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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군림자-2화 (2/241)

2화

이름없는 중소기업에서 만든 다리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팔에 피멍이 들것 같았다. 테팔이었다면 가벼워서 그렇게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얼굴에 다리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면한 이상현 이사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제 자식이 아니라도 버릇을 고쳐줘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자식 교육에 관여한 적은 없었다.

구슬 비즈를 피해 바닥에 앉아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강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던 이상현 이사는 갑자기 들리는 전자음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삐빅!

“응?”

펑!

그것은 실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발목 높이에 설치된 레이저 포인트에 나오는 레이저가 이상현 이사의 다리에 가려졌다. 반대편에 있던 광센서는 들어오던 레이저 빛의 차단에 전류가 끊어지고 스위치에 전류가 흐르는 것을 막던 회로가 멈추자 스위치에 전원이 들어갔다.

스위치에 연결될 간단한 전기 회로는 콤프레셔에 의해서 압축공기를 막아두던 밸브에 걸린 기계장치의 모터를 작동 시켰고 밸브가 열리자 압축되었던 공기가 세차게 머리통 만한 굵기의 파이프로 밀려 들어갔다.

파이프 안에는 비슷한 직경을 가진 나무판자가 들어있었고 그 위에 권투 글러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글러브 안에는 강현이 보육원에 와서 받게 된 장난감이 빵빵하게 들어있었다. 즉, 권투 글러브는 압축 공기에 의해서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는 경량과 충분히 충격을 줄 수 있는 단단함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파이프 내부에 공기의 팽창력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넣어둔 나무판자는 글러브에 충분한 에너지를 공급했다. 실로 훌륭한 공기 압축 대포였다.

이상현 이사는 날아온 글러브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 말았다. 혹시 인터넷을 하다가 권투 글러브에 얼굴을 강타 당하는 슬로우 모션을 본 적이 있는가? 살이 떨린다는 표현은 아마 그럴 때 쓰는 것이지만 이상현 이사는 말로는 못하고 직접 경험했다. 볼 살이 물처럼 출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머리가 아득해지는 느낌에 잠시 정신을 못 차렸던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병원 응급실이었던 것이다.

“이, 이!”

이상현 이사는 제대로 망신을 당했다. 매스컴에서 냄새를 맡았는지 응급실 앞에서는 기자들과 회사에서 나온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간신히 기자들과 마주하지 않고 병원을 나온 이상현 이사는 그 막돼먹은 애새끼에게 응징을 가하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그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공세가 들어왔다.

[모 대기업 이사, 천재 소년에게 수작을 부리려다 개망신.]

[목적은 신형 엔진의 특허화? 욕은 누가 먹고?]

반츠와 JM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병신은 더더욱 아니었다. 신형 엔진을 어린 나이에 개발한 강현이 미래에 어떤 개발자로 자라날지 회사 차원에서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이 어린 천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허를 가지고 반츠와 JM,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과 출혈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에서 이 어린 아이는 필요하다면 누구나 가져다 쓰라고 흔쾌히 특허 출원 할 생각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개발자가 공짜로 마음껏 쓰라고 했기에 남은 건 생산 경쟁뿐이었고 반츠와 JM은 소년의 정교한 설계를 완벽히 재연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신형 엔진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은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의 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룹 차원에서 이 천재 소년의 근황을 파악할 필요를 느꼈다. 특허에 탐을 낸 누군가가 소년을 회유하거나 협박하려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적 기업이 이 소년에게 관심의 눈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그룹의 수작질이 포착 되었다.

반츠와 JM은 이 상도덕 없는 기업이 어린 천재에게 손을 뻗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공세적으로 미래 그룹을 망신 줘 버린 것이다. 마침 이상현 이사라는 적당한 소재가 있기도 했었다.

이 일로 망신을 당한 이상현 이사는 이주연 회장의 분노를 사 한가한 자리로 징계성 인사조치를 당했다.

이로서 강현과 미래 그룹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이는 차후 미래 그룹에서 강현이라는 인재를 등용하는데 지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반츠와 JM은 이번 일로 강현과 더 질긴 인연을 맺을 고리를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는 차후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 = = =

“흐음.. 어려워...”

강현은 연필을 잘근잘근 물면서 분자 생물학 원서를 읽다가 어렵다 싶은 부분을 종이에 끄적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서는 영어로 되어 있었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은 소년이 영어에도 손을 쓰게 만들었다. 듣고 말하는 건 아직 어렵지만 읽는 것 만은 별다른 문제가 없는 강현이었다.

“아~! 이렇게 되는 구나.”

강현은 잠시 후 결국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기어이 이해해 버렸다. 그리고는 배가 고픈 것을 느꼈다.

소년은 원서 사이에 책갈피를 끼우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방안이 엉망이 된 것을 발견했다.

“누가 왔었나?”

소년은 누군가 자신을 방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장치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장치 중 두 가지가 작동 되어 있었다. 소년은 날아간 판자와 글러브를 압축 공기 대포에 넣고 다시 콤프레셔의 전원을 올려 공기를 압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쪽에서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와 바닥에 흩어진 구슬 비즈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청소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슬 비즈는 쓰레기가 아니었고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한 유용한 도구였다.

구슬 비즈를 싹 쓸어 담은 소년은 밥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에 원장을 만났다.

“원장님. 누가 왔었어요?”

“응? 왜?”

“책보다가 나오려고 하니까 함정이 작동되어 있어서요.”

“그래?”

원장은 쓴 웃음을 물었다. 소년은 자신이 설치한 함정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안다. 하지만 그것이 뭐 어떻냐고 생각한다.

방해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소년이 누가 왔는지 확인하는 것은 함정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함정에 당한 누군가를 걱정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소년 만의 블랙 리스트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블랙 리스트에 오른 자들은 결코 소년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얻을 수 없게 된다.

“미래 그룹의 이상현 이사가 왔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단다.”

평범한 아이라면 자신이 설치한 함정에 사람이 응급실에 갔다고 하면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들텐데 아이는 후자의 내용보다 전자의 내용에 관심을 더 가졌다.

“그 아저씨면 예전에 제 특허를 300억에 사겠다던 아저씨였죠?”

“.... 그래..”

원장은 300억이라는 말에 부럽고 기가 막혔다. 300억원이 어떤 돈인데.. 그리고 그런 기술을 특허 신청을 하지 않겠다는 강현에게는 감탄사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미래 자동차란 곳은 원래 그런가요?”

“응? 뭐가?”

“반츠랑 JM에서 온 아저씨들은 800억에 사준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300억을 준다는 거랑 비교가 많이 되어서요. 미래 자동차란 곳이 스크루지 영감처럼 짠돌이가 모인 곳인가요?”

원장은 800억이라는 말에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대답해 주었다.

“... 짜긴.. 많이... 짜지.”

교육적 차원에서, 그리고 친 대기업적인 국가의 공무원으로서는 하기 좀 그런 말이었지만 800억에 충격을 먹은 원장의 입에서는 뇌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얼마나 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아이에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얼마나 많이 짜요?”

하지만 아이의 궁금함에 결국 원장은 일단 생각이 나는 것만 이야기 해주었다.

임팩트 바를 수출용에는 두 개, 내수용에는 한 개를 집어넣고는 홈페이지 광고 사진으로 과대 광고라고 문제가 되자 광고 내용을 바꿔버리는 곳이다. 차에 물이 새어도 실리콘으로 허접하게 땜질을 해 놓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해 물이 세는 차를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라는 광고로 팔아먹는 곳이다.

하지만 원장은 자신의 생각 없는 말에 아이에게 미래 자동차란 곳에 그리고 미래 그룹에 어떤 고정관념이 생길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응? 그건 사기가 아닌가요?”

“사긴가?”

원장도 긴가 민가 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법은 쓸데없이 피의자에게 동정적이고 해석이 고무줄 같아서 원장 같은 비전문가가 불법이다 아니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랬다.

“뭐, 그에 관해서 소비자들이 소송을 걸었으니까 법정에서 판가름 나겠지.”

지금까지 대기업이 패소한 경우는 손에 꼽을 경우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결과라고 생각했지만 뭐 어쩌겠나? 원장은 나라의 녹을 먹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강현이라는 싹퉁머리 없는 녀석을 돌보는.

“그런가요?”

강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의문을 접었다. 어차피 짠돌이 집단에 별로 관심도 없고 배가 고팠다. 벌써 소년에게 미래 자동차가 짠돌이 집단이란 이미지가 박힌 건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자.

“원장님 오늘 점심은 뭐에요?”

“돈까스.”

“우와! 만세!”

“였다.”

“였다?”

“지금은 저녁 때야.”

“.....”

강현의 볼이 부풀면서 입술이 튀어 나왔다. 원장은 그런 소년이 쓸데없이 귀엽게 생겼다며 속으로 혀를 찼다.

“반찬은 카레.”

카레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였지만 돈까스를 더 놓아하는 강현에게는 놓친 돈까스가 더 아쉬운가 보다. 여전히 불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원장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돈까스.”

“?”

“저녁 반찬은 카레 돈까스.”

돈까스 재료를 넉넉히 사 놓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카레와 함께 돈까스를 반찬으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돈까스의 존재에 기쁨을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을 놀린 원장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우씨! 원장님, 왜 자꾸 그렇게 말을 끊어서 해요?”

‘그래야 너를 놀려 먹을 수 있잖냐?’

평소 강현의 장난질과 기행의 뒷수습을 한다고 맘고생이 심한 원장의 낙이 말로 강현을 낚는 것이었다.

강현은 생각을 한꺼번에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원장처럼 말 중간에 간격을 두면 강현이 오해를 하고 당황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원장은 그런 어법을 이용해 강현을 놀려 먹어 스트레스를 푸는 중요한 일과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보육원 원장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강현이 있는 보육원은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었고 원장은 관료제로 원장 자리에 앉은 철밥통 공무원이었다.

“자자, 빨리 가야지. 안 그럼 카레 식는다. 돈까스도 식으면 맛없어.”

강현은 원장이 등을 떠밀자 원장의 대답을 듣는 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식당으로 달려갔다. 13살 아이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너무 순진했다.

그런 강현을 보며 원장은 때로는 강현이 앞으로 어찌 살지 걱정되었다. 그는 철밥통 공무원에 불과하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강현의 생활은 일반적인 보육원 생활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런 소년이 그만한 ‘실적’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신형 엔진 발표는 아이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는 실무자의 의견이 그 결과를 보여준 것이라며 역시 천재성과 자유는 불과분의 관계라는 논란을 이끌어 내었다.

허나 실상은 실무자의 의견은 그저 의견에 불과했고 소년의 성과는 온전히 소년의 천재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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