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제188화
펑크 보이의 말에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걔들이 뭔데?”
“펑크리아 도심지 중 가장 번화가인 펑크 시티의 지배자들이다. 펑크리아 대륙 3대 길드 중 하나라고. 너 이제 어쩔 거야? 그 로봇도 바비큐 몬스터 길드 마스터가 부탁해서 내가 엄청 고생해서 구해온 레어템 인데 네가 그걸 갖고 길드 간부를 눕혔으니 이제 보복은 피할 수 없어. 네가 다 책임져!”
“야, 야. 덩치 값 좀 해라. 뭐 그렇게 난리를 쳐? 그냥 밀어버리자.”
“밀긴 뭘 밀어 인마!! 바비큐 몬스터가 무슨 때밀이냐? 밀게.”
“네 입으로 그랬지? 펑크리아 대륙 최고의 무기 브로커가 너라고. 그러면 이 기회에 실력 좀 보자. 무기들 공급했던 애들한테 말해서 용병들 좀 구하고 바비큐 몬스터 조지자고.”
“뭐, 뭐라고? 바비큐 몬스터를 조져?”
“응. 못할 거 없지.”
선우의 말에 펑크 보이는 기겁했다.
“볼프 자식… 대체 어디서 이런 미친놈을 나한테 던져버린 거야?”
“야, 걔는 비둘기 꼬치 파는 착한 플레이어야. 너무 그렇게 욕하지 마라. 이 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는 거다.”
“닥쳐! 인마! 우리끼린 뭔 터져 죽을 우리끼리야? 날 끼워 넣지 마라. 나는 분명히 내 할 일 다 했어. 네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망친 거야!”
“야, 펑크 보이. 주둥이는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너 때문이잖아.”
“왜 나 때문이냐? 미친놈아!”
“네가 코딱충을 다짜고짜 패지만 않았어도 이런 사건까지 벌어지진 않았어. 안 그러냐?”
“그… 그건….”
펑크 보이가 코딱충을 노려봤다.
코딱충이 자신에게 맞은 부위를 어루만지면서 째려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코딱충에 이어 불나방까지 팼지. 내 앞에서 부하들을 패는데 내가 가만있을 리가 없잖아? 넌 거기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거야.”
선우의 말에 펑크 보이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펑크 보이가 물었다.
“좋아. 그건 다 내 실수였다고 치자. 하지만 아이언 솔저 19호에 멋대로 올라타서는 나오지도 않고 버팅긴 건 너다. 그것도 고객이 왔으니 나오라고 해도 넌 말을 안 들었어. 그리고 빅 버펄로와 붙게 됐고 이제 바비큐 몬스터 애들의 추격을 받게 생겼지. 이건 무조건 너 때문에 벌어진 거라고. 네가 나오기만 했었어도 이런 일은 안 벌어졌어.”
펑크 보이의 말에 선우가 대꾸했다.
“야,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 부하들 그렇게 패는데 나라고 섣불리 여기서 나오겠냐? 널 뭘 믿고?”
“으아악!! 젠장! 몰라! x발!!”
결국 펑크 보이는 깽판을 쳤다.
“일단 너도 어차피 엮였으니 현실을 인정하고 날 따라와라.”
“뭘 따라와?”
“바비큐 몬스터를 치러 가자니까.”
“너… 진담인 거냐?”
“난 농담 같은 거 안 해.”
펑크 보이는 잠깐 고민을 했다.
‘젠장… 이렇게 된 거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순 없어.’
바비큐 몬스터 길드의 간부를 선우가 처치했으니 결국 같이 있던 펑크 보이 역시 보복 대상이다.
“어쩔 수 없군. 좋아. 따라와라.”
펑크 보이는 자신의 작업실을 서둘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툼한 핫도그만한 크기의 캡슐을 바닥에 던지자 펑 하고 터졌다.
엄청나게 많은 개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강아지만한 크기의 개미들이 펑크 보이 앞에 일렬로 섰다.
“이건 뭐냐?”
“소환 캡슐로 불러낸 일개미들이지. 여기 있는 물건들 싹 다 밖으로 빼라.”
개미들은 각자 흩어져서 펑크 보이의 작업실을 정리했다.
* * *
펑크 시티 북서쪽의 술집 골목.
타타탕!!
“끄아악!”
“꺄악!”
“도, 도망쳐!”
사방에서 총질이 이어지고 있었다.
퍼억-!
쨍그랑!
“으악!”
탕! 탕! 타탕!
투투투투-!
콰앙!!
폭탄이 터지면서 플레이어 몇몇이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흩날렸다.
“쿨럭… 뭐냐?”
저벅-저벅-
깨진 유리 조각들을 구둣발로 밟으면서 누군가 다가왔다.
“내 레인보우 팝콘을 도둑맞았다며?”
“아… 미스터 로스트… 죄송합니다. 반드시 되찾아오겠습니다.”
“아~아~ 상관없어. 신경 쓰지 마. 누가 훔쳐갔는지 내가 알아냈으니까. 할리킹이 똘마니들을 데리고 작업을 했더군. 올드 갱의 가프치노의 오른팔.”
미스터 로스트라는 닉네임을 쓰는 플레이어는 입을 벌리고 스프레이를 뿌렸다.
“후우… 일단 내 물건 훔쳐간 놈들은 누군지 알아냈고 이미 애들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희들의 실수가 덮어지는 건 아니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필라델피아 길드의 간판을 걸고 시키시는 거라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플레이어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미스터 로스트가 쪼그려 앉으며 플레이어와 눈을 마주쳤다.
“고개를 들어, 파블로프.”
파블로프가 미스터 로스트의 눈을 바라봤다.
“바비큐 몬스터 길드에서는 언제나 기회를 한 번만 준다. 두 번째는 없어. 그러니 이번에도 실패하면 넌 물론이고 나머지 길드원들 모두 캐릭터 삭제를 해라. 안 그러면 할 때까지 찾아올 테니까.”
파블로프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올드 갱 가프치노를 죽이라면 죽이러 가겠습니다.”
“아냐, 걔는 놔둬.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넌 지금 즉시 김선우를 잡아와라.”
“예? 누구요?”
미스터 로스트가 입을 벌리고 다시 스프레이를 뿌렸다.
상큼한 레몬 향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김선우. 그놈이 내가 아끼는 부하인 빅 버펄로를 죽였어. 덕분에 버펄로는 모처럼 만의 레벨 업을 앞두고 경험치가 대폭 깎여버렸지. 무려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고생해서 모아놓은 경험치를 몽땅!”
“아… 그거 참 안 됐군요-옵?”
미스터 로스트가 갑자기 파블로프의 멱살을 잡고 당겼다.
“안 된 정도가 아니야. 버펄로 놈이 얼마나 열이 받았는지 캡슐 밖으로 나와서 결국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 거라고 지금은 치료를 받는 중이지.”
“아… 다, 다행입니다… 하하.”
“다행은 아니야. 경험치를 날려버렸다니까? 그리고 지금은 병원에서 치료비도 날리는 중이지. 누구 때문에? 김선우란 놈 때문에.”
“김선우에 대해 정보를 주시면….”
“놈에 대한 정보는 이미 인터넷에 널려 있다.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를 들어가 봐. 아니면 놈의 개인 채널 영상을 살펴봐도 되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놈만 산 채로 잡아오면 됩니까?”
“그놈하고 같이 다니는 코…뭐더라?”
미스터 로스트 뒤에 서 있던 부하가 대답했다.
“코딱충입니다. 보스.”
“아, 그래. 코딱충. 그리고 불나비?”
“불나방입니다. 보스.”
“그래. 불나방.”
갑자기 미스터 로스트가 벌떡 일어나더니 뒤에서 대답하던 부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알고 있었어! 잠깐 기억이 안 난 것뿐이라고!”
“죄송합니다. 보스.”
미스터 로스트가 다시 쪼그려 앉았다.
“들었지? 김선우와 밑의 떨거지 두 마리를 같이 잡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와 네 길드원들은 모두 캐삭빵으로 끝이니까.”
“알겠습니다. 반드시 잡아오겠습니다.”
“김선우를 잡아오는 데 들어가는 모든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주겠다. 이런데도 실패한다면….”
“걱정 마십시오. 김선우 그 놈은 이미 제 손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파블로프가 호언장담을 하자 미스터 로스트가 일어났다.
“아, 그리고… 그놈이 내가 구하려고 애를 썼던 아이언 솔저 19호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를 버펄로에게 들었다.”
“예? 뭐라고요?”
“아이언 솔저 19호.”
“아이언… 솔… 이게 뭐죠?”
미스터 로스트가 주변의 부하를 둘러보더니 다시 쪼그려 앉았다.
“전투 로봇이다. 펑크리아 대륙 역사상 가장 완벽한 로봇 병기지. 내가 아이언 솔저 1호부터 18호까지 모두 모았는데 19호… 그것만 못 모았거든.”
“아… 컬렉션이군요.”
“컬렉션이 아니야. 그건 위대한 예술품이지.”
“아…예….”
“그러니까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자면 김선우 그 흉악한 마왕 잡종 같은 놈이 나의 예술품을 타고 다니면서 더럽히고 있는 중이다 이거야.”
“그러면 그 아이언 솔저 19호도 같이….”
“자네가 지켜야 할 건 딱 하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의 아이언 솔저 19호가 망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 불가피한 흠집이 나는 건 상관없다. 그 정도 깨끗하게 복원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은 내 밑에 많으니까. 하지만 만약 아이언 솔저 19호가 망가져서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면… 그때는… 캐삭빵이다.”
“예? 아…예. 알겠습니다.”
파블로프가 침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미스터 로스트가 씩 웃으면서 파블로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는 필라델피아 길드의 능력을 믿는다. 반드시 김선우와 아이언 솔저 19호를 가져오도록.”
“예! 지금 즉시 놈을 쫓겠습니다.”
미스터 로스트는 일어나 발길을 돌렸다.
치이익-!
입을 벌리고 레몬 스프레이를 뿌린 뒤에 혀를 놀리던 미스터 로스트.
그를 따라가던 부하 플레이어들이 물었다.
“보스, 아이언 솔저 19호를 김선우가 계속 타고 버틴다면 망가뜨리지 않고 꺼낼 방법은 없습니다.”
“차라리 다른 아이언 솔저 모델을 보내는 게 어떨까요?”
“이미 1호를 보냈다.”
“그렇군요. 그러면 무사히 19호 모델을 손에 넣으실 겁니다.”
미스터 로스트는 부하 플레이어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거대한 리무진 차량에 올랐다.
리무진 차량 지붕 위에는 바비큐를 굽는 몬스터 동상이 설치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요? 보스.”
“펑크 타워로 가자.”
“예.”
미스터 로스트를 태운 리무진이 어딘가로 출발했다.
* * *
펑크 보이의 또 다른 아지트.
“야, 여기는 어디냐?”
“후후후. 이곳은 아무한테도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비밀 벙커다. 일명 앤트 벙커라고 하지.”
“앤트 벙커? 개미집이냐?”
“시끄러!! 폼 떨어지는 이름 부르지 마라. 앤트 벙커라고 해라.”
펑크 보이의 앤트 벙커는 펑크 시티의 지하 깊숙한 곳에 설치되어 있는 비밀 요새였다.
“이야, 여기 시설 끝내주는 구만. 완전 지하 미궁 급이네.”
“그딴 미궁하고는 차원이 달라. 여기는 나의 일개미들이 오랫동안 몰래 제작해온 초특급 아지트라고.”
펑크 보이가 흙으로 다져진 벽면에 설치된 버튼을 눌렀다.
지이잉-!
갑자기 선우가 서 있던 뒤쪽의 벽면이 열렸다.
“이제 그 로봇에서 좀 나오지 그래? 어차피 너랑 난 한 배를 탄 몸이라고. 이제 와서 뭘 해코지하겠어? 믿고 나와. 아이언 솔저 19호는 저 창고에다 보관해라.”
“갑자기 놈들의 공격을 받으면 바로 싸워야 되는데 저기다 넣고 꺼내기엔 번거로워.”
“멍청아. 이미 네놈이 먼저 타고 동기화까지 해버렸잖아!”
“그게 뭔 소리냐?”
“네 캐릭터의 신체와 아이언 솔저의 시스템이 부팅되고 싱크로율 100퍼센트를 완료했으니 아까처럼 전투가 가능한 거다. 거기 조종석에 스티커 보이지? 그걸 손목에 붙여. 그러면 거기서 나와도 스티커에 손을 대면 자동으로 로봇이 움직여서 너한테 온다고.”
“오~ 대박. 신기한 로봇 무기네.”
“그러니 안심하고 나와도 된다.”
선우는 펑크 보이가 알려준 대로 조종석에 달려 있는 스티커를 발견했다.
그런데 독특한 문구가 스티커에 쓰여 있었다.
‘인피니티 패치?’
선우는 아무 생각 없이 인피니티 패치를 손목에 붙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