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
제186화
펑크 보이가 멈칫 하고 말을 버벅 거렸다.
“야…너… 그거 손대지 마….”
“왜?”
선우는 로봇 위에 탑승해 있었다.
짤막하고 뭉툭하게 생긴 몸체에 두터운 팔과 다리.
양손에는 쇠로 만든 글러브처럼 생긴 것이 투박하게 달려 있었다.
선우가 조종석에 앉자 투명한 반구체가 위잉 하고 올라와 도시락처럼 덮었다.
“이 자식이!!! 내가 그걸 구하려고 얼마나 고생 했는지 알아!! 당장 안 나와!!”
“네가 그러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데?”
선우는 직감했다.
펑크 보이가 저렇게 안달하는 걸 보니 자신이 타고 있는 건 유니크 아이템이라는 것을.
“안 내려와!?”
펑크 보이가 달려오는 순간.
파-앙!
푸쉬시-!
로봇의 엔진이 켜졌다.
“으아! 젠장, 망했다. 얌마!!”
펑크 보이가 다급히 달려와 로봇을 쾅 하고 한 대 쳤다.
“아오오!! 내 손!”
로봇은 멀쩡했고 펑크 보이의 주먹만 깨질 뻔 했다.
선우가 로봇 조종석을 손대고 있었다.
반투명한 화면이 앞쪽에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며 알림이 들려왔다.
[아이언 솔저 19호를 가동합니다.]
[탑승한 플레이어의 정보를 확인하였습니다.]
[로봇과 탑승자의 체내 싱크로율이 100퍼센트 링크되었습니다.]
[아이언 솔저 19호를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오! 대박! 이거 진짜 게임하는 기분인데?”
가상현실게임 속에서 색다른 게임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선우가 이리저리 주먹을 휘둘러봤다.
자신이 휘두르는 대로 로봇의 주먹이 뻗어나갔다.
“굳!”
펑크 보이를 본 선우가 라이트 훅을 휘둘렀다.
뻐컹-!
“끄엑!”
와장창!!
펑크 보이가 10미터쯤 옆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이건 딱충이 몫이다.”
쿵! 쿵! 쿵!
아이언 솔저 19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선우가 뛰면서 일어나는 펑크 보이를 덮쳤다.
“끄아악!”
펑크 보이가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선우가 탄 로봇의 재질은 초합금 티타늄에 펑크리아 대륙에서만 구할 수 있는 온갖 희귀 물질들을 섞어서 만든 새로운 물질이었다.
팡! 팡! 팡!
“케하하! 그래봤자 여기엔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퍽! 퍽! 퍽!
선우가 펑크리아를 깔아뭉개고 강철 주먹으로 마구 내려쳤다.
코딱충과 불나방이 일어나면서 놀라워했다.
“미친… 대박….”
“로봇 무기인가?”
선우는 아이언 솔저의 왼손으로 펑크리아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퍽! 퍽! 퍼퍽!!
한 손으로 목을 잡고 다른 손으로 계속 펀치를 날렸다.
“으윽! 으억!”
펑크 보이가 정신없이 맞고 있었다.
“이얍!”
선우가 펑크 보이의 두 다리를 잡고 이리저리 마구 패대기쳤다.
결국 바닥에 널브러진 펑크 보이.
“야, 펑크 보이. 싸움은 네가 먼저 걸었다. 이제 무기 거래를 시작하지.”
펑크 보이가 묵사발이 된 상태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꿇어 인마.”
“이 자식이… 무기 거래를 하러 온 놈들이 이게 무슨 횡포냐?”
“횡포 같은 소리 하네. 다짜고짜 네 말 끊었다고 내 부하를 조진 게 누군데? 난 행동하는 만큼 대접해주는 놈이다. 넌 그냥 패서 말을 듣게 해야 돼. 꿇어.”
선우가 아이언 솔저에 타고 있으니 전투력에서는 차원이 달랐다.
펑크 보이가 어금니를 으드득 깨물었다.
“꿇으라고. 어쭈. 죽고 싶다 이거지? 너 여기서 없애버리고 내가 여기 있는 무기들 다 가져다가 팔까?”
선우는 볼프가 무기 거래 경험 쌓아보라고 펑크 보이를 소개시켜줬지만 굳이 잘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기 거래를 배운다는 것은 그냥 선우 스스로 이득을 위해 필요해서 배울 뿐, 남에게 굽신 거릴 것까지는 없었으니까.
선우가 이렇게 나오자 역으로 당혹스러운 건 펑크 보이였다.
‘이런 미친…. 이런 또라이 자식을 어디서 데려 와서 나한테 보낸 거냐…. 볼프 이 자식 가만 안 둔다.’
펑크 보이는 속으로 볼프를 욕하면서 이를 갈았다.
“야, 꿇으라고 했지. 내가 강제로 꿇려줄까?”
쿵! 쿵! 쿵!
선우가 다가오자 펑크 보이가 잽싸게 무릎을 꿇었다.
“됐지?”
“아니야. 넌 무릎만 꿇었을 뿐 기본자세가 글러먹었어.”
“무슨 자세가 글러먹었다는 거냐? 꿇었잖아! 네가 꿇으라며! 봐, 꿇었다고 인마!”
펑크 보이가 바락바락 소릴 질러댔다.
선우가 다가오더니 펑크 보이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
“얌마, 이게 꿇은 거냐? 무릎을 바닥에 붙인 거지. 무릎을 꿇었다고 하려면 여기 이 어깨에 힘 빼고! 허리에도 힘 빼고! 엉덩이 딱 붙이고! 목에도 힘 풀고! 그렇지. 이렇게 해야 꿇은 게 되는 거지.”
“으으으….”
펑크 보이의 자존심이 있는 대로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김선우… 너… 날 이렇게 대하고도 펑크리아에서 무사할 거라 생각….”
뻐어억-!!
“쿠억!”
와장창!!
선우가 다시 한 방 날리자 펑크 보이가 뒤로 굴러갔다.
“아, 저 자식이 꼭 사람을 긁어요. 긁어.”
펑크 보이가 쌍코피가 터진 채 일어났다.
“이 자식이!! 너 진짜 죽고 싶냐!! 난 펑크리아 대륙 최고의 무기 브로커라고!! 지금 네가 그 로봇 껍데기 속에 숨어서 기고만장해 있나 본데 여기 대륙에는 그런 비슷한 로봇 무기가 많아 자식아!! 얼마든지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그럼 해보던가.”
선우가 탄 아이언 솔저 19호가 팔짱을 꼈다.
“으으….”
“와서 다시 꿇어라. 내가 알려준 자세로.”
펑크 보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우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코딱충이 자신의 말을 가로막고 끊었다고 다짜고짜 한 방 날린 그의 성격이 원인이었다.
게다가 불나방까지 마구 공격을 해댔으니 선우로서는 부하들의 보복을 해주는 것이 타당하다.
펑크 보이로서도 자신의 불같고 괴팍한 성질로 인한 싸움을 수습해야만 했다.
“좋아…. 내가 실수했다는 걸 인정할게.”
“앙? 뭘 실수했다고? 어떻게 실수를 하셨을까? 그걸 자세하게 얘기를 해줘야지. 안 그러면 다짜고짜 너한테 한 방 맞고 나가떨어진 딱충이 하고 맨바닥에 프로레슬링 연습 당한 나방이 감정이 좀 그렇거든.”
“내가 흥분했었다. 먼저 쳐서 미안하다. 나는 네가 알아서 피할 줄 알았는데 그걸 못 피하고 그냥 맞고 나가떨어질 거라고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었다. 네가 피할 수 있도록 천천히 때렸어야 하는데 너무 강하게 때려서 널 죽일 뻔 했어. 정말 미안하다. 코딱지.”
“코딱지가 아니라 코딱충이다!!”
코딱충은 펑크 보이의 사과를 듣다가 발끈했다.
처음엔 사과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애매했다.
사과 같기도 하고 사과하는 척 또 엿 먹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펑크 보이는 코딱충을 무시하고 불나방에게도 말했다.
“내가 널 너무 심하게 패서 미안하구나. 네가 덩치가 좋아서 센 줄 알았는데 때려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네가 빠져나갈 줄 알고 계속 공격했는데 결국 못 빠져나가고 나한테 가루 날리듯이 맞기만 해서 안쓰러웠다. 앞으로는 안 때리도록 조심하겠다. 나방가루.”
“나방 가루가 아니라 불나방이다!! 그리고 이 자식! 사과 똑바로 못 하냐? 이게 사과냐?”
불나방이 펑크 보이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펑크 보이는 성질 뿐만 아니라 고집도 괴팍한 플레이어였다.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멱살을 잡혀도 펑크 보이는 무념 무상한 눈빛을 띄고 대답했다.
“야, 김선우. 나는 사과했다. 됐지?”
펑크 보이의 말에 선우가 손가락을 세워서 까닥거렸다.
“안 돼. 다시 사과해. 그건 내가 들어도 사과가 아니라 그냥 애들 까는 거잖아.”
펑크 보이가 한숨을 뱉었다.
“코딱지. 내가 아까 때려서….”
“코딱충이라니까!! 너 이 자식 일부러 자꾸 코딱지라고 욕하는 거냐!!”
“아, 미안. 헷갈려서 그렇다. 네가 이해해라.”
펑크 보이의 행동은 끝까지 얄미웠다.
선우에게 당한 걸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말로 분풀이 하는 것이었다.
“코딱충. 널 죽일 뻔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화가 나도 가능한 네가 나한테 맞아죽지 않도록 노력하마.”
“닥쳐 인마!! 그냥 다른 말 필요 없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불나방. 내가 하마터면 널 골로 보낼 뻔해서 정말 미안하다.”
“이 자식이… 진짜 해보자는 거냐?”
“야, 배 째, 배 째고 등 따라! 더는 사과 못해 이 자식들아!! 누군 사과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막말로 너네들이 약해빠졌으니 내가 열 받아서 때린 것도 방어도 못하고 처맞기만 한 거 아냐? 내 말이 틀렸어? 엉? 틀려? 대답 해봐!”
“넌 죽었어!”
코딱충과 불나방이 펑크 보이와 멱살을 잡고 서로 실랑이를 벌였다.
선우가 로봇 주먹으로 벽을 쳤다.
쿠구궁-!!
부스스스-!
천장에서 먼지와 가루가 떨어졌다.
“다들 조용해라. 이제 사과는 됐고 본론부터 들어간다. 펑크 보이. 무기들을 애들한테 보여줘라.”
“너… 나한테 무기 거래를 하러 왔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뭐 이리 고자세야? 저자세로 무기 소개 해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이거 확 그냥.”
선우가 손을 들어 올리자 펑크 보이가 뒤로 물러났다.
“알았다! 알았다고!! 무기를 보여줄 테니까 성질 좀 죽여!”
펑크 보이는 자신을 뛰어넘는 또라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결국 선우가 요청한 대로 펑크 보이는 자신이 중개를 하는 무기들의 정보와 샘플 모델을 보여줘야만 했다.
“잘 들어. 이 무기는….”
한참 무기들의 정보를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에게 전달하던 펑크 보이.
“야, 근데 한 가지만 물어보자. 거기서 언제 나올 거냐?”
“안 나갈 건데?”
“뭐? 설마 그 로봇 타고 집에 가겠다는 건 아니지?”
“맞는데.”
“뭐어? 야! 그건 내 로봇도 아니야! 고객에게 줘야 한다고!!”
“이제부턴 내가 고객이다.”
선우는 아이언 솔저 19호가 마음에 들었다.
총알은 과자 떼기처럼 튕겨낼 것 같은 철갑의 아머.
한 방 치면 탱크를 구겨버릴 것 같은 주먹.
걷어차면 트럭을 공처럼 굴려버릴 것 같은 다리.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펑크리아 대륙에서 내가 짱 먹는 건 시간문제지.’
선우는 확신했다.
아이언 솔저 19호로 자신이 펑크리아 대륙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니야. 이 바닥 일은 그딴 식으로는 안 굴러간다고! 네가 고객이 아니라 고객은 따로 있어. 그리고 너 그 고객이 누군지나 아냐? 나 까지 위험하게 만들지 말고 당장 나와!”
“지금 이 순간부터는 내가 고객이라니까? 그리고 이 바닥이라고 해 봤자 어차피 범죄 플레이로 노는 바닥인데 네 꺼 내 꺼가 어디 있냐?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지.”
펑크 보이는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으어… 이거 완전 핵 또라이네. 야!! 미친놈아!! 네가 그 로봇 구하려고 돈을 쓴 게 아니잖아! 그러면 그건 강탈이지!!”
“그래 맞아. 나 지금 뺏는 거야. 범죄 플레이 하고 있잖아.”
“아니지. 멍청아! 범죄 플레이를 해도 유저들끼리 상도라는 게 있는 건데! 당장 안 나와? 너 설마 거기서 나오면 내가 너희들 싹 다 팰까봐 그러는 거지? 큭큭. 걱정 마라. 안 때릴 테니까 안심하고 나와도 돼.”
선우가 아이언 솔저의 오른손을 펼치고 펑크 보이의 멱살을 잡아 들어올렸다.
“누굴 팬다고?”
“아니야, 아니야. 잘못 말했어. 하하하. 안 팰게. 아니지. 손님으로 대접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좀 나와 주시죠. 그 로봇 고객님이 오늘 온다고 했으니까요. 빨리!!”
펑크 보이가 외치는 순간 벽에 걸린 인터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펑크 보이. 문 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