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제162화
선우가 쿤타 대륙을 클리어했다.
새로운 알림 메시지가 연속으로 들려왔다.
[다음 대륙인 ‘샴’ 대륙의 진출 권한을 획득하였습니다.]
[쿤타 대륙에서 터득하였던 플레이어의 모든 무공, 스킬, 아이템 등은 다음 대륙으로 가져가실 수 없습니다.]
[샴 대륙의 정보를 미리 확인하려면 다음 버튼을 클릭하세요.]
새로운 대륙에 대해 알림을 들었다.
‘샴 대륙? 이건 또 뭐지? 그리고 흑천마공을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면 못 쓴다는 건가? 아이템도?’
선우는 궁금해졌다.
곧장 새로운 대륙의 정보를 확인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흑천마공을 쓸 수 없다니!
선우는 샴 대륙의 정보창을 열었다.
띠링!
[샴 대륙]
정보: 지금까지 플레이어가 통과한 대륙과 샴 대륙은 다른 세계입니다.
샴 대륙은 두 개의 서로 다른 대륙이 한 몸처럼 붙어있어 쌍둥이 대륙이라고도 불립니다.
이곳에는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온갖 마물들과 거인, 용, 마녀 등이 혼잡해 있는 곳이기도 하죠.
샴 대륙에는 온갖 위험이 기다리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선우는 샴 대륙의 정보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흐음~ 결론은 그러니까 쿤타 대륙의 무공은 그냥 여기서만 쓸 수 있던 거였네.”
그제야 왜 쿤타 무림 세계에 눌러앉아 사는 플레이어들이 많은 건지 납득이 갔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은 플레이어들은 쿤타 무림에서 얻은 것을 모두 내려놓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그건 불확실한 도전.
위험도 클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 플레이어들은 쿤타 무림에서 어렵게 얻어낸 것들을 쉽사리 놓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으로 불확실한 위험을 감수하느니 안전하게 쿤타 무림에서 자기가 쌓아놓은 것만 누리고 살려는 거였다.
“까짓것 흑천마공 없어도 상관없지.”
샴 대륙으로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선우가 코딱충과 나머지 일행들을 불러 모았다.
“야, 너네들 이리 와.”
코딱충과 불나방, 왕소륜, 오초백이 달려왔다.
선우가 뒷짐을 지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문을 열었다.
“케헴! 이제 너희들도 보다시피 내가 무림을 다 제패했다.”
왕소륜과 오초백이 속으로 생각했다.
‘제패가 아니고 그냥 다 박살내버렸지.’
선우는 자신이 쿤타 대륙을 클리어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 넌 그냥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면 되는 거야?”
왕소륜과 오초백의 입 꼬리가 자꾸 위쪽으로 꿈틀거렸다.
표정 관리를 하려고 애썼지만 웃음이 입술 밖으로 자꾸 튀어나왔다.
“역시 너희들도 내가 무림제패를 했으니 기분이 좋나 보구나.”
“응? 아, 어, 그렇지. 하하하. 진짜 기분이 끝내주네. 아하하하하.”
왕소륜과 오초백이 영혼 없는 웃음을 마구 내뱉었다.
코딱충은 꽤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야, 그러면 여기서 흑천마궁 지어놨던 거랑 나머지는 뭐 어떻게 되는 건데?”
선우는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냥 놔두고 가야지.”
“뭐? 야, 그러기엔 너무 아깝잖아.”
기다렸단 듯이 왕소륜이 끼어들었다.
“맞아! 흑천마궁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지. 그러니까 나 주고 가라.”
오초백이 한 발 늦었단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야, 그거 지을 때 나도 한몫 했어. 반반씩 나눠서 운영하자.”
선우는 아직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 왕소륜과 오초백이 티격태격했다.
“이것들이 선우가 줄 생각도 없는데 줄 것처럼 굴고 있네.”
코딱충이 빈정거렸다.
“쟤들 주고 갈 건데?”
선우의 말에 코딱충이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야, 진짜로 다음 대륙 넘어갈 거냐? 이제 무림에서 재미 좀 보나 했는데…. 좀 더 있다 가자. 대륙 클리어했다고 다 넘어갈 필요는 없어.”
코딱충은 쿤타 무림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선우가 갖다 줬지만 복마신검도 손에 넣었고 복마검법까지 터득했다.
여기서 잘만 하면 공동파 못지않은 그럴 듯한 문파를 세울 수 있었다.
어쩌면 새로운 정파 명문의 세력을 키울 가능성도 느껴졌다.
그런데 다음 대륙이라니!!
쿤타 무림을 버리고 간다니!!
코딱충에게 이건 캐삭빵에서 패배한 것만큼이나 큰 충격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딱충아. 너무 낙담하지 마렴. 다음 대륙 가서 더 재미있는 거 줄게.”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야, 너도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면 쿤타 무림에서 얻었던 마공이며 그 흑룡검, 흑룡패왕도 다 자동 소멸이야. 없어진다고. 한 번 자동 소멸되면 그거 다시 얻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돼.”
코딱충의 말에 선우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쿤타 무림에서 벗어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 또한 쿤타 대륙만의 룰이었다.
쿤타 대륙에서 얻은 모든 것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것.
만일 이 모든 것을 끝까지 누리고 싶다면 쿤타 대륙을 떠나지 않으면 된다.
그 선택의 갈림길 속에서 선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쿤타 대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선우의 흑천마공, 질룡답보, 흑룡검, 흑룡패왕도 등 모든 무공과 스킬, 아이템은 자동 소멸 될 것이다.
“야, 선우야. 한 번 더 생각해 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난 이미 결정했어. 다음 대륙으로 가자. 거기는 샴 대륙이라고 쌍둥이 대륙이래. 오히려 훨씬 편하지 않겠냐? 아직 남은 대륙이 3개인데 그 중 2개 대륙은 같이 붙어 있어서 한꺼번에 클리어가 가능하잖아.”
선우의 말에 코딱충이 발끈했다.
“샴이고 나발이고 뭐가 편해? 난 여기가 더 편하다고. 복마신검을 가졌고 복마검법까지 터득했는데 이 정도면 쿤타 무림에서 지존 대접 받을 수 있어. 그런데 이걸 다 버리고 떠나자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코딱충이 갑자기 뭐가 생각났는지 또 표정이 확 변했다.
“그렇지!! 야, 선우야. 네가 그렇게 쿤타 무림을 떠나고 싶다면 떠나. 하지만 난 여기 남아있을게. 어때? 이렇게 하면 되네. 딱이네.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하하하하.”
코딱충의 말에 불나방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왕소륜과 오초백은 일단 가만히 있기로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를 땐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좋다.
“딱충아. 넌 내 부하다. 그러니까 내가 샴 대륙으로 가면 너도 따라와야지. 안 그러냐? 나방아.”
“맞아. 어차피 검법이랑 검 둘 다 선우가 갖다 줬지 내가 얻은 건 아니니까.”
“들었지? 나방이도 저렇게 말하는데 딱충이 넌 왜 그러냐? 복마신검하고 복마검법 내가 줬지 네가 얻은 거냐?”
선우의 말에 코딱충은 반박할 수 없었다.
“으으으….”
“미련 버려. 딱충아. 쿤타 무림 같은 건 의미 없어. 칼 장난 그만하고 나와 같이 더 높은 대륙으로 올라가는 거다.”
선우는 이미 결론을 내렸고 코딱충에게 통보하는 중이었다.
이제 코딱충도 그 정도는 안다.
“휴우….”
코딱충의 표정이 구겨지는 반면 왕소륜과 오초백은 웃음이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야, 소륜이, 초백이 와 봐.”
“옙!”
왕소륜과 오초백은 잘만 하면 선우가 얻은 모든 것을 자신들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희들한테 내가 흑천마궁을 줄 거다. 어차피 쿤타 대륙 벗어나면 여기서 갖고 있는 것들 다 쓸모없으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김선우 님! 그대는 위대한 플레이어입니다!”
난데없이 존댓말을 써 가면서 납작 엎드려 아부를 떨어대는 왕소륜과 오초백.
“오버 하지 마. 어차피 앞으로 너희들이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할 거니까.”
“크히히! 아유, 그럼요. 걱정 마시고 마음 푹!!! 놓으십시오. 저희들이 흑천마궁을 이어나가서 김선우 님의 위대한 명성을 쿤타 무림 천하에 널리 알려놓겠습니다!”
왕소륜과 오초백은 허리를 접었다 펴면서 연신 아부 스킬을 발휘하는 중 이었다.
이걸 지켜보던 코딱충은 심산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코딱충이 선우에게 다가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왜?”
“야, 우린 그럼 쿤타 대륙에서 얻어가는 게 뭔데?”
“없어. 쿤타 대륙을 떠나려면 여기서 얻은 건 다 내려놔야 한다고.”
“그럼 내가 했던 건 다 개고생이잖아!”
“어떻게 그게 고생이냐, 딱충아. 더 큰 걸 얻기 위한 투자지.”
선우의 말이 번지르르 해졌다.
“이 자식이!! 날 끝까지 가지고 놀 거냐!! 내가 네 노예냐? 앙! 이 양아치 자식!”
코딱충이 울컥 하고 선우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불나방이 코딱충을 뜯어 말렸다.
“야, 코딱충. 너 정신 나갔냐? 왜 이래?”
“놔 인마. 어차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그냥 여기서 다 질러버릴 거다!”
코딱충이 갑자기 난동을 부렸다.
왕소륜이 오초백에게 속삭거렸다.
“야, 분위기가 좀 험악해질 거 같으니 우린 일단 뒤로 물러나서 얌전히 지켜만 보자.”
“나도 그 얘기 하려고 했어.”
이들은 코딱충과 선우, 불나방이 쿤타 무림을 가든지 말든지 상관없었다.
아니, 쿤타 대륙을 벗어나는 게 둘에게도 훨씬 유리했다.
그러니 코딱충이 날뛰어도 입 닦고 구경만 하는 중이었다.
선우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성질을 부려대는 코딱충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딱충아. 너 지금 착각하나 본데, 나한테 실수한 건 너야. 잊었냐?”
“뭐?”
“자삭빵. 이거 내가 기억하라고 했지?”
그제야 잊고 있던 단어가 코딱충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아, 그게….”
“그리고 딱충아. 노예 어쩌고 했는데 사실 뭐 바른 말로다가 네가 나랑 친구 사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잖아? 자삭빵만 아니었어도 넌 아마 여기 오자마자 기회 보면 냅다 튀었을 놈인데. 안 그러냐?”
선우의 말에 코딱충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쿤타 대륙에 들어와서도 기회만 생기면 선우를 뒤통수 치고 자신의 문파를 세워 잘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선우의 밑에서 또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 같으니 쌓여있던 게 폭발한 것이었다.
“딱충아. 나는 기회를 여러 번 주는 놈이 아니야. 내가 따라오라고 할 때 그냥 따라와라.”
코딱충은 결국 선우를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젠장, 어쩌다가 저 빌어먹을 양아치 놈하고 엮여버려서….’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불나방이 코딱충을 달래줬다.
“야, 너무 그렇게 우울해하지 마라. 다음 대륙에서 또 쓸 만한 거 건질 거야.”
“넌 매사에 느긋해서 좋겠구나.”
“칭찬해줘서 고맙다.”
“그건 칭찬이… 아니다. 말을 말자.”
코딱충은 이제 자포자기 했다.
‘난 김선우의 애완견인건가…. 인피니티 로드를 하는 동안은 저 자식의 애완견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냐? 젠장… 이제 와서 캐삭하고 처음부터 다시 키울 수도 없고….’
파즈즈즉-!
때마침 선우 앞에 하얀 빛이 일렁이는 포탈이 열렸다.
알림이 들려왔다.
[샴 대륙으로 넘어가는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게이트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
[샴 대륙으로 동행할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은 없습니다.]
[같이 입장할 플레이어의 닉네임을 입력해주십시오.]
[코딱충, 불나방 님의 입력이 완료되었습니다.]
[샴 대륙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코딱충과 불나방이 선우 옆에서 게이트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왕소륜과 오초백이 선우의 눈치를 보면서 슬쩍 다가왔다.
“선우님. 정말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흑천마궁을 주시고 거기서 벌어들일 수입원을 안겨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정파와 사파 놈들도 다 제거해주셨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코딱충과 불나방이 게이트로 먼저 입장했다.
선우가 게이트로 들어가면서 왕소륜과 오초백을 쳐다봤다.
“아, 빼먹고 너희들한테 이야기 안 한 게 있네. 내가 죽였던 정파 애들 있잖아. 개방 하고 또 뭐더라? 하여튼 걔들 빼고 나머지는 캐삭빵 아니었어. 아마 지금쯤이면 다시 로그인해서 날 쫓으려고 흑천마궁으로 가지 않을까 싶네. 너희들도 몸조심해라. 난 간다.”
“예?”
파즈으응-!
왕소륜과 오초백이 물어볼 틈도 없이 선우는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덩그러니 남은 둘 사이에 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