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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7화 (7/241)

7화

<02-미국 유학>

건강하게 살아 돌아온 장관은 사람이 변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사람이 몹시도 유해졌다. 단, 강현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왜 예산을 안 주는데요?”

“채산성이 없다.”

“이 연구는 충분히 돈이 된다구요!”

“국가의 정책과 방향이 맞지 않다.”

“....”

소년은 처음으로 예산을 휘두르는 자의 횡포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쪼잔한 인간!”

‘돈! 돈이 필요해!’

때마침 NASA에서 소년이 개발한 인공 광합성 장치의 시연에 개발자인 소년을 초청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작이라 정부차원에서 소년에게 전갈이 가는 것을 막았지만 소년은 어떻게 알았는지 강력하게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하루는 소년이 몰래 연구실에서 나와 장관실을 찾아왔다.

“저 미국 가요.”

“허락할 수 없다.”

“허락 받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통보하러 온 거지.”

뭐? 통보?

기겁한 과학기술부 장관은 직원들을 시켜 소년을 잡으려고 했지만 소년이 고용했다는 경호원들이 막아 섰다. 물론 고용에 편의를 봐준 것은 NASA였다.

미국은 이미 한국 국가 기관이 소년의 자유를 제한할 것을 대비하여 소년이 안전하게 미국에 올 수 있도록 인원을 파견한 것이었다.

“.....”

과학기술부 장관은 통보를 마치고 돌아서는 소년의 등을 보며 망연자실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장관을 부랴부랴 관련 부서에 소년이 한국을 떠나는 것을 막아 달라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미 소년은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간 외교관 용 차와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장관은 닭 쫓던 개 꼴이 되어버렸다.

차후 이 상황이 장관이 예산을 이용하여 소년을 길 들이려는 시도로 인한 것임이 밝혀지자 많은 말들과 소란이 일어났지만 이미 미국으로 가버린 소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Welcome!”

소년이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NASA에서 나온 직원들이 소년을 환영했다.

천재에게는 매우 관대한 미국인의 특성이 소년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소년이 NASA에 도착하니 소년을 위해서 파티가 개최되었다. 낯선 땅의 음식이라 소년의 입맛에 맞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소년은 잘도 음식들을 먹었다.

소년과 친분을 맺고 싶은 연구자들이 소년에게 이것 저것 호감 어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소년은 흥미 있는 질문에만 성실하게 대답했고 그렇지 않은 질문에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소년의 이런 태도는 미국 정보부에 들어가 소년의 성향을 분석하는 요긴한 자료로 쓰였다.

내향적, 하지만 소극적이지는 않음. 자신이 관심을 둔 것을 제외하면 신경쓰지 않음.

미국의 대응 방침은 소년에게 적극적인 지원이었다. 자신을 키워준 나라를 버리고 연구를 위해서 미국으로 와버린 만큼 연구만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미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미국은 어린 나이에 배터리 기술과 인공 광합성 장치를 개발한 천재에게 그 정도 지원을 해줄 생각이 있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 중 소년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의원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소년에게 차세대 메모리 개발을 의뢰하려고 했던 샘성은 그때까지 관련자들에게 먹인 뇌물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결국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소년을 위해서 만든 연구소에 대한 예산안을 처리했던 의원들이 역풍을 맞게 되었는데 명분은 ‘역시나 공부보다는 인성’이란 구호였다. 아무리 공부 시켜봤자 뭐하나? 지 마음대로 외국으로 나가 버리는데.

하지만 웃긴 것이 무한 경쟁 체제로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세태에서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책임론을 맞은 의원들은 어떻게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미국으로 왔다. 강현을 만나서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야 했던 것이다.

미국은 의원들이 소년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소년이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과는 달리 소년은 의원들을 만나기로 했다. 급작스런 사태에 미국은 대처방안을 모색했다. 하지만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NASA에서 소년은 매우 즐겁게 열정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강현 군.”

“잠시만요.”

의원은 강현을 만나자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강현이 먼저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USB를 하나 꺼냈는데..

“여기까지 오신 거 수고가 많으셨구요. 이건 대한민국 정부에 주는 제 양육비요.”

양육비?

의원들의 정신이 멍해졌다.

“그 동안 제대로 연구도 못하게 하면서 은혜를 갚아야 한다, 아니면 사람도 아니다는 둥 짜증나게 해서 갚으려 구요. 평가금액 5천억원짜리의 정보통신 기술이에요. 기준은 미국 기준이 아니라 한국 기준에 맞췄으니까 확실할 거에요.”

기술은 빼먹는 것, 남이 개발한 것을 도용하는 것. 그런 나라에서 평가금액 5천억이라면 제대로 가격을 매겨주는 나라에서는 1조가 넘을 기술임이 확실했다.

“그럼 이만. 저는 연구가 바빠서.”

“자, 잠깐!”

의원들이 강현을 잡으려고 했지만 강현은 이미 총총총 뛰면서 제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의원들은 소년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경비가 막아서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것으로 소년과 대한민국의 인연은 끝난거나 다름없었다.

= = = = =

“현! 이것 좀 봐봐!”

강현은 제시의 부름에 얼른 달려갔다.

제시는 NASA의 재원으로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딴 천재였다. 공학박사라고 믿어지지 않는 금발 미녀라 NASA의 다른 직원들의 마돈나이기도 한 그녀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인공생명의 개발이었다.

지금도 DNA 합성장치를 이용해서 기초적인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있지만 바이러스와 세포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인공생명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낀 강현은 요즘 제시의 연구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건 리보솜이잖아?”

리보솜은 세포내 소기관으로 단백질 합성을 담당한다. 즉, 세포 내부의 제조공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왜?”

“잘 보라니까.”

제시의 말에 강현은 전자현미경을 들여다 보았다. 그가 보는 리보솜은 그 크기가 작았다. 크기로 봐서는 리보솜의 소구조체로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아왔던 리보솜과 모양이 좀 달랐다.

“응? 리보솜이 개체에 따라서 모양이 다른가?”

강현이 알기로는 리보솜의 구조는 모든 생물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거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는 해?”

“물론이고 말고!”

제시가 기쁘게 외쳤다. 그리고 현은 놀라운 발견이라는 것을 알았다.

리보솜은 아미노산을 합성해 단백질을 형성하는데 합성순서에 따라서 수많은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는 마치 4진수 컴퓨터에 비유할 수 있는데 비트의 배열에 따라 프로그램이 바뀌는 것과 비슷했다.

즉, 아미노산의 합성순서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다면 인류는 그 어떤 단백질도 합성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신의 언어라고 비유할 수 있는데 결국 탄소 기반 생명체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리보솜은 DNA의 정보가 현실에 실현될 수 있도록 단백질을 합성하는 컴파일러에 비유할 수 있었다. 컴파일러가 프로그래밍 언어로 코딩된 파일을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에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제시가 발견한 것은 다른 구조의 리보솜. 즉, 이 리보솜을 기존의 리보솜과 비교하여 어떤 부분이 DNA의 컴파일을 하는 것인지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컴파일러의 구조를 해석하는 것으로서 생명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견인 것이다.

강현은 제시가 보여준 리보솜의 구조에 빠져들어갔다.

“그래서 부탁할게 있는데..”

제시는 강현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자 입을 다물었다. 강현은 다른 건 다 좋은데 이렇게 뭔가에 빠지면 주변을 전혀 신경쓰지를 않았다.

강현은 한참이나 새로운 리보솜의 모습을 관찰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시료 좀 나누어줘.”

“여기.”

제시는 강현이 무슨 요구를 할지 그 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히 더 깊은 연구를 위해서 그에 관련된 요청을 할 것이다.

이번에는 이 신형 리보솜의 단백질 구조를 심층 분석하기 위해서 시료를 나누어 달라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단백질은 그 구조가 펩티드 결합을 한 아미노산의 사슬형태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접히고 접혀서 대부분은 덩어리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덩어리의 기하학적인 형태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하고 생화학적인 현상을 일으킨다.

때문에 단백질의 구조 결정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었고 자료가 방대해 인간의 힘만으로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현의 장점이 여지 없이 발휘된다. 그의 장점이란 기이할 정도로 정확한 직감이다. 어떤 논리적 사고를 초월해 정답을 도출하는 것이다.

그 직감이 얼마나 잘 들어 맞는지 NASA의 동료들은 강현의 그 능력을 ‘신의 계시’라고 경외할 정도다.

이번에도 단백질 구조 분석과 정확한 구조의 예측에 강현의 능력이 아낌 없이 발휘되었다. 그리고 강현은 시료를 받아간지 일주일 후에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 3D 데이터를 가지고 제시에게 돌아왔다. 원래는 날밤을 세어도 족히 한 달은 넘게 걸리는 작업이었다.

“여기.”

얼마나 집중을 한 것인지 강현의 얼굴은 쾡해 있었다. 얼굴은 수척해 지고 눈밑에는 다크 서클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벌써 끝낸거야?”

“난 좀 잘게.”

제시가 놀라서 물어봤지만 강현은 대답도 하지 않고 휴게실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가지 못했다. 제시가 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아 버렸기 때문이다.

“제, 제시?”

강현이 당황했다.

“자, 자. 무리하지 말고 푹 자.”

피끓는 사춘기에게 지금 상황에서 자라고 하는 것인가? 이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 말인가?

하지만 강현은 잤다. 일주일 동안 식사도 거의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졸음은 밀려오고 버틸 체력도 없었다.

게다가 하얀 색 실험복 너머로 느껴지는 제시의 체온은 따뜻했고 몸은 부드러웠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쿨~.”

강현은 어느새 푹 잠이 들고 말았다.

“너, 그거 범죄인건 알아?”

같은 연구실을 쓰는 동료인 사브리나가 연구실 반대편에서 고개를 빼들고 말했다. 사브리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있는 아줌마였다. 그녀가 말하는 것은 엄격한 청소년 보호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아직 법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은 강현을 제시가 침대에 끌어들이면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직장에서 짤리는 것도 당연했고.

“나는 바보가 아니야.”

제시가 입을 삐쭉 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잘생긴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그런 어린애라니.”

사브리나는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강현이 고작 어린애라니? 너 지금까지 얘같은 천재를 본적이나 있어?”

“하긴..”

제시의 말에 사브리나는 공감했다.

강현은 마치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천재를 종합한 것 같았다. 폰 노이만의 두뇌 속도, 아인슈타인의 창의력,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응용, 거기에 불가사의한 직감까지.

거기에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도 없고 열정적으로 목표하는 것에 빠져드는 노력의 재능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Estel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로터리 엔진이란게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도 아이디어를 얻어왔죠. 소설 속 세상에서는 로터리 엔진이 개발되지 않았다고 가정했습니다. 의외로 제 주변에 자동차에 대해서 관심이 적으신 분들을 로터리 엔진에 대해서 잘 모르시더군요. 심지어 자동차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요.

로터리 엔진. 궁금하신 독자분들께서는 한 번 찾아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기술적인 아름다움이 뭔지 실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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