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제190화
선우의 말에 펑크 보이는 대답을 못하고 눈을 한 번 깜박였다.
“뭐라고? 뭘 훔치자고?”
“히든카드. 뭐뭐 있었다고 했지? 야, 내가 맞게 외우고 있는지 봐봐. 올드 갱 길드의 레인보우 오일 채굴기계 제작법, 바비큐 몬스터의 레인보우 팝콘 레시피, 마카롱 쉐이크 길드의 펑크리아 탑의 열쇠. 맞지?”
펑크 보이가 짧게 탄식했다.
“야, 그걸 훔칠 수 있으면 내가 일찌감치 훔쳤지. 왜 이러고 있냐?”
“나라면 훔칠 수 있어.”
선우의 대답에 펑크 보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김선우. 네가 아직 펑크리아 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된 신참이라서 한참 모르는 게 많은데 그 히든카드들을 왜 다른 플레이어들이 훔치겠단 생각을 안 했을 거라고 생각 하냐? 이미 너랑 나 말고도 대부분의 유저들이 그거 한 번 훔쳐보겠다고 별의별 짓을 다 한 역사가 있는 곳이 바로 이 펑크리아 대륙이다.”
펑크 보이는 선우를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훔치려고 했어도 아무도 훔쳐내질 못했지. 대신 걔들은 어떻게 됐을까? 모두 캐삭빵 당했어.”
코딱충과 불나방이 물었다.
“뭐? 야, 그게 말이 되냐? 어떻게 캐삭빵을 당해? 대결도 아니고 그냥 훔치려고 한 건데.”
펑크 보이가 코웃음을 쳤다.
“3대 길드가 아예 대놓고 조건을 걸었거든 자신들의 히든카드를 갖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하지만 가져가려고 한다면 캐릭터 삭제를 걸고 가져가라. 훔치려다 걸리고 실패하면 캐릭터 삭제해라. 이렇게 했지. 그러니 캐삭빵 성립이 되지.”
“그냥 몰래 훔치면 되지 않아?”
“야, 그렇게 따질 거면 대결 앞에 두고 캐삭빵 걸었다가 지고 나서 없었던 걸로 하자고 배짱부리는 거랑 뭐가 달라? 3대 길드가 펑크리아 대륙 모든 유저들이 알도록 공지를 다 한지가 언젠데. 모두가 다 아는 룰이 됐으니 훔치려다 걸리면 캐삭빵이지.”
“그럼 훔치려다 걸리기만 해도 캐삭빵인 거야?”
“그건 아니지. 그러면 펑크리아 대륙의 게이머들이 남아나지 않을 걸? 훔치려다 걸려도 도망치기만 하면 상관없어. 문제는 도망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지.”
펑크 보이가 낄낄거렸다.
선우가 물었다.
“어디에 보관되어 있냐?”
“야, 김선우. 한 가지만 물어볼게.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 히든카드들을 다 훔칠 수 있다는 거냐?”
“너희들은 못 해도 나라면 할 수 있으니까.”
선우의 대답을 들은 펑크 보이는 혀를 끌끌 찼다.
“무시무시한 자신감이군. 좋아, 그러면 일단 올드 갱 길드의 레인보우 오일 채굴 기계 제작법을 훔치는 게 어떠냐? 물론 너희들이 행동하고 나는 그냥 정보만 준 거니까 빼줘라.”
“펑크 보이. 너도 이미 한 배를 탔으니 같이 가야지. 내가 이걸 훔쳐내면 널 안 불 거라고 생각 하냐? 들키기만 해도 싹 다 불어버릴 거야.”
“알았어. 알겠다고!”
펑크 보이는 이미 선우와 엮일 대로 엮여버렸다.
“가프치노가 보관해둔 레인보우 오일 채굴 기계 ‘오일러’의 제작법이 보관된 곳은 ‘괴물원’ 이야.”
“괴물원?”
“그게 뭔데?”
“펑크리아 대륙에 살고 있는 온갖 몬스터들을 수집해놓은 가프치노의 개인 소유 괴물원이야. 그 안에는 가치 높은 몬스터들이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관리되고 있지.”
괴물원은 가프치노가 소유하고 있는 개인 공간이었다.
이곳 어딘가에 레인보우 오일 채굴 기계 ‘오일러’의 제작법이 적힌 책이 보관되어 있었다.
“좋아, 그러면 괴물원 먼저 가자.”
“이미 땅 위에서는 우리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다. 어떻게 갈 거냐?”
“펑크 보이. 네 일개미들 얼마나 굴을 빨리 파냐?”
“설마… 괴물원까지 파라고?”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펑크 보이가 한숨을 뱉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네 방법이 최선이니까.”
펑크 보이는 일개미들을 시켜서 괴물원까지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야, 근데 네가 소환한 개미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괴물원 주소를 알고 파는 거지?”
“후각으로 위치를 파악하니까. 내가 말한 곳을 후각으로 탐지하면 거기까지 땅굴을 파면서 길을 만드는 거지.”
펑크 보이의 일개미들은 엄청난 속도로 땅굴을 파 들어갔다.
* * *
가프치노는 어딘가에서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후우욱!”
새하얀 연기를 뿜어내자 카우보이 갱스터들이 마구 몰려나왔다.
“쏴라!!”
가프치노의 명령을 받은 카우보이 갱단들이 어딘가로 총질을 해댔다.
콰쾅!! 콰앙!!
총알이 박힌 곳마다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크윽… 젠장, 지원군!! 지원군 언제 오는 거냐?!”
아이언 솔저 3호가 꼬리가 뜯겨져 나간 채 낮은 포복을 하며 무전을 요청했다.
“여기는 아이언 솔저 3호! 2호가 당했다!! 긴급 지원 바람!! 가프치노의 카우보이 소환수들에 의해 포위당해 있다.”
아이언 솔저 3호는 다 깨져가는 투명한 유리막 너머로 카우보이 갱스터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 아이언 솔저 1호가 지원 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라.
“1호 갖고는 부족해!! 가프치노의 카우보이들이 너무 많다고!”
- 아이언 솔저 4호부터 10호까지 연락이 왔다. 모두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 조금만 버텨라.
“빨리 와라! 빨리!”
타타탕!!
콰아앙-!!
엄청난 불기둥이 솟구쳤다.
“카하하하!! 왜 아까 같은 기세는 다 사라진 거냐? 앙?”
가프치노는 여유만만한 자세로 시가를 물고 서 있었다.
카우보이 갱스터들이 계속 뻗어 나왔다.
아이언 솔저 3호가 한 명 죽이면 사라졌지만 그때마다 가프치노는 연기를 뿜어냈다.
시가의 연기가 뿜어져 나와 사라질 때까지 카우보이 갱스터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제기랄!!”
꼬리 조직이 뜯겨져 나갔고 한쪽 팔이 박살나 떨어진 아이언 솔저 3호.
카우보이 갱스터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면서 권총을 발사했다.
타앙-!
“끄악!”
아이언 솔저 3호의 무기를 든 손이 떨어져 나갔다.
“젠장….”
카우보이 갱스터들이 나타났다.
철커덕-!
일제히 원을 그린 채 말 위에서 아이언 솔저 3호에게 총을 겨눴다.
가프치노가 나타났다.
“네놈 보스에게 전해줄 말 있으면 해라.”
“폼 잡지 마! 늙은 털복숭이 뚱땡아! 보스에겐 다시 로그인해서 전달할 거다!”
“하지만 어쩌냐? 네 아이언 솔저 3호가 완전 못 쓰게 되었으니, 그걸 다시 구하려면 한동안 미스터 로스트 놈 진땀 빼겠구만. 카하하하!!”
아이언 솔저 같은 전투 로봇은 한 번 망가져서 수리불능 상태가 되면 새로운 모델을 구입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모델이 날마다 나오는 게 아니었기에 다시 손에 넣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얘들아, 저 로봇을 아예 파기시켜라.”
타타탕!!
콰앙!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고 아이언 솔저 3호는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흥, 이걸로 아이언 솔저 2호와 3호는 없앴…응?”
어디선가 미사일이 날아오고 있었다.
“쏴, 쏴라!!!”
가프치노가 도망치자 미사일이 쫓아왔다.
“빨리 쏴버려!!”
탕! 탕! 타탕!
카우보이들의 총질에 의해 미사일이 가프치노 코앞에서 폭발했다.
“꾸엑!”
가프치노가 바닥을 뒹굴었다.
철퍽-!
어디선가 전투 로봇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여기는 아이언 솔저 1호. 가프치노를 발견했다.”
“아이언 솔서 4호. 장소에 도착했지만 3호는 이미 끝났다.”
“5호 도착했다. 가프치노를 처리하겠다.”
아이언 솔저 1호부터 10호 중 2호와 3호를 제외한 전투 로봇들이 도착했다.
“카하하! 이미 늦었다. 나라고 지원군을 안 불렀을 것 같으냐?”
전투 로봇들이 서 있는 뒤쪽으로 수백 대의 검은 차량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떠냐? 이 버려진 주차장이 너희들을 폐기처분을 시키기엔 적격이라고 보는데.”
* * *
펑크 시티에서 서쪽 끝 환상의 숲.
이곳에는 가프치노가 소유한 괴물원이 웅장하게 차려져 있었다.
차각-차각-!
괴물원의 바닥이 갈라지더니 흙더미가 파헤쳐졌다.
일개미들이 더듬이를 흔들며 밖으로 나와 사방을 경계했다.
조금 뒤 선우 일행이 올라왔다.
“휴우, 여기가 괴물원인가?”
괴물원은 동물원하고 시설이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거라고는 동물 대신 괴물들이 우리 안에 들어 있다는 것.
크와앙!!
퀴아악!! 퀴악!
캬웅~
온갖 괴수들의 울음소리가 빗발쳤다.
낯선 인간들의 냄새를 맡은 것이었다.
“어우, 몬스터들 누린내가 엄청 심하네. 여기 청소는 안 하는 거냐?”
“이쪽은 괴수 우리하고 근접한 곳이라서 그렇다. 따라와. 이쪽이야.”
펑크 보이는 선우 일행을 데리고 오일러 제작법이 숨겨진 곳으로 안내했다.
넓은 괴물원의 괴수우리는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선우 일행은 괴수들이 갇혀 있는 철창을 통과하면서 펑크 보이를 따라갔다.
“모두 주목. 저기 저 건물 보이지?”
철옹성 같이 세워진 거대한 건물이 보였다.
“저곳에 오일러 제작법이 있다.”
“경비 서는 애들이 아무도 없네? 이렇게 허술한데 아무도 훔치질 못했다고?”
“후후후. 저 건물에는 경비를 설 필요가 없어.”
“뭐? 왜?”
“왜냐하면 저 건물 자체가 이 괴물원을 지키는 경비원인 셈이니까.”
펑크 보이의 말에 선우 일행은 서로를 쳐다봤다.
“그게 뭔 소리냐?”
“저 건물은 사실 살아있는 괴물이다. 평소에는 건물의 형태로 얌전하게 있지만 침입자가 나타나면 건물 전체가 움직이면서 침입자들을 모두 없애지.”
“그런 몬스터도 있냐?”
“가디언 빌드라고 불리는 몬스터지. 저 괴물이 건물로 위장하고 있으니 플레이어들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 건물인 줄 알고 들어갔던 거야. 하지만 결과는? 플레이어들 스스로 괴물 아가리로 들어간 꼴이지.”
“오~ 그러니 저곳에 보관해두는 거였군.”
“그러면 가프치노는 오일러 제작법을 확인할 땐 어떻게 들어가는 거냐?”
“가디언 빌드는 자신의 주인과 주인이 허락한 몇몇 사람들은 공격하질 않아. 그럴 때는 일반 건물하고 똑같아.”
“대박, 그러면 오일러 제작법을 꺼내오려면 저 건물 자체를 부숴버리는 수밖에 없군.”
“바로 그거야. 결국 저 가디언 빌드를 죽이지 않으면 오일러 제작법을 훔치는 건 불가능해.”
“그러면 괴물원에는 다른 길드원들이 없는 거냐?”
“왜 없겠냐? 가디언 빌드가 날뛰기 시작하면 곧장 괴물원 곳곳에 설치된 보안실에서 플레이어들이 몰려올 건데. 그러니 지금까지 오일러 제작법을 훔친 플레이어가 죄다 캐삭빵 당했지.”
직접 와보고 나서야 왜 3대 길드의 히든카드들이 아직까지 도둑맞질 않은 건지 이해가 되었다.
“어떡할래? 아직도 히든카드를 훔칠 자신이 있냐?”
펑크 보이가 씩 웃으면서 선우에게 물었다.
선우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지. 남들은 다 못해도 나는 오일러 제작법 훔칠 수 있어.”
여전히 선우의 자신감은 굉장했다.
“좋아, 그 자신감 이제는 인정할게. 그러면 저 가디언 빌드를 어떻게 죽이느냐만 남았군. 사실 다른 길드원들이 몰려오는 건 큰 문제가 안 돼. 지금까지 훔치다가 캐삭빵 당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저 가디언 빌드가 죽였거든.”
“먼저 앤트 벙커 창고에 보관한 전투 로봇을 여기로 불러와야지. 그리고 나서 작업을 시작한다.”
선우가 손목에 붙여둔 인피니티 스티커를 만졌다.
그러자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아이언 솔저 19호가 플레이어의 콜에 반응 하였습니다.]
[현재 플레이어의 위치로 아이언 솔저 19호가 오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선우가 뒤쪽에 있던 쇠창살에 등을 기대는 순간.
“야, 김선우!! 물러나!”
마주 보던 펑크 보이와 코딱충, 불나방이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