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제119화
객잔 주인은 선우에게 흑룡당과 용무문의 위치를 알려줬다.
선우는 객잔에서 나와 잠깐 고민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먼 곳을 응시하며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대는 선우.
코딱충이 옆에 있다가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냐?”
“생각 중.”
선우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가다 멈췄다.
“야, 그런데 흑룡당 하고 용무문이 사파랑 정파면 얘들은 길드냐? 아니면 NPC들이냐?”
코딱충이 대답했다.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해주자면 처음에는 문파의 장문인만 NPC고 나머지는 길드원들이야. 물론 각 문파 산하 세력으로 온갖 길드들이 들러붙어 있지.”
“음, 그렇군.”
“다만 공성전을 해서 성을 먹은 길드가 성의 황제 NPC를 제거하고 자신이 직접 권한을 빼앗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 쿤타 무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문파가 탐나면 레벨을 올려서 장문인 NPC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이기면 자신이 장문인으로 승격되지. 패하면 파문 당하는 거고.”
“오, 그런 룰이 있군. 그러면 지금 흑룡당 하고 용무문은 장문인이 플레이어일까? NPC일까?”
“내가 아는 정보로는 둘 다 플레이어들이다. 꽤 예전에 장문인 NPC를 패배시키고 자신들이 문파를 섭렵했거든.”
“그렇군.”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흑룡당이 사파 세력이면 얘들하고 사이 안 좋거나 원수지간인 애들은 누구냐?”
“흑룡당의 적수들이야 널려 있지. 사파 안에서는 대표적으로 맹호문이 흑룡당과 원수지간이다.”
“맹호문이라… 거기도 플레이어가 문주냐?”
“응.”
“뭐 때문에 원수지간인데?”
“세력 싸움이지 뭐. 사냥터 독점, 던전 독식, 무공서 빼돌리기 등등. 하지만 결정적으로 원수가 된 것은 용무문 때문이다.”
“용무문? 걔들이 왜?”
“왜긴 왜야? 용무문은 정파잖아. 그것도 평범한 정파가 아닌 사문무적으로 불렸던 정파의 4대 세력 중 하나였다고. 아무리 몰락했기로서니 정파는 사파와 섞일 수가 없고 사파 또한 정파랑 어울릴 순 없는 게 무림의 법칙. 그걸 깨고 손잡았으니 맹호문이 좋게 볼 리가 없지.”
“그러면 옛날엔 사이가 좋았나 보네?”
“그렇지. 맹호문 또한 장문인 NPC를 결투로 몰아낸 플레이어가 길드원을 모집해서 길드 형태로 바꾼 곳이다. 흑룡당, 용무문, 그 외에 다른 사문무적과 8대 정파 모두 마찬가지야. 쿤타 대륙의 유명 길드는 모두 정파 사파 소속의 문파들이니까.”
“맹호문과 흑룡당이 한 패였냐?”
“한 패까진 아니다. 어차피 NPC 장문인 시절에는 사이가 안 좋았는데 플레이어들이 아르콘 대륙에서 같은 길드 소속이었거든. 쿤타 대륙으로 진출하고 각자 문파를 점령하러 들어간 게 흑룡당과 맹호문이었지. 처음엔 아군으로 무림 전쟁에 참가도 하고 활약을 많이 했는데 흑룡당이 용무문과 손잡는 바람에 원수가 된 거야. 용무문은 맹호문과 원수지간 이였거든.”
“좋아. 그러면 먼저 맹호문으로 간다.”
“흑룡당하고 용무문 찾아간다며?”
“계획이 바뀌었어. 맹호문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아냐?”
“따라와라. 내가 아니까.”
코딱충이 앞장섰다.
***
선우는 맹호문에 도착했다.
선우 일행은 복면을 쓰고 맹호문 앞에 나타났다.
“여기로군. 야~ 나와봐라.”
“쉿! 쉿! 김선우 너 미쳤냐?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는 거냐?”
“맹호문이라며?”
“그러면 예를 갖춰야지.”
“그게 뭔데?”
끼이익.
때마침 맹호문의 대문이 열렸다.
험악한 얼굴을 가진 사내가 나왔다.
“웬 놈이냐?”
사내는 NPC였다.
문파의 문지기 역할을 맡는 자들은 모두 NPC로 성을 지키는 경비병 역할과 같았다.
“여기가 맹호문이지? 니네 대장 좀 나오라 해봐.”
문지기의 얼굴이 험상궂게 변했다.
“건방진 놈이로군. 감히 대 맹호문(猛虎門)의 문주님을 나오라 하다니. 죽고 싶은 게냐?”
이때 코딱충이 재빨리 선우 앞으로 나섰다.
코딱충은 손바닥으로 주먹을 감싸며 포권을 취하고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맹호문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문주님을 뵐 수 있을까요?”
그러자 사내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흥, 제법 예를 갖춘 놈도 있군. 들어와라.”
코딱충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선우를 흘겨봤다.
“야, 무림 세계에서도 법도가 있는 거라고.”
선우는 코딱충을 무시하고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맹호문 안으로 들어간 선우 일행은 맹호문의 소문주를 만났다.
“저는 맹호문의 소문주를 맡고 있는 서천호라고 합니다. 대문주님께서는 현재 출타 중이십니다. 무슨 일이죠?”
서천호도 플레이어였다.
잘 다듬어진 육체에 전형적인 무투가 클래스.
코딱충과 비슷한 과였다.
이들은 무림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쿤타 대륙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코딱충 역시 동경심을 품고 있었으니 저절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선우는 아니였다.
“내가 특별한 정보를 갖고 왔으니 대문주에게 전해라. 흑룡당에 관한 거다.”
“흑룡당 이라고요? 무슨 정보인지 알려주시죠.”
코딱충이 재빨리 선우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아직 이곳에서 전음 스킬을 익히지 못했기에 느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언가 선우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이 몰려왔으니까.
-야, 김선우. 지금 무슨 속셈이냐?
선우는 대답 안 하고 청산유수처럼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희들 용무문 없애버리고 싶지?”
용무문이 선우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서천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놈들이야 당연히 없애고 싶습니다만….”
“그러면 내가 재미있는 거 하나 알려줄까?”
선우의 반응에 서천호는 당혹스러웠다.
‘뭐지? 이놈은 난데없이 나타나서.’
갑자기 의심을 품는 서천호.
하지만 용무문 관련된 정보라면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들어보겠습니다.”
서천호의 말에 선우가 물었다.
“그 전에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흑룡당은 왜 너넬 버리고 용무문을 선택한 거냐?”
선우의 말에 서천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의심은 또 다른 상상을 낳기 시작했다.
‘이놈 아무래도 뭔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코딱충에게 흑룡당과 맹호문의 과거를 알고 있는 선우는 그냥 대뜸 던져보듯 물었다.
“흑룡당은 오래 전부터 정파 세력을 무너뜨리기를 원했습니다. 맹호문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무림 전쟁에서도 우린 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니네 뒤통수 치고 용무문하고 손잡았지?”
선우가 끼어들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걸 공자께서 어떻게 아시죠?”
“그냥 뭐 들은 게 있으니까.”
선우가 대충 얼버무리자 서천호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디서 들었습니까?”
“얘가 알려줬거든.”
선우의 엄지손가락이 뒤에 있던 코딱충을 가리켰다.
아무 생각 없이 듣고만 있던 코딱충이 화들짝 놀랐다.
“뭐? 야, 나는….”
코딱충의 표정을 관찰하던 서천호가 물었다.
“공자께서는 그 정보를 어떻게 알고 계신 거죠? 혹시 흑룡당과 관련 있는 분이십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맹호문과 흑룡문의 과거를 아는 분들이 지금 많지는 않을 텐데.”
“아, 그게… 그러니까 나는 그냥 뭐 관심이 좀 많아서요. 하하하!”
“그러셨군요.”
서천호의 눈빛이 살기로 꿈틀거렸다.
‘아무래도 이놈들 수상하군. 심문을 해봐야겠어.’
“다들 여기까지 오시느라 피로 하실 텐데 제가 차 한 잔 내어드리지요.”
갑자기 서천호가 일어나 뒤에 있던 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언가를 내어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 4개가 쟁반에 놓여 있었다.
“드셔보시죠. 이 차를 마시면 전투나 사냥 시 도움이 될 겁니다.”
서천호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먼저 찻잔을 후루룩 마셨다.
‘후후, 이 차에는 몸을 굳어버리게 만드는 맹독이 들어있지. 주기적으로 차를 입에다 흘려 넣기만 하면 해독제 없이는 죽을 수도 없고 다시 로그인을 해도 여전히 굳은 캐릭터로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서천호는 독이 든 차를 선우 일행이 마시게 한 다음 심문할 작정이었다.
캐릭터를 새로 키울 생각이 없다면 결국 해독제를 원할 것이고 서천호가 원하는 걸 답해줘야 해독제를 받게 될 터.
다만 의심을 피하고자 자신이 마실 차를 같이 내왔고 먼저 보란 듯이 마신 것이었다.
하지만 선우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이거 한번 마셔보쇼.”
“예?”
뜬금없는 선우의 손길.
그의 손에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독이 든 차를 아는 서천호는 당황스러웠다.
‘뭐, 뭐냐? 이 뜬금 터지는 놈은.’
무림의 예의상 선우처럼 행동하는 건 사파들조차 무식하다고 여기는 짓.
하지만 선우는 그딴 거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마셔보라니까.”
선우의 행동에 서천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제 차는 이미 마시고 있습니다만.”
“놀고 있네. 야, 너 여기다 뭐 탔지?”
“예?”
당황하는 서천호가 코딱충과 눈이 마주쳤다.
코딱충이 끼어들었다.
“야! 김선우. 너 작작 좀 해라. 남의 문파에 온 손님인데 대체 이게 무슨 경우냐?”
선우가 대답도 안 하자 코딱충이 닦달했다.
“무림에서는 이런 행동 겁나 예의 없는 거라고.”
서천호가 거들었다.
“하하, 같이 오신 분께서는 뭘 좀 아시나 보군요.”
코딱충이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이거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차를 내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먼저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코딱충이 차를 마시려고 하자 서천호는 비상이 걸렸다.
‘이런 젠장!! 마실 거면 다 같이 처 마셔야지. 이 와중에 한 놈은 의심하고 다른 놈은 마셔버리면 더 큰일이다. 빨리 이거 도로 갖다놔야 된다.’
서천호의 마음이 급해졌다.
자칫 하다간 선우가 보는 앞에서 계략이 들통나게 생겼으니까.
“아, 아닙니다. 저기요. 아무래도 이 분께서 차가 마음에 안 드시는 것 같으니 다른 걸 내어오겠습니다. 저기요. 잠깐만요. 멈춰주시겠….”
코딱충은 미련 없이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끄어으… 아우 맛이 참 좋습니다. 제가 이 게임 하면서 마셔본 음료 중에 이 차를 따라올 맛은….”
코딱충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으응? 이거 뭐지?”
선우와 불나방이 코딱충을 훑어봤다.
“야, 너 왜 그러냐?”
“아니… 저… 내가….”
쿵!
코딱충이 갑자기 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불나방이 벌떡 일어났다.
“야! 정신 차려!”
선우가 씨익 웃으면서 서천호를 바라봤다.
“여기다 뭐 탄 거 맞네.”
서천호의 눈빛이 번득였다.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거 무력으로 놈들을 제압….’
그의 손이 찻잔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촤악!
“끄아악!”
선우가 독이 든 차를 서천호의 얼굴에 뿌려버렸다.
“으악! 뜨거! 이 망할 새끼! 뭔 짓이냐!!”
서천호가 눈을 감고 바닥을 뒹굴었다.
“차가 맛있다면서? 이거도 너 혼자 다 먹어라. 반응 좀 보자.”
불나방 앞에 놓여있던 찻잔을 든 선우.
바닥을 뒹굴다가 서서히 몸이 굳어지는 서천호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이거 몸 굳게 만드는 독인가 보네.”
“끄으… 네놈이 감히….”
서천호는 선우가 뿌린 차를 얼굴에 맞았다.
코와 입으로 들어간 찻물에 결국 중독된 것이다.
“야, 이거 쓸 만해 보이는 독인데 해독제 없냐?”
“흥… 그걸 순순히 알려줄 거 같으냐? 넌 후회하게 될 거다. 감히 맹호문의 소문주인 날 중독시켜? 네놈들 흑룡당이 보낸 살수들이냐? 아니면 용무문?”
“한 번 더 먹여볼까?”
“으어, 잠깐만.”
서천호가 입술을 바둥거렸다.
선우가 쪼그려 앉아 킥킥거렸다.
“해독제 어디 있는지 말해봐.”
“크윽….”
서천호가 고민 끝에 입술을 열었다.
“…해독제는 차실에 있다.”
“고맙다. 야, 불나방 이거 들고 있어.”
선우가 차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