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제141화
선우 일행이 고개를 돌렸다.
대충 봐도 남루한 행색의 거지들이었다.
“야, 쟤들이다. 내가 말한 개방 길드원 들이야.”
왕소륜이 시선을 앞에 두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거렸다.
“와, 벌써 나타난 거야? 왜 이렇게 빨라?”
“말했잖아. 개방 놈들 정보 수집은 알아준다고.”
개방 길드원들이 선우에게 다가왔다.
“네가 김선우지? 아까 스트리밍 방송 하던 플레이어 맞지?”
“그런데?”
선우 앞에서 눈을 마주친 개방 길드원이 물었다.
“방송에서 떠들던 걸 좀 자세하게 말해줘야겠다.”
개방 길드에서는 선우가 던진 떡밥에 흥미를 보였다.
“그게 뭔데?”
“발뺌하지 마! 네가 그랬잖아. 8대 정파를 노리는 놈들이 있다고. 그게 누구냐?”
순간 선우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일단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금지. 가능한 돌려서 말해야지.’
선우가 대답했다.
“으음~ 맨입으로 알려줄 순 없지.”
개방 길드원들끼리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원하는 게 뭐냐?”
“너희들 방주와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를 해주겠다.”
“방주님하고?”
개방 플레이어들이 서로 은밀하게 속닥거렸다.
“좋아. 따라와라.”
선우 일행이 개방 길드원들을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 * *
허름한 폐허가 된 객잔 뒤에 넓은 벌판이 있었다.
벌판에는 군데군데 움막이 설치되어 있었고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올랐다.
개방 소속 플레이어들이 모여드는 아지트였다.
이곳에 개방의 방주이자 길드 마스터인 모인결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장부가 들려 있었고 한 장씩 무언가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방주님. 야견단 애들이 돌아왔습니다.”
“김선우한테 정보를 알아냈대?”
“그게… 김선우를 직접 데리고 왔는데요.”
“뭐?”
“여기로 데려올까요?”
“오라고 해.”
“예! 방주님.”
조금 뒤 선우 일행이 야견단의 개방 길드원들과 같이 나타났다.
“인사 드려라. 이 분이 바로 개방의 풍림야초(風霖野草) 모인결 방주님이시다.”
모인결은 슬쩍 선우가 서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어슬렁거리며 일어났다.
“네가 김선우로군. 이곳 쿤타 대륙에 들어와서 소란을 좀 피우더니만…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반갑다. 난 김선우다.”
“흑마천을 시원하게 잡아 족치던데. 보기보다 독특한 무공을 익혔나 보지?”
“궁금하냐?”
야견단원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선우를 노려봤다.
“이 자식이… 감히 대 개방의 방주님 앞에서 무슨 말버릇이냐? 겸손한 태도를 유지 안 하면 여기서 무사히 나갈 생각 안 하는 게 좋아.”
모인결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야견단원들을 만류했다.
“아~아~ 걱정 말고 놔둬. 그래도 이 정도 배짱은 있어야 이야기가 술술 잘 통하지 않겠어?”
야견단원들이 한 발 물러났다.
모인결은 허름한 탁자와 의자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일단 앉아 봐. 날 보자고 했다면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군.”
선우가 모인결과 마주 앉았다.
“8대 정파를 노리는 암살 음모가 궁금하다며?”
모인결이 시치미를 뚝 떼고 대답했다.
“누가 그래? 내가 궁금하다고 했던가?”
“시치미 떼지 마라. 네 똘마니들 나한테 보낸 걸 보면 궁금하니까 그랬을 거 아냐.”
“뭐? 똘마니?”
야견단원들이 다시 욕을 입에 담는 순간이었다.
“너희들은 조용해라.”
모인결이 팔짱을 끼고 말을 꺼내자 야견단원들이 입을 닫았다.
“미안하다. 얘네들은 정보 수집을 하러 돌아다니는 애들이라서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거든. 그러다 보니 니가 하는 방송이 궁금했던 거 같아.”
선우는 개방 야견단 소속 플레이어들을 힐끔거렸다.
‘거지들이 뻥도 잘 치는 군.’
모인결은 선우 앞에서 시치미를 떼고 뻥을 치고 있었다.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을 가장 먼저 본 것도 모인결.
방송을 오래 보면서 흑마천을 해치우는 것도 모인결 만큼 유심히 본 개방 길드원은 없었다.
게다가 흑두맹의 맹주 독고현이 선우에게 접근하는 것까지 알아낸 모인결 이었다.
그 말인 즉 선우와 독고현과의 관계가 무엇일지 궁금하다는 뜻.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김선우. 너 독고현과 무슨 사이냐?”
모인결은 초반부터 돌직구를 날렸다.
선우는 피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모종의 제안을 받은 사이라고 해두지.”
“제안?”
모인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제안이냐?”
“에이~ 그걸 어떻게 맨 입으로~”
듣고 있던 야견단원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 저 자식이 진짜 아까부터 계속 맨입 타령이야? 야 인마! 뭘 그렇게 밝혀? 우리보다 더 밝히는 놈은 처음 보네.”
“너희들 내가 시끄럽다고 했지?”
“죄송합니다. 방주님. 주의하겠습니다.”
야견단원은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물론 이 또한 의도된 것이었다.
모인결이 일일이 선우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순 없었다.
그는 명색이 8대 정파의 하나인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맹의 일원이었으니까.
반면 개방 소속 야견단의 플레이어들이라면 달랐다.
선우의 행동에 모인결 대신 불만을 제기하며 눈치를 주고 욕을 먹고 뒤로 빠진다.
모인결도 그걸 알고 있기에 자신의 부하들의 행동을 제지하는 선에서 선우에게 눈치를 줬다.
물론 선우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냐? 흑두맹의 맹주 독고현이 나한테 무슨 제안을 했을지.”
선우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웃고 있었다.
모인결이 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좋아,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속 시원하게 털어놔. 들어본 뒤에 가능한 것은 해결해주지.”
선우가 귀를 파던 손가락을 호~ 하고 불었다.
“나는 사실 흑두맹 으로부터 8대 정파의 장문인 중 누군가를 없애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뭐, 뭐라고?”
“이런 미친… 이 자식이 지금 무슨 황당한 소릴 지껄이는 거야?”
야견단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선우의 뒤에 있던 코딱충과 불나방, 왕소륜, 오초백 모두 송아지 눈망울처럼 눈을 뜨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 차린 코딱충이 선우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야!!! 미친놈아!!! 무슨 짓이야? 그걸 까발리면 어쩌자는 거야!! 일을 망칠 셈이야?!!
선우가 잽싸게 귓속말로 대답했다.
-시끄러.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잠자코 구경이나 하고 있어.
코딱충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이런 젠장. 여기는 개방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곳이잖아. 여기까지 와서 저딴 망발을 늘어놓을 줄이야.’
선우의 말에 모인결은 아까보다 훨씬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황하진 않고 있었다.
“흐음~ 8대 정파의 장문인 암살이라… 흥미롭군. 독고현이라면 그런 제안을 할 만하지.”
오히려 선우의 돌발 발언에도 능숙하게 흘려 넘기고 있었다.
“그러면 그 제안을 받았냐?”
묘한 긴장감이 선우와 모인결 사이를 맴돌았다.
야견단원들이 저마다 침을 꿀꺽 삼키고 무기에 손을 슬쩍 가져다댔다.
코딱충이 긴장한 눈빛으로 야견단원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선우는 모인결과 눈을 마주치며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바로 대답하면 안 된다. 좀 더 애가 타게 만들어야 돼.’
시간을 끌수록 모인결의 신중한 태도에 금이 갈 것이다.
모인결은 지금 궁금한 것이다.
8대 정파 장문인 암살.
그 타겟 중 하나가 자신일 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선우가 찾아온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선우를 공격해야 한다.
모인결의 표정은 냉정했지만 머릿속은 달랐다.
‘김선우 이 자식이 정말 날 죽이려 온 거라면 이렇게 순순히 들어올 리가 없어. 왜 이런 말을 내게 꺼낸 거지? 독고현의 제안을 받은 게 맞으면 방송에 떠든 대로 살수들처럼 움직였을 텐데.’
모인결은 선우가 스트리밍 방송에서 제3의 세력이 8대 정파 장문인들을 노린다고 한 걸 봤었다.
그리고 지금 선우의 발언을 통해 그 3의 세력이 선우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게 사실이면 무조건 숨겨야 할 텐데 자신에게 당당하게 털어놓았다는 것.
모인결의 머릿속을 뒤집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선우가 서서히 대답을 했다.
“그 제안을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즉답을 피하는 선우.
모인결이 저도 모르게 외쳤다.
“농담할 기분 아니다!! 제대로 대답을 해!!”
답을 하고도 아차 싶은 모인결 이었다.
‘젠장. 내 심기를 들켰어.’
선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인결아. 생각해 봐. 그 제안을 받았다면 내가 이렇게 널 찾아왔겠냐?”
“뭐?”
모인결은 선우의 말을 듣고 표정을 다듬었다.
아직 선우의 속내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
‘쳇, 김선우 자식.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모인결이 물었다.
“말을 확실하게 해라. 받았다는 거야? 안 받았다는 거야?”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말은 여차하면 8대 정파의 장문인을 치겠다는 거로군.”
“그 반대일 수도 있지.”
“반대?”
“나는 사실 흑두맹이건 무림맹이건 상관없거든. 둘 다 내 편도 아니니까.”
선우의 말에 모인결이 무언가 눈치 챘다.
“그렇다면 정파 연맹에서 무슨 제안을 원한다 이거냐?”
“들켰네.”
선우가 능글거리며 웃었다.
모인결이 코웃음을 쳤다.
“흥! 그런 제안 따위는 할 필요가 없지. 무림맹은 곧 흑두맹을 집어삼킬 테니까.”
선우와 모인결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런가?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정파 연맹은 흑두맹처럼 나한테 뭐 제안 같은 걸 하지 않겠다는 걸로 받아들일게.”
선우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모인결의 신호를 받은 개방 소속 플레이어들이 선우 일행을 포위했다.
“김선우. 넌 지금 호랑이 굴에 스스로 들어온 거다. 무슨 꿍꿍이를 꾸몄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잔머리를 너무 굴려서 미끄러진 것 같군. 이 자리에서 죽으면 네놈의 흑룡검과 흑룡패왕도는 내 것이 될 터. 잘 써주마.”
개방 길드원들이 무기를 꺼냈다.
“야, 김선우. 이걸 어떻게 수습할 거냐?”
선우가 슬슬 일어났다.
“개방은 패스.”
후우우웅-!
갑자기 선우의 손에서 검은 기운이 회오리쳤다.
흑천마공을 무기가 없을 때 쓸 수 있는 1성 스킬인 ‘흑풍회천(黑風回天)’ 이었다.
선우의 손바닥을 휘감으며 소용돌이치는 기운이 넘실거렸다.
“방주! 피하십시오!”
뒤쪽에 있던 야견단원들이 일제히 모인결 앞을 가로막았다.
“이야압!”
선우가 장풍을 내질렀다.
투-파앙!
손바닥에서 발사된 검은 회오리가 야견단원들을 덮쳤다.
쿠콰콰콰-
모인결이 빠르게 발을 놀려 옆으로 빠져나왔다.
야견단원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검은 회오리에 휩쓸려 날아갔다.
뒤쪽의 움막을 여러 곳 부숴버리며 야견단원들이 마구 흩날렸다.
“이 자식이….”
모인결이 허리에 찬 봉을 꺼냈다.
“뭣들 하고 있냐? 이 자식들을 다 죽여!”
플레이어들이 무기를 들고 선우 일행에게 돌격했다.
“으아아압!”
퍼퍼퍼퍽!!!
기합을 터뜨리며 코딱충이 반격에 나섰다.
불나방, 왕소륜, 오초백 모두 각개 전투에 돌입했다.
“젠장! 김선우 저 자식 무슨 계책이 있는 줄 알았더니 아무것도 없잖아!”
선우는 개방의 모인결을 떠봤던 것이었다.
어차피 처음 의도는 8대 정파의 장문인 암살. 그중에 개방을 골랐고 모인결을 처치하면 흑두맹의 2인자 자리가 들어온다.
독고현의 제안을 받고도 선우는 정파 연맹의 속내를 알고 싶었다.
밑져야 본전.
만약 선우가 밑밥을 던지며 독고현의 제안에 대해 스스럼없이 털어놓았을 때 모인결이 역으로 무언가 제안을 해왔더라면?
선우는 좀 더 저울질을 했을 것이다.
어쩌면 개방과 손잡고 흑두맹을 털어먹거나 무림맹의 위치를 바꿔놓는 작업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흑두맹 2인자 자리 받아내고 다시 머릴 굴려야지.’
선우와 마주선 모인결이 봉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 물고 다니는 개는 몽둥이가 보약이지. 각오는 됐냐?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