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제124화
“무슨 일이냐?”
서천휘가 물으려던 찰나.
“크악!”
“기습이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응? 이게 뭔 소리냐?”
“웬 살수들이 들어왔습니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빨리 가서 놈들을 잡아와!”
소룡문과 초백산장은 살수들을 뽑아서 복면을 하고 맹호문을 급습하였다.
쉬각!
퍼퍽! 퍽!
초백산장의 살수들이 암기를 쓰면서 맹호문의 길드원들을 처치했다.
소룡문의 살수들은 짧은 단검과 권각술로 맹호문을 몰아세웠다.
“와, 저렇게 무식하게 나갈 줄 몰랐는데.”
멀찌감치 떨어져서 맹호문 안에 숨어든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이었다.
“야, 김선우. 이렇게 구경만 해도 되는 거냐?”
코딱충은 주먹이 근질거렸다.
당장 배워둔 화독권을 써먹고 싶었다.
“진정해라. 딱충아. 우리가 나설 타이밍은 아직 아니니까.”
선우는 이리저리 눈치를 빠르게 살폈다.
초백산장과 소룡문은 눈만 내놓고 복면을 쓴 채 거침없이 맹호문을 헤집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맹호문의 대문주 서천휘와 소문주 서천호가 나타났다.
“이 건방진 새끼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딴 깽판을 쳐? 어디서 보낸 놈들이냐? 어차피 다 들통 나게 되어 있으니 숨길 생각 따윈 안 하는 게 좋다.”
살수들은 모두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속전속결로 공격을 퍼부었다.
“대문주! 뒤에서도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문파 전체가 모두 포위되었습니다!”
멀찍이 숨어서 싸움 구경 중인 선우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야, 뭔가 느낌이 쎄한데. 쟤들 진짜 초백산장과 소룡문 맞냐?”
코딱충이 묵묵히 지켜보더니 대답했다.
“문파 놈들은 아니야. 저놈들은 초백산장과 소룡문의 의뢰를 받은 살수들이다.”
“살수들이라고? 그럼 쟤들도 길드원 들이냐?”
“길드는 맞는데, 초백산장과 소룡문과 다른 길드야. 살수들로 조직된 길드지. 저놈들은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돈 되는 의뢰라면 닥치는 대로 받는다고.”
쿤타 무림 세계에는 살수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암살자 클래스에서 살수로 전직하면 특화된 무공과 스킬을 쓸 수 있었다.
이들은 살수끼리 조직하여 정파와 사파의 의뢰를 받으면서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
“저놈들 실력 보니까 돈 좀 들였네. 초백산장 놈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 거야.”
소룡문과 초백산장은 선우에게 찻잎을 받은 뒤에도 직접 움직이진 않았다.
면전에 대고 당장이라도 쳐 들어가 찢어 죽일 것처럼 날뛸 땐 언제고 입 싹 닦은 것이었다.
“야, 김선우. 너 한 방 먹은 거다. 소룡문이랑 초백산장이 맹호문과 사이가 안 좋아도 처음 본 놈 말만 믿고 섣불리 움직일 애들은 아니라고.”
“내가 준 찻잎만 받고 입 닦았다 이거군. 야, 일단 나가자.”
“뭐? 여기서 할 게 있다면서.”
“계획이 바뀌었다.”
선우가 코딱충과 불나방을 데리고 자리를 떴다.
* * *
소룡문의 대문주 왕소륜과 초백산장의 오초백이 만나 모의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됐냐?”
“A급 살수들로 돈 좀 풀었다. 적어도 서천휘 놈 자존심은 확 구겨버릴 순 있을 거야.”
“이제 남은 건 무림에 소문이 퍼지길 기다려야지.”
“맞아. 우리가 기다리는 건 맹호문이 문파의 독공을 유지시킬 수 있는 찻잎들을 모두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다.”
이들은 선우에게 찻잎을 받아먹고 난 뒤에 다르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직접 맹호문을 치기엔 위험 부담이 있었다.
맹호문은 흑룡당과 손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치는 순간 흑룡당과 상대해야 한다.
흑룡당은 사파 안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길드였으니 부담이 된 것이다.
“그 김선우란 놈이 멍청하게도 찻잎을 가져다 줬으니 이런 기회가 생겼어. 하하!”
“그런데 그놈은 어디서 뭐하던 놈이래?”
“몰라. 알게 뭐냐? 우리야 그저 꿩 먹고 알 주워 먹으면 그만인 것을.”
왕소륜이 켈켈 거렸다.
“하긴 그렇지. 푸하하! 멍청한 놈. 쿤타 대륙에 처음 들어온 애송이 티를 팍팍 내더라니.”
“일단 사독문 놈들이 쓸 만한 살수들을 보내줬으니 구경이나 하자고.”
“그건 그렇고 맹호문의 찻잎을 어쩔 셈이냐? 어차피 너나 나나 문파의 무공이 독공은 아니잖아.”
“다른 놈들과 거래를 할 때 써먹어야지. 맹호문의 찻잎은 8대 정파에서도 꽤 관심 갖는 놈들이 많거든.”
“흥, 정파 놈들 꼴에 점잖은 척 다 하면서 뒤로는 독공에 관심이나 갖고. 하여튼 겉과 속이 다른 놈들은 다 정파 길드라니까.”
“누가 아니래? 그러면서 사파가 어쩌고 마교가 어쩌고 한심한 놈들이지.”
끼이익.
“누구냐?”
“대문주님. 잠깐 이걸 좀 보셔야겠습니다.”
“뭔데?”
“어떤 놈이 지금 맹호문을 기습한 살수들을 촬영해놓고 스트리밍 방송 중인데요.”
“뭐라고? 누군데? 보여줘 봐.”
“어떤 미친놈이 찍을 게 없어서 그걸 찍고 자빠졌냐? 푸하하.”
오초백은 다과를 씹어 먹으면서 깔깔거렸다.
“이거… 김선우 그놈 아니야?”
“푸훕! 켁! 콜록콜록… 야… 물, 물!”
오초백은 다과를 먹다 사례가 들렸다.
간신히 물을 들이켜고 나서 물었다.
“뭐? 누구라고?”
“이거 봐. 이 새끼 김선우 맞지?”
“아니, 이 자식이 지금 뭐하는 거야?”
오초백과 왕소륜은 자신의 눈앞에서 떠들고 있는 선우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우는 한참 전투가 벌어지는 맹호문을 촬영하면서 시청자들과 떠드는 중이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저 살수들을 누가 보낸 것인지 아십니까?”
-몰라요.
-누구임?
-쟤들 맹호문 아닌가?
-맹호문이네. 근데 쟤들은 뭔데 맹호문 안방에서 싸움을 ㄷㄷㄷㄷㄷ
-살수들을 누가 보냈네. 근데 어떤 겁대가리 없는 놈이 다짜고짜 맹호문에 ㄷㄷㄷ
-누군지 몰라도 초상 치를 준비 해야겠네.
-맹호문이면 흑룡당하고 편먹은 애들이잖아? 흑룡당 애들 이거 보면 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선우가 보여주는 방송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물론 오초백과 왕소륜의 반응은 달랐지만.
“이런 망할! 이 새끼 미쳤나!”
“아니야. 기다려봐. 아직 저놈이 아무 말도 안 했잖아. 그냥 싸움 벌어졌으니 구경하는 걸로 돈 좀 벌려나 보지.”
오초백이 왕소륜을 진정시켰다.
“아, 그런가?”
둘은 선우의 방송을 예의주시했다.
혹시나 무슨 말이 나올지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봤다.
“시청자님들. 이쯤 되면 궁금하시죠? 저 살수들은 누가 보냈을까~요?”
선우의 말에 왕소륜과 오초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 미친 놈.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야! 야! 그 입 다물어. 앙?”
다물라고 다물 선우냐?
“여러분들. 놀라지 마십시오. 저 살수들을 보낸 건 소룡문과 초백산장이라는 첩보가 들어왔으니까요.”
선우의 말에 왕소륜과 오초백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미친!! 대박!!! ㅋㅋㅋㅋㅋㅋ
-방장님. 진짜예요?
-와 미쳤네. 소룡문이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초백산장과 소룡문이 손을 잡은 건데 의외인데?
-야, 잠깐 기다려봐. 저거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실한 건 아니잖아.
-소룡문이야 오래 전부터 맹호문 잡아 죽인다고 설치던 애들이니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데 초백산장은 왜?
-걔들도 맹호문하고 사이가 안 좋아. 저번에 뭐라더라? 무기 거래하고 돈 떼어먹었다고 하던데.
-고작 그걸로 살수를 보낸다고?
-보내야지. 넌 그러면 니네 길드 자금 떼어먹은 놈들 가만히 놔 두냐? 무림 호구 대접 받고 싶어서?
-초백산장과 소룡문이 동맹 맺고 맹호문을 친 거면 사실상 흑룡당하고 전쟁이네.
-이거 흥미진진해지는데? 역시 이 방장님 채팅방은 재미가 있다니까. ㅋㅋㅋㅋㅋㅋ
-인정. 선우 님 방송이 인기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선우는 채팅방에서 달풍선 폭탄을 받고 있었다.
소룡문과 초백산장의 살수 의뢰 사건은 그만한 파급력을 지녔으니까.
“야, 김선우 쟤 어쩌려고 저러는 거냐? 초백산장과 소룡문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거야?”
“난들 아냐? 그냥 구경이나 하고 콩고물이나 주워 먹으면 되지. 지금까지 그래왔잖아.”
코딱충의 말에 불나방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선우의 플레이에 적응이 된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대놓고 자신이 엮인 소룡문과 초백산장을 노출시킬 줄은 몰랐지만.
“에휴,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선우는 계속 방송에서 소룡문과 초백산장에 대해 떠들어댔다.
“여러분들. 또 한 가지 엄청난 정보가 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사실은 맹호문에서 찻잎을 쌔볐거든요? 무슨 맹호문의 독공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특효약 같은 아이템이라네요. 그걸 제가 왜 가져갔냐? 바로 소룡문과 초백산장의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었죠.”
선우의 방송을 지켜보던 왕소륜과 오초백의 눈동자가 떨리기 시작했다.
“저 미친놈이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의뢰? 아니 저 또라이가 우리한테 누명을 씌우고 있어? 야! 당장 저 새끼 잡아와!”
왕소륜과 오초백은 선우를 얕봐도 너무 얕봤던 거다.
선우가 어느 정도로 막장 짓을 벌일지 얘들은 생각도 없었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고.
“야, 기다려! 섣불리 움직이지 마. 이건 먼저 우리도 방송을 켜서 해명을 해야 한다.”
“해명이고 나발이고 그걸 누가 믿어줘? 우리가 맹호문하고 원수진 거 무림에서 모르는 놈들 있어? 없잖아!”
“멍청아. 그런다고 지금 당장 김선우 저놈 모가지를 비틀어봐. 틀림없이 의심을 더 크게 산다고. 입막음 했단 소리 나올 거 뻔하잖아.”
“그건….”
왕소륜은 반박하지 못했다.
“일단 방송으로 해명해야 한다. 김선우가 우릴 먼저 찾아와서 찻잎을 준 거라고.”
“야, 그 해명도 안 먹히겠는데.”
“왜?”
“저걸 봐라.”
왕소륜이 보여주는 화면에는 선우가 낄낄거리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여러분들 생각만 해도 기대되지 않습니까? 초백산장은 자신의 돈을 떼어먹었다고 독공의 재료를 빼돌리라고 저를 시켰고 소룡문은 맹호문을 제거하고 독공을 익히려고 저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이건 뭘 의미하겠습니까?”
선우는 계속 생각나는 대로 마구 지어내는 중이었다.
시청자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결국 흑룡당 길드 소속 간부들이 선우의 채팅방에 들어왔다.
“야, 쟤 누구냐?”
“알아보니까 김선우라는 놈이다. 아르콘 대륙에서 방금 넘어온 새내기.”
“아르콘 대륙에서 뭐하다 온 놈인데?”
“듣기로는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길드를 혼자 작살냈다던데.”
“뭐라고? 그게 진짜야?”
“풉. 여기 와서 어그로 끌려고 구라를 쳤나 보군.”
“아니야. 진짜라던데. 내 막내 동생이 얼마 전 아르콘 대륙 들어왔는데 거기서는 김선우 엄청 유명한 네임드라고 하더라고.”
처음엔 무시했지만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길드를 무너뜨린 건 무시할 게 아니었다.
“간만에 거물급 신참이 들어온 거 같은데?”
“저놈의 업적이 사실이면 틀림없이 다른 거대 문파에서도 노리고 있을 거다.”
흑룡당 간부 플레이어들은 선우를 주목하고 있었다.
“레비아탄과 아누비스를 저놈 혼자서 박살낸 게 사실이면 당주님께 알려드려야 돼.”
“맞아. 저놈을 섭외해야겠어.”
“일단 소룡문과 초백산장 놈들이 김선우를 끌어들여서 맹호문의 찻잎을 훔치게 시켰다면 틀림없이 아르콘 대륙의 명성을 듣고 먼저 움직인 걸 거야.”
“그거야 뻔하지. 그놈들 살려두는 걸 고마워해야지.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맹호문에 병력을 보냈냐?”
“이제 곧 도착할 거다. 김선우가 맹호문 가까이 있으니 간 김에 데려오라고 귓말 넣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