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
제174화
라툰 족장의 목소리를 들은 오크 전투원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족장. 갑자기 왜 그러쇼?”
“족장님?”
선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난 선우가 물었다.
“야, 너 가짜지?”
선우의 말에 다른 오크들이 술렁였다.
“가짜라고?”
“저 인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오크들의 말에도 선우는 무시하고 라툰 족장을 향해 볼케이노 해머를 들었다.
“이얍!”
휘익-!
퍼억!
선우의 볼케이노 해머를 맞은 라툰이 옆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 자식이 감히 족장님을!!”
“기다려!”
“왜? 저 자식이 족장님을 공격했잖아!”
“족장님이 고작 저렇게 허접한 공격에 맞는 걸 봤어?”
“그, 그러네?”
오크들은 그제야 무언가 수상쩍다는 것을 눈치 챘다.
라툰이 피를 뱉으면서 일어났다.
“케헤헤헥.”
험상궂은 오크의 얼굴이 서서히 변형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주름진 얼굴의 마도사 칼데르스의 외모가 나타났다.
“휴우… 이거 참…. 그동안 잘 속이고 있다고 여겼는데… 날 어떻게 알아 챈 거냐?”
칼데르스는 선우가 자신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했다.
“이게 뭐냐? 족장은 어디에 있는 거냐?”
오크 전투원들이 무기를 꺼내들고 칼데르스를 포위했다.
“쉿. 미개한 몬스터들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칼을 겨누는 것이냐?”
칼데르스가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오크 전투원들의 무기들이 부르르 떨리더니 거꾸로 접혀버렸다.
마도사의 마법치고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선우에게는 그리 놀라울 게 아니었다.
“얍!”
빠악-!
오크 전투원들 때문에 선우가 뭐하는지 모르고 있던 칼데르스가 앞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뒤쪽으로 살금살금 접근한 선우는 볼케이노 해머로 뒤통수를 때려버렸다.
“으으….”
파지직-!
칼데르스가 한 손에 스파크를 일으키며 일어났다.
“라이트닝 애로우!”
피-슝!
새하얀 번개 줄기가 화살처럼 쏘아졌다.
선우가 몸을 슬쩍 뉘여 피해버렸다.
“아으으….”
칼데르스는 뒤통수가 장난 아니게 아팠다.
“이 무식한 놈이… 그런 흉기로 사람 머리를 후려쳐?”
“죽으라고 팼는데 아직도 안 죽었네.”
파앗!
선우는 속전속결로 공격을 감행했다.
쾅!! 쾅!!
볼케이노 해머를 휘두르자 칼데르스가 마법을 캐스팅 했다.
퍼억-!!
“끄억….”
칼데르스가 옆으로 뒹굴었다.
코딱충이 발차기를 먹인 것이다.
“우리가 여기 끌려와서 그 개고생을 한 게 이 자식 때문이었냐?”
퍽! 퍽! 퍽! 퍼퍽!
선우가 뻘쭘하게 볼케이노 해머를 내렸다.
칼데르스는 대마도사였지만 마법을 뺀다면 병약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마법조차도 오랫동안 라툰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천둥의 날개 부족을 속여왔기 때문에 마력이 바닥나 있었다.
선우는 코딱충을 말렸다.
“야, 칼데르스. 라툰은 어디에 숨겨뒀냐?”
칼데르스가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 웃었다.
“키키킥. 내가 그걸 순순히 말해줄 것 같으냐?”
“딱충아. 좀 더 패라.”
퍽! 퍽! 퍼퍽!
“악! 아악!”
코딱충은 칼데르스를 걷어차고 마구 짓밟았다.
오크들이 멀뚱멀뚱 이들의 폭행을 구경만 했다.
“야, 잠깐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족장이 지금 행방불명이잖아. 사실 저 인간들이 하는 짓을 우리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어, 그렇네. 근데… 쟤들이 하고 있으니까 그냥 놔두자.”
천둥의 날개 부족은 선우 일행과 칼데르스를 지켜보기만 했다.
퍽! 퍼퍽! 퍼퍽!
“아오~ 짜증 나! 이 빌어먹을 자식!”
한참 코딱충의 구타를 구경 중이던 선우.
“야, 딱충아. 이제 그만 때려도 된다.”
“흐억…흐억….”
분이 안 풀리는지 코딱충은 한참 뒤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선우가 칼데르스에게 다가갔다.
“야, 일어나봐.”
“케헥….”
칼데르스는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들고 쌍코피가 줄줄 흘렀다.
선우가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라툰 어딨냐고?”
“이 자식들… 너희들 깡패야?”
“안 되겠다. 덜 맞았네. 딱충아.”
코딱충이 뒤에서 전력질주로 달려오며 칼데르스를 걷어차는 시늉을 했다.
“으아악!! 말할게! 말한다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칼데르스가 거의 발작을 일으켰다.
“어디 있냐?”
“이런 몸 상태로는 너희들을 데려갈 수 없어.”
빠악-!
“헛소리 말고 수작 부릴 생각일랑 접어 넣어라.”
선우가 칼데르스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하라고! 그러니까 물약이라도 한 모금 줘! 그래야 말할 힘이 날 거 아니야!”
칼데르스는 순 약골이었다.
인벤토리를 열고 물약 1병을 꺼내 칼데르스에게 대충 부어준 선우.
칼데르스가 겨우 일어났다.
“딴 짓 하다가 걸리면 그땐 진짜 죽는다.”
“따라와라.”
선우 일행과 오크 족 간부들을 데리고 어딘가로 가는 칼데르스.
천둥바위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조그마한 웅덩이가 있었다.
“뭐냐? 여기가 라툰을 숨겨놨다는 곳이냐?”
“그렇다.”
“아오 이거 확 그냥!”
“지, 진짜라니까!”
“진정해라, 딱충아. 사실 우리가 열 받을 건 아니잖아?”
선우가 뒤에 있던 오크들을 힐끗 바라봤다.
“야, 너네들은 족장이 사라졌는데 걱정도 안 되냐?”
“그, 글쎄….”
“어라? 저것들 반응이 왜 저래?”
앞쪽에 있던 칼데르스가 킬킬거렸다.
“흥, 딱 보아하니 천둥의 날개 부족의 서열 의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구먼.”
“뭐? 그게 뭔데?”
칼데르스가 낄낄 웃기만 하자 선우가 정강이를 걷어찼다.
“아오! 씨!”
“말하라고 인마. 내가 성격이 그리 좋지가 않아.”
“천둥의 날개 부족은 대대로 족장이 자리를 비우면 다음 족장을 내세워 경쟁을 하게 된다고!! 거기에서 치르는 신성한 의식까지 있는데 족장을 찾고 싶겠냐?”
“뭐? 그게 말이 되냐? 족장이 아직 살아있는데 다시 찾으면 그만이지.”
“흥, 그거야 저기~ 저 땅바닥에서 굴러다니는 오크 놈들에게나 해당 사항인가 보지. 하지만 여기 천둥의 날개 부족은 달라.”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천둥의 날개 부족의 족장 승계 의식은 다른 오크 부족들과 다른 특징이 있었다.
어떤 사유든지 족장이 자리를 계속 맡을 수 없다면 즉시 새로운 족장을 뽑는 체계였던 것.
예를 들어 지금처럼 라툰이 실종 상태라면 이들 부족원들은 족장을 찾으려고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족장을 세우는 것에 힘을 쓴다는 것이다.
“뭐야? 왜 그러는 건데? 저것들 의리도 없는 놈들이네.”
칼데르스가 코피를 닦으면서 대답했다.
“흥, 천둥의 날개 부족에게 새로운 족장의 추대는 생존의 문제다. 그 까짓 의리가 무슨 소용이냐?”
“그건 또 뭔 소리냐?”
“천둥의 날개 부족들은 위험한 드래곤들을 타고 다니기에 언제나 강력한 리더를 원해왔다. 자신들을 이끌어줄 리더가 나타나지 않으면 부족은 분열을 일으키고 결국 모두가 죽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지.”
칼데르스는 천둥의 날개 부족의 습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지켜보며 관찰하고 연구한 흔적이 느껴졌다.
“흐음, 그러면 새로운 족장은 어떻게 승계하는데?”
“간단하지. 족장이 되겠다는 강력한 전사들이 나서서 서로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친다. 서열이 높을수록 나서는 놈들이 많거든.”
“그러면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겠군.”
“켈켈, 바로 그거지.”
선우는 칼데르스의 의도를 파악했다.
죽음의 눈동자 부족을 봉인시켜놨으니 남은 천둥의 날개 부족들 역시 조직력을 붕괴시키기 위함이었던 것.
그렇다면 칼데르스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선우는 그것이 궁금했다.
“야, 네가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게 대체 뭐냐?”
칼데르스가 대답했다.
“천둥의 날개 부족장 라툰이 타고 다니는 드래곤 ‘엘라크’의 심장을 얻기 위해서다.”
“심장? 드래곤의 심장을 얻어서 뭐에 쓰려고?”
“그 심장으로 새로운 육신을 얻기 위해서다.”
“얻어서 뭐하게?”
“그만 물어! 이 자식아!! 뭘 그렇게 알려고 하냐!!”
빠악-!
선우가 칼데르스의 뒤통수를 때렸다.
“아오!”
“나도 별로 궁금하지 않어 인마. 그냥 물어본 거야.”
선우는 사실 천둥의 날개 부족이든 죽음의 눈동자 부족이든 둘 간의 역사와 관계에 대해 크게 관심 있진 않았다.
그저 다른 부족의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은 부족의 권속만을 획득하면 그만이었다.
특히 마지막 대륙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샴 대륙에서 쓸데없는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았다.
“라툰이 여기에 있다고 했지? 그럼 빨리 꺼내.”
“이 웅덩이 속에 정말 족장이 있다는 거냐?”
오크 전투원들 중 일부가 반발했다.
“물속에 있는 거라면 족장은 이미 죽은 거잖아! 이제 새로운 족장을 뽑을 차례다!”
가장 덩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오크가 갑자기 튀어나오며 외쳤다.
“나 천둥의 날개 부족 서열 2위인 둔카! 새로운 족장 자리에 도전하겠다.”
“천둥의 날개 부족 서열 4위 갈록! 새로운 족장 자리에 도전하겠다.”
“서열 6위….”
너도 나도 제법 칼싸움 좀 할 것 같이 생긴 오크들만 튀어나왔다.
코딱충이 선우에게 물었다.
“야, 쟤들 족장 생사여부도 확인 안 하고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빨리 족장이 되고 싶나 보지 뭐.”
선우는 천둥의 날개 부족 오크들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생각을 해봤다.
‘가만 있자… 어차피 나야 천둥의 날개 부족과 죽음의 눈동자 부족 권속만 얻으면 되니까… 굳이 쟤들하고 부딪힐 필요는 없지. 자기들끼리 싸우든지 말든지.’
선우의 목적은 오직 하나.
사라진 족장 라툰의 행방을 찾아 그에게 부족의 권속을 받는 것이었다.
“야, 칼데르스. 라툰을 건져 와라.”
“웅덩이 속에 있다고 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웅덩이 밑으로 연결된 지하 동굴 속에 있다.”
빠악-!
“어디에 있든 내 알 바 아니야. 거기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기다려라.”
웅덩이 앞에서 칼데르스가 양손을 펼치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출렁-!
촤아아-!
갑자기 웅덩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길이 생겼다.
“오~ 칼데르스. 제법이군. 그래 이 정돈 되어야 마도사라고 할 수 있지. 빨리 앞장서라.”
선우가 칼데르스의 엉덩이를 발로 툭툭 찼다.
“이 자식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빡-!
코딱충이 칼데르스의 뒤통수를 때렸다.
“빨리 가라고 인마. 우리 대장 말 못 들었냐?”
“이런 깡패 자식들이 어디서 기어 올라와서… 간다!”
칼데르스가 웅덩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갔다.
질퍽한 흙바닥을 밟고 칼데르스를 따라간 곳에는 웅덩이 바닥 옆으로 나 있는 동굴이었다.
“이쪽으로 들어와야 하니까 따라와라.”
약간 고개를 숙이면서 들어간 동굴 끝에는 새로운 길이 열려 있었다.
“여기냐? 라툰을 매장한 곳이?”
“매장이 아니야! 놈은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면 어디에 있는데? 빨리 가자고.”
칼데르스는 묵묵히 앞장섰다.
한참을 구불구불 거리는 길을 따라가자 무언가 나타났다.
“오! 저거냐?”
“그렇다. 저게 바로 천둥의 날개 부족의 족장 라툰이다.”
선우의 눈앞에 나타난 라툰은 넓적한 바위 위에 자는 것처럼 누워 있었다.
그의 몸은 드래곤의 날개막으로 만든 가죽 망토로 뒤덮여 있었고 얼굴에는 봉인 마법에 쓸 만 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얘 여기 왜 이렇게 돌돌 말아놨냐? 김밥도 아니고.”
“푸훕! 김밥이래. 큭큭큭.”
선우의 말에 코딱충이 뻥 하고 터졌다.
“진짜 듣고 보니 김밥 같다.”
“맞지? 시금치 주스 적셔서 말아놓은 거 같잖아.”
“큭큭큭.”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이 깔깔대고 웃었다.
칼데르스만이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에휴, 저 미친놈들. 왜 갑자기 처 웃고 지랄들이야.”
선우가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야, 마도사. 빨리 쟤 깨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