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167화 (167/200)

# 167

제167화

사이클롭스가 봉인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더욱 거세게 일렁거리면서 벽화가 쩌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쩌걱-! 쩌걱-!

쿠구구구-!

동굴 전체가 흔들거렸다.

선우는 슬슬 도망갈 준비를 하려는데 갑자기 벽화의 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잠깐 눈이 부셨다가 빛이 사라졌고 동굴 벽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튀어야지.”

파바밧-!

선우가 동굴 밖으로 나왔다.

쿠구구궁-!!!

동굴이 무너졌다.

그리고 빛이 동굴의 잔해 틈으로 번졌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샴 대륙의 오크 부족 중 하나인 ‘죽음의 눈동자’ 부족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죽음의 눈동자’ 부족이 죽음의 용 데카투스를 죽일 것이니 주의하세요.]

“뭐야? 다짜고짜 나오자마자 뭘 죽인다고?”

선우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동굴이 박살나고 이번엔 자기가 들어와 있는 데카투스가 죽을 거란다.

“이런 젠장, 어디로 튀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하던가!!”

선우가 외치는 순간.

갑자기 데카왕국 전체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거렸다.

그리고 빛이 새어나오던 곳에 거대한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오…오… 뭐야?”

선우가 뒷걸음질을 했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손가락 같지가 않았다.

데카왕국의 땅바닥이 갈라지고 또 다른 손가락이 튀어나왔다.

쿠콰쾅-!!

데카투스의 뱃속이 요동쳤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손가락이 위로 쭉 하고 뻗어 올라갔다.

콰지직-!!

푸르렀던 하늘에 손가락이 닿자 갑자기 붉은 피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뭐냐? 저거 가짜였네?”

선우가 다른 곳으로 피신했다.

으지직-!

데카 왕국이 더욱 크게 흔들렸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땅바닥은 더 심하게 갈라졌다.

하늘이 갈기갈기 찢어질수록 붉은 핏방울이 선우가 서 있는 곳을 적셨다.

마침내 손가락이 하늘을 완전히 갈라버리자 눈부신 빛이 내리쬐었다.

진짜 하늘이었다.

콰작-!

갈라진 하늘이 거대한 손가락들에 의해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더는 핏줄기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죽음의 눈동자’ 부족의 오크가 데카투스를 처치했습니다.]

“와~! 대박… 진짜로 데카투스를 죽인 건가?”

단말마의 비명이 멀찌감치 들려오더니 다시 한번 선우가 있던 바닥이 크게 휘청거렸다.

거대한 손가락들이 빛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선우가 데카투스의 사체 밖으로 나왔다.

진짜로 자신을 삼켰던 죽음의 용 데카투스가 죽어 있었다.

데카투스는 생김새가 거대한 악어를 닮은 용이었다.

악어와 도마뱀을 섞어놓은 듯한 외모로 육지와 물속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용이었다.

“죽음의 눈동자 부족은 봉인에서 풀려났다는데 어디로 간 거지?”

쿠구구구-!!

또다시 지축이 뒤흔들렸다.

데카투스의 뱃속에서 하얀 빛이 사방으로 뻗어 나왔다.

빛은 한 줄기씩 실타래처럼 나뉘어졌고 선우 주변에 하나씩 내려앉았다.

츠즈즈즉-!!

빛이 번지면서 서서히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선우의 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인들이었다.

그것도 인간 거인이 아닌 오크 거인들.

망망대해에 우두커니 솟아오른 섬처럼 오크 거인들이 완전히 봉인에서 깨어났다.

“쿠으으… 천둥의 날개 부족 놈들!!! 감히 우릴 지금껏 이런 도마뱀 뱃속에 가둬놓았겠다!!”

우렁찬 포효가 들려왔다.

선우의 몸속이 울렁거리는 외침이었다.

“으응? 이건 인간 아니냐?”

오크 거인 중 하나가 선우를 발견했다.

한참 허리를 천천히 굽히면서 선우를 내려다보는 오크 거인.

그의 눈동자에는 맹렬한 눈빛이 어려 있었다.

선우가 말문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들을 봉인에서 풀어냈습니다.”

“응? 뭐라고?”

쿵! 쿵!

다른 오크 거인이 다가왔다.

발을 옮길 때마다 선우의 발이 위아래로 떴다 내려왔다.

“네가 우리를 봉인에서 풀어냈다는 것이냐?”

덥수룩한 수염이 턱을 뒤덮고 있는 오크 거인이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의 눈동자’ 부족이 맞으시죠?”

오크 거인들이 저마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걸 인간인 네가 어떻게….”

선우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지어냈다.

“이곳 샴 대륙에서 죽음의 눈동자 부족에 관련된 전설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데카투스에게 먹혔는데 여기서 그 전설이 진짜라는 걸 알게 되었죠.”

선우의 이야기를 들은 오크 거인 하나가 물었다.

“그러면 봉인을 어떻게 풀었지? 그건 살아있는 제물을 희생해야 하는 조건이 있는데….”

“여기에 보니까 데카투스가 산 채로 삼킨 몬스터들이 많더라고요. 아무거나 하나 잡아다가 봉인에 바쳤습니다.”

“흐으음~~! 그랬었군.”

“대단한 인간이로군.”

오크 거인들이 저마다 선우를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선우가 다른 오크들과 달리 이들에게 존칭을 쓰는 건 간단했다.

커도 너무 컸으니까.

‘젠장, 이거 괜히 잘못 하다가 밟혀 죽을라.’

마치 거구의 운동선수들이 갓 태어난 병아리를 구경하는 것처럼 오크 거인들이 선우를 내려다봤다.

이 정도 차이가 나면 일단 겸손하게 착한 척을 해야 호감을 산다.

아니면 귀여움이라도.

“어쨌든 고맙구나. 우리 죽음의 눈동자 부족은 아주 오래 전에 천둥의 날개 부족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놈들이 가축으로 부리는 용의 뱃속에 봉인되었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오크 거인이 이야기를 꺼냈다.

천둥의 날개 부족들과의 오랜 전쟁은 샴 대륙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죽음의 눈동자 부족과 천둥의 날개 부족 역시 처음에는 평화롭게 같이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대륙을 떠도는 대마도사가 나타났고 이때부터 평화에 금이 갔다.

“그 대마도사가 뭐하는 앤데요?”

늙은 오크 거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놈의 이름은 칼데르스. 샴 대륙을 처음 발견한 마법사였으나 이곳 대륙에 마계가 존재했단 사실을 우연찮게 알고 서서히 타락하기 시작했지.”

“마계? 여기에 마계도 있어요?”

흥미로운 정보들이 속속 나타났다.

“샴 대륙은 아주 오랫동안 태고의 원시적 자태를 갖춘 땅이라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네만 마족들이 이 땅을 지배하고자 천족들과 전쟁을 벌였던 흔적들은 꽤 많이 찾을 수 있거든.”

“그러면 그 마계가 있단 걸 알고 마법사가 타락해서 마도사로?”

오크 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도사는 가장 먼저 우리 부족을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목적에 써먹을 궁리를 시작했어. 그게 바로 사이가 돈독했던 천둥의 날개 족과 죽음의 눈동자 족을 갈라놓는 거였지.”

“그걸 마도사가 혼자서 어떻게 해요?”

“놈의 마법은 환령 이라고 하는 정령을 부려서 쓴다네. 이 환령은 다양한 형태로 변하여 누구든 속일 수 있는 거짓의 정령이지.”

“흐음~! 그런 정령도 있군요.”

“이 환령을 소환할 수 있었던 마도사는 우리들을 관찰하며 똑같이 변신하여 이간질을 시켰지.”

“그게 변신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예요?”

“비슷하다고 보면 되네. 환령 이라는 정령을 소환하면 그 정령이 술자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변신할 수 있고 어떨 때는 술자의 몸에 깃들어 술자 본인이 직접 원하는 형태로 모습을 변신할 수 있거든. 이것이 무서운 건 정말 완벽하게 똑같아서 누구도 구분할 수 없다는 거야.”

선우는 환령에 대해 엄청난 흥미가 생기고 있었다.

“대박!! 그런 능력이면 엄청나겠네요.”

“놈은 가장 먼저 천둥의 날개 부족에 접근했었어. 천둥의 날개 부족의 족장이자 위대한 태양의 전사 ‘아켈리온’은 그를 편견 없이 맞아줬었지. 이렇게 천둥의 날개 족의 신임을 얻은 칼데르스는 죽음의 눈동자 부족인 우리들에게 접근했었다.”

늙은 오크 거인의 눈빛에 분노가 어렸다.

“그리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지. 놈은 먼저 독약을 제조하여 우리들의 온화한 족장이자 광활한 대지의 기둥 ‘둔그라드’를 중독시켰다네. 목적은 죽이려고 한 거였지만 둔그라드의 놀라운 생명력은 칼데르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강했지. 결국 죽이진 못하고 의식불명이 되었고 우리들에게 둔그라드를 중독 시켰던 것이 천둥의 날개 부족의 짓이라고 거짓말을 시작했어.”

오크 거인의 말에 선우는 잠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잠깐만요. 그런데 사이가 좋았던 부족이라고 했잖아요. 갑자기 족장이 중독됐는데 그걸 얼마 전까지 사이좋던 부족의 짓이라고 했다고 믿는다고요?”

“당연히 처음엔 믿지 않았지. 하지만 칼데르스의 계획은 단순하지가 않았어.”

오크 거인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놈은 사전에 수많은 목격자들을 만들어내려고 어떤 거짓된 속임수를 꾸몄지. 그게 무엇이냐면 아까 말한 환령을 쓰는 거라네. 놈은 환령을 소환하여 우리의 족장 둔그라드로 감쪽같이 변신시켰고 자신은 환령의 능력으로 천둥의 날개 족의 가장 악명 높은 독룡 ‘베누티아’를 타고 다니는 ‘프로칸테스’의 모습으로 변신한 거야. 그리고 둘이 서로 심한 갈등을 드러내는 연극을 일부러 죽음의 눈동자 부족의 오크들이 볼 수 있도록 꾸몄던 거지.”

대마도사 칼데르스의 계획은 아주 치밀했었다.

프로칸테스와 둔그라드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서로 싸움이 난 것처럼 꾸민 뒤 둔그라드를 독으로 중독시켰던 것이었다.

“결국 가짜인 이들의 싸움을 목격했던 동족들이 서로 증언을 시작했고 둔그라드를 죽이려고 프로칸테스가 독을 쓴 거라고 오해를 했지.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샴 대륙의 평화는 죽음의 눈동자 부족과 천둥의 날개 부족 간의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천둥의 날개 부족들과 우리 부족들은 처음엔 서로 팽팽한 싸움을 계속했었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 속에서 오해와 갈등은 커져만 갔고 끝이 없는 전쟁으로 번져가고 있었지. 그러던 중에 대마도사 칼데르스는 천둥의 날개 부족을 도와 환령의 능력으로 우리 부족들을 제압했고 마침내 봉인까지 시켜버렸지.”

“그러면 거인님들을 봉인시킨 건 천둥의 날개 부족이 아니라 대마도사 칼데르스의 짓이었군요.”

“사실상 놈이 이 모든 짓을 꾸민 것이지.”

“근데 당신들은 모두 엄청난 거인들인데…. 천둥의 날개 부족은 뭔데 그렇게 팽팽한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천둥의 날개 부족들은 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오크들이라네. 드래곤의 힘으로 전투를 하니 당연히 우리들과 맞서는 것이 가능하지.”

“드래곤을 타고 다녀요? 오크들이?”

들을수록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 천둥의 날개 부족들은 어디에 있어요? 당신들이 봉인에서 풀려난 것을 알게 되면 또 전쟁이 벌어질 거 같은데.”

“놈들은 이 곳 샴 대륙의 하늘에 떠 있는 천둥바위에 살고 있다네. ‘천공의 둥지’ 라고 불리는 곳이지.”

천둥바위는 샴 대륙의 상공에 떠 있는 거대한 암석으로 이뤄진 공중 섬이었다.

이곳에 천둥의 날개 부족 오크들이 드래곤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마 우리들이 봉인에서 풀려난 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될 건 칼데르스 놈일 거야. 그놈이 알게 되면 천둥의 날개 족들이 아는 건 시간문제지.”

“그러면 여러분들도 전투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아요?”

“물론이지. 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가야 할 곳이 있어.”

“그게 어딘데요? 거인들이라서 일어나기만 해도 바로 눈에 띌 거 같은데.”

“우리들의 족장 둔그라드를 만나 봉인에서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려줘야지.”

“족장도 같이 봉인 된 게 아니었어요?”

“아니라네. 족장은 봉인할 필요가 없었거든. 자네가 우릴 풀어줬으니 따라오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