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제154화
선우가 사마진인을 캐삭시켰다는 사실은 정파 연맹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무림맹의 맹주 혜각 대사는 사마진인의 캐삭빵 사실을 듣고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사마진인이… 캐삭빵을?”
“대사님. 지금 격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하고 계십니다. 죽었다고 하시는 게 더….”
“시끄러 인마!! 이거 게임인데 뭔 격을 따지고 자빠졌어?!”
콰-앙!!
와장창!!
혜각 대사가 열이 받았는지 돌로 만든 탁자를 일격에 때려 부쉈다.
“지, 지, 진정하십시오. 대사님.”
“사마진인을 제거했으면 결국 무당파의 원로는 둘뿐이라는 건데 안 그래도 지금 내분에 휩싸인 무당파가 더 소란스러워질 거 아니야?”
“그거야 뭐 예상했던 결과 아니겠습니까? 무당파 안방 사정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혜각 대사가 옆에 있던 소림 길드원의 플레이어 머리통을 찰싹 때렸다.
소림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승려 캐릭터들이었다.
“김선우가 사마진인을 쳤으니 이제 무당파 전체가 난리 나겠군.”
“이 틈을 타서 무당파에 심어둔 세력을 확장시켜야 합니다. 대사님.”
“일단 잠깐 기다려보자고. 지금 섣불리 움직이면 들통 날 수 있어.”
소림 길드의 마스터인 혜각 대사 역시 무당파에 스파이를 심어뒀던 것이었다.
8대 정파 길드 모두 겉으로는 서로를 믿고 동맹관계를 유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쇼에 불과했다.
뒤로는 서로 불신하며 어떻게든 세력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혈안이었다.
8대 정파 길드마다 쿤타 대륙 안에서 각자 고유의 영역이 주어져 있었다.
그 영역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상점과 객잔 등에서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였는데 영토를 확장하면 돈이 많아지고 축소되면 돈이 줄어들었다.
결국 돈으로 인한 세력싸움은 정파 내부에서도 빈번했다.
한편 선우는 자신이 사마진인을 캐삭빵 시켰다는 사실을 스트리밍 방송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무당파 장문인이자 길드 마스터 유송정은 선우의 방송을 확인하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이런 개XX!!!”
와장창!!
유송정이 흥분한 나머지 문짝을 부숴버렸다.
“길드장!!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야! 너희들은 사마진인이 당할 때까지 어디서 뭐하고 있었어!!”
“예? 아… 저… 그게….”
“아, 저, 그게? 이것들이….”
퍽!! 퍽!! 퍽!!
“으억! 잠깐만요. 행님! 저희들도 사정이란 게 있었습니다.”
“사정이고 나발이고 이 똥개 새끼들 매달 길드에서 나오는 월급만 받아 처먹고 하는 일이라고는 칼 차고 눈깔에 힘주고 다니는 거 말고 없는 것들이 고작 그 흥분병 환자 놈 케어를 못해서 날 이딴 식으로 개망신을 줘?”
퍼퍽! 퍽!
“아악! 송정이 형! 잘못 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행님!”
유송정은 결국 이성을 잃고 말았다.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의 내용들은 그의 자존심을 긁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찢어발기고 있었으니까.
“야, 이 얼빠진 놈들아. 너희들도 눈알이란 게 달려 있으면 이걸 보라고! 앙!!”
유송정의 윽박지름에 얻어터지던 호위 무사들이 정 자세로 선우의 방송을 모니터링했다.
선우는 신나게 사마진인을 때려잡은 썰을 풀고 있었다.
마치 아이들한테 구연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혹은 대학로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처럼 혼자 표정 연기부터 원맨쇼를 펼치는 중이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마진인님. 이러지 마시죠. 저는 이러려고 온 게 아닙니다!! 했더니 사마진인이 뭐랬는줄 아십니까?”
선우의 말에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뭐랬는데요?
-사마진인이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흥분하고 플레이어 죽이는 재미로 게임하는 변탠데.
-뻔하지. 막 으아아아 하면서 죽이려고 들었을 걸.
-사회에서 못하는 짓거리를 게임 속에서 해소하는 쓰레기=사마진인 ㅇㅈ?
선우는 사마진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닥쳐! 무당파는 너 같은 쓰레기들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당장 소림 놈들처럼 죽여버리겠어!! 으아아아!!”
선우의 사마진인 성대모사는 시청자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개똑같앜ㅋㅋㅋㅋㅋㅋ
-사마진인 말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장님 미친 개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라? 님 근데 소림이 왜 나와요?
-소림이 사마진인이랑 뭐 있는 건가?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던 선우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 소림?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할 말은 많지만 하면 안 됩니다.”
선우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사람은 하지 말라는 거 하고 싶고 몰라도 된다고 하면 더 알고 싶어지는 법이다.
물론 선우의 의도는 아니었다.
선우는 그냥 사마진인 말투를 성대모사 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소림을 들먹인 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뜻하지 않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버린 것이었다.
이미 내뱉은 말을 번복할 순 없는 노릇.
선우는 즉흥적으로 절묘하게 위기를 피해갔다.
그저 뭔가 있기는 하지만 말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만 잡으면서.
시청자들이 그걸 눈치 챘는지 계속 재촉했다.
-에이~ 방장님. 소림하고 사마진인 사이에 뭐 있었던 거죠?
-님 정보력은 이미 검증되었음. 빨리 불어보셈. 뭐임?
-ㅋㅋㅋㅋㅋ 이거 소림 놈들이 무당파 안에 무슨 짓을 했네. 백퍼다. ㅋㅋㅋㅋㅋㅋ
-공감. 소림 애들이 무슨 뒷작업을 했는데 그게 주인장 귀에 들어 갔나봄.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선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모르쇠를 일관했다.
반면 방송을 지켜보던 무당파의 유송정은 이야기가 달랐다.
“저건 또 무슨 소리냐? 소림이라니?!”
유송정의 불벼락 같은 호통에 호위 무사들이 흠칫 하고 몸을 떨었다.
“저, 저희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저희도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길드장님. 김선우를 믿으십니까? 저 자식 순 뻥쟁이에 양아치입니다. 그냥 막 지어내는 헛소리라고요.”
“맞습니다. 절대로 저 사악한 요괴 놈의 혓바닥에 놀아나면 안 됩니다.”
유송정이 다시 침착하게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싸늘한 말투로 되물었다.
“너희들…. 왜 이렇게 오바 하고 그러냐? 난 그냥 소림이라고 물었을 뿐인데. 뭐 켕기는 거라도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호위 무사들이 부정하였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유송정이 바깥에 있던 부하들을 불렀다.
“이놈들을 포박하고 고문실로 데려가라.”
“자, 잠깐만요. 사실대로 불겠습니다!”
호위 무사들 중 누군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른 놈들이 눈치를 줬고 유송정은 사태 파악을 마무리 지었다.
“좋아, 너만 남고 나머지는 끌고 가라.”
“예!!”
홀로 남은 무사에게 유송정이 물었다.
“네놈이 나한테 할 말이 있나 본데, 아는 것을 남김없이 다 실토해라. 그러면 파문은 면하게 해주마.”
* * *
선우는 스트리밍 방송으로 후원금을 쏠쏠하게 벌었다.
사마진인을 화끈하게 때려눕혀 캐삭빵으로 지워버린 썰은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특히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에서는 선우가 8대 정파 공략을 시작했다는 걸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이제 조만간 정파 애들 곡소리 터질 날이 머지않았음 ㅋㅋㅋㅋㅋ
-흑두맹을 따라 무림맹도 사라지는 것인가?
-아마도 ㅇㅇㅋ
-무림맹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걸?
-맞아. 아무리 흑두맹이 사파 연맹이라고 하지만 정파 연맹에 비하면 솔직히 급이 딸리지.
-그런데 이미 개방 방주 모인결이 김선우한테 순삭됨. ㅇㅇ
-모인결만 순삭된 게 아니라 사마진인도 순삭 ㅋㅋㅋㅋㅋ 무당삼로 중 제일 또라이였는데.
-사실상 김선우가 정파 때려잡고 무림 제패하는 건 시간문제임.
-쿤타 무림에 들어와서 김선우의 행보를 보면 진짜 ㅎㄷㄷ 함. 얼마 전엔 공동파 신물 복마신검까지 팔지 않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개웃겼음 그거 ㅋㅋㅋㅋㅋㅋㅋㅋ
-공동파 두천봉 지금도 복마신검 애타게 찾고 있던데 그냥 돈 받고 팔아줘라.
-김선우 혼자 무림을 농락하는 중 ㅋㅋㅋㅋ
인피니티 로드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본 선우는 다음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
“무슨 계획이냐?”
코딱충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채 물었다.
불나방은 기간트 소드를 베고 누워 있었다.
왕소륜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넋이 빠져 있었고 오초백은 어디서 돈을 받았는지 주머니에 돈을 꺼내 세고 있었다.
그야말로 오합지졸 분위기.
하지만 선우는 이걸로도 얼마든지 무림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나는 8대 정파의 내전을 일으킬 생각이다.”
“내전?”
코딱충과 불나방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왕소륜이 물었다.
“내전을 어떻게 일으킬 건데?”
선우는 8대 정파를 통째로 뒤흔들어버릴 생각이었다.
“초백이 너 내가 시킨 거 알아왔냐?”
“응? 아, 그렇지. 내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이미 무당파 쪽에 소림이 세작을 심어둔 걸 확인했다.”
코딱충이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뭐라고? 세작?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소림이 왜 무당파 안에 세작을 심어놔? 걔들은 그 뭐지? 불교에서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나?”
왕소륜이 끼어들었다.
“여기 무림이야. 그딴 입에 발린 소리 따위는 꿈꾸면서 터지는 잠꼬대 수준이지. 현실에서는 그런 놈들이 더 더러운 법이야.”
오초백이 대답했다.
“소림은 오랫동안 무림맹의 수장 자리를 차지해왔어.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득을 얻고 있었지. 그런데 근래 들어서 무당파가 세력을 넓히면서 차기 무림맹주 자리를 노린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러면 소림에서 차기 맹주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미리 선수 친 거란 뜻인가?”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어.”
“그게 뭔데?”
오초백이 손가락으로 선우를 가리켰다.
“바로 김선우 너다.”
“나? 왜?”
“네가 스트리밍 방송에서 소림 어쩌고 들먹였잖아.”
“그랬지.”
“소림에서도 그 방송을 확인했고 무당파도 그걸 봤어. 그러면 어떻게 될까?”
“나야 모르지. 그건 그냥 실수였는데.”
“이젠 실수가 아니야. 무당파에서는 이미 소림이 심어둔 스파이 색출 작업에 들어갔어. 그리고 진짜 스파이들을 잡아냈다. 이제 소림은 입장이 난처하게 됐어.”
선우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 잘됐네. 난 그냥 방송하다 헛말 나온 건데 이런 행운을 몰고 올 줄이야.”
“너… 이게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그럼 아니냐?”
오초백이 외쳤다.
“바보 자식아! 소림에서 널 잡으려고 한다고! 이미 소림의 나한당주 묵지가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묵지? 그게 뭐냐? 사람 이름이냐?”
“나한당의 당주다. 소림 전투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이 나한당인데 여기 당주가 바로 묵지다.”
나한당주 묵지.
무림에서의 칭호는 백팔천곤(百八天棍) 묵지로 더 유명한 자였다.
소림의 곤법과 봉법 으로는 정파에서 당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최고수 반열에 오른 플레이어 중 하나.
오초백의 말에 왕소륜이 탄식을 흘렸다.
“젠장…. 그러면 나한당의 백팔 나한까지 마주치게 생겼네.”
하지만 선우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 나는 소림을 더 정신없게 만들어줘야겠군.”
“뭐?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선우가 다시 스트리밍 방송을 시작했다.
오초백을 비롯한 모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와중에 난데없는 방송이라니.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제가 신기한 속보를 가져왔으니 천천히 놀라면서 재미있게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