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제127화
오초백과 선우는 서로 무언가를 열심히 쑥덕거렸다.
“좋아,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너 정말로 나를 사파 연맹의 거두로 만들어 줄 수 있냐? 니 말 책임질 수 있어?”
“물론이지. 무림맹 간판 떼버리고 니가 거기에 사파연맹이라고 새로 간판 달면 되잖아.”
“이 자식이. 장난 하냐? 난 농담하는 거 아니라고.”
“나도 농담 아니다. 초백아. 일단 정파 놈들을 싸움 붙여야 되잖아. 그러려면 내가 걔들한테 가서 시비를 털 거니까 니가 뒤통수를 치라고.”
“뭐? 정파 애들한테 시비를 건다고?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넌 지금 저지른 것만으로도 무림 척결 대상 1호야. 1호.”
선우는 오초백의 말을 무시하고 코딱충과 불나방을 불렀다.
“야, 소륜이는 어떻게 하고 있냐?”
“일단 말 잘 듣게 절여놨다.”
“수고했다. 내가 초백이랑 말을 해 놨으니까 너희들은 초백이한테 설명 좀 들어라.”
선우가 왕소륜이 있는 곳으로 갔다.
왕소륜은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앉아 있었다.
“이여~ 소륜이. 되게 착해 보인다.”
선우가 와서 빈정거렸다.
왕소륜이 욕을 퍼부었다.
“이 X새끼야! 넌 뒈졌어! 내가 가만 있을 거 같냐?”
“으음, 가만 안 있으면 어쩔 건데?”
퍽!
“크억.”
선우가 발로 왕소륜의 명치를 걷어찼다.
왕소륜은 반항하지 못했다.
왜냐면 코딱충에게 혈도를 찍혀 몸이 굳어 있었으니까.
제한 시간은 3분.
그 전까지는 왕소륜은 무슨 꼴을 당해도 손가락 하나 꼼짝 하질 못한다.
“딱충이가 어디 가서 재미있는 걸 많이 배워왔더라고.”
“꺼져, 등신아. 퉷!”
왕소륜이 핏물을 뱉었다.
선우가 갑자기 왕소륜의 소매를 북북 찢었다.
“뭐, 뭐하는 거냐?”
“피 닦아줄라고.”
“야… 이 양아치 새끼야! 우웁! 웁!”
선우는 왕소륜의 옷자락으로 피로 얼룩진 얼굴을 마구 닦아댔다.
옷 조각이 피로 흥건했다.
“그러니 순순히 내 말을 듣고 호의적으로 나오면 좀 좋냐? 소륜아.”
“야, 네가 먼저 룰을 어기고 방송에서 입 털었잖아! 그딴 식으로 입 털면 새꺄! 개나 소나 우리가 한 걸 뻔히 다 알지. 넌 지금 우릴 사지로 내몬 거라고.”
“알아, 알아. 그러니 걱정 말라고. 내가 그냥 너희들을 사지로 내몰았을까?”
“뭔 소리냐?”
왕소륜의 한쪽 코에서 피가 한 방울 주르륵 흘렀다.
부욱-
찌지직.
“야! 미친놈아! 그만 찢어! 찢을 거면 네 옷을 찢을 것이지. 왜 내 옷을 찢고 지랄이야. 너 때문에 의복템 망가져서 다시 사야 되잖아!!”
선우는 왕소륜의 반대편 소매를 찢어서 코피를 닦아줬다.
왕소륜은 자포자기한 표정을 지었다.
“자, 물약 따라줄게. 아~ 해봐.”
굴욕이다.
소룡문의 대문주 왕소륜.
선우를 패려고 찾아왔다가 생각해본 적 없는 쪽팔림을 경험 중이었다.
“내가 애새끼냐!!! 우붑, 우푸풉!”
“딱충이한테 혈도 찍혀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허세는. 아~ 해 인마.”
“어풉! 어풉!”
물약이 왕소륜의 얼굴을 덮쳤다.
눈, 코, 입으로 막 흘러들어가는 물약.
“콜록! 콜록!”
선우는 계속 물약을 들이부었다.
왕소륜이 코딱충과 불나방에게 쥐어터진 상처들이 모두 회복되었다.
“오초백은 이미 나와 손잡았다.”
“뭐어?! 이런 근본도 없는 산도적 새끼들.”
“넌 어떻게 할 거냐? 소림에게 복수하고 당당한 사파 연맹의 일원으로 올라서고 싶지 않아?”
“사파 연맹? 그건 또 무슨 참신한 헛소리냐? 니가 지어냈냐?”
“응.”
“하아~ 김선우. 무림의 룰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진 않….”
“그딴 거 알게 뭐냐? 어차피 센 놈이 짱이야. 내가 다 패버리면 결국 무림의 룰은 내 위주로 돌아간다.”
선우의 말에 왕소륜이 반박하지 못했다.
틀린 말은 아니거든.
“무, 물론 그렇긴 하지. 무식한 놈아. 그렇지만 무림맹은 쿤타 무림의 상징과 같은 조직이라고. 그걸 네 멋대로 간판 떼어내고 새 간판 끼워붙이면 그게 무림이냐! 막장이지!”
“어차피 너네 무림 세계도 막장 세계 아니냐? 너무 그렇게 지고지순한 척 하지 마라. 짜증난다.”
선우의 말에 왕소륜이 발끈했다.
“닥쳐 인마!”
“소륜아.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지금 당장 소림 애들한테 니가 꾸미던 계획 다 알려준다?”
“뭐? 이 새끼가 진짜. 치졸하게 그딴 양아치 짓거리 하지 마라. 사파 놈들도 그런 짓은 안 해!”
“사파는 안 하지만 나는 한다. 지금 할까?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시청자님들 잘 들리십니까?”
“야! 야! 스톱!”
선우가 스트리밍 방송을 키려는 순간.
왕소륜의 혈도가 풀렸다.
그리고 선우의 입을 틀어막았다.
“뭘 원하는 거냐?”
선우가 왕소륜의 손바닥을 떼어냈다.
“내가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다 할 자신 있냐?”
왕소륜은 약간 불안했다.
선우의 행동으로 보아 평범한 놈이 아닌 것 확실.
게다가 예측 불허한 행동은 모두를 당황케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걱정 마라.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들만 시킬 거니까.”
“좋아. 일단 들어보지. 네 계획이 뭐냐?”
“뭐, 나야 무림을 제패하고 정파, 사파를 막론한 무림의 지존이 되는 것이지.”
“아니, 네 것 말고. 나와 오초백을 포섭해서 벌이려는 계획이 뭐냐고!”
“그건 곧 알게 될 거다.”
선우가 씨익 웃으면서 왕소륜의 어깨를 툭툭 쳤다.
“초백이한테 이야기 듣고 대기하고 있어.”
얼떨결에 선우의 명을 따르게 된 왕소륜.
“응?”
왕소륜이 갑자기 어딘가를 주시했다.
“왜 그러냐?”
“누구냐? 나와라. 거기서 쥐새끼처럼 염탐하지 말고.”
선우가 왕소륜이 노려보는 곳을 쳐다봤다.
“큭큭, 실컷 터지길래 감각이 떨어진 줄 알았는데 아주 떨어진 건 아니구나.”
검은 복장의 무림인 둘이 수풀 속에서 나왔다.
“뭐냐? 쟤들은.”
“흑룡당원들이다.”
“오, 흑룡당.”
“오가 아니야. 인마. 저것들이 여기에 왔다는 건 우릴 죽이러 왔다는 뜻이라고.”
“어이, 왕소륜. 그동안 당주님께서 봐줬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렇게 뒷구멍으로 뒤통수를 치냐?”
“한 놈은 어디 갔냐? 오초백 나오라고 해.”
흑룡당 길드원들은 모두 두 명이었다.
“뒤통수를 치긴 누가 쳤다고 해? 무림 일이 다 그렇게 흘러가는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하지. 뒤통수를 쳤으면 뒷감당도 해야 하는 것도 무림 일이라는 건 모를 리 없겠지?”
왕소륜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흑룡당 길드원들은 간부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검을 빼들었다.
왕소륜이 비웃었다.
“고작 그런 검 쪼가리로 2명이서 날 잡으러 온 거냐? 감 떨어진 건 흑룡당 같은데.”
흑룡당 간부가 피식 하고 웃음을 뱉었다.
“왕소륜.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나 좀 해라. 너희들을 제거하라고 당주가 우릴 보냈다면 뭘 쥐어줬겠냐?”
갑자기 왕소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칼 혹시… 흑룡검이냐?”
“후후, 흑룡당주가 우리 형이란 걸 잊어먹었냐?”
흑룡당 간부는 흑룡검을 자신의 친형에게 빌려온 것이다.
선우가 옆에서 왕소륜에게 물었다.
“야, 흑룡검은 뭐냐? 좀 고급져 보이는데.”
“흑룡당주가 아끼는 레어템이다. 당주 놈이 갖고 있는 흑룡패왕도에 비하면 약하지만 그래도 흑룡검 하면 무림에서 알아주지.”
“오~ 그런 검이었어?”
선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럼 쟤는 누군데? 흑룡당주 동생이라서 한 자리 해먹는 거냐?”
“저놈은 흑패 라는 닉네임 쓰는 놈이지. 흑룡당주 믿고 설치고 다니는 양아치다.”
“잘 됐군.”
“잘 되기는 뭐가 잘 되? 흑패 놈 얼마나 양아치인지 겪어는 봤냐?”
“시끄럽고 소륜이 넌 흑패 부하를 맡아라.”
흑패가 흑룡검을 자랑하듯 보여주면서 말문을 열었다.
“야, 네가 김선우냐?”
“그런데?”
“나랑 같이 흑룡당으로 가자. 널 보자는 분이 계신다.”
“누군데?”
“흑룡당주이자 나의 형인 흑마천 님이지.”
“그렇군. 그럼 네가 동생이랬지?”
“케헴.”
흑패가 우쭐거리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가서 마천이한테 전해라. 나한테 할 말 있으면 동생 보내지 말고 네가 직접 오라고.”
“뭐, 뭐? 마천이?”
흑패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야, 김선우. 죽고 싶냐? 너 이 검이 뭔지는 알기나 하냐? 흑룡검이야 흑룡검.”
모를 리가 있냐?
레어 아이템이라고 방금 왕소륜한테 들은 선우였다.
선우의 시선이 흑룡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럼, 알고말고. 그러니까 마천이한테 가서 알려주라고. 나랑 대화하고 싶으면 니 발로 찾아오라고.”
흑패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새끼! 죽여버린다!”
파앗-!
흑룡검을 들고 흑패가 돌격했다.
“흐, 흑패 도련님!”
곁에 있던 흑룡당 간부 플레이어가 말릴 틈도 없는 사이.
선우의 목을 향해 흑패의 흑룡검이 쇄도했다.
쇄애액.
“뒈져버려!”
스우웅!
선우가 허리를 낮추며 흑룡검의 궤도에서 벗어났다.
왕소륜이 움직였다.
“어딜!”
쇄애앵!
흑패를 호위하는 플레이어가 왕소륜을 공격했다.
왕소륜이 호위 길드원과 맞붙는 사이.
파콰쾅!!
선우의 플레임 블레이드가 흑패의 흑룡검과 충돌했다.
투카앙-!
“오~! 신기하네.”
흑룡검은 일반 검과 조금 다른 차이가 있었다.
검신이 흑룡의 비늘처럼 까끌까끌하게 돌기로 덮여 있었다.
평소엔 납작하게 붙어 있지만 전투 시 역방향으로 날카롭게 섰다.
아무리 강한 충격을 받아도 검신은 휘어지지도 않고 상대의 공격을 역으로 튕겨 내버렸다.
“이야압!”
파캉!
선우의 플레임 블레이드가 흑룡검에 닿을 때마다 더 큰 힘으로 튕겨져 나갔다.
흑패가 킬킬거리면서 물었다.
“야, 김선우. 네가 갖고 다니는 칼 갖고는 이 흑룡검의 상대가 안 돼.”
“음, 저 칼 좋아 보이는데.”
선우의 시선이 흑룡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정도로 좋아 보이는 아이템이다.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지.’
선우가 귓속말로 코딱충을 불렀다.
흑패는 자신의 흑룡검에 의해 선우가 계속 뒤로 튕겨나가자 더욱 오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파하하하!! 어떠냐! 김선우. 이게 바로 흑룡검이다. 니가 날 공격하면 할수록 더 강한 힘으로 튕겨낸다고.”
“야. 그 칼 나한테 줘라. 네가 들고 다니기엔 과분한 칼이야.”
“풉, 이 새끼가 충격 먹었나 왜 이런 헛소리를 뻔뻔하게 늘어 놓냐? 네가 달라고 하면 내가 어이구~ 여기 있으니 가져가십시오~ 하고 내놔야 하냐?”
“그러면 내가 뺏어버린다?”
“하하하! 능력 되면 해보시던가? 어떻게 할 거냐?”
“끄아악!”
철퍼덕!
갑자기 공중에서 흑룡당 플레이어가 떨어졌다.
선우와 흑패가 동시에 같은 곳을 쳐다봤다.
“휴우~ 이제 해치웠네. 흑룡당 간부 놈 아니랄까봐 끈질기군.”
왕소륜이 마침내 흑패의 호위 길드원을 해치워버렸다.
길드원의 캐릭터가 사라지고 있었다.
“흑패 도련님. 일단 피하십시오. 다른 놈들이 여기로 오고 있습니다.”
“웃기지 마라! 흑룡당은 도망치는 것 따윈 없어.”
선우가 이 둘의 대화를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음, 흑룡당 모토가 도망치는 걸 싫어하나보군. 그렇다면…?’
호위 길드원이 캐릭터가 사라지기 직전 외쳤다.
“도련님이 들고 계신 검은 당주님의 애검입니다! 도련님 것이 아니란 걸 잊지 마십….”
캐릭터가 완전히 사라지고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마지막 말에 흑패의 눈빛이 흔들렸다.
선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들었지? 빨리 튀어라. 난 흑룡당주의 동생인 네가 튀는 거 영상 찍어서 돈 좀 벌라니까.”
“뭐, 뭐?”
“튀라니까~”
선우가 손짓을 하면서 도발했다.
흑패가 발끈했다.
“닥쳐! 흑룡당 길드는 어떤 누구를 만나도 쪽팔리게 튀지는 않아. 아이템 떨어뜨려도 다시 찾아가서 뺏어오면 그만이다.”
선우가 속으로 웃었다.
‘멍청한 놈이네. 일단 자존심 긁었으니 튀진 않을 거고…. 저 검이나 뺏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