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제166화
사이클롭스는 선우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자랑하듯이 떠벌렸다.
선우는 사이클롭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계속 맞장구를 치고 공감하는 척 리액션을 해줬다.
“오~ 그렇군. 신기하네.”
“신기하지? 켈켈켈~”
사이클롭스가 우쭐거리는 표정을 짓고 커다란 눈망울을 꿈뻑거렸다.
“자~ 이제 네놈에게 알려줄 건 다 알려줬으니 당장 구워 먹어야겠다.”
선우를 내려다보며 사이클롭스가 입맛을 다셨다.
“야, 잠깐만. 나는 살도 안 쪄서 맛이 없어.”
“켈켈켈, 걱정 마라 끓는 물에 푹 우려내서 국물을 마실 테니까.”
사이클롭스는 선우를 잡아먹을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저놈이 날 먹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일단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여길 먼저 빠져나가야 돼. 그리고 데카랜드가 뭐하는 곳인지 용 뱃속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도 좀 알아내야 하고.’
선우는 계속 사이클롭스 에게 정보를 빼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 그 마법은 어디 가면 있는 건데? 나도 보여줄 수 있어?”
“커험… 이건 나만 알고 있어야 되는 거야.”
사이클롭스는 선우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뻐기듯이 대답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주라. 난 구경만 할게.”
선우가 계속 사이클롭스를 칭찬하면서 띄워줬다.
사이클롭스는 고민에 잠겼다.
생전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인정을 해주는 인간이 나타나버렸다.
심지어 자신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선우가 계속 사이클롭스를 꼬드겼다.
“알려줘, 알려줘.”
“크흠… 그러면 진짜 구경만 한다고 약속할 수 있냐?”
“물론이지. 약속할게.”
“좋아, 기다려봐.”
덜커덩-!
선우 앞쪽에 닫혀있던 철문이 활짝 열렸다.
“거기로 나와.”
선우가 재빨리 빠져나갔다.
* * *
“이거야. 내가 말한 마법이란 거.”
사이클롭스가 선우를 데려간 곳은 데카랜드의 외딴 동굴.
데카랜드는 사람 하나로 치면 넓은 땅이었지만 그럼에도 용 한 마리 뱃속에 자리한 소국이었다.
“이게 마법이라고?”
선우의 눈앞에 펼쳐진 건 동굴의 벽화들과 알 수 없는 문자들.
칼로 새겨놓은 것처럼 괴상한 문자들이 가득했고 마치 그 문자들을 설명하려는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벽화 가운데에는 무언가 봉인 되어 있는 것처럼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선우가 마법진을 구경하다 슬쩍 손으로 만져봤다.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오크 부족을 봉인에서 꺼내라.]
등급: 레전드리
정보: 샴 대륙에는 오래 전부터 서로 앙숙의 관계였던 두 오크 부족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의 눈동자’ 부족과 ‘천둥의 날개’ 부족이었지요.
두 부족은 샴 대륙의 풍성한 환경에 반하여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사사건건 충돌하였고 결국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치열한 전쟁 끝에 천둥의 날개 부족이 승리하였고 결국 죽음의 눈동자 부족을 자신들이 부리는 용 데카투스의 뱃속 어딘가에 봉인시켜버렸습니다.
선우의 눈에 흥미가 차올랐다.
‘샴 대륙의 오크 부족이라… 그것도 둘 씩이나?’
퀘스트 정보의 내용을 계속 읽어보기로 했다.
-데카투스의 뱃속에 봉인 당한 죽음의 눈동자 부족을 꺼낸다면 어쩌면 플레이어에게 호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봉인 마법을 해제하려면 살아있는 제물이 필요합니다. 몬스터일수록 좋습니다.
봉인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곳에 몬스터가 자신의 신체 일부를 가져다 대면 봉인이 풀릴 것입니다. 행운을 빕니다.
보상: ?
아직 퀘스트의 보상은 명확하지 않았다.
‘일단 이거 봉인부터 풀어봐야지.’
선우가 사이클롭스에게 말했다.
“야, 클롭스. 너 이거 봉인 풀 줄 아냐?”
“내 이름은 클롭스가 아닌데.”
“그럼 뭔데?”
“사이클롭스 족들의 이름은 아주 우아하고 고결하지. 내 이름은 발음이 어려우니까 잘 들어 봐. 샤락크누모리키아로프 야.”
“샤… 넌 그냥 클롭스 해라. 네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도 어려워.”
“아니야, 내 이름은 샤락크누…”
“됐고. 그럼 별명으로 하자. 네 이름은 알겠으니까 별명으로 부를게. 클롭스. 간단하고 좋지?”
“아~ 별명. 켈켈켈. 그럼 클롭스로 하자.”
사이클롭스는 생각보다 단순한 몬스터였다.
‘똑똑한 척 다 해봤자. 몬스터는 몬스터지.’
선우는 이제 클롭스를 구워삶아 튀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거 봉인 마법인데 오직 너만이 이걸 풀 수 있어.”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건데?”
“야, 여기 딱 적혀 있잖아.”
선우가 손가락으로 벽화에 새겨진 문자들을 짚었다.
클롭스의 외눈이 크게 부풀었다.
“너, 너… 그걸 읽을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선우가 오늘 처음 본 문자들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사이클롭스를 속여 먹으려고 뻥을 치는 거다.
문제는 이런 선우의 말에 되레 속아 넘어가는 사이클롭스였다.
“너, 대단하구나. 난 여기 있으면서 그걸 해석하려고 아무리 머릴 써봐도 도무지 모르겠던데.”
“내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너는 틀림없이 이 봉인 마법을 풀 수 있을 거야.”
“잠깐만. 그런데 이 봉인 마법에는 뭐가 들어 있는 건데?”
사이클롭스가 봉인 마법진을 보면서 우려하는 눈빛을 띄었다.
이걸 게슴츠레한 눈으로 살펴보던 선우가 대답했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다듬어서 말을 뱉어냈다.
“간단해. 데카랜드에 살고 있던 아주 아름다운 공주가 이곳에 봉인되어 있다고 쓰여 있어.”
“뭐… 뭐어? 공주~!?”
클롭스의 외눈이 훨씬 커졌다.
“그럼~ 여기 벽화에 새겨진 글자들의 내용을 내가 쭉 읽어보니까 원래 데카왕국에 살던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데.”
선우는 아무 말이나 마구 지껄였다.
클롭스는 이걸 진자로 믿기 시작했지만.
“그, 그런데 왜 봉인 당한 거야?”
선우는 순간 뭐라고 이야기해줄지 빠르게 생각했다.
‘뭐라고 말해야 되지? 얘 생긴 거 보니 그냥 그럴 듯하게 동화 스토리로 만들어서 이야기해줘도 믿을 거 같은데.’
선우는 결정했다.
클롭스가 믿을 만한 순정 동화 스토리를 알려주기로.
“옛날에 데카랜드에 쳐들어온 마왕이 있었대. 그 마왕이 공주랑 결혼하고 싶어서 청혼을 했는데 거절했대.”
선우는 클롭스에게 이야기를 계속 해줬다.
너무 벽화의 문자를 보지 않고 이야기하면 거짓말인 게 들통날 수 있다.
“큼큼.”
선우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벽화에 새겨진 문자들을 보면서 해석하는 척 열심히 연기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됐어? 거절했더니 어떻게 됐는데?”
클롭스는 선우의 연기에 완벽하게 속아 넘어갔다.
남은 건 그냥 봉인 마법진의 제물로 갖다 바치는 것.
‘순조롭게 풀리는군.’
선우는 벽화의 문자를 보면서 일부러 뜸을 들였다.
클롭스의 감정 이입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한 떡밥이었다.
“으음….”
“왜? 뭔데? 어떻게 됐다고 쓰였는데? 빨리 알려줘. 빨리!”
“기다려봐. 이거 해석이…”
선우의 애간장 태우는 연기에 클롭스는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아니 속아버렸다.
그 정도로 선우의 말빨은 화려했다.
“공주가 청혼을 거절했더니 마왕이 빡쳐… 아니 열 받아서 공주를 여기다 가둬버리고 홀연히 마계로 사라져버렸대.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일 때까지 안 풀어준다고 했다나?”
클롭스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화를 냈다.
“뭐어!? 이런 나쁜 자식!!”
선우는 여전히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뜬 채 클롭스의 발악을 구경했다.
‘생각 이상으로 단순한 게 아니라 순진하다고 해야 되나?’
클롭스가 울분을 토하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 그러면 내가 공주를 구하게 되는 건가?”
“에…뭐… 그, 그런 셈이지.”
선우가 뺨을 긁적거리며 대꾸했다.
클롭스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크흐흐흡… 내, 내가 공주를 구하게 되면… 나도 공주랑 결혼할 수 있을까?”
“응? 아… 그게… 뭐, 가능하지 않겠어?”
“크히히힛!”
클롭스가 혼자서 콧물 삼키는 소릴 내면서 낄낄거렸다.
“그렇다면 내가 공주를 구해주겠어!!”
“오, 진짜야?”
“물론!! 당연하고말고! 나 아니면 누가 공주를 구하겠어?!”
선우는 여기서 슬쩍 클롭스의 의중을 떠봤다.
“만약 공주를 구하면 마왕이 쳐들어올 건데 감당할 자신 있어?”
“당연하지!! 난 사이클롭스 족의 전사라고!!”
“흐음~”
선우는 클롭스의 전신을 위아래로 빠르게 훑었다.
크고 뭉툭한 외눈이 박혀 있는 머리통에는 털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목은 근육이 아니라 살이 뒤룩뒤룩 쪄서 유통기한 지난 햄을 잔뜩 붙여놓은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이랴?
몬스터답게 체구는 컸지만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고 죄다 물렁거리는 살 뿐이었다.
어깨 밑부터 배까지 과다하게 몸이 굵어지는 체형에 다리 또한 볼품없이 허약했다.
어딜 봐도 전사 근처도 안 간 직립보행 하는 돼지괴물 같았다.
하지만 선우는 지금 클롭스 비위를 맞춰주면서 장단 맞춰주는 게 더 나았다.
“오~~ 진짜야? 네가 전사였어?”
“그러엄!!”
선우가 호응을 해주자 클롭스는 기분이 갑자기 확 좋아졌다.
“그랬구나~ 클롭스가 전사였구나~”
이젠 대충 리액션만 펼쳐가면서 클롭스의 감정을 계속 북돋워줬다.
“그럼! 난 전사야! 공주를 구해내고 결혼할 거야! 마왕이 쳐들어오면 단숨에 없애 버려주지!”
“그러렴~”
선우는 이제 혼자 놀다시피 하는 클롭스를 외면한 채 벽화의 문자를 읽는 척 했다.
이제 클롭스가 확실하게 선우에게 넘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뭐가 더 남아있어?”
“응, 네가 공주랑 결혼 타령 하길래 내가 여기 부분을 읽어봤거든?”
“읽어봤는데? 뭐라고 써있는데?”
선우가 대답했다.
“네 말대로 마법으로 봉인 당한 공주를 구출하면 그 공주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쓰여 있어.”
“진짜야?!!”
당연히 가짜지.
선우는 자기가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퀘스트는 해야 하고 제물도 필요했으니까.
때마침 자신을 먹으려고 하던 몬스터 사이클롭스가 멍청해서 잘 따라 와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면 이제 봉인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이리와 봐.”
선우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클롭스가 선우를 따라왔다.
“여기 보이는 마법진 보이지? 이 가운데에 네 손바닥 하나를 갖다 붙이면 된다고 쓰여 있어.”
“진짜로? 엄청 간단하군.”
“맞아. 나도 놀랬다니까.”
선우의 말을 믿은 클롭스가 켈켈거리며 말을 꺼냈다.
“너, 보기보다 쓸 만한 놈이로구나. 사실 널 언제 먹어치울지 고민을 했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어.”
“헉! 진짜야? 고맙다. 진짜 고마워.”
선우는 혼신을 다하며 연기력을 쥐어짜냈다.
‘아으, 좀 빨랑빨랑 손 갖다 붙여라. 그리고 나 좀 여기서 나가자.’
이제 선우도 인내심이 슬슬 바닥나는 중이었다.
클롭스는 선우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마법진 앞으로 갔다.
“걱정 마라. 내가 공주와 결혼하면 넌 먹지 않고 특별히 내 하인으로 삼아줄 테니까.
“정말 고맙다. 빨리 공주를 구해!”
“알았어, 케헤헤.”
클롭스가 멍청한 웃음을 흘리며 선우의 말대로 마법진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두우웅-!!
갑자기 벽화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법진이 꿈틀거리며 빛이 일렁거렸다.
스으으-!
빛이 사이클롭스를 감싸 안는 순간.
“어… 히에에엑!!!”
사이클롭스가 기겁을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법진 안에서 무언가를 본 것일까?
“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마법진 안으로 빨려 들어간 사이클롭스.
선우가 뒤늦게 인사를 했다.
“잘가렴, 괴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