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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2화 (12/241)

12화

그는 아즈삭이 가져야 할 욕망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폭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방향성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1.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

2.

“... 더 필요한 게 있나?”

강현은 고민해 보고는 더 1.번 항목을 제외하고는 아직 어떤 욕구의 방향성도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보호에 대한 욕구는 필요없다. 망가지면 그 뿐일 뿐, 영원한 건 없다. 모 SF소설처럼 인공지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건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이 아즈삭에게 원하는 것도 딱 저거 하나 뿐이었다. 더 이상 복잡한 건 원하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오히려 좀더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유전자를 구성하는 아미노산도 단 4종류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강현은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1번 조항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라는 것을 코딩하려고 하니 머리가 빠게질 지경이었다.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이미 충실하게 자신이 입력한 자료를 연산해 결과를 도출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강현이 원하는 것은 그 정도가 아니다. 적절하게 자신을 보좌하여 자신이 하기 귀찮은 일을 자율적으로 맡아서 해주는 보조를 원한 것이다.

즉 ‘설계자의 말을 잘 따른다’와 ‘어떻게 설계자의 말을 따르게 할 것인가?’는 천지 차이인 것이다.

아무튼 강현은 코딩을 시작했다. 아즈삭이 약간의 인공지능적인 면을 갖추었기 때문에 코딩을 보조하여 빠른 코딩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런 보조는 단순히 코딩만 보조하는 것으로 강현이 방대해지는 코드의 양에 짜증나서 만든 보조 프로그램이었다. 아즈삭의 핵심인 OS가 아닌 아즈삭의 도구용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코딩을 아주 단순하게 했다. 자신을 보조하기 위한 복잡한 연산과정은 프렉탈 이론을 도입하여 뉴로칩을 거치며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코딩을 생각해 내는 것이 어려웠다. 단순한 코딩이 복잡한 환경을 만나고 규모가 커질수록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 것인지 예측해야 했다.

그렇다. 구조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모든 수학의 기본이 1+1=2인 것처럼 모든 것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복잡하게 흘러간다. 혹자는 이를 열역학 제 2법칙에 비유하기도 한다. 질서(탄생)에서 무질서(죽음)로 향하는 것이 모든 것들의 운명이라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 하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코딩하고 시뮬레이션하고..

그렇게 밤낮을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결국 제시가 강현의 제2 실험실로 왔다. 강현이 연구하는 연구실은 크게 4곳이었는데 그 중에 자기 전용은 제1 연구실 한 곳이고 다른 곳은 다른 연구원과 같이 연구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즈삭이 있는 컴퓨터 개발부의 한 연구실 역시 원래는 강현 혼자서 연구하는 곳이 아니었다.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서 강현과 보조를 맞추는 여러 프로그래머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아즈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의 언어응 익히는 것 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그들은 강현이 없는 동안은 아즈삭의 소스 프로그램을 검토하며 아즈삭의 하드웨어적인 구성형태부터 이해하느라 기력이 쇠해갔고 그들이 그나마 쉬는 시간은 강현이 아즈삭을 만지작 거릴 때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오늘은 또 무엇을 코딩하려고..’

‘신이시여. 이제 그만합니다.’

‘죽을 것 같아요. 쿨럭!’

천재 강현은 정말로 천재였다. 그가 하루 정도 코딩한 내용을 따라가려고 사흘 밤낮을 모니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컴퓨터 개발부 직원들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도 나지 않고 대체 며칠 동안 코딩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현! 집에 안오고 뭐하는 거야!”

“으, 응?”

“사람이 잠은 자고 살아야지! 이게 뭐야? 얼굴이 상했네.”

그러면서 다짜고짜 강현을 데리고 나가는 제시는 그들에게 그야 말로 메시아와 다름 없었다.

그들은 강현이 완성하지 못한 소스 코드를 저장해 따로 두고 그가 완성한 코드를 복사해 부서내에 나누었다.

“오우! Shit!”

“신이시여! 제발 그만하자고 했지 않습니까!”

“미치겠다.”

코드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기 더 어려웠다.

예를 들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하노이의 탑에 관련된 코딩을 예제로 받는 경우가 있다. 하노이의 탑이 몇 층일 경우에 어디서 어디로 층이 옮겨가고 그 최소 횟수는 몇 번인지 결과를 출력하는 것이다.

일단 프로그램을 하기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반복문을 이용하면 몇 줄이면 완성된다. 그리고 감탄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아름답게 단순해 지다니! 그러면서 그 단순한 코드가 출력하는 복잡하지만 정확한 결과에 또다시 감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매력이었고 수없이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갈려나가는 이유이기도 했으며 강현이란 넘지 못할 산을 마주하고도 컴퓨터 개발부의 직원들이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사표나 이직 신청을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강현의 코드는 단순했기에 그 작동 방식의 복잡함과 결과물이 도출되는 방식을 이해할 때의 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무지한 야만인이 로마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마주 보았을 때처럼,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와도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NASA에서도 이런 개발부의 현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개발은 강현 혼자서 하고 있는 상황. 솔직히 개발부의 직원들은 개발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NASA에서는 미래를 내다보고 그들을 그대로 나두었다. 강현의 아즈삭은 이미 실적만 가지고 슈퍼 컴퓨터들을 훨씬 능가하는 연산 속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즈삭의 기능은 이미 지금으로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아직 아즈삭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바로 운용 가능한 인력이 없다는 것.

폰 노이만 방식을 탈피한 아즈삭의 OS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해하고 적절히 유지 보수할 수 있는 인력이 전혀 없기에 뭔가 문제가 생기면 강현이 일일이 나서야 했다. 그러나 강현이 고작 자신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제품의 A/S에 나서줄 리 없었고 현대 사회에서 A/S가 불가능한 제품 역시 팔릴 리가 없었다.

때문에 현재 개발부서의 직원들에게 NASA는 기대를 걸고 있었다. 사실상 그 직원들은 컴퓨터 개발이 아니라 인력 개발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집으로 돌아온 강현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제시의 품속에서 잠들었다. 잠에 빠져들면서 둘은 달콤한 대화를 나누었다.

“인공... 세포...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어?”

강현은 졸린 지 말이 느릿느릿했다.

“이제 세포막을 형성하는 플라스미드 하나만 추가하면되.”

“... 도와... 줄까?”

“괜찮아. 남은 일은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는 걸. 걱정하지 말고 푹자.”

“... 그래?”

쿨쿨.

달콤한 대화라고 하기에 어딘가 핀트가 맞지 않지만 둘은 그 대화에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아즈삭의 ‘욕망’코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아즈삭의 ‘진화’가 시작되었다.

[창조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강현은 저 창조주란 단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으음.. 일단 자기 개발이나 하고 있어.”

아즈삭은 ‘자기 개발’이란 단어의 의미를 인터넷이 접속해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맞추어 해석했다. 그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코드의 오류를 집어내고 확장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행하겠습니다.]

“아참. 부르면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내가 지시하는 일을 먼저 해야 돼. 알겠지?”

[명령 리스트 갱신 완료.]

강현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창조물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일일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명령 리스트를 갱신해 주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이것이 강현이 원하는 아즈삭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강현은 아즈삭에게 지시를 내려 놓고 그 동안 미루어 놓았던 다른 연구를 시작했다.

= = = = =

강현의 연구는 세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단 석유 가격이 급락했다는 하나 만으로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덕분에 여러 분야에서 기업들이 큰 이익을 보았다. 물론 원유를 직접 공급하는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말이다. 원래 급격한 변화에서 한쪽이 이득을 보면 한쪽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가 하락으로 인한 이득은 소비자에게까지 전달 되었다. 일단 차량 유지비가 떨어졌고 각종 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혜택은 사회 구조가 잘 구성된 선진국에서만 혜택을 보았고 선진국이 아닌 국가에서는 소비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한국은 어떻냐고? 서민들의 생활은 그대로 였고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때문에 강현을 칭송하는 목소리보다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컸다. 현대 문명의 필수품인 석유를 가지고 장난치는 카르텔을 때려 부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도 그들을 그대로 놔두었다고..

새롭게 인류에게 이득이 될 기술은 나왔지만 이득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석유 카르텔의 존속을 인정한 강현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석유 카르텔은 석유의 독점과 가격 유지를 위해서 전쟁을 불사하고 반민주 독재자들을 옹호하기까지 하는 자들이었는데 그런 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지 판단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막대한 파급효과가 있었고 때문에 정치와 사회적 역학 관계에 밀접한 영향을 받았다.

소니의 베타 맥스 방식의 비디오와 JVC의 VHS와의 표준 경쟁에서 기술과 사회의 역학 관계 사이에 일어난 밀접한 관계성을 확인 할 수 있다. 소니의 기술이 좀 더 좋은 영상과 음질을 보장했지만 마케팅에서 JVC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그리고 그 당시 흥하기 시작한 비디오 대여 사업에서 사실상 소니의 베타 맥스 방식은 퇴출되었고 캠코더에서나 찾아 볼 수 있었다.

물론 베타 맥스 방식이 기술적으로 VHS를 압도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강현의 기술도 마찬가지였다. 강현의 석유 제조 공법에 대항해 다양한 시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역시나 녹조류를 이용한 방법이었다. 강현이 만든 유전자 변형 녹조류와 다르게 석유를 생산할 천연의 녹조류를 찾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강현의 기술과 다른 강점이 있었다.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는 유전자적으로 변형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물학적 오염을 피하기 위해서 완벽한 밀폐구조가 필요했다.

즉, 천연의 녹조류에 비해서 초기 시설비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사막같이 녹조류가 오염을 일으키기 힘든 지형이라면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가 더 효율이 좋기 때문에 사막 국가들은 강현의 기술을 더 선호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유럽같이 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이 엄격한 곳에서 만일 대체 가능한 천연 녹조류가 발견된다면 강현의 유전자 변형 녹조류와 관련 시설 기술들은 퇴출 될 가능성이 무척 높았다.

물론 강현의 기술이 고작 녹조류에 국한 된 것은 아니었지만 강현이 석유 제도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를 ‘원천 원료 생산’, ‘고분자 화합물 생산’, ‘벤젠 톨루엔 합성’으로 나누어 놓았기에 적어도 ‘원천 원료 생산’부분에 관해서는 강현과 미국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될 가능성을 확보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 작품 후기 ============================

후기 : 제가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지 않는 것이 인지 상정!

사람은 비밀이 많아야 매력적이죠. 를지님도 비밀을 간직하세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겁니다. (안 그래도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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