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제121화
선우의 말에 왕소륜이 물었다.
“네가 어떻게?”
“다 생각이 있지. 어떠냐? 할래? 말래?”
선우의 제안은 왕소륜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음… 오늘 처음 본 놈인데… 갑자기 소림에 복수하게 도와주겠다고?’
의심쩍지만 그럼에도 솔깃한 제안이었다.
소룡문은 소림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으니까.
무림은 은원의 관계로 돌아가는 법. 쿤타 대륙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선우는 이 틈을 파고들어 자기만의 세력을 만들기로 했다.
“빨리 정해라. 그러면 나도 도와 줄 테니까.”
의자에 앉아 건들거리는 선우.
“네 생각을 일단 들어보지. 만약 소룡문이 너와 손을 잡는다면 무슨 수로 도와주겠다는 거냐? 딱 보니까 쿤타 대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 같은데…. 어디 마교 길드에 가입이라도 한 거냐?”
“그런 건 구경만 하면 된다. 내게 필요한 건 딱 하나. 분란이다.”
“분란?”
“내가 여기 와서 무림 동네를 싹 훑어본 건 아니지만 대충 돌아가는 꼴을 보니 지금은 좀 평화로운 거 같더라고.”
선우의 말에 왕소륜의 귀가 꿈틀거렸다.
‘이놈 초보 주제에 그런 것까지 파악했어?’
왕소륜은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을 힐끔 훑어봤다.
‘고작 세 명이 돌아다니면서 소룡문을 찾아와 맹호문을 칠 수 있는 비기를 건네주고 소림에 복수할 기회를 준다라…. 그동안 방송에서 하고 다니는 짓을 보니 믿을 만한 놈은 못 되는 거 같던데’.
무림에서 뜬금없는 제안은 의심을 만든다.
그러나 선우는 자신을 향한 의심을 없애는 데 능숙한 플레이어였다.
“먼저 맹호문의 찻잎으로 너희들의 무공을 강화시켜. 이미 지금쯤이면 맹호문에서 난리가 나도 한참 났을 거니까.”
“찻잎으로 맹호문을 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소림까지 동시에 치기엔 무리야. 자칫 하다간 양쪽으로부터 맹공을 받을 수 있다고. 특히 정파가 정파를 칠 때는 반드시 그럴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또한 대놓고 치는 건 위험해.”
“일단 맹호문을 쳐. 소림은 마지막에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줄 테니까. 지금 당장 해야 할 건 맹호문이다. 알겠냐?”
왕소륜은 일단 선우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면 난 또 가볼 데가 있어서
“알았다. 앞으로 잘 해보자고.”
왕소륜과 선우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소룡문을 나온 선우는 코딱충에게 물었다.
“이제 초백산장으로 가자.”
“초백산장까지? 야, 이쯤 되면 우리한테도 무슨 계획을 꾸미는 건지 말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기에는 아직 일러. 시키는 대로만 해라. 딱충아. 초백산장은 어디냐?”
* * *
초백산장.
이곳은 초백산이라 불리는 산 속에 세워진 문파였다.
사파와 정파의 영역 경계선에 위치한 산이었기 때문에 정사 무림인들 사이를 오가며 거래를 하는 곳이었다.
“여기가 초백산장이다. 용무문은 물론이고 사문무적에 해당하던 문파들과 8대 정파들 모두 오랫동안 거래를 해오는 곳이지. 정파 외에도 사파들과 거래를 많이 해서 온갖 정보들이 흘러 들어와.”
“맹호문하고 사이는 왜 안 좋아?”
“저번에 거래를 하다가 사이가 틀어졌어. 맹호문 쪽에서 돈을 줘야 하는데 정파 놈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자금 부족하다고 외상으로 퉁 쳤거든. 근데 그 뒤로 계속 미루고 돈을 안 줬지. 결국 초백산장 쪽에서 돈을 받으러 갔다가 맹호문 소속 유저들하고 싸움이 붙었고 그 뒤로 한바탕 전투가 몇 번 펼쳐졌다.”
“그렇군. 역시 여기도 쓸 만하겠어.”
선우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해보지.”
초백산장은 쿤타 대륙의 여러 상단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자, 여기 받고 지나가세요.”
“고맙수다.”
“자, 다음 분. 응? 어이! 거기. 잠깐 스톱!”
선우 일행을 제지하러 초백산장의 길드원이 달려왔다.
“어디서 온 누구요?”
코딱충이 선우 앞을 가로막으며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초백산장의 장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안에 계신지요?”
선우와 불나방이 코딱충을 흐린 눈으로 바라봤다.
길드원이 대답했다.
“안에 계시긴 합니다만… 댁들은 누구요?”
선우가 나섰다.
“나는 김선우라고 한다. 맹호문을 없애버릴 수 있는 비법을 들고 왔다.”
“맹호문?”
길드원의 눈빛이 꿈틀거렸다.
“거기 가만히 계쇼.”
파밧!
길드원이 사라졌다가 조금 뒤 나타났다.
“따라오슈.”
선우 일행이 초백산장 안으로 들어갔다.
초백산장주 오초백은 고지식한 플레이어였다.
오직 돈이 될 만한 장사와 거래 외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스트리밍 방송 같은 건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특히 자신이 번 돈을 생판 남에게 후원금으로 쓰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겨 싫어했다.
그래서 선우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나는 초백산장의 대장주인 오초백 이라 한다. 맹호문을 없앨 수 있는 비법을 가져왔다고?”
“이게 뭘까?”
선우가 찻잎을 꺼내 보여줬다.
“그건….”
오초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맹호문의 독초들 아닌가? 그걸 어떻게 구했지?”
“내가 가져왔지.”
“뭐라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난 이걸 소룡문에 좀 나눠주고 오는 길이다.”
“소룡문?”
갑작스러운 일에 오초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
“듣자 하니 맹호문에 받아야 될 빚이 좀 있는 거 같던데.”
“…….”
“이 찻잎으로 독공의 면역력을 높이고 해독제를 만들어 전투를 하면 맹호문의 독공을 방어할 수 있을 거다. 아니면 니들 무기에 독을 발라서 써도 되고.”
“이건 맹호문의 절기나 다름없는 비법인데 왜 갑자기 찾아와 내게 주려는 거냐?”
“당연히 원하는 게 있으니까.”
선우는 직설적이었다.
오초백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좋아. 솔직한 놈이라서 마음에 드는군. 나는 이곳 초백산장을 세워 정파와 사파를 오가는 자들로부터 통행료와 물건을 거래하는 장사꾼이나 마찬가지. 거래에는 반드시 주고받는 게 있어야 하지.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무림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다.”
“소란을 일으켜? 그걸로 네가 얻는 이득이 뭔데?”
“남들의 싸움은 곧 돈이 되는 법. 이득이야 그때 되면 알아서 생겨나.”
선우의 목적은 간단했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정파와 사파를 막론하고 문파 전쟁을 부추기는 것.
그러면 스트리밍 방송의 시청률은 폭발한다.
전투와 사냥은 어느 대륙이건 가장 인기 많은 콘텐츠였으니까.
“무림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냐?”
“처음부터 큰 전쟁이 일어나진 않지. 하지만 자잘한 전투는 항상 있어왔잖아?”
“흥,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면 네 의도를 알아 맞춰보지. 초백산장과 소룡문이 연합하여 맹호문을 치라는 거 아니냐? 그 대가로 맹호문의 찻잎을 무료로 제공하는 거고?”
“딩동댕~! 할래?”
오초백이 찻잎을 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맹호문 놈들에게 그동안 받았던 손해를 생각하면 놈들의 간판을 떼어 부숴버려야 마음이 후련해지니까.”
“그러면 답은 정해졌네. 여기 있는 찻잎들을 줄 테니 맹호문과의 대결을 준비해라.”
선우가 건넨 맹호문의 찻잎은 소룡문과 초백산장을 유혹할 만한 물건이었다.
이들 문파는 모두 각자 맹호문 으로부터 원한을 갖고 있었고 선우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이제 선우가 원하는 대로 소룡문과 초백산장이 움직일 것이다.
한편 맹호문은 발칵 뒤집혔다.
“야~! 이 X새끼야!!!”
퍼억!
“커헉!”
서천호가 바닥을 뒹굴었다.
“혀, 형님.”
맹호문의 대문주 서천휘가 서 있었다.
“그게 어떤 건데 도둑을 맞아!! 그것도 모조리? 이 새끼들이 다 돌았나. 집합해! 새끼들아!!”
서천휘는 황당하다 못해 기가 찼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웬 놈들이 찾아와 찻잎들을 가져갔단다.
“형님.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 새끼들 저한테 독을 써서….”
“독을 썼다고? 독공을 익힌 놈들이냐? 어디 문파냐?”
“그게….”
“왜 말을 못해!”
“독을 쓰긴 썼는데… 제가 우려낸 차를 저한테 뿌렸습니다.”
“뭐?”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서천휘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천호야.”
“예, 형님.”
뻐억!
콰당탕!
퍽! 퍽!
“새끼야, 그걸 말이라고 해? 앙? 찻잎 끓여서 먹이는 것도 못하고 외려 니가 처맞고 누워? 그러고도 소문주야? 앙?”
“아악! 형님! 잘못 했습니다! 형님!”
서천휘는 서천호의 체력이 바닥 날 때까지 패고 나서야 공격을 멈췄다.
“후우… 내가 이런 덜 떨어진 놈을 소문주로 맡긴 게 잘못이지.”
“대문주님. 지금이라도 놈들을 추적해야 하지 않을까요?”
“해야지!! 이 띨띨이들아! 그럼 안 할 거야? 그딴 것도 나한테 일일이 물어보면서 할래?”
“죄송합니다! 대문주! 지금 즉시 놈들을 잡아오겠습니다.”
파밧!
“하아… 나 이거야 원…. 어떤 겁대가리 없는 새끼가 내 찻잎들을 가져가? 아니, 그거보다도 그 찻잎들이 만약 다른 놈들 손에 들어가면….”
서천휘는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형님. 그놈이 저한테 이랬어요. 형님한테 진 빚을 갚으러 왔다고요.”
“뭐라고?”
서천호의 말에 서천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참 고민하던 그가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떤 놈들인지 감이 안 잡히네. 나한테 빚 갚겠다고 설치는 놈들이 무림에 한둘 이어야지.”
* * *
선우는 소룡문에 이어 초백산장까지 설득시켜 냈다.
이들은 모두 선우에게 받은 찻잎으로 맹호문 습격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야, 김선우. 이제 어쩔 셈이냐?”
“뭘 어째? 우린 구경만 한다.”
“뭐? 여기서 활약하지 않고 구경만 하면 손해라고. 전투에서 이긴 놈들이 다 가로챈다고. 무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
코딱충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드러냈다.
“딱충아. 진정해라. 누가 끝까지 구경만 하겠대? 일단 간 좀 보다가 끼어들 타이밍 오면 들어가는 거야. 처음부터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러면 우리들도 쓸 찻잎은 남겨뒀지?”
“당연하지. 결정적인 한 방은 필요하니까.”
선우는 자신들이 쓸 찻잎도 남겨둔 상태.
“코딱충. 독공 익혀뒀냐?”
“독공을 익히고 싶다고 막 익히냐? 비급서가 있어야 익히지.”
“구하면 되잖아. 상점이 널려있구먼.”
“독공 비급은 상점 같은 데서 못 구한다. 플레이어들끼리 거래를 해야 한다고.”
“그거 갖고 있는 애들이 누군데?”
“알아볼게. 잠깐 기다려. 내가 독공 비급 구해서 익히면 바로 귓말 할 테니까.”
코딱충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린 시장가서 배 좀 채우자.”
선우는 불나방을 데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는 음식과 술을 팔고 있는 곳이 많았다.
“야, 김선우. 저거 좀 봐라.”
“응?”
불나방이 가리키는 곳은 대장간이었다.
그곳에는 대장장이 NPC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쟤는 뭐냐?”
“저건 무림인들의 무기를 만들어주는 대장간이다. 지금 검을 강화하고 있는 중이군.”
“그럼 내 칼도 강화 좀 시켜볼까?”
선우가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임 블레이드를 꺼냈다.
“이걸 강화하려고? 너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
“그래도 무림인데 나름 구색은 갖춰야 되지 않겠어?”
선우가 플레임 블레이드를 까딱거렸다.
이때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이보게. 그 칼 자네 건가?”
선우가 뒤를 돌아보니 웬 노인이 서 있었다.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홀홀, 거 아주 참해보이는 칼이로구먼. 안타까운 건 그 칼의 잠재력을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 하군.”
잠재력?
선우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그 칼을 훨씬 강력한 검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네. 하지만 내 부탁을 들어줘야 되지. 어떤가? 해볼 텐가?”
갑작스런 노인의 제안.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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