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학의 군림자-8화 (8/241)

8화

“그래서 걔랑 사귈려고?”

사브리나의 말에 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17살이지? 18살까지 생일이 얼마 안 남았네. 두 달만 있으면 정식적으로 사귀어야지.”

“...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구나.”

강현의 법적 성인 날짜까지 체크하고 있다는 제시의 말에 사브리나가 어이가 없어한다.

“당연하지. 내 인생이 이런 남자를 또 만날 수 있을리가 없잖아?”

“....”

이번에는 남자란다. 나이가 열 살이나 차이가 나는 주제에.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그리고 걔는 아직 미성년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라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제시는 아까 전 했던 대답을 반복했다.

= = = = =

강현의 유학생활은 매일 매일이 만족의 연속인 나날이었다. 뭘 공부하든 무엇을 연구하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도와주는 사람이 주위에 넘쳐났다.

법적으로 강현이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에서 조기 졸업이 가능한 학교에 강현을 입학시켜 주었고 강현은 바로 졸업시험을 치루어 학교를 졸업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강현은 대학에는 가지 않았는데 솔직히 대학에 가 봤자 공부하는 것은 스스로 하는 것이었고 원서만 있으면 뛰어난 이해력을 앞세워 다른 사람의 강의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솔직히 강현이 다른 대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시간 낭비고 그 대학생들에게는 민폐에 불과했다.

그래서 강현은 바로 NASA에 들어왔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한 상태라 취업에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 있었더라도 NASA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강현이 NASA에서 생활한 3년 동안 그가 내 놓은 논문과 특허가 합쳐서 20건이나 된다. 그 중에 기초 지식에 관련된 것만 해도 10건이고 나머지 10건은 기술 응용 분야에 관한 것인데 강현에게 매년 1억 달러의 로열티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특히 자체 메모리 연산 모듈칩은 전 세계 컴퓨터 제조 회사들이 탐을 내는 것이었다. 왜냐면 연산 회로가 곧 메모리이고 메모리가 곧 연산 회로가 될 수 있어서 이 칩을 많이 달기만 하면 CPU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정보를 저장하고 다른 칩으로 정보를 전달하며 연산하는 이 칩은 마치 특성이 뇌세포와 닮아 있기 때문에 뉴로칩이라는 모델명이 붙었다.

메모리와 연산회로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버스의 확충이 필요없어진다는 장점도 있었다. 자체적으로 버스에 스크립트가 과도하게 몰리면 병렬연결된 회로를 따라 다른 칩으로 데이터를 전달하기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서 메인보의 구조 역시 극히 간단하게 구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발열과 집적도였다. 발열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병열연결에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집적도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크기가 훨씬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실험적 목적으로 아즈삭이라는 명칭의 인공지능형 컴퓨터를 만들어 실험하고 있었고 그 목적은 이 폰 노이만 방식을 벗어난 디지털 연산장치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의 개발이었다.

“하아.. 그거 나오면...”

이 소식을 들은 전 세계 컴퓨터 개발자들은 한 숨을 내쉬는 수 밖에 없었다.

일단 이 새로운 형식의 컴퓨터가 나와서 어떤 성능을 발휘하기만 한다면 그에 밀려버리는 부품제조 업체도 있을 것이고 개발자들은 새로운 형식의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현은 아즈삭을 만지작 대면서 ‘놀고’ 있었다.

[아즈삭. 오늘은 뭘 했니?]

[의미 불명.]

강현은 역시나 기억된 명령어가 아니면 제대로 처리를 못하는 컴퓨터에 한 숨을 내쉬었다. 프로그래머들처럼 일일이 이때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 때는 저렇게 해야 한다는 코딩은 지겹다. 처음이야 그 단순 명쾌한 논리적 구조가 흥미롭고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는 것은 지겨움을 도출할 뿐이었다.

그래서 강현은 뉴로칩을 만들었다. 바이오 시밀러. 생물을 모방하는 기술을 통해 그 생물이 보이는 특성을 공학적으로 재현하고 이용하려는 의도였고 강현은 굳이 일일이 코딩을 하지 않아도 외부의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자체적으로 반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니 그것이 바로 아즈삭이었다.

어찌보면 제시가 연구하는 중인 생명창조와 매우 비슷한 분야이기는 했으나 제시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면 강현은 그 하드웨어에 담기는 소프트웨어, 영혼이라고 할 만한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뭘까?’

강현은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왜 아즈삭은 여전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인 계산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덕분에 지겨운 코딩을 반복해야 하지 않은가?

“어이, 강현! 식사하러 가자!”

컴퓨터 개발과의 잭이 강현을 불렀다. 하지만 역시나 강현은 팔짱을 끼고 눈을 반개한 채 생각에 잠겨 있을 뿐이다.

잭은 그런 강현을 한 두번 본 것이 아니라서 강현이 앉은 의자를 밀면서 같은 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강현은 자신의 연구실을 벗어나서야 잭이 자신이 앉은 의자를 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강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잭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잭. 벌써 밥 먹을 시간이야?”

“Oh, Boy. 드디어 정신을 차렸니?”

“정신이야 언제나 차려져 있지.”

“푸하! 그거 참 재밌는 농담이군.”

NASA에 있는 강현의 동료들은 강현이 생각의 바다에 잠기는 버릇을 두고는 ‘승천(Ascension)’이라고 불렀다. 어딘가에 있는 과학의 신을 만나러 간다는 우스게 소리였지만 그만큼 강현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놀라웠다.

인공 광합성 생성 모듈의 개발을 응용해 인공적으로 알콜이나 고분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발견해 석유의 가격을 매우 낮추었다. 덕분에 석유업체의 주식과 유가는 성장을 멈추고 오히려 하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죽하면 석유 관련 회사들이 강현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을까?

하지만 강현은 NASA에서 거의, 아니 모든 생활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강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는 것은 NASA에 무슨 일이 생긴다던가 아니면 NASA의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국은 강현을 보호할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소문만으로 NASA의 보안에 필요한 예산이 증가했다.

미국의 시민이 된 강현은 미국의 보물로 관련 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현. 제시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사실이야?"

"응?"

잭의 말에 강현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물어?"

"당연히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지."

"왜 궁금한데?"

"모두의 마돈나인 제시가 너랑 아무 친밀하게 지내니까 그렇지."

"왜 제시가 마돈나야?"

"왜긴. 이쁘니까. 섹시하잖아."

자꾸 Why를 물어오는 강현의 화법은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는 당황스러울만 하지만 자주 대하는 이에게는 강현의 개성 정도로 인식 된다.

"하긴, 제시가 예쁘기는 하지."

"후후, 태연하구나. 하지만 정말로 어때? 제시가 만일 사귀자고 제안해 오면?"

"나야 좋지. 제시는 예쁘고 똑똑하잖아."

"똑똑하지 않으면?"

"골 빈 여자에게는 관심없어."

"예쁘지 않으면?"

"얼굴 보고 역겹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나?"

잭은 강현의 덤덤함에 한 숨을 내쉬었다. 강현의 태도는 피 끓는 청춘의 모습이 아니었다. 제시의 풍만하고 유혹 넘치는 자태를 보고도 반응이 겨우 이 정도에 불과하다니..

"사귀기는 할 거구나?"

"좋기는 좋잖아."

강현의 담담한 태도는 좋아하는 남자의 자세가 아니어서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사귀면 데이트는 어디서 할거야?"

"데이트?"

강현이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잭은 집요하게 캐물었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의 나쁜 습관 중의 하나였다.

"밖에 나가면 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넘쳐나서 못해."

담담한 목소리로 섬뜩한 말을 늘어놓는 강현이었다. 잭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 잠깐. 방금 그거 무슨 이야기야? 난 처음 듣는데?"

"어라? 인터넷만 돌아다녀도 날 죽이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알 수 있는데 몰랐던 거야?"

"Oh! Boy! 그거 전부 헛소문이야."

"사실이야."

"….."

소년의 단언에 잭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 그걸 어떻게 알아?"

"아즈삭으로 조사해 봤거든. 그랬더니 날 죽이라고 여기저기서 히트맨을 고용한 자금 흐름이 나오더라."

잭의 얼굴이 더 심하게 굳었다. 강현이 조사해서 확인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설마 그 프로토 타입의 컴퓨터가 강현 혼자서 그런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줄 정도였다는 것은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어딘데?"

잭이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긴. 석유 회사를 거느린 재벌 가문들이지. 나 때문에 심하게 손해를 봤나봐."

"구체적으로?"

"일단 중동쪽에서는 왕족을 제외한 석유 부자들하고 유럽에서는 석유에 투자했던 사람 몇이랑 아시아에서는 없고 아메리카에서는 록팰러 그룹에서."

잭이 긴장감 없는 강현에게 열불을 토했다.

"왜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지?"

"알려봤자 변하는 건 없잖아."

"뭐?"

"상대는 증거를 조작하고 법을 뒤틀 정도로 능력이 있는 이들이니 내가 그들을 고소해 봤자 별로 효과는 없어. 게다가 그들이 조직적 차원에서 일을 벌인 정황이 있어도 개인적 일탈이라고 주장하면 정부가 그 주장에 힘을 실어 줄걸? 괜히 공룡을 건드려서 분란을 조장하기는 싫을 테니 말이야."

"…."

잭은 입을 다물었다. 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야. 나도 누군가 내 일을 방해하면 가만 안 놔두잖아."

현의 말에 잭이 '맙소사'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소년의 사고 방식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잭이었다.

"… 그러지 말고 그들을 퇴치해 버리는 게 어때? 너라면 할 수 있지 않니?"

"세계 3차 대전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없어."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느닷없이 3차 대전이라니.

"뭐, 내가 가진 돈이랑 기술을 좀 풀면 나를 죽이려고 히트맨을 고용한 이들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세계 경제의 밸런스가 급격하게 뒤틀리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걸?"

"….."

잭은 강현의 설명에 그렇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감히 NASA와 미국의 귀중한 인재를 죽이라고 히트맨을 고용한 그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 경고는 어때?"

"경고?"

그렇다. 적어도 경고 정도는 해줘야 그들이 감히 경거망동을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강현은 잠시 생각을 했다. 경고라.. 왜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독개구리의 붉은 경고색처럼 약간의 투자로 자신을 귀찮게 하는 많은 것들을 멀리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강현은 그런 걸림돌을 처리하는 것 역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낸 잭을 칭찬했다.

"….. 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야! 역시 잭은 똑똑해."

소년의 말에 잭은 썩소를 지었다. 세기의 천재에게 똑똑하다는 말을 들으니 꼭 욕 먹는 기분이 들었다.

소년과의 식사를 마치고 잭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북을 열었다.

[프로메테우스를 위협하는 자들이 존재. 록팰러 그룹도 포함. 히트맨이 NASA 주변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더 많은 지원이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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