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제135화
왕소륜은 선우의 말에 조금 감정이 풀렸다.
선우의 흑천마공 1성 스킬인 흑사초격의 위력을 직접 봤으니까.
거대한 절벽의 반 이상을 흙먼지로 만들어버리는 절대마공!
사기 수준의 위력을 지녔으니 흑룡당 길드조차 보는 순간 질겁할 것이다.
“그러면 흑룡당으로 지금 쳐들어갈 거냐?”
왕소륜의 얼굴에 기대감이 스쳤다.
“물론이지. 흑마천 어디 있는지나 알려줘.”
선우의 말에 왕소륜이 기다렸단 듯이 쫑알쫑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 *
흑마천은 왕소륜의 문파 소룡문의 영역을 모두 흑룡당의 영역으로 바꿔 놓았다.
곳곳에 흑룡의 상징이 새겨진 건축물들로 가득 찼다.
흑룡당 길드에는 자금이 많았고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영역 확장이 가능했다.
흑마천은 새로 확장한 소룡문의 영역에 자신의 흑룡당 건축물을 바라보며 감탄에 젖었다.
“크하하. 이걸 보라고. 역시 이 맛에 문파 전쟁을 벌이는 거지.”
남의 문파 영역을 싹 밀어버리고 자신의 문파 상징으로 가득 채우는 것에 흑마천은 쾌감을 느꼈다.
흑마천이 들떠있는 와중에 흑룡당 길드원이 다가왔다.
“길드장. 흑두맹주 독고현 님께서 오셨습니다.”
흑마천의 뒤로 한 무리의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모두 사파 소속의 플레이어들.
그중 가장 앞장선 유저가 흑마천에게 다가왔다.
맹주의 위엄에 걸맞다기보다는 상당히 거칠고 투박한 차림새.
짧은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뺨 근처까지 났고 눈 사이로 흉터가 갈라진 사내였다.
흑두맹의 맹주이자 적룡문의 대문주를 맡고 있는 독고현이라는 플레이어였다.
“여~ 독고현. 어쩐 일이냐? 여기까지 행차를 다 하시고.”
“이야기 들었다. 소룡문을 밀었다며?”
“아, 뭐 그냥 별거 아냐. 내 동생이 좀 당한 게 있어서.”
흑마천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왕소륜은 어디로 갔지?”
“왜? 그 놈이 걱정 되냐?”
“한때는 소림을 타도하기 위해 흑두맹과 돈독한 관계를 지녔던 놈이잖아. 그런 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건 실수다.”
독고현의 말에 흑마천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던 흑마천이 대뜸 입을 열었다.
“이봐, 독고현. 주제넘은 충고나 하러 온 거면 왔던 길로 돌아가서 니네 애들 붙잡고 떠들어라. 나는 할 일이 아주 많은 놈이거든.”
“흑마천. 너희 길드의 세력이 확장되는 건 사파 연맹의 맹주로서 반길 일이다만 너무 과격하게 행동하고 있는 건 사파 내부의 반감을 사게 된다는 걸 명심해.”
흑마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감? 감히 누가 나 흑룡당주에게 반감을 갖는다는 거냐? 말해봐. 누가 또 너한테 찾아가서 징징거렸냐? 내가 항상 말하잖아. 같은 편이라고 애들 봐주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라고.”
흑마천의 말투에 독고현의 눈빛이 번뜩였다.
“말조심해라.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지만 지금 여기서 나는 흑두맹의 맹주다. 너 또한 흑두맹 소속으로 지킬 건 지켜야 하지 않겠어?”
독고현 뒤를 지키고 있던 무림인들의 눈빛에 살기가 스쳤다.
흑마천 곁을 지키는 흑룡당원들과 눈싸움을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생겼다.
“아~ 그래. 내가 실언을 했군. 미안하다. 사과하지.”
흑마천은 말로는 사과한다고 했지만 행동은 전혀 아니었다.
마치 사과 던져줄 테니 받을 거면 받으란 식.
참다못한 독고현의 측근들이 반발했다.
“흑룡당주님. 맹주님 앞에서는 조금 더 예의를 갖춰주십시오.”
“어이고~ 거긴 누구신데 맹주 뒤에 숨어서 떠드세요?”
흑마천이 슬슬 양아치스러운 말투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흑두맹의 맹주를 앞에 두고도 도발적인 행동.
스르릉-!
“이 자식이 진짜 봐줬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독고현의 무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스릉! 스릉!
“어이, 진정해라. 너희들은 지금 흑룡당에 와 있는 거라고.”
흑마천의 무사들도 칼을 뽑고 대치했다.
독고현은 묵묵히 흑마천을 노려봤다.
반면 흑마천은 능글맞은 웃음을 눈가에 띄고 있었다.
“흑마천… 가서 왕소륜에게 동생 일에 대해 너무 과하게 보복했다고 사과해라. 그리고 나한테 데려와.”
“뭐라고? 내가 왜?”
“최근 들어 소림 쪽에서 소룡문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왕소륜에게 여러 번 접근한 적이 있었다는 정보가 있었다. 틀림없이 사파 세력들의 정보를 빼기 위해서겠지. 무슨 딜을 했을지는 몰라도 같은 사파에게 문파 영역이 박살났으면 왕소륜이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어.”
“흥, 그러니까 그깟 놈이 우릴 배신하고 정파 노리개를 자처할까봐 무섭다는 거냐?”
독고현이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길드장! 왕소륜이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흑마천과 독고현이 서로 말없이 쳐다봤다.
“들었지? 제 발로 찾아왔네.”
독고현은 흑마천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왕소륜은 어디에 있나?”
“저쪽입니다. 맹주님.”
발길을 재촉한 독고현의 눈앞에 왕소륜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흑룡검을 어깨에 걸쳐 메고 있는 선우가 있었다.
“저놈은 김선우?”
“왕소륜하고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맹주님.”
독고현은 선우가 왕소륜과 같이 있는 것이 꺼림칙했다.
‘김선우가 왕소륜과 손을 잡았다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일단 표정 관리를 하고 다가가는 독고현.
왕소륜은 선우를 믿고 당당하게 서 있었다.
“야, 쟤는 뭐냐?”
선우가 독고현에 대해 물었다.
왕소륜이 대답했다.
“흑두맹의 맹주 독고현이다. 적룡문의 대문주이기도 하지.”
“그러면 사파 연맹의 보스인가?”
“그렇지.”
독고현이 왕소륜에게 다가오더니 말문을 열었다.
“왕소륜. 소룡문 사건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맹주님께서 걱정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흑마천에게는 알아듣게 잘 이야기 할 테니 둘이 좋게 풀어보는 게 어떤가?”
왕소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좋게 풀어보라고?
이미 끝까지 다 갔는데 뭘 좋게 풀어?
“죄송하지만 맹주님. 그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게 풀기에는 이미 타이밍이 늦었거든요.”
“흑마천의 성격이 다혈질이고 급하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내가 맹주 자리에 오르기 이전부터 놈은 내 친구였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사파 연맹의 핵심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관대한 면도 보이고 있는 걸 너도 이해하잖아.”
독고현의 말에 왕소륜이 다소 감정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아, 물론 맹주님께서는 이해하시겠죠. 절친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흑마천 놈과 친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독고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러면 어떻게 할 셈이지? 흑마천에게 앙갚음을 하겠다는 건가?”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쿤타 무림 세계에서는 당한 게 있으면 갚아주는 건 기본입니다.”
독고현이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도 흑마천도 사파 연맹인 흑두맹의 일원이다. 정파 놈들의 움직임이 최근 들어 심상치 않다는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이런 와중에 같은 편끼리 서로 금이 가버리면 더 큰 걸 놓치게 될 거다.”
선우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카하하!”
독고현이 선우에게 물었다.
“네가 김선우로군. 왜 웃지? 나는 누굴 웃기려고 말하지 않았는데.”
“아, 미안. 계속 해. 갑자기 웃겨서 웃은 거니까 신경 끄고.”
독고현이 싸늘한 눈빛을 선우에게 뿌렸다.
선우는 히죽거리면서 독고현의 눈빛을 받아넘겼다.
‘김선우… 지금껏 저놈에 대해 파악한 정보에 따르면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되는 놈이다.’
왕소륜이 선우의 흑천마공을 믿고 독고현을 상대로 배짱을 부렸다.
“미안하지만 맹주님. 흑마천에겐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어 찾아온 것이니 좀 빠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왕소륜이 독고현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무시하고 그를 지나쳐갔다.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도 따라갔다.
“야! 흑마천!! 어디 있냐!! 나와!!”
왕소륜이 흑룡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를 질러댔다.
선우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지 확실하게 체크하면서.
“어이고~ 이게 누구신가? 몰락한 소룡문의 문주 왕소륜 아니신가?”
흑마천이 새로 지은 흑룡당 건물 3층 난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흑패가 서 있었다.
“어? 형! 저 자식이야. 저놈이 내 흑룡검을 가져갔다고!”
“시끄러. 흑룡검 빼앗기고 온 게 뭐 자랑이야? 그리고 흑룡검은 내 거지 어떻게 네 거야?”
흑패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왕소륜이 흑마천을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릴 질러댔다.
“짜샤!! 넌 오늘 죽은 목숨이야! 같은 사파끼리 내가 자릴 비운 사이 빈집털이를 해? 그러고도 네가 사파냐?”
“당연히 사파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 그러니까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라고. 왕소륜 네가 멍청해서 당한 걸 왜 여기 와서 화풀이냐?”
흑마천 곁에 있던 무사들이 킬킬거리며 웃음을 뱉었다.
“흑룡당 너희들 오늘 다 죽었어!”
왕소륜이 큰 소리를 치자 흑마천이 비아냥거렸다.
“네가 나를? 하하. 어떻게 죽일 건지 한번 들어나 볼까?”
흑마천이 비웃자 선우가 나섰다.
“야, 네가 마천이냐?”
“마, 마천이?”
선우가 흑룡검을 어깨에 걸쳐 메고 말문을 열었다.
“네가 소륜이네 길드를 건드려서 박살냈다며? 아무리 사파라지만 왜 그렇게 양아치 짓을 하고 그러냐?”
“하하하! 어이, 김선우. 내가 너에 대해 모를 줄 아냐? 여기 쿤타 무림까지 네놈이 무슨 짓을 하면서 들어왔는지 나도 볼 만큼은 다 봤어. 솔직히 너라면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흑마천이 자세를 고쳐 잡고 선우를 노려봤다.
“그리고 네놈이 갖고 있는 그 흑룡검은 내 아이템이야. 잔말 말고 이쪽으로 던지고 패배자 데리고 꺼져라. 그러면 손 안 대마.”
흑마천 손가락으로 왕소륜을 가리켰다.
“뭐? 패배자? 저걸 확!”
“야, 소륜아. 참아. 내가 처리할 테니까.”
선우가 흑룡검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마천아~ 이거 갖고 싶냐? 와서 가져가.”
“흥, 역시 김선우 네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말로 곱게 해서는 들어먹는 놈이 아니지. 얘들아~ 저놈한테서 내 흑룡검을 가져와라.”
“예!!”
흑룡당 건물 1층에 몰려있던 흑룡당 길드원들이 순식간에 선우 일행을 포위했다.
각자 칼을 빼어들자 코딱충과 불나방도 전투태세를 취했다.
“모두들 진정해라. 나 혼자 할 테니까.”
선우가 흑룡검을 들고 서 있자 흑룡당 길드원들이 다가왔다.
“야, 김선우. 개폼 잡지 말고 빨리 그거 이리 내. 우리 길드 마스터 아이템을 겁도 없이 지금까지 들고 다니다니. 너도 진짜 운이 좋다. 응?”
“어이, 얌전하게 흑룡검을 넘겨주면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우리 길드장이 보기와 달리 관대한 성격이거든.”
선우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흑룡당 길드원 두 명이 마주섰다.
어깨에 걸쳐진 흑룡검 쪽으로 길드원 한 명의 손이 다가가는 순간.
뻐-어억!!!
선우가 길드원의 복부를 정면에서 발로 차버렸다.
흑천마공의 내력이 가득 담겨 있는 발차기였다.
선우의 발에 맞는 순간 길드원의 몸이 90도로 접혀서 두 발이 바닥에서 떠버렸다.
“끄…으….”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선우의 발에 맞은 길드원이 대포알처럼 날아갔다.
쐐애액-!
콰콰쾅!!!
흑마천이 앉아있던 흑룡당 건물 1층 안으로 길드원이 날아가더니 폭탄 터진 것처럼 건물이 흔들거렸다.
“뭐…뭐야?”
흑룡당 길드원들이 모두 놀란 눈으로 선우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