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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164화 (164/200)

# 164

제164화

선우가 다시 눈을 떴다.

“으음… 여긴 어디지?”

쇠창살이 보였고 사방에는 돌을 깎아 다듬어 만든 벽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이제 정신이 드냐?”

선우 옆에는 불나방과 코딱충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오, 딱충이, 나방이. 여기 있었군. 아까 왜 귓속말 했는데 대답이 없냐?”

“잡히는 중이니까 대답이 없지.”

“너네들도 잡혀왔냐? 아까 걔들 뭐였지?”

“젠장, 샴 대륙 NPC들은 하나같이 성질들이 더럽냐.”

“우리가 날뛰어서 그렇지 뭐.”

“날뛴다고 여기다 끌고 와?”

덜컹-!

“쉿, 조용. 누가 들어온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샴 대륙 시작의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고 평화를 어지럽힌 죄를 지어 이곳에 끌려왔다.”

코딱충과 불나방을 발로 걷어차던 케무투스의 주인 경비병이었다.

그는 근엄한 자세로 선우를 노려보며 일갈했다.

“특히 너!! 저놈들에게 물어보니 네가 대장이라며?”

“그런데요?”

선우가 앉아서 대답했다.

“건방진 놈. 대장이란 놈이 부하들 통솔도 못해서 이런 꼴로 끌려오다니. 한심한 놈.”

선우가 뒤에 있던 불나방에게 물었다.

“내가 건방진 놈이란 거야? 한심한 놈이란 거야?”

“둘 다. 큭큭큭.”

선우랑 불나방이 낄낄거렸고 코딱충은 눈을 감고 체념한 표정을 지었다.

철커덩-!

“시끄러!! 이 와중에도 웃음이 나오다니 정말 간덩이 하나는 산돼지만한 놈들이로군.”

“뭐, 제 간이 제법 근수가 나가는 간이죠.”

“후후후, 너희들이 언제까지 그런 자신감이 나올지 두고 보마.”

“저기요. 그런데 솔직히 여기 끌려올 정도로 잘못한 것도 아닌데 대충 맞았으면 그걸로 퉁치죠? 아까 치킨한테 맞은 데가 아직도 욱신거린다고요.”

코딱충의 말에 경비병 NPC가 발끈하며 쇠창살을 곤봉으로 후려쳤다.

“케무투스다!! 음식에 갖다 대지 마!!”

“그게 그거 아닌가….”

“너… 넌 따라와. 여봐라! 저 건방진 놈부터 끌어내라.”

“예!!”

갑자기 경비병 NPC 뒤쪽에서 코코넛 껍질로 만든 투구를 뒤집어 쓴 원숭이 병사들이 나타났다.

“뭐, 뭐하는… 이거 놔!”

원숭이들이 코딱충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끌고 나갔다.

선우가 원숭이 병사들을 보더니 웃음이 터졌다.

“야, 나방아. 쟤들 봤냐? 허리에 찬 게 바나나인 줄 알았는데 칼이었어. 큭큭큭.”

불나방이 선우랑 같이 낄낄거렸다.

나가다가 이걸 발견한 경비병 NPC가 호통 쳤다.

“이놈들도 다 끌고 가!!”

졸지에 선우와 불나방도 원숭이 병사들에게 끌려 나갔다.

이들이 끌려간 곳은 마을에서 죄를 지은 자들을 처벌하는 법정이었다.

상석에 늙은 원숭이가 나타나 앉았다.

재판관 원숭이였다.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이 꽁꽁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샴 대륙은 원숭이 대륙인가? 뭐 이리 원숭이들이 많데?”

“시끄럽다!”

경비병 NPC가 소리치자 선우는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거렸다.

참다못한 경비병이 다가와서 곤봉으로 선우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내가 시끄럽다고 했지?”

“옙.”

선우는 일단 무릎 꿇은 채 샴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좌우로 원숭이 병사들이 감시하는 와중에도 코딱충은 탈출할 기미를 엿봤다.

‘젠장, 허술한 것 같아도 경계가 아주 삼엄하네.’

원숭이 병사들은 자신들 근처만 지키는 게 아니었다.

이들이 끌려온 법정은 사방이 울창한 정글의 나무들로 덮여 있었다.

즉 여기서 도망을 쳐도 길을 잃을 확률이 높았고 원숭이 병사들의 추적을 피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원숭이 병사들은 근처 나무 위에서도 꼬리를 칭칭 감아서 활을 메고 숨어 있었다.

여차 하면 도망치는 죄수를 쏘아 죽이거나 아니면 마취독화살을 써서 잡아올 것이다.

‘어떻게 도망친다?’

코딱충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사이 선우는 가장 앞쪽으로 끌려나왔다.

그리고 알림 메시지가 들려왔다.

띠링!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엥케르 마을의 제물이 되어라.]

등급: 히든

정보: 샴 대륙에서 가장 먼저 도착하는 시작의 마을 ‘엥케르’. 이곳에는 매년 열리는 거대한 제사 의식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의 용 ‘데카투스’ 의 제물을 바치는 의식 행위로서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고 데카투스가 마을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진정시키는 제사입니다. 플레이어 김선우 님께서 엥케르 마을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제물이 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보상: ?

난데없는 퀘스트가 발생했다.

그런데 히든 퀘스트였다.

‘흐음~?’

선우의 흥미가 자극되었다.

갑자기 시작부터 히든 퀘스트가 나왔다는 것은 무언가 있다는 뜻이니까.

끌려나온 선우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엥케르 마을의 법정은 엉성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삼엄하고 무거웠다.

문제는 원숭이 병사와 원숭이 재판관의 꼴이 웃기다는 것이었다.

“푸훕!”

선우는 원숭이 판사의 몰골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겠느냐?!”

긴 수염을 어루만지는 원숭이가 앉아서 과일을 까먹으며 선우에게 물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십니까?”

일단 선우는 장단 맞춰주면서 퀘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제물이 되라고? 그러면 여기서 깽판을 치면 날 제물로 갖다 바칠 건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 선우.

탕! 탕! 탕!

원숭이 재판관이 호두를 깨먹으려고 내려치고 있었다.

판사들 망치 소리인 줄 알았는데.

“으음, 이거 참 맛있구나.”

“저기 존경하는 재판관님. 이 자들의 심판을 내려주십시오.”

경비병 NPC의 말에 원숭이 판사는 호두를 오도독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지켜보던 코딱충이 한심하단 듯이 비웃었다.

“이게 무슨 법정이야? 원숭이들이 판사들 염탐해서 표절한 것 같잖아.”

따-악!

“아야!”

“건방진 놈이, 아직 덜 맞았냐?”

또 다른 경비병 NPC였다.

“아후, 이것들 진짜 마을에서 공격만 할 수 있었어도 다 쓸어버리는 건데.”

코딱충의 혼잣말을 때마침 원숭이 재판관이 듣고 말았다.

“뭐시라?! 거기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예? 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하지 마라! 다 쓸어버린다고 했겠다? 감히 평화의 마을에서 그런 위험천만한 발언을 내뱉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더냐!”

“아니,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선우와 불나방이 코딱충을 힐끔 쳐다봤다.

코딱충이 이들과 눈빛을 맞닥뜨렸다.

“나, 나 아무 말도 안 했어. 진짜야!”

당황한 코딱충은 일단 얼버무리기로 했다.

원숭이 재판관이 발끈하고 일어났다.

“고얀 놈! 끝까지 날 속이려 해? 너도 날 늙었다고 무시하는 거냐?! 여봐라!!”

“예!”

“저놈에게 코코넛 볼로 죄를 물을 것이다. 즉시 시행하라!”

“예!”

“응? 뭐, 뭐야! 이거 놔. 안 놔?”

코딱충을 원숭이 병사들이 붙들고 끌어냈다.

“여기다 묶어버려.”

“놔! 이 원숭이 자식들이 동물원에나 있을 것이지.”

원숭이 병사들이 코딱충을 나무기둥에 묶어서 매달았다.

“뭐하려는 거냐?”

거미줄에 칭칭 감긴 곤충처럼 코딱충은 밧줄에 꽁꽁 묶여 굴비처럼 매달렸다.

“과일 갖고 와.”

원숭이 병사들이 어디서 코코넛을 잔뜩 가져왔다.

“코코넛 볼을 시작한다.”

자기들 머리통만한 코코넛을 두 손으로 들고 온 원숭이 병사들이 코딱충 앞에 줄을 섰다.

“무슨 짓들이냐? 이거 안 풀어?”

“시작해.”

원숭이 병사들이 무표정으로 코코넛을 들고 오더니 코딱충의 머리통을 찍었다.

빠악!

“뜨읍….”

코딱충의 눈에서 별이 번쩍였다.

코코넛으로 한 방 내려찍은 원숭이 병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뒤로 휙 하고 돌아 맨 끝으로 갔다.

바로 뒤에 서 있던 원숭이 병사 차례였다.

빠악-!

아직 별이 보이는 와중에 또 코코넛 꿀밤이 작렬했다.

“어으으….”

신음이 절로 터지는 위력이었다.

“아우! 안 깨졌어. 아깝다.”

원숭이 병사가 또 맨 끝으로 돌아갔다.

세 번째 원숭이 병사가 코코넛을 들고 힘차게 코딱충을 내려찍었다.

“아얏!”

원숭이 병사들은 줄을 서서 차례대로 들고 있는 코코넛으로 코딱충을 한방씩 내려찍는 거였다.

그리고 경비병 NPC가 원숭이 병사에게 코코넛이 깨졌냐고 물어봤다.

“코코넛 깨졌냐?”

“여기 보십시오.”

“으음… 이건 깨진 거라고 볼 수 없어. 코코넛 과즙이 찔끔 흘러나온 거잖아. 쫙 하고 갈라져야지.”

“아깝….”

“다음!”

경비병 NPC는 원숭이 병사들이 코딱충의 머리통에 코코넛을 때려서 깨졌는지 검사하는 중이었다.

한편 코딱충은 연속으로 코코넛을 머리통에 맞으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만해! 원숭이 자식들아! 바나나로 때릴 것이지 왜 코코넛이야?”

빠악-!

원숭이 병사들은 코코넛으로 계속 코딱충을 때렸다.

두개골이 평평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코딱충은 코코넛 꿀밤에 맞고 있었다.

이걸 본 선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후후후, 네 이놈!! 부하가 당하는 걸 보니 이제 겁이 좀 나는 게로구나. 충격을 먹어도 어쩔 수 없다. 마을의 평화를 깨뜨리고 소란을 일으킨 죄는 엄히 처벌해야 한다.”

원숭이 재판관은 선우가 겁을 먹은 줄 알았다.

하지만 실은 반대였다.

‘웃겨서 미치겠다.’

선우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는 거였다.

원숭이 병사들이 코코넛을 들고 순서대로 코딱충의 머리통을 찧어대는 꼴이 너무 웃겼다.

마을 안에서는 생명력이 감소되지도 않는다.

그냥 죄를 뉘우칠 때까지 맞는 거다.

“자, 네놈도 이제 벌을 받아야 할 시간이다.”

선우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물었다.

“재판관님. 제가 뭘 잘못 했다고 벌을 받아야 합니까?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이놈! 저 망나니 같은 부하들이 사고를 쳤으니 대장인 네놈이 가장 큰 벌을 받아야 한다.”

원숭이 재판관은 막무가내로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 전에 또 다른 부하인 네놈!”

불나방을 지목한 재판관.

“네놈에겐 레몬 식사를 내리겠다.”

원숭이 병사들이 불나방을 끌고 나무기둥에 묶었다.

“후후후, 이 레몬은 샴 대륙에서 가장 신맛이 강하기로 악명이 높지. 한 방울만 먹어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거든.”

샴 레몬이라고 불리는 노란색 레몬이었다. 크기는 메론만 한 크기부터 수박만 한 크기까지 엄청 컸다.

레몬 즙을 잔뜩 내서 잔에 가득 담은 원숭이 병사들이 불나방에게 강제로 먹이기 시작했다.

원숭이 재판관이 선우에게도 처벌을 내렸다.

“여봐라, 이놈을 데카투스의 제물로 바치도록 하라.”

원숭이 병사들이 선우를 꺼내서 꽁꽁 묶더니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응? 어디로 가냐? 야, 야!”

“누가 저놈 입 좀 틀어막아.”

경비병 NPC가 선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읍읍!”

선우가 원숭이 병사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엥케르 마을에서 꽤 떨어진 곳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강물.

마치 바다처럼 흐르는 강물은 거세게 넘실거렸다.

강을 가로지르는 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선우가 매달려 있었다.

양쪽에서 줄을 잡고 있는 원숭이 병사들은 강을 향해 엎드려 뭐라고 중얼대며 제사 의식을 진행했다.

선우는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이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으음~ 쟤들 뭐하는 거지. 죽음의 용 어쩌고 하길래 뭔가 했는데 이런 강에 와서….”

선우가 무심코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이었다.

한 쌍의 그림자가 거센 강물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엄청난 물보라를 일으키며 솟구쳐 올랐다.

물이 파도처럼 육지로 밀어닥쳤고 원숭이 병사들이 도망갔다.

“우왓!”

선우를 향해 덮쳐오는 거대한 악어를 닮은 몬스터가 주둥이를 벌렸다.

텁-!!

줄에 달려있던 선우를 과자 따먹듯이 삼킨 몬스터는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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