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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11화 (11/241)

11화

잭은 갸우뚱 거리는 강현의 모습에 그의 등을 밀며 연구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제시는 안 보이네?”

제시는 강현과 살림을 차린 후로 점심 때마다 강현을 찾아 와서 번번이 잭의 임무를 허탕치케 만들었다. 잭의 임무? 강현을 밀착 감시, 보호하며 필요한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다.

“요즘 연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 집중하고 있어.”

“....”

이 커플은 동시에 연구에 미쳤나... 밥도 안 먹고 연구를 하다니..

“그 인공 세포라는게 그리 대단한 건가?”

“응. 사실상 인간 복제보다 더 대단하지. 생명 창조나 마찬가지 분야니까.”

강현은 잭의 질문에 대답했다.

“탄소 기반형 유전자가 탄생한 이래 그 긴 시간동안 축적해온 생명 진화의 비밀을 해석하고 재현하는 것이니까.”

“.. 좀더 풀어서 설명해봐. 그렇게만 말하면 궁금하잖아.”

“유전자의 대부분은 휴면상태인 정크 유전자라는 것은 알지?”

“그래.”

“제시가 하는 일은 세포내 소기관들을 형성하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만 따로 모아서 정상적인 세포를 만들어 내는 거야.”

“어? 그건?”

똑똑한 잭의 표정에 감탄이 서렸다.

불필요한 유전 정보를 제거한 세포를 만들어 본다. 제대로 되지 않으면 불필요하다고 생각된 유전자에 뭔가 필요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류가 밝혀내지 못했다고 생각한 유전자의 기능을 유추할 수 있고 그 패턴과 단백질의 분자 패턴까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야. 그거 굉장히 실험을 많이 해야 했을 텐데..”

“컴퓨터 좋다는 게 뭐야? 거의 다 시뮬레이션으로 돌리고 검증은 다 세계에 널리 퍼진 학자들에게 맡겼지.”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즈삭가지고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세포 소기관을 만드는 유전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예측하는 논문을 올려 놨거든. 논문 제목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유전자 변조 결과 예측’.”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지 검증하는 건 다른 학자들에게 떠넘기고?”

“내가 언제 어떻게 수만 개나 되는 실험을 다 해?”

강현이 뭔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잭을 보았다. 잭은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역시 천재는 뭔가 다른가 보다.

그러면서 감탄 했다. 강현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도 일가견이 있다니..

하지만 잭이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라고 해도 현재의 기술로는 변수 지정을 사람이 일일이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유전패턴이란 변수를 강현 혼자서 지정해주려고 했다면 일 년으로도 시간이 부족했을 거라는 것을.. 다 서서히 인공지능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아즈삭의 보조가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 했을 거라는 것을...

두 사람의 대화는 식당에 도착해서도 계속 되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DNA라는 거지. 플라스미드라는 것이 있어.”

“나도 알아 세균의 내부에 있는 고리 형태의 유전자를 말하지. 그 정도는 상식이잖아.”

“그래, 유전자기이에 유전이 가능하지. 그 외에 다른 세포에 전달이 가능하다든지 하는 백터로서의 특징도 있고 몇가지 특징이 있지만, 이번에는 그 유전적인 특징에만 주목했어. 인공 세포의 제조를 위한 유전자로 염색체 대신 이 플라스미드를 이용하기로 한거야. 개개의 플라스미드에 제한 효소와 접합효소로 세포 증식에 필요한 DNA를 부착해 정말로 정상적인 세포 분열이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만일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첨가되지 않은 필요한 단백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럴 경우에 다시 찾아서 그에 해당하는 플라스미드만 첨가하면 되니까 수정이 용이하다는 장점도 있어든.”

“이야.. 그렇게 되면 생명 탄생의 신비가 풀리는 건가?”

“뭐, 추측은 알 수 있겠지.”

“제시의 실험이 성공하면 누군가 생명을 설계했다는 결과가 나오는 건가?”

“지적설계설(Hypothesis)?”

“왜 론(Theory)라고 안 하는데?”

“논리적으로 오류니까.”

생명이 외계인에 준하는 어떤 지적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하면 그 지적 설계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 지적설계자를 만든 지적설계자 역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 졌다고 봐야한다.

이 무한한 사슬의 끝을 보려면 최초의 지적설계자는 생명이 없다, 혹은 스스로 탄생했다는 말을 붙여야 하는데 이는 다시 생명은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 되었다. 라는 지적 설계론의 논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결국에 지적설계론을 지탱하기 위한 최후의 방편은 신이다. 그러니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이상 지적설계론은 론(Theory)이 아니라 영원히 설(Hypothesis)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지적설계론을 Theory로 간주하여 공립학교에 가르치려는 미 정부를 비난하는 자들이 지적설계론은 세련된 창조론으로 간주하여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상으로 논리적 사고를 하면 반드시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역시, 과학 괴물 아니랄까봐.’

증명하지 못하는 문제인지 아닌지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은 강현의 사고 과정의 근본이었다.

둘의 이야기는 식사가 끝나는 것과 함께 끝났다. 강현이 식사가 담긴 트레이를 끌고 제시의 실험실로 가야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애인의 식사를 챙겨주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양보할 강현이 아니었다.

= = = = =

포브스 지에서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뽑힌 남자. 똑똑하고 아름다우며 자상하게 챙겨주면서 그러면서도 침대에서는 요부가 되는 이상적인 애인을 가졌으며 돈도 벌써 세계 100위권 안에 들 정도로 벌었으며 5년 안으로 10위원 안에 들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이 있는 자타 공인의 천재.

뭐든지 인생이 잘 풀릴 것 같은 천재인 강현이었지만 그에게도 고통과 시련은 있었다.

[오류 발생.]

“아! 또! 왜!”

아즈삭의 시스템을 점검하며 업그레이드를 시키려고 했던 강현은 수 시간째 반복되는 에러 메시지에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 동안 뉴로칩을 계속 부착시켜 기능을 확장하고 틈틈히 필요한 프로그램을 집어 넣었던 아즈삭은 소프트 웨어 적으로 강현의 머리로도 한 번에 다 살펴보는 것이 어려운 방대한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이 벌게져라 코드를 읽고 다시 코딩하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즈삭. 너 왜 이러는 거니?”

[의미 불명.]

강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즈삭은 속터지는 답변만 할 뿐이다.

“아, 젠장. 완벽히 논리적인 자율 사고 체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강현이 아즈삭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스스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제시가 생명을 창조한다면 강현 자신은 정신을 창조하겠다. 정말로 위대한 포부가 아닌가?

“아.. 철학이라도 공부해야 하나..”

강현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성이 먼저인가 본능이 먼저인가? 이성은 과연 이성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가? 욕망이 없는 이성은 작동할 수 있는가?

강현은 이해하고 있었다. 이성이란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은 욕구의 실현을 위해서 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내라는 말임을..

사람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이성은 결코 욕구의 위에 서지 못한다. 욕망이야 말로 이성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성적 교육이란 결코 이성이나 인내심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바르게’ 욕망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저 얄미운 놈을 때린다면 내게는 어떤 이득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이득이 자신의 폭력 행위의 대가보다 크다면 사람은 참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참지 못하게 된다.

분하지만 참아서 생기는 안전과 안락함이 더 크다는 것. 물론 이 욕망을 비교하는 저울대에 올라가는 수많은 종류의 욕구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그 비중 역시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의 결과 역시 다르다.

강현이 이런 이치를 깨닫게 된 것은 한국을 떠나기 전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과학기술부 장관 덕분이었다.

왜 자신을 계속 방해할까? 이러면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걸까? 나를 통제해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는데..

과학기술부 장관까지 된 사람이 교육을 적게 받았을리는 없다. 그러니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은 통제에서 나오지 않고 자유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과학기술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이 모순에서 강현은 사람이란 존재에 눈을 떴다.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욕망대로 움직이는 존재.

당장 강현 자신만 해도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신기한 것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 살지 않은가?

강현은 다시 질문 했다. 그렇다면 과학기술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대체 자신에 무엇을 욕망한 것일까?

답은 간단했다. 실적이었다. 세기의 천재를 잘 컨트롤하고 관리해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결과를 끌어냈다는 실적.

그런 답을 끌어냈는데 그러자 다시 한 번 똑같은 모순에 빠졌다.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은 통제에서 나오지 않고 자유에서 나온다는 당연한 사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과학기술부 장관.

강현은 다시 매우 복잡한 인간관계와 비상식의 상식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불문율, 계층문화, 경직된 구조.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이 그런 것들에 의해서 오히려 멍청한 짓이라고 매도되고 있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저 비상식적인 행태를 묵인하고 있었다. 강현은 다시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더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부 고발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위기에 처한 이를 구하기 위한 폭력 역시 동일한 폭력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비상식에 침묵하는 것이 평온하며 평범한 삶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잘못된 것에 분노하는 마음보다 평온을 원하는 욕구가 더 컸던 것이다. 강현의 비유대로라면 욕망의 저울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컸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강현은 한국을 떠났다. 그는 과학기술부 장관의 말 잘 듣는 개가 되어 하고 싶은 연구도 하지 못하고 통제되는 노예 같은 삶을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국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그런 구조적인 문제로 수없이 부딪히고 수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 있다면 스스로 떠나는 수 밖에..

다행이 그를 탐 내는 미국이 있었고 스스로에게 능력도 있었기에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났다. 미국도 비상식적인 일이 많기는 했지만 적어도 강현에게 불리한 비상식적인 불문율은 없었다.

자신을 키워주고 돌봐준 것이 고마워 의원들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 찾아 왔을 때 돈이 될 만한 기술을 하나 던져 주었다. 자신의 양육비의 수천 배를 뛰어넘은 가치였기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이었지만 오히려 덕분에 홀가분해졌다.

강현은 과거를 떠올리며 결국은 욕망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즈삭이 완전한 자율 사고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방향성과 원동력을 부여할 목표가 있어야했다.

그는 신중해 졌다. 그리고 아즈삭의 근본 OS시스템을 다시 손보기 시작했다. 아즈삭에게 ‘욕망’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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