 발생했다.
“Dr. Kang. 골치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이레이가 강현을 찾아와서 앓는 소리를 했다.
“뭔데요?”
“미 정보부에 판매한 아즈삭D가 작동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요?’
“다른 직원들이 도저히 원인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좀 가주시면..”
“아. 귀찮은데...”
“하지만 제대로 수리가 안되면 아즈삭D의 신뢰도가..”
“이레이씨. 분명이 예전에 충분한 인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혹시 그 사람들 능력이 불충분 한 건 아니고요?”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신 할 리 없어요.”
“그럼 정보부에서 아즈삭D로 뻘짓을 하려다가 망가뜨렸다는 얘긴데..”
강현은 호기심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컴퓨터를 어떻게 다루면 제대로 작동이 안될까?
“가보죠.”
강현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이레이가 앞장 섰다. 연구소를 나오자 마자 미 정보부에서 나온 경호 인력이 강현을 호위하며 방탄 차량에 태우고는 정보부 건물로 향했다.
“이야, 잘 꾸며 놨네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운데에 아즈삭D의 본체가 있었고 반구형의 공간 절반에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강 박사. 만나서 반갑네. CIA의 막스라고 하네.”
머리가 희긋한 중년의 백인 남성이 손을 내밀었다. 강현은 그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하고는 물었다.
“어디가 안 된다는 거죠? 지금 잘 돌아 가고 있는 것 같은데..”
“특정 명령을 실행 시키면 에러가 발생하네. 보게나.”
막스가 한 오퍼레이터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꼬불꼬불한 흑인인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키보드에 뭔가를 입력했다. 그리고 과연 문제가 발생했다. 그 유명한 블루스크린이 뜬 것이다.
[치명적 오류 발생. 문제가 생긴 섹터 B321에서부터 P443까지를 격리 후 재부팅 합니다. 시스템 정상화까지 앞으로 5초, 4초, 3초, 2초, 1초.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호오?”
강현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나 자신이 만든 컴퓨터의 다운 그레이드다웠다.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하자마자 즉시 처리하는 능력이라니. 더구나 저 과정은 오류가 발생한 뉴로칩만을 겨냥해 재부팅을 하기 때문에 다른 뉴로칩에 저장된 정상적인 데이터가 날아갈 가능성은 없었다.
“어떤 명령을 실행시켰기 때문인지 알 수 있을까요?”
강현의 질문에 막스는 표정을 굳혔다.
“굳이 밝혀야 하나?”
“싫으시면 계약 위반으로 A/S는 불가합니다.”
뒤에서 이레이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막스는 그런 이레이를 냉정한 눈으로 처다보다가 답했다.
“... 특정 컴퓨터에 감시용 프로그램을 집어 넣는 명령이었지.”
그 대답에 강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라? 내가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나?”
“CIA 정보팀이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물건이지. 이론과 컴파일러 상에서 문제는 없었는데 실제로 실험 운용에 들어가려니 이런 문제가 생겼지.”
강현은 막스의 말을 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왜 그런지 알겠다.”
강현의 혼잣말에 막스와 이레이의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강현은 그 둘의 의문을 풀어주지 않고 이레이를 돌아보았다.
“먼저 왔던 직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이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 서약을 했습니다.”
“아즈삭D의 판매를 중단해야 겠네요.”
“아니 무슨! … 설마 아즈삭D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겁니까?”
이레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위약금이.. 예산이.. 돈이...
“그런 건 아니구요. 기본도 안 된 사람들을 가지고 A/S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에요?”
“네?”
이레이의 표정이 멍해졌다.
“딱 들으면 원인이 파악되잖아요.”
“.... 원인이 뭔가요?”
“간단해요. 2진수 프로그램을 아즈삭용 어셈블리어로 짰기 때문이에요.”
이레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아즈삭 역시 On-off형 메모리 소자로 인해서 2진수 연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OS의 경우고요. 돌아가는 프로그램은 달라요.”
초기 뉴로칩의 모양은 정육면체였다. 그리고 각 면에 전원 공급 및 버스 결합부가 있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른 뉴로칩이나 입출력 장치로부터 데이터를 전달받고 출력한다.
반도체형 메모리 소자로 인해서 뉴로칩 자체의 연산은 2진수로 하지만 출력되는 결과는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