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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3화 (3/241)

3화

그리고 그 실무자는 모 의원 쪽의 라인으로 정계에 입문하려고 다년간 노력을 해왔고 거기에 기억도 나지 않는 서류에 사인한 것이 이번에 운 좋게 얻어 걸린 것 뿐이었다.

아무튼 또래보다 자유로운 강현의 생활상은 같은 시설에 살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기분을 거슬리게 만들기 충분했던 것이다.

본디 또래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보다 뛰어난 아이를 대장으로 덜떨어지는 아이는 깍두기로 해서 같이 놀던 미풍양속은 오늘날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시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이 되었고 그 자리에는 대신 왕따, 은따, 일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아무도 건들 수 없었다. 일단 선생님들과 원장도 강현을 싸고 도는 데다가 어떤 사건도 있었다.

강현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낀 금일성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왜 아이 이름을 그따위로 지었는지 부모의 얼굴을 한 번 보고 싶지만 금일성은 고아라 부모가 없다.

아무튼 하루는 책에 빠진 강현을 불러 댔던 금일성은 강현이 계속 자신을 무시한 채 책에 빠져있자 빡쳐서 책을 뺏어다가 집어 던지고 씩씩 댔다.

그때 금일성은 보았다. 자신을 보는 강현의 눈빛은 마치 자신의 발을 걸은 돌부리를 보는 사람처럼 귀찮음과 짜증이 섞인 눈이었다. 결코 사람을 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 강현은 별 말없이 한 쪽 구석에 던져 진 책을 들고 그 자리를 피했다. 금일성은 주위의 아이들에게 봤냐고, 강현이 쫄아서 도망갔다며 허세를 부렸고 아이들을 금일성에게 엄지를 치켜올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금일성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졌다. 강현은 그 모습을 계단 위에 서서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었다.

강현이 금일성을 밀친 것이 아니었다. 금일성이 미끄러졌을 때 강현은 복도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결코 그의 짓은 아니었지만 도움도 요청하지 않고 금일성을 걱정하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바라본 그의 행동 때문에 모두 그가 그런 짓을 했다고 믿었다.

사실 그랬다. 나중에 금일성의 실내화 바닥에 땅콩 기름이 묻어있었고 금일성이 지나가기 전 계단 위에 물을 뿌린 강현의 모습이 CCTV에 찍혀 있었다.

“장난이었어요.”

자신은 설마 그렇게 심하게 다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땅콩 기름이 물과 만난다고 해도 미끄러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항변했다.

당시 소년에게 상황을 물어보기 위해 나왔던 감찰관은 이 사실을 묻었다. 강현이 한 짓은 분명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행이 분명했지만 소년법이 강현을 지켜주고 있었고 강현이 반성하는 표정을 짓는다면 충분히 봉사활동 정도로 처벌이 그칠 것이었다. 괜히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문제를 만들어 골치 아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관료주의란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강현은 선을 분명히 긋고 있었다. 결코 자신이 과학을 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 주위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강현을 싸고 도는 것은 사실상 강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뭣도 모르는 아이들이 강현을 건드려 그런 질 나쁜 장난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강현은 아이들 사이에서 접근 불가의 레벨로 상향 조정되었고 금일성은 강현을 볼 때마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여 결국은 다른 보육원으로 보내지고 말았다.

‘그 눈! 그 눈!’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진 고통을 느낄 때 계단 위에 서서 무표정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현의 얼굴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원장은 강현이 저지르는 모든 사건을 묻어버리고 마는 감찰관의 작태에 직무유기에 근무태만이라면서 혀를 쯧쯧 찼지만 강현을 교육하기 위해서 몽둥이 한 번 들지 않은 그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었다.

‘저러다가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가 되겠지.’

소시오 패스가 출세를 잘 한다던가? 원장은 세상 돌아가는 꼴에 혀를 찼다.

하지만 공부의 힘으로 자폐증을 서서히 극복해가기 시작한 강현은 사이코 패스나 소시오 패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한 독지가가 기부란 명목으로 강아지를 이 보육원에 보냈을 때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돌봤는지 원장이 놀랄 정도였다.

강현은 강아지를 키우면서 꼬박 꼬박 사육일기를 썼는데 그 수준이 놀라울 정도였다.

일주일 단위로 강아지의 털길이와 몸길이를 재어 기록하며 제 손으로 사료를 주고 씻기는 정성도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강아지가 보육원 밖으로 나가버리더니 교통사고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 괜찮냐?”

강현의 두 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강현이 바라보는 나무 밑에는 작은 둔덕이 잇었다. 소년이 직접 강아지를 파묻은 것이다.

원장은 그런 강현이 안타까웠다. 부모님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정성껏 돌보던 강아지까지 차에 치여 죽어버리다니.. 세상 참 얄궂었다.

하지만 강현은 평이한 태도로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너무나 평온해서 원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정말?”

“네. 어차피 살아있는 건 언젠가는 죽어서 사라지잖아요.”

“.....”

원장은 강현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리고 결국 강현은 정신과 의사의 내방을 받게 되었지만 진단 결과는 정상으로 나왔다. 의사는 약간의 자폐증이 남아 있었지만 우울증같은 정신 병리학적인 이상은 없다는 소견을 내 놓았다.

[부모님의 죽음을 계기로 자연 과학에 과도하게 몰입해 공부한 것이 아이의 정신을 성숙하게 한 것으로 보임.]

원장은 그런 의사의 소견에 납득했다.

자연은 넓고 광대하다. 우주와 자연의 신비에 비하면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왜소한가?

소년은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법칙들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형체가 있는 것은 변한다. 그것이 죽음이란 변화일지라도 어쩔 수 없다.

부모님의 죽음은 확률적으로 운이 없었던 것 뿐이다. 자신도 그렇게 운 없게 죽을 수도 있었다.

강아지 해피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다. 해피가 자동차의 무서움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은 참으로 불운이었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죽음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자칫 허무주의나 냉소주의, 혹은 쾌락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었지만 아이의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과학에 대한 열정 역시 여전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은 말한다. 존재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그리고 너무 아름답다고.

단지 가스가 모여 핵융합을 할 뿐인 항성들의 장엄함. 그리고 미시세계의 조화로움과 신비함. 생명체들의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은 삶이 유한하지만 그래도 아름답다는 것을 소년에게 깨우쳐 주었다.

그렇기에 소년은 절망하지 않았다.

소년의 나이 14세. 신형 엔진으로 자동차 업계의 연비 효율을 부쩍 상승시킨 소년은 다시 새로운 발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이차 전지 시장에 혁명을 일으킬 발명이었다.

이차 전지는 결국 전하를 저장하고 전위를 형성시키는 것에 이온의 이동을 이용한다. 하지만 이 이온의 이동을 조절하기 위해서 배터리 내부의 구조와 음극과 양극 물질의 개발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음극과 양극 물질의 종류에 따라서 전지의 용량과 전위가 크게 바뀌기 때문에 극에 사용할 물질의 개발이 전지 개발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강현이 개발한 전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음극와 양극의 물질을 동일한 것으로 하도 전위의 차이를 전해질에 포함된 이온의 농도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충전시에 전하를 가진 이온을 한쪽 방향으로 몰리게 하고 그래핀과 나노 탄소 튜브를 이용해 전해질의 이온들이 전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확산하는 속도를 늦추는 기술은 이 기술의 핵심이었다.

이 기술의 단점은 음과 양극 물질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체 방전이 빠르고 방전시에 양 극에서 이온이 중성화 되어버리기 때문에 다시 충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기적인 기술이 요구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을 압도할 정도의 장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무시무시한 전력 용량과 전위 조절을 배터리의 모양을 통해서 조절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음극과 양극간의 거리를 길게 할 수록 더 강한 전위를 저장할 수 있고 두껍게 하면 할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전하량이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전해질에 사용하는 금속 이온을 제외하면 가벼운 탄소 소재이기 때문에 가볍다는 장점도 있었다. 즉, 전기 자동차의 고질적인 배터리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배터리로 만든 전기 자동차는 충전 시절과 전력망이 깔려있는 문명 지대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출퇴근용 차량으로 이만한 것은 없었다.

세상은 다시 이 천재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이 발명의 라이센스를 누구나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 신청은 안 한다고 했다.

이에 당황한 것은 한국 정부였다. 그들은 이 기술을 전략 기술로 분류하고 막대한 이득을 남길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년의 결정으로 한 순간에 새가 된 그들은 소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 여당의 이순원 의원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강현 군.”

그가 강현을 부드러운 어조로 불렀다. 하지만 타이밍이 않 좋았다. 강현은 응접실에 있던 꽃을 보면서 꽃의 종류와 꽃의 효능을 떠오르며 그런 효능을 내게 만드는 수백가지 화학물질들을 떠올리면서 그 중에 꽃이 생산해 낼 수 있는 후보 물질에는 무엇이 있을까 답을 찾는 지적 유희에 몰입하고 있었다.

이순원 의원은 강현이란 소년을 우습게 봤다가 낭패를 본 몇몇 인사들을 알고 있었기에 소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강현에게는 그런 가치가 있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소년의 존재는 마치 슈퍼스타와도 같았다. 그런 소년과 친분이 있는 정치가라는 타이틀은 그의 정계 생활에 쓸만한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강현은 꽃이 생산할 거라고 생각되는 가장 유효한 물질 후보 12가지를 선정한 후에 현실로 돌아왔다.

“어? 아저씨는 누구세요?”

“이순원 국회의원이라고 한단다.”

“국회의원이요?”

아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순간 이순원 의원의 머리에 얼마 전 아이에게 말을 안 듣는 다고 손찌검을 하려고 하다가 미끄러져 코가 부러진 정세원 의원이 떠올랐다. 거기에 미래 자동차의 이상무 상무이사에게 쪼잔한 곳에서 왜 왔냐고 물은 소년의 발언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진 일도 떠올랐다.

그는 아차 하고는 소개방법을 바꾸었다. 자신은 아이의 뺨을 때리려는 국회의원이 되면 안된다.

씨발놈들. 괜히 어설프게 건드려가지고.

“그냥 이순원 아저씨라고 불러라.”

“네, 아저씨.”

“.....”

“......”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이는 이순원 의원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순원 의원은 아이가 자신이 왜 왔는지 물어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순원 의원의 쓸데없는 혼자만의 신경전은 뻔히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강현아.”

이순원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네, 아저씨.”

“이번에 개발한 배터리 말이다.”

“싫어요.”

“....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그 동안 찾아왔던 아저씨들이랑 똑같은 말을 할 거잖아요. 국익이다 뭐다 애국심이니 충성심이니 하는 것들을 들먹이면서 특허화 하자고 할 거잖아요.”

“....”

역시나 소년은 똑똑해서인지 말도 안 꺼낸 이순원 의원의 방문 목적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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