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
제191화
쇠창살 사이로 무언가 튀어나왔다.
“읏!”
선우가 몸을 떼려는 순간.
철컹-!
다시 쇠창살 쪽으로 몸이 끌려들어갔다.
그리고 들려오는 굵고 거친 저음.
“저기….”
“응?”
뒤를 돌아보니 오크가 서 있었다.
꽤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어딘가 굶주려 있는 듯했다.
“오크…?”
선우가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자 그제야 부드럽게 잡았던 팔뚝을 놓아주는 오크.
“너 방금 사람 말을 했냐?”
일반적으로 오크들은 사람 말을 하지 못한다.
물론 선우는 그런 오크들을 알고 있다.
벨론 대륙부터 차곡차곡 모아온 오크 부족들은 모두 선우와 말을 할 줄 알았고 사람들처럼 대화를 했으니까.
하지만 선우 외에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사람 말을 하는 오크란 보기 드문 몬스터에 불과했다.
“오크가 사람 말을 하네.”
“괴물원에 왜 오크가 있는 줄 알 것 같다. 사람 말을 하니까 신기해서 잡아온 건가?”
코딱충과 불나방이 오크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경계를 풀었다.
펑크 보이가 다가왔다.
“뭐냐? 먹을 거 달라고?”
오크의 표정은 굉장히 지쳐 대답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선우가 말문을 열었다.
“미안한데 우린 여기 소풍 온 게 아니라서 먹을 게 없어.”
“아니요… 먹을 건 됐고…. 이것 좀 풀어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오크는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목걸이는 검은색 가죽 끈으로 되어 있었다.
끈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마력이 흘러나왔다.
“흐음~ 이거 누가 채웠냐? 어차피 철창에 가뒀는데 왜 이걸 채웠지?”
오크가 대답하려는 순간.
띠링!
선우에게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인피니티 로드의 마지막 일곱 번째 부족인 ‘탐식의 눈물’ 부족의 족장 ‘란타르’를 찾았습니다.]
[란타르에겐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자 하신다면 다음 버튼을 클릭하세요. Y/N]
‘오~ 얘가 일곱 번째 부족 오크였어?’
선우는 놀라웠지만 속내를 감추고 란타르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러자 새로운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란타르는 플레이어 ‘김선우’ 님 외에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를 먼저 구해주면 향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메시지가 들리고 난 뒤 퀘스트 알림이 들려왔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탐식의 눈물’ 부족장 란타르를 구하라.]
정보: 펑크리아 대륙의 괴물원에 끌려온 탐식의 눈물 부족 오크들이 뿔뿔이 흩어져 갇혀 있습니다.
부족장 란타르를 구해내면 나머지 부족 오크들은 그가 구하러 갈 것입니다.
탐식의 눈물 부족의 오크들은 무엇이든 먹어치울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먹은 걸로 영양 섭취를 하여 더욱 강해질 수 있으며 굶주리면 쇠약해집니다.
지금은 펑크리아 대륙에서 몬스터 포획을 위해 제작한 마력 목걸이로 인해 오크들의 능력이 제한되어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목걸이를 제거한다면 나머지는 란타르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시간제한: 없음
퀘스트 클리어 조건: 란타르의 가죽 목걸이를 제거하라.
보상: 탐식의 눈물 부족의 권속
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박… 여기서 퀘스트가 나오네.’
뜻밖의 장소에서 오크 부족 관련 퀘스트가 나왔다.
인피니티 로드 세계의 일곱 부족 중 여섯 부족의 권속을 모았던 선우였다.
드디어 마지막 일곱 번째 부족인 ‘탐식의 눈물’ 부족의 권속이 눈앞에 나타났다.
“야, 선우야. 저 오크 갑자기 말을 안 하는데?”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코딱충이 물었다.
“그러네. 너무 배고파서 말할 기력이 사라진 건가?”
선우는 아무렇지 않게 능청을 떨었다.
그리고는 란타르가 매달려 있는 창살 가까이로 손을 뻗었다.
“야! 김선우! 뭐하는 짓이야? 위험하게.”
“아냐, 얘는 안 위험해.”
선우는 창살 사이로 손을 넣고 란타르의 목에 걸려 있는 가죽 끈 목걸이를 풀어줬다.
그러자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탐식의 눈물’ 부족장 란타르의 마력 목걸이를 제거하였습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탐식의 눈물’ 부족의 권속을 획득하였습니다.]
[란타르의 마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란타르가 완전한 능력을 되찾았습니다.]
핏기 없던 란타르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그의 눈빛이 또렷해졌고 혈색이 돌면서 말라붙었던 근육이 다시 부풀어 올랐다.
“우와, 뭐야? 저거. 목걸이 하나 풀었다고 갑자기 진짜 오크처럼 변해가네.”
“저 목걸이가 평범한 목걸이가 아니었네.”
펑크 보이와 코딱충, 불나방이 놀라워했다.
마력 목걸이를 선우가 직접 부숴버렸다.
란타르가 완전한 기력을 되찾고 나서 선우에게 고마워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 동족들을 모두 되찾아 와서 당신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란타르의 말에 펑크 보이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야, 지금 얘 자기 구해줬다고 널 주인으로 따르겠다고 하는 거냐?”
“그런 거 같은데.”
펑크 보이가 놀랄 노 자 라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건 뭐 고작 목걸이 하나 풀어줬다고 충성심을 보이네. 개들도 이렇지는 않겠다.”
선우가 란타르에게 물었다.
“야, 근데 여기 철창에서 널 어떻게 꺼내줘야 되냐?”
쇠창살 속으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단순히 물리적 타격으로 부술 수가 없었고 섣불리 손댔다가 마법 결계진이 발동될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괴물원을 감시하는 길드원들이 알아챌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이 목걸이만 없다면 여기서 제 스스로 나갈 수 있으니까요.”
“스스로? 어떻게?”
란타르가 쇠창살로 다가와 손으로 붙들었다.
그리고 쇠창살 하나를 덥석 깨물었다.
“으엑? 야, 뭐하는 짓이냐?”
꽈드득-!
란타르가 쇠창살을 씹어버리자 엿가락처럼 부러졌다.
콰직, 콰직.
놀라운 일은 계속 벌어졌다.
쇠창살을 씹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사탕처럼 잘게 깨물어 먹는 것이 아닌가?
“쟤… 지금 쇠창살을 먹고 있는 거야?”
“뭐야… 오크가 쇠를 먹어? 나 저런 오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란타르는 쇠창살을 허겁지겁 삼키더니 다시 물어뜯었다.
꽈드득-!
쇠창살을 엿 깨물어 먹듯이 먹어대는 란타르.
얼마 안 가 자신이 빠져나오고도 남을 만큼 공간이 넓어졌다.
그리고 란타르의 몸놀림이 좀 더 빨라졌고 힘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쇠창살 한 가닥씩 뜯어먹더니 이제는 한꺼번에 대여섯 가닥을 움켜쥐고 국수 가락처럼 씹어 먹었다.
으드득-!
꽈득! 꽈득!
“와, 미쳤네. 진짜로 저 많은 쇠창살을 다 씹어먹었어.”
“저거 대체 무슨 오크야?”
란타르의 식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쇠창살에 이어 바닥을 보더니 발로 쾅 하고 밟았다.
그러자 엄청난 힘으로 바닥이 금이 가면서 갈라졌다.
손가락으로 갈라진 틈을 찔러 넣고 비틀자 돌덩이가 떨어져 나왔다.
“야, 야. 너 설마 그것도….”
“엄청 맛있네요. 역시 배고파서 그런가.”
와드득-!
사람 몸통만한 돌덩이를 두 손으로 든 란타르.
마치 닭다리 뜯어먹듯이 돌덩이를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대체 저거 뭐야? 오크 맞아?”
이쯤 되니 코딱충과 불나방은 란타르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펑크 보이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건… 나도 정말 처음 보는 오크로군. 괴물원에 있을 만해.”
하지만 선우는 알고 있었다.
란타르는 평범한 오크가 아니라는 것을.
인피니티 클래스인 자신에게만 생성되었던 퀘스트.
일곱 부족의 오크를 모아 그들의 낙원으로 데려가라는 것.
펑크리아 대륙에서 그 해답을 찾아내고 자신이 완수해낼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제 배가 좀 부르네요.”
란타르는 자신을 가둬두었던 쇠창살에게 분풀이라도 하듯이 모조리 다 먹어치워 휑하니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죄다 헤집어버렸다.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제 주군으로 여기겠습니다.”
란타르가 선우에게 예를 표하자 펑크 보이와 코딱충, 불나방은 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야, 선우야. 쟤가 왜 널 주군으로 따라?”
“목걸이 풀어줘서 그런 거야?”
“굉장히 충성심이 강한 오크로군. 저런 오크가 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일찍 알았다면 내 앤트 벙커에서 생체 무기로 연구해봤을 건데.”
선우는 나머지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라. 다른 동족들도 데려오고.”
“예. 곧 형제들을 데려오겠습니다.”
란타르가 선우에게 꾸벅 인사를 하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마어마한 달리기 속도.
“와… 엄청 빨라. 무슨 오크가 저렇게 빠르지?”
“피지컬이 장난 아닌데. 설마 여기 쇠창살 하고 돌덩이 먹었다고 저렇게 강해진 걸까?”
“정말 신기한 몬스터라니까… 괴물원에 있을 만해.”
“야, 너희들 이제 가디언 빌드 사냥 하자.”
선우의 뒤쪽으로 아이언 솔저 19호가 도착했다.
아이언 솔저 19호에 탑승한 선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훙훙-!
“몸놀림 가볍군. 야, 펑크 보이. 이제 가디언 빌드 공격하면 되냐?”
“응? 아, 잠깐만. 얘들한테 무기 좀 나눠주고.”
펑크 보이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자, 하나씩 받아.”
“이게 뭔데?”
“화염방사기 성능을 가진 파이어 샷건이다.”
평범한 샷건처럼 생긴 두꺼운 총을 코딱충과 불나방이 받았다.
“한방 쏘면 화재가 발생하지. 가디언 빌드는 건물이기 때문에 불이 나는 순간 자동으로 소화 장치가 가동된다. 하지만 소화 장치가 가동될 때는 움직이질 못해. 왜냐면 불을 꺼야 하거든.”
“오, 그런 게 있었군.”
펑크 보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디언 빌드의 모든 특징을 선우 일행에게 설명해줬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 가디언 빌드가 불이 난 곳을 다 진압하기 전까지 오일러의 제작법을 찾아서 밖으로 가져나오는 것이다.”
“그럼 누가 안으로 들어갔다 나올 건데.”
“내가 가야지.”
선우가 앞으로 나섰다.
“펑크 보이도 같이 가는 거냐?”
“아니야. 펑크 보이는 여기 남아서 계속 건물에 불을 지펴. 그리고 귓속말로 나한테 오일러 제작법이 보관된 장소를 알려줘.”
“좋아. 그러면 내가 가져온 화염탄을 다 쓰기 전에 빨리 나오는 게 좋아. 3분 준다. 그 이상 버티는 건 힘들어. 만약 여차하면 우린 너 버리고 튈 거야. 걸리면 무조건 캐삭빵이라고.”
“걱정 마라. 내가 3분 안에 오일러 제작법 들고 나올 테니까.”
선우는 로봇 손바닥을 팡팡 두드렸다.
“그러면… 시작한다.”
펑크 보이가 파이어 샷건을 들고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사격 위치를 정해줬다.
“우리가 일제히 발사하면 불이 붙을 거야. 그리고 화재 경보가 울릴 거고. 그러면 즉시 뛰어들어가.”
“오케이.”
선우는 100미터 달리기 준비하는 것처럼 가디언 빌드의 입구에 서 있었다.
불나방과 코딱충이 펑크 보이의 지시를 받고 사격 위치로 이동했다.
철컥-!
철커덕-!
펑크 보이도 사격 위치로 갔다.
“모두들 준비 됐지? 발사!!”
펑크 보이가 먼저 사격을 했다.
타-앙!!
퍼엉!!
쿠화악-!
파이어 샷건을 발사하자 화염탄이 가디언 빌드의 벽에 박혔다.
그리고 엄청난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마치 화염방사기를 뿜어내는 것처럼 사방으로 번지는 화염.
코딱충과 불나방이 불을 보더니 동시에 사격을 했다.
타앙! 타앙!!
펑! 퍼엉!
화르륵-!
가디언 빌드의 다른 곳이 불길이 솟구쳤다.
그리고 화염이 건물 외벽을 타고 안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따르르르-!!
화재 경보음이 들려왔다.
“가자!!”
선우가 로봇을 타고 가디언 빌드의 입구로 빠르게 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