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제120화
차실 안에는 다양한 찻잎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선우는 찻잎들 하나씩 들춰봤다.
찻잎들마다 정보 화면이 나타났다.
모두 독성이 강한 찻잎들이었다.
동시에 인피니티 아이(Eye) 스킬로 감정을 할 수 있었다.
<해독차>
-독성이 강한 찻잎을 해독하는 찻잎을 갈아 만들었다.
“오, 이거 쓸 만하겠는 걸?”
선우는 이 중 코딱충에게 먹인 찻잎의 해독제를 찾았다.
차실 밖으로 나온 선우는 코딱충에게 해독제를 먹였다.
“후아… 후아….”
“이제 움직여지냐?”
“아, 응… 고맙다.”
“일어나서 밖에 다른 놈들 들어오는지 감시해라.”
선우는 서천호에게 가서 물었다.
서천호는 자신의 내공으로 체내의 독을 해독시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말을 꺼내는 것 정도가 한계였다.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진 않는다.
“애쓰지 마라. 천호야. 차실에 가 보니까 쓸 만한 게 되게 많더라.”
“크윽… 건들지 마라. 그건 맹호문의 대문주 서천휘 형님이 아끼는 콜렉션들이다.”
“무림 놈들 법도가 어쩌고 하더니만 결국 이렇게 야비한 독 공격이나 하려고 그러네.”
“닥쳐라! 넌 죽었어. 흑룡당 놈들이 보냈냐? 아니면 용무문이냐?”
선우가 대답했다.
“맞춰봐라. 어느 쪽에서 보냈을까?”
“이 자식… 넌 쿤타 대륙에 들어온 걸 후회하게 될 거다. 울고불고 매달려도 소용없어. 서천휘 형님께서 얼마나 지독한… 컥!”
선우가 서천호의 가슴팍을 발로 걷어찼다.
“크어억… 으윽….”
“오… 이 독으로 중독시키고 패면 크리티컬 데미지 작렬하네? 신기한 독이로다~”
선우가 맹호문의 대문주가 아끼는 아이템에 관심을 보였다.
“야, 불나방. 안에 차실에 있는 거 우리가 다 가져가자.”
불나방이 재빨리 차실로 들어갔다.
인벤토리를 열고 닥치는 대로 찻잎과 해독제라고 쓰여 있는 약재들을 모두 담았다.
“야… 이 새끼들…. 그거 손대면 다 죽어!”
선우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 담았다.”
“이제 가자.”
“이 새끼들! 저것들 진짜 미친놈들이네. 야!! 니들 누가 보냈어! 그것만 말해주고 가라! 제발! 서천휘 형님께서 알면 난 죽은 목숨이라고! 그거라도 알려줘!”
선우가 발을 멈췄다.
“니가 그렇게 궁금하니까 대답해주지.”
서천호가 바닥에서 선우를 올려다봤다.
선우는 나지막히 속삭거렸다.
“니네 큰형님 서천휘한테 이렇게 말하면 알 거다. 빚을 갚으러 왔다고.”
“뭐? 서, 설마… 네놈….”
선우가 서천호를 버리고 튀었다.
* * *
코딱충은 선우가 보여주는 찻잎들의 정보를 읽고 있었다.
“어떻게 써먹는 것들인지 알겠냐?”
“이건 독공(毒工)의 주재료가 되는 찻잎들이다. 맹호문의 독문무공이지. 서천휘의 오광독공을 펼치려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재료들이야.”
“오~ 뭔지 몰라도 좋아 보이는데.”
“야, 이건 좋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초대박 아이템들이라고. 쿤타 대륙에서 맹호문의 찻잎들이 얼마나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지 알기나 해?”
“뭐 돈 되는 템들 먹은 건 알겠네. 그러면 이걸 어디다 떠넘길까?”
“야, 김선우. 이걸 우리가 안 먹고 누굴 주려고?”
“왜? 너한테 쓸 만한 찻잎들 있냐? 그러면 그거 미리 빼놔. 어차피 우리 전력 강화에 도움 되는 거라면 나쁘지 않으니까.”
“아니, 내 말은 이 찻잎들은 모두 문파의 비기와 직결된 아이템들이다. 만약 쿤타 대륙에서 맹호문의 찻잎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우릴 노리는 놈들이 엄청나게 많아질 거라고.”
“그러니까 팔겠다는 거 아냐.”
“아니지. 멍청아. 이걸 우리가 각자 다 해먹어서 독공을 익혀야지.”
“무투가 클래스가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불나방 칼에 독 발라서 쓸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럴 바에는 딱충이 네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독공과 관련된 찻잎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른 놈들한테 던져야 안전하다고.”
선우는 맹호문의 찻잎을 빼돌릴 생각이었다.
문파의 비기에 해당되는 찻잎들을 가져갔으니 맹호문은 곧 뒤집어질 것이다.
그 전에 여러 군데로 던지기를 할 생각이었다.
“빨리 골라. 시간 없어.”
“기다려봐. 좋아. 이것들로 하겠어.”
선우가 골라낸 찻잎들의 정보 화면이 나타났다.
<맹독수>
-끓여 마시면 손톱에 독이 물든다. 독공을 익히기 위해 마시는 찻잎이다.
<화독차>
-끓여 마시면 화공을 강화할 수 있는 찻잎이다. 적에게 심한 화상을 입히는 데미지를 줄 수 있다.
<오독차>
-끓여 마시면 오독권의 모든 공격력이 일시적으로 20퍼센트 상승한다. 마시는 횟수와 양에 따라 50퍼센트까지 상승할 수 있다.
“그거면 되냐?”
“흐흐. 물론이지. 이 찻잎들이면 내 권법의 독 버프를 제대로 넣을 수 있거든.”
“좋아. 그러면 나머지는 던지기 들어간다. 맹호문하고 사이 안 좋다고 하는 문파들 이름 빨리 대봐.”
“일단 소룡문이라고 하는 문파가 있다. 흑룡당과 맹호문이 손을 잡았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소룡문을 치기 위한 것도 있었어. 실제로 전투를 꽤 많이 벌였고.”
“오케이. 소룡문 1번 당첨. 그 다음 또?”
“초백산장, 여기도 맹호문하고 앙숙이야.”
“좋아. 일단 여기 두 군데를 빨리 돌자. 소룡문 어디에 있냐?”
“따라와.”
코딱충이 선우를 소룡문으로 안내했다.
소룡문은 명문 정파 중 한 곳이었다.
이곳은 소림의 파계승이 속세로 나와서 문파를 세운 곳이었다.
8대 정파 중 한 곳인 소림 출신이 차렸으니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정파 세력 길드 가운데 두각을 드러내는 명문 길드로 성장 중이었다.
“여기가 소룡문이다.”
소룡문으로 들어간 선우 일행을 맞이한 건 봉술 연습을 하고 있던 소룡문 길드원들이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왔냐?”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경계심을 드러내는 길드원들.
딱 봐도 길드 가입한 지 얼마 안 된 플레이어들이었다.
“문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코딱충이 선우 앞에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선우가 뒤에서 불나방에게 속삭거렸다.
“야, 쟤는 여기서 왜 맨날 저러냐?”
“놔둬. 코딱충 쟤는 무협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쎄거든.”
코딱충의 예를 갖춘 자세에 길드원들도 똑같이 예를 갖췄다.
“소룡문의 대문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긴급한 사안입니다. 맹호문에 관련된 것이라고 전해주시면 아실 겁니다.”
“맹호문?”
길드원들이 수군거리더니 어디론가 달려갔다.
조금 뒤 나타나더니 손짓을 한다.
“문주님께서 들어오라 하십니다.”
선우는 소룡문의 대문주와 마주 앉았다.
“나는 이곳 소룡문을 이끄는 대문주 왕소륜이라 한다. 너희들은 어디서 온 누구지?”
“난 아르콘 대륙에서 온 김선우다. 얘들은 내 부하고.”
왕소륜은 선우와 뒤에 서 있던 불나방, 코딱충을 힐끔거렸다.
“흐음… 좋아. 나한텐 무슨 볼 일이지? 듣자 하니 맹호문 관련된 것이라던데.”
맹호문은 소룡문과 원수지간.
뒤쪽에 있던 불나방을 보며 선우가 손짓했다.
불나방이 준비한 찻잎을 몇 개 꺼내서 선우에게 건넸다.
왕소륜이 흘깃 선우의 손에서 찻잎을 훑었다.
선우는 일부러 뜸을 들이듯이 떡밥을 던졌다.
“이게 뭔지 아시는가?”
“그건… 찻잎이잖아.”
“맞아. 그런데 무슨 찻잎일까?”
왕소륜이 잠깐 고민을 하다 눈썹을 꿈틀거렸다.
“가만… 설마 아까 맹호문과 관련된 것이 혹시…?”
선우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댕.”
“아니 그걸 대체 어떻게? 그 찻잎들은 맹호문의 절기라고 할 수 있는 오광독수(五光毒手)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약초들이잖아. 문파 안에서도 맹호문의 후계자들만이 구경을 해볼 수 있다던 보물인데….”
“지금은 내 손 안에 있지.”
왕소륜의 눈빛이 번뜩였다.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원하는 건 딱 두 가지가 있다.”
“말해봐.”
선우는 잠깐 뜸을 들이고 왕소륜의 눈치를 봤다.
왕소륜은 전신을 근육질로 뒤덮고 있는 무투가 플레이어.
딱 봐도 단순무식하게 생겼다.
“니들 맹호문에 갚아야 할 빚이 좀 많다며?”
선우는 이들의 내부 사연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대충 눈치껏 던져봤다.
“빚이야 많지.”
왕소륜이 선우의 미끼를 물었다.
“그러면 이 찻잎을 니들한테 주면 갚을 수 있겠냐?”
선우의 말에 왕소륜이 눈을 반짝였다.
“정말이냐? 그 찻잎을 준다고?”
“물론이지. 대신 이 찻잎을 받아서 맹호문을 쳐라.”
“그건 우리도 바라던 바다. 나머지 하나는?”
“너희 정파들과 사파 길드간의 세력 구도가 어떻게 되는지 정보를 알려줘.”
선우의 말에 잠깐 머뭇거리는 왕소륜.
그는 생각에 잠겼다가 말문을 열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먼저 우리 정파들은….”
왕소륜은 8대 정파와 다른 명문 정파 길드들과 사파의 세력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좋아. 무림 세계가 이렇게 돌아가는 거였군.”
“정보는 만족하냐?”
“물론. 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니가 말한 정보가 진짜인건 어떻게 믿지?”
왕소륜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소룡문은 명문 정파이지만 무림맹으로부터 찬밥 대접을 받고 있다. 왜냐면 8대 정파 중 하나인 소림의 파계승 왕소린이 세웠던 문파이기 때문이지.”
왕소린은 소룡문의 초대 문주 NPC였다.
소룡문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가 벌어졌고 왕소린의 실력을 보고 감동한 플레이어가 자신의 닉네임을 왕소륜으로 변경한 뒤 후계자가 되었다.
그리고 소룡문의 대문주가 된 뒤로 자신의 길드를 세운 것.
하지만 왕소린은 소림에서 파문을 당한 무림인이었기에 8대 정파 소림의 견제는 끈질겼다.
“그렇구만. 그러면 너희들 정파 애들한테 은근히 감정 좀 있겠네?”
“흥, 없으면 미친놈이지.”
선우가 무심코 던진 말은 왕소륜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직감적으로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볼 필요를 느낀 선우.
“솔직히 내가 들어보니까 8대 정파, 그거 좀 지들끼리 해먹고 그러는 거 같던데. 아니냐?”
“당연하지!”
왕소륜이 흥분하듯 소리쳤다.
“8대 정파 이 개자식들은 오래 전부터 항상 자기들이 무림의 기둥처럼 개폼이나 잡고 다니는 놈들이야. 직접 경험해본 놈들만 알 수 있지. 제아무리 사파 놈들과 전쟁에서 이기고 업적을 세워서 명문 정파 길드로 올라서도 8대 정파 길드에 오를 순 없어.”
“뭐? 그게 진짜냐? 왜?”
“놈들 문파 중 한 곳으로 흡수되어야 한다. 산하 길드가 되는 거지. 무림의 주인은 오직 8대 정파들이라는 고집으로 똘똘 뭉친 쓰레기들이다.”
왕소륜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감정이 복받쳤는지 표현이 더욱 거칠어졌다.
“이 빌어먹을 기득권들을 단번에 깨버려야 한다. 김선우 네 표현대로 지들끼리 해먹으려고 온갖 더러운 짓도 자기들은 해도 되고 남들이 하면 안 된다고 훼방 놓거든.”
선우가 맞장구를 쳐줬다.
“이야~ 완전 양아치들이네.”
“그렇지. 어차피 무림 놈들 자체가 다 깡패 새끼들이지만.”
선우가 슬쩍 왕소륜을 계속 긁어봤다.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진 않을까 궁금해서다.
“그런데 솔직히 까놓고 니들 소룡문이랑 소림하고 붙으면 누가 이기냐?”
“당연히 소룡문이다! 소림 놈들은 무림맹을 등에 업고 날뛰는 땡초들에 불과해!”
“진짜야? 듣기로는 소림도 싸움 잘한다던데.”
“흥! 개 같은 소리. 소룡문을 세웠던 파계승 왕소린 스승께서는 소림에 계실 적 당대 최강의 무승이였지. 그리고 그 분의 무공은 바로 나 왕소륜이 이어받았고. 소림무공은 소룡문의 무공에 감히 갖다댈 수 없어!”
엄청난 자부심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그리고 소림을 향한 적개심이 표출되고 있었다.
“소룡문은 맹호문만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소림을 부숴버릴 거다! 8대 정파의 구도는 새롭게 짜여져야 돼. 소림을 빼고 소룡문이 들어가야 한다고.”
왕소륜의 발언에 코딱충이 놀라면서 물었다.
“이봐, 너 그거 감당할 수 있는 발언이냐? 잘못하다간 무림맹 세력과 8대 정파 길드로부터 맹공을 받을 수 있어. 정파가 정파에게 도전한다는 건 아군의 뒤통수를 치는 격 아니었어?”
“놀고 있네. 너 쿤타 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됐지? 여기는 정파라고 같은 정파 치지 말란 법 없어. 사파도 마찬가지고.”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왕소륜을 거들어줬다.
“그래야 무림이지. 야, 그러면 내가 소림 놈들한테 복수할 기회를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