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제183화
펑크리아 도심 번화가 펑크 시티.
이곳에는 현실 속 번화가의 모든 곳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았다.
물론 완전히 같은 건 아니었다.
게임 속인 만큼 무한한 상상력에 근거한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과 독특한 구조의 시스템으로 미래 사회의 느낌까지 살려냈으니까.
이곳에 선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선우가 온 곳은 펑크 시티에서도 가장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쇼핑하우스 1층이었다.
조금 뒤에 누군가 선우의 등을 툭 하고 쳤다.
“안녕하세요? 팝콘 좋아하시나요?”
익명의 플레이어였다.
팝콘 좋아하냐는 건 일종의 암구호였다.
선우는 처음에 닉네임이 뭐냐고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블랙 웹에서 거래하는 모든 아이들은 1대 1 거래였다.
아이템 가격의 시세는 개인이 정하는 것이었기에 대형 길드가 특정 아이템의 가격을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따르기를 원치 않았다.
대부분 자기가 팔고 싶은 가격에 개인 거래로 팔기를 원했다.
물론 누가 얼마에 팔았는지 정보가 자세히 알려지면 길드로부터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좋아합니다. 사실래요?”
“물론이죠. 따라오십시오.”
익명의 플레이어가 선우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 * *
선우와 플레이어가 간 곳은 펑크 시티의 호프집.
맥주와 고기를 먹으면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떠드는 소리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이곳을 선정한 이유는 아무도 다른 테이블의 누가 뭘 하는지 신경 쓰지 않기 때문.
“먼저 팝콘 좀 보여주시죠. 제가 직접 맛을 한 번 보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선우가 내민 팝콘들을 플레이어가 유심히 살폈다.
레인보우 팝콘의 색깔은 모두 7가지.
플레이어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7개의 팝콘을 하나씩 먹어보기 시작했다.
“음~ 레드 팝콘은 확실히 당도가 높군요. 이 정도면 95퍼센트 정도는 되는 거 같은데… 대박이네요. 어디서 이렇게 제조를 했지?”
돋보기 같이 생긴 안경 아이템으로 팝콘을 들여다보더니 놀라워했다.
플레이어는 감탄을 하면서 다음 팝콘을 먹어봤다.
“오렌지 팝콘도 훌륭하네요. 당도는… 90퍼센트. 레드 팝콘만큼은 아니지만 이것도 상품성은 보장이고…다음은… 옐로우 팝콘을 먹어볼까요?”
플레이어는 7개의 팝콘을 모두 먹어봤다.
그리고 물약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더니 벌컥 들이마셨다.
“아으… 이제 좀 낫네. 단맛을 너무 먹다보니 혓바닥이 얼얼해서 하하하.”
플레이어가 물티슈로 입술을 닦으면서 말문을 열었다.
“일단 보여주신 레인보우 팝콘 맛을 다 봤는데, 확실히 당도가 높아요. 이 정도면 1봉지에 100골드가 아니라 최소 1,000골드는 받을 수 있겠는데요?”
“예에?”
“이 팝콘이 아마도 필라델피아 길드가 들여온 제품 중 가장 맛있는 팝콘인 거 같네요. 총 10박스 갖고 계신다고 하셨죠? 제가 10박스 모두 사겠습니다.”
선우가 입을 가리며 흥분을 삼켰다.
‘대~박. 1봉지에 1,000골드면 최소 100만 원이 넘는 돈인데 1박스에 20봉지 들었으니 2천만 원, 10박스면 2억?’
선우의 계산은 정확했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마치자마자 플레이어의 입에서 도매가격이 흘러나왔으니까.
“이거 총 20만 골드. 그러니까 대략 2억 원 좀 넘는 금액에 제가 모두 넘겨받겠습니다. 파실래요?”
선우가 잽싸게 대답했다.
“예! 물론이죠.”
“좋습니다. 그러면 나머지 물건들 보러 가죠. 어디에 두셨나요?”
“따라오세요.”
이번엔 선우가 익명의 플레이어를 안내 했다.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귓속말을 보냈고 거래 장소를 물색하는데 플레이어가 말했다.
“제가 장소를 추천해드릴까요? 보아 하니 이번이 첫 거래이신 거 같은데 제가 한 가지 팁을 알려드리자면 펑크 시티에는 플레이어들끼리 자신의 아이템을 직접 만나 개인 거래 하는 곳이 있습니다. 일명 트레이드 존 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이곳으로 가시죠. 제가 알려드릴게요.”
결국 익명의 플레이어가 마지막 거래 순간까지 선우를 안내했다.
트레이드 존.
펑크 시티에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과 장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인 트레이드 존은 플레이어들이 거래를 하러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선우는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야, 레인보우 팝콘 갖고 트레이드 존으로 와.
- 트레이드 존이 어딘데?
- 근처 플레이어들한테 물어봐. 여기 유명한 곳이라 다 알 거래.
- 레인보우 팝콘 몇 박스 가져갈까?
- 10박스 다 갖고 와. 다 사겠대.
- 진짜야?
- ㅇㅇ
귓속말을 마치고 얼마 뒤 코딱충과 불나방이 탄 범퍼카가 나타났다.
“이쪽으로 오시죠.”
선우가 플레이어를 데리고 범퍼카 뒷좌석으로 갔다.
레인보우 팝콘 10박스가 있었다.
플레이어가 물건을 모두 확인한 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 이렇게 만족스러운 물건을 보게 돼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일단 거래 신청할게요.”
선우의 눈앞에 반투명한 거래 화면이 나타났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익명의 플레이어님께서 거래를 요청하였습니다.]
[레인보우 팝콘 10박스 거래를 원하고 있습니다.]
[익명의 플레이어님께서 제시한 금액은 20만 골드입니다.]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거래하시겠습니까? Y/N]
선우가 레인보우 팝콘을 거래했다.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20만 골드에 판매하였습니다.]
거래는 순조롭게 끝이 났다.
“이거 여기까지 나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다음에도 거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팝콘 구입하면 연락을 드리죠. 어디로 연락하면 될까요?”
“제 닉네임을 알려드릴게요. 바로 귓속말 주세요.”
선우는 플레이어의 닉네임을 귓속말로 전달받았다.
“알겠습니다.”
플레이어가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인벤토리에 넣고 사라졌다.
“으크큭. 대박이다.”
“야, 얼마 벌었는데? 2만 골드보다 더 높이 받은 거야?”
“맞춰봐라.”
“3만 골드?”
“4만?”
“아니야.
“그러면 5만?”
“설마 10만 골드냐?”
코딱충과 불나방을 보면서 선우가 입을 가리고 대답했다.
“20만 골드다.”
“뭐어? 20….”
선우가 코딱충의 입을 틀어막으면서 손가락으로 쉬쉬거렸다.
코딱충과 불나방도 서로 입을 틀어막고 낄낄거렸다.
선우는 20만 골드를 벌었다는 생각에 흥분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야, 이제 이걸로 무기를 사러 가자.”
“뭐? 내 몫은?”
“얌마. 사람은 항상 큰 그림을 볼 줄 알아야 돼. 20만 골드를 투자금으로 더 큰 돈을 벌어야지. 레인보우 팝콘 10박스 내가 쌔빈 걸로 현금으로 2억 넘게 번 거 지금 못 봤어?”
“오~ 역시. 그러면 더 스케일 크게 한탕 하자 이거지?”
“바로 그거지.”
“그럼 뭐를 하려고? 또 레인보우 팝콘 훔치게? 그건 이미 당했으니 또 하긴 힘들걸.”
“레인보우 팝콘을 일일이 훔쳐서는 돈 못 벌지.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시장에 뿌리는 거다.”
“뭐? 너 그거 진짜로 하려고?”
“물론이지. 난 그걸로 한탕 제대로 볶아먹을 거다.”
선우가 펑크리아 대륙에서 계획을 꾸미는 사이 할리킹은 정신없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허억… 허억….”
할리킹이 도착한 곳은 선우가 훔친 레인보우 팝콘이 거래된 트레이드 존.
이곳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제보자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뛰어온 것이었다.
“젠장!! 한 발 늦었어.”
“대장님. 아무리 찾아봐도 김선우는 없습니다.”
“일찌감치 여기서 거래를 하고 뜬 것 같습니다.”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여기서 거래를 하다니, 정말 대담한 놈이네요.”
할리킹의 부하들이 놀라워했다.
“여기서 거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면서 자연스럽게 거래를 할 수 있지. 불법적인 거래를 이런 곳에서 할 생각을 하다니. 이 자식 펑크리아 대륙 초보 맞아?”
할리킹 조차 선우의 대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거… 빈손으로 돌아가면 또 가프치노 보스가 가만히 안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지. 김선우를 다시 수소문해서 찾아내.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사간 놈은 누군지 샅샅이 알아내라. 뭐라도 가져가야만 보스가 이해를 해줘.”
“예!”
할리킹의 부하들이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휴우… 김선우…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맹랑한 놈이야. 레인보우 팝콘 10박스를 블랙 웹에 글을 올려서 바이어를 구할 줄이야… 그것도 훔친 물건을….”
할리킹은 선우가 대범하게 움직인 것에 놀랍다 못해 충격을 먹었다.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펑크리아 대륙에서 범죄 플레이를 할 때 주저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경찰 NPC들의 조직력과 수사력, 그리고 경찰 길드의 공격적인 플레이가 부담되기 때문.
반면 선우는 처음부터 과감하게 움직였다.
게다가 펑크리아 3대 길드 중 하나인 올드 갱 길드와 같이 아이템 약탈까지 감행했고 뒤통수까지 쳐버렸다.
이게 처음 펑크리아 대륙 진출하자마자 선우가 올린 업적. 할리킹으로서는 예상보다 훨씬 당황스러운 플레이어가 김선우라고 직감했다.
“이 자식 어떻게든 조져야 한다. 여기서 더 크면 위험해질 게 틀림없어.”
할리킹은 다시 넓은 트레이드 존 어딘가로 공 쫓는 개처럼 뛰고 있었다.
* * *
선우는 비둘기 꼬치구이로 위장한 무기상점을 또 찾았다.
사장 플레이어는 흐릿한 눈으로 선우에게 물었다.
“또 뭐 때문에 온 거냐?”
“야, 나 무기 장사하는 법 좀 알려주라.”
“뭐라고?”
플레이어가 황당한 나머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봐, 난 네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누군지 관심도 없어.”
“나, 김선우라고 한다. 너 내가 하는 스트리밍 방송 못 봤냐?”
“난 스트리밍 같은 거 안 봐. 볼 시간이 어디 있냐? 여기서 장사해서 돈 벌어야 하는데.”
펑크리아 대륙에서는 어지간한 경험을 다 해본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현실이나 다름없는 가상세계에서 각자의 업장을 차려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비둘기 꼬치구이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리밍 방송으로 돈 버는 것보다 그냥 펑크리아 대륙의 단골 장사로 돈 버는 것이 훨씬 편했다.
돈도 많이 벌기도 했고.
게다가 부업으로 불법 무기 거래까지 쏠쏠하게 이득을 챙겼으니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난 이름 깠다. 이제 네 이름 까고 서로 알고 지내자고.”
선우는 막무가내였다.
플레이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만 비실비실 내뱉었다.
“나 참… 여기서 장사하면서 이렇게 황당한 캐릭터는 또 처음 보네… 아니 내가 널 언제 봤다고 다짜고짜 무기 거래를 알려줘? 난 너한테 나팔총 하나 판 거 외에는 빚진 것도 없고 엮인 것도 없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선우는 어떻게든 돌파구를 만들어야 했다.
레인보우 팝콘을 제조하는 레시피를 구하려면 사실 당장 손에 넣기 어렵다.
팝콘 레시피 구하겠다고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는 것보다는 차라리 팝콘 레시피를 손에 넣을 만큼 펑크리아 대륙에서 유명해지는 것이 더 빠르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무기 거래를 손대기로 결심한 선우였다.
“야, 왜 무기 장사를 하려고 하냐? 너 저번에 보니까 레인보우 팝콘 장사에 관심 있는 것 같던데 그냥 팝콘 팔러 가.”
“팝콘 레시피가 없잖아. 네가 만들어줄래?”
“난 무기만 팔지 팝콘은 안 판다.”
“그러니까 너한테 무기 장사를 알려달라는 거야. 무기들 시세는 얼마에 거래되는지 어디서 누구랑 거래하고 팔아야 하는지 유행하는 무기들은 뭐가 있는지 등등.”
“이야~ 이거 아주 뻔뻔한 놈이네. 너 이렇게 무식하게 찾아와서 알려달라고 하면 내가 순순히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냐?”
선우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