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제187화
인터폰이 울리는 걸 들은 펑크 보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입으로 쉬쉬거렸다.
“이거 좀 놔라. 저거 대답해야 돼.”
선우가 펑크 보이를 놔줬다.
펑크 보이는 재빨리 모니터 책상으로 가더니 대답했다.
“아하하. 생각보다 엄청 일찍 왔네.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 내가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무슨 상관이야? 물건 가지러 왔으니 빨리 열어.
“아, 잠깐만 기다려라.”
펑크 보이가 뒤쪽에 있던 선우 일행에게 손짓했다.
“야, 빨리 거기서 나와.”
“걔가 이 로봇의 고객이냐? 잘 됐네. 들어오라고 해라. 어떻게 된 건지 자초지종을 설명시켜주고 돌려보내지.”
선우의 대답에 펑크 보이는 기절하기 직전이었다.
“으어어… 미친놈아. 아까는 내가 진짜 잘못했다. 그러니 한 번만 봐줘라. 응?”
“들어오라고 해. 일단 내가 직접 해결할 테니까.”
펑크 보이의 책상 마이크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짜증이 잔뜩 들어 있었다.
- 야!! 펑크 보이!! 빨리 안 열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냐? 만약 딴 생각 하는 거라면 보스가 널 가만 안 둘 거라고!
“아, 알았어. 문 열게. 연다고. 젠장… 성질도 급한 것들 밖에 없어서.”
띠-이이-
펑크 보이가 버튼을 누르자 공장의 출입구가 열렸다.
조금 뒤에 낯선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빡빡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아닌 동전만한 크기의 버튼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고 굵은 목에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였다.
덩치는 펑크 보이보다도 더 컸다.
체격이 하마 몸통 같았고 코 밑으로 산소마스크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워~ 이것이 그 아이언 솔저 19호로군. 하하하. 보스가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야. 투박하고 거칠고 러프한 색감에… 완벽한 사지 구성… 거기다 특별한 무기 옵션들까지…응?”
아이언 솔저 19호에 가까이 다가오던 사내는 눈동자를 부릅떴다.
“뭐냐… 넌….”
“아…하하하하!! 이봐 빅 버펄로. 일단 인사해. 이 사람으로 말할 거 같으면….”
“나와라.”
빅 버펄로가 험상궂은 얼굴을 더욱 사납게 구기면서 안에 들어있던 선우를 노려봤다.
선우가 안에서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야, 미안한데 이 로봇은 방금 팔렸다. 내가 이제부터 아이언 솔저 19호의 새 주인이다. 가서 보스에게 전해라. 누가 이미 사갔다고.”
“…애송아. 당장 나와라. 안 그러면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다.”
빅 버펄로의 주먹이 빠드득 움켜쥐었다.
그 모습을 본 펑크 보이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말했다.
“이봐. 여기서 소란을 피우진 말라고. 여기는 내 작업실이니까….”
“어이, 펑크 보이. 이 참새모가지는 어디서 굴러들어온 거냐? 왜 보스의 로봇에 이런 게 타고 있어? 넌 뭐하는 거야? 빨리 나오라고 해.”
“아니, 내가 나오라고 몇 번을 지랄했는데도 안 나오고 저렇게 버티고 있잖아.”
“그러면 나오게 해줘야지.”
빅 버펄로가 인벤토리를 열고 무기를 꺼냈다.
거대한 버펄로의 뿔이 좌우로 돋아난 해머였다.
“야! 잠깐! 버펄로. 저거 네 보스 물건이잖아. 만약 흠집이라도 나면 어떻게 책임질 거야?”
“… 아, 그렇군.”
빅 버펄로가 무기를 다시 집어넣었다.
“이봐… 꼬맹아. 말로 할 때 나오는 게 좋다. 빨리 나와라.”
하지만 이 모든 대화를 선우가 들은 뒤였다.
자신이 지금 타고 있는 아이언 솔저 19호는 빅 버펄로라는 플레이어의 보스가 아끼는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로봇에 손을 댈 수는 없다.
흠집이라도 났다간 빅 버펄로가 그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
‘요것들 봐라…?’
선우는 아이언 솔저 19호 안에서 버티기로 작정했다.
어차피 자신을 끌어내려면 로봇을 박살내야 할 것이다.
빅 버펄로도 펑크 보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선우가 나올 리는 없다.
“이건 내 거라니까.”
선우가 버티기에 돌입했다는 것을 깨달은 빅 버펄로.
“후후후. 이 꼬맹이가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군.”
빅 버펄로가 뒤쪽에 있던 코딱충과 불나방을 발견했다.
“저놈들은 누구냐?”
“쟤하고 같이 온 놈들이다. 부하들이지.”
“부하?”
빅 버펄로의 눈이 음흉하게 구겨졌다.
“이봐, 그럼 거기서 네 부하들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구경이나 해라.”
“응? 뭐, 뭐냐?”
구경하던 코딱충이 전투 자세를 취했다.
불나방이 무기를 꺼내려는 찰나였다.
빠아악-!!!
빅 버펄로의 오른쪽 주먹이 미사일처럼 날아가 불나방의 몸통을 직격했다.
“커헉!”
불나방의 눈동자가 커졌다.
쉬아앙-!!
콰장창!!
20미터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 불나방.
슈우웅-!
오른손 주먹 뒤에서 로켓 부스터 같은 불길이 미세하게 솟아나더니 다시 빅 버펄로의 오른 손목으로 날아와 부착되었다.
“뭐야? 기계 인간이야?”
“펑크리아 대륙에서 디자인할 수 있는 배틀 머신 아이템 중 하나지. 캐릭터 자체를 전투 기계로 개조하는 거랄까?”
“이 자식이!”
파앗!
코딱충이 뛰어서 옆차기를 날렸다.
퍼억!! 퍽! 퍼퍽! 퍽!
옆차기, 돌려차기, 뒤차기를 콤보로 넣었지만 빅 버펄로는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심하군. 이 몸뚱이가 평범한 몸뚱이라고 생각하다니.”
휘이익!
빠아악!!
왼쪽 주먹을 휘두르자 코딱충이 맞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으으….”
빅 버펄로가 왼손바닥을 펼쳤다.
손바닥 가운데에 흡입구가 생기더니 진공청소기처럼 코딱충을 빨아올렸다.
코딱충의 목이 빅 버펄로의 손바닥에 빨려들어갔다.
“크읍….”
“이렇게 질식시키면 생명력은 저절로 감소되지.”
팍! 파팍!
코딱충이 발버둥 치면서 빅 버펄로의 팔뚝을 내리쳤다.
하지만 쇳덩이를 치는 기분만 들었다.
빅 버펄로가 웃으면서 코딱충을 질식시키려는 찰나.
파캉-!!
뒤에서 엄청난 충격이 그를 덮쳤다.
빅 버펄로가 코딱충을 잡은 채 앞쪽으로 몇 발자국 걸어갔다.
“흐음….”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는 빅 버펄로.
선우가 아이언 솔저로 발차기를 날린 것이었다.
“오~ 너 맷집이 엄청나구나. 역시 기본 공격 스킬로는 한계가 있으려나?”
“…….”
빅 버펄로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어쩔 수 없군. 보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고 일단 네놈을 산 채로 잡아가는 수밖에.”
코딱충을 휙 하고 집어던진 빅 버펄로.
“으아아!!”
와장창!!
간신히 일어나려던 불나방이 날아오는 코딱충과 충돌했다.
“크으으….”
빅 버펄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불나방과 코딱충이 있는 곳으로 왼쪽 주먹을 겨눴다.
위이잉-!
그의 손목 위에서 손톱만한 초미니 미사일이 올라오더니 발사되었다.
슈우웅-!!
콰아앙!!!
독특한 폭발이 일어났다.
일반적인 화염이 번지는 폭발이 아니라 에메랄드빛이 번쩍이면서 충격파가 돔 형태로 발생한 것이다.
마치 달걀 같은 둥근 충격파 속에 코딱충과 불나방이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끄으어어….”
코딱충과 불나방이 서로 뒤엉킨 채 뼈가 갈리는 고통을 받았다.
충격파가 사라지자 코딱충과 불나방이 좌우로 흩어지며 튕겨나갔다.
“자, 이제 대장의 실력 좀 보여주실까?”
빅 버펄로의 무기 성능을 확인한 선우.
“나도 무기 옵션을 써봐야지.”
아이언 솔저 19호의 무기 버튼은 화이트.
선우가 흰색 버튼을 눌렀다.
삐리링-!
눈앞에 반투명한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총 모양의 그림, 칼 모양의 그림, 폭탄 모양의 그림이 보였다.
“이건 뭐지?”
선우는 아무 생각 없이 총 모양의 그림을 눌렀다.
위이잉-!
철커덕-!
갑자기 선우가 타고 있던 로봇의 양쪽 팔뚝에서 조그마한 기관포가 나타났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플라즈마 건을 사용합니다.]
위이잉!
절컥-! 절컥-!
아이언 솔저의 팔뚝 위로 나타난 기관포는 팔뚝을 중심으로 둥근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다가오는 빅 버펄로를 향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퓨퓨퓩-!!
황록색 섬광이 번쩍였다.
빅 버펄로가 인벤토리를 열고 방패를 꺼냈다.
자신의 온몸을 가릴 수 있는 직사각형의 방패.
방패로 플라즈마 건을 막으면서 돌진하는 빅 버펄로.
“우아아압!!”
콰아앙-!!
아이언 솔저와 정면충돌했다.
선우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젠장, 이걸 써야지.”
선우가 이번엔 칼 모양의 그림을 눌렀다.
쥐이잉-!
플라즈마 기관포가 들어가고 아이언 솔저 등 뒤에서 칼자루가 쑥 하고 튀어나왔다.
선우가 칼을 뽑았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사용합니다.]
일본도 형태의 무기였다.
검신은 붉은 색 빛이 은은하게 발산되고 있는 플라즈마 에너지로 이뤄져 있었다.
“이얍!”
파캉!!
빅 버펄로의 방패에 닿는 순간.
쩌걱-!
방패의 일부가 잘려나갔다.
“올… 대박!”
“크윽… 저게 플라즈마 블레이드?”
선우는 자신감을 얻었다.
“후후후. 이걸로 싹둑싹둑 조각내 주마.”
파-앗!
선우가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마구 휘둘렀다.
쉬잉! 쉬잉!
쓰겅-!
빅 버펄로의 방패 일부가 또 잘려나갔다.
“젠장….”
방패를 들고 인벤토리를 여는 빅 버펄로.
이번엔 무식하게 거대한 권총을 꺼냈다.
타-앙!!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들고 돌진하던 선우의 로봇 몸통을 사격했다.
몸통에 박힌 총알에 의해 선우가 뒤로 10미터는 날아갔다.
콰장창!!
“하하하! 맛이 어떠냐? 이게 바로 슈퍼 피스톨이란 거다. 펑크 보이. 이 총은 확실히 쓸 만하더군.”
“아, 그래 고맙다. 저 자식 빨리 죽여 버려.”
“착각하지 마라. 펑크 보이. 저 놈을 없애고 아이언 솔저가 망가지면 그 책임은 네가 져야 할 거다.”
“뭐? 아니 내가 왜? 난 이미 저걸 구해놨다고!”
“보스에게 드릴 물건 관리를 제대로 못한 책임은 져야지.”
“내가 왜 져야 하냐? 책임을 지려면 저 빌어먹을 자식들이 져야 하잖아!”
“책임지기 싫다면 똑같은 물건을 새로 구해놔.”
“뭐라고? 너 저게 무슨 로봇인지 모르냐? 아이언 솔저 19호는 저거 하나밖에 없어. 레어 중의 초 레어봇 이라고!”
“그럼 저게 박살나면 부속품들 연구해서 네가 새로 만들어봐. 그런 기술자들도 알고 있잖아.”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잖… 으아악!!”
펑크 보이가 다급히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순간.
빅 버펄로의 목으로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날아왔다.
슈-각!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목에 닿으려는 찰나 빅 버펄로의 머리통만 위로 퐁 하고 솟아올랐다.
칼을 피하고 다시 머리통이 몸통에 부착되었다.
“후후후. 그런 기습 공격이 통할 리가 없지.”
선우가 칼을 다시 들어 올리는 순간 화면에서 못 보던 그림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선우가 무심코 그림을 손으로 터치했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블레이징 컷츠(Cuts) 스킬을 사용합니다.]
타-앗!
갑자기 선우가 탄 로봇이 전속력으로 질주하더니 빅 버펄로의 몸통을 대각선으로 베어버렸다.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초고속 베기였다.
빅 버펄로가 잠깐 몇 초 동안 선우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의 몸을 더듬는 순간.
쩌저적-!
갑자기 빅 버펄로의 몸이 대각선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철커덩-!!
쿠웅!
빅 버펄로의 몸이 동강나자 선우는 마무리 공격을 들어갔다.
“이얍!”
서걱, 서걱, 서걱.
도마 위에 양파 써는 것처럼 플라즈마 블레이드로 빅 버펄로의 몸을 조각내는 선우.
빅 버펄로가 마침내 죽어버렸다.
“너… 이렇게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다시 로그인해서 보스에게 말해주마.”
“그러든가.”
유일하게 남아있던 빅 버펄로의 머리통을 선우가 발로 뻥 하고 차버렸다.
와지직-!
파츠츠-!
머리통이 박살나고 전류가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야, 펑크 보이. 이 로봇 전투력 죽인다.”
펑크 보이가 외쳤다.
“멍청아! 우린 이제 다 죽게 생겼다고! 넌 방금 바비큐 몬스터 길드의 간부를 없앤 거다.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