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제117화
코딱충의 입술이 바싹 말라버렸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의 경악하는 표정.
불나방의 의외라는 눈빛.
아르콘 황제의 웃음소리.
선우의 의미심장한 말투.
모든 것이 코딱충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뭐, 나를?”
“이리 와.”
“선우야, 우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데?”
“설마 여기 남으라는 건 아니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선우에게 몰려갔다.
선우는 사생팬들에 둘러싸인 연예인처럼 휘청거렸다.
“야, 너희들 시끄러우니까 한 놈씩 말해.”
“김선우. 설마 우릴 여기서 버리겠다는 거냐?”
“버리긴 뭘 버려? 너희들은 본 브레이커 길드고 나는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왜 니들을 안고 가야 되냐?”
선우의 말에 체로키와 라비트의 입술이 달라붙었다.
“그건 인마! 길드의 소속이 문제가 아니고 의리의 문제잖아!”
“의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러면 체로키 얘는 왜 제외시키려고 했냐? 얘도 본 브레이커 길드는 아니잖아?”
선우의 말에 라비트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버벅거렸다.
이때다 싶어서 체로키가 선우의 말을 거들었다.
“맞어! 생각해 보니 그렇네. 나도 선우처럼 본 브레이커 길드 소속이 아닌데 니들 나 재끼려고 했지? 그런 놈들이 왜 이제 와서 선우한테 의리를 따지냐?”
“야, 시끄러워. 체로키 넌 낄 데 안 낄 데 구분 못 하냐?”
록희와 마강쇠가 열 받았는지 막말을 퍼부었다.
“뭐? 시끄러? 이 새끼들이 진짜….”
체로키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과 다시 실랑이를 벌였다.
선우는 이들을 무시하고 코딱충과 불나방을 불렀다.
“딱충아. 빨랑빨랑 안 오냐?”
“야, 김선우. 너 무슨 짓이냐? 왜 날 데려가겠다는 건데?”
코딱충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데려가기는? 쓸 만하니까 데려가지.”
“쟤들이 쪽수도 많고 부려먹을 것도 많아. 그리고 쟤들이 네 부하 아니었어?”
“부하 같은 소리 하네. 쟤들이 언제 내 부하였냐? 난 그딴 거 키운 적도 없다.”
선우의 말에 코딱충이 몸을 우들우들 떨었다.
“야, 김선우. 장난 치냐! 난 여기서 할 일이 있다고!”
“나도 다음 대륙 가서 할 일이 있어. 넌 닥치고 따라오면 된다.”
선우는 코딱충을 무시하고 아르콘 황제에게 대답했다.
“폐하. 여기 있는 두 놈을 제가 다음 대륙으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가서 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은공을 만 천하에 떨쳐 보이겠습니다.”
선우의 말에 크게 감동받은 아르콘 황제가 외쳤다.
“하하하! 좋다. 그러면 자네가 데려갈 사람들의 이름을 내게 말해다오.”
선우가 뒤쪽에 서 있던 불나방과 코딱충을 힐끔거렸다.
“불나방이라고 합니다.”
선우 옆으로 선뜻 다가오며 대답하는 불나방.
코딱충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야, 불나방 미쳤냐? 너 진짜로 따라 갈 거냐?”
이때 선우가 물었다.
“딱충아. 빨랑 대답 안 하냐?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자삭빵 갈까?”
자삭빵이 튀어나오자 코딱충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코딱충 이라고 합니다! 폐하!!”
선우 옆으로 나오면서 우렁차게 외치는 코딱충.
아르콘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다. 이제 짐의 권능을 그대들에게 하사하겠노라. 김선우를 비롯한 코딱충, 불나방에게 다음 대륙인 쿤타로 가는 특권을 부여하니 이들을 쿤타 대륙의 입구까지 데려다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폐하.”
어느덧 나타난 황제의 친위대가 무릎을 꿇으며 아르콘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야! 김선우! 우릴 버리고 가는 거냐!”
“저 새끼 저럴 줄 알았어!”
“죽여버린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어허! 무엄하다!!”
황제의 친위대들이 본 브레이커 길드원 들에게 창을 겨눴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소란들이냐. 썩 물러가라.”
“아니, 저 그게 아니고요. 저 새끼가 우릴 버렸다니까요.”
“물러가지 않으면 즉시 참하겠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결국 뒤로 물러나 길을 터줬다.
선우는 의기양양하게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빠져나갔다.
“너희들도 어차피 날 써먹으려고 접근한 거였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았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선우에게 처음부터 호의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었으니까.
굳이 잘못을 따진다면 선우의 화려한 멘트에 정신이 홀렸던 라비트 때문이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누구의 잘못을 따질 수는 없었다.
아르콘 대륙은 원하는 걸 갖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 원칙.
선우는 그 룰을 절묘하게 따랐을 뿐이었다.
“난 이제 간다. 수고들 해라.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치워줬으니까 니들 먹으라고 밥상 거하게 차려줬다. 이건 고마워해야지. 안 그래? 이래도 못 떠먹으면 니들 잘못이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선우가 아니었다면 콜로세움은 지금도 아누비스랑 레비아탄의 독식이 이어졌을 것이다.
콜로세움의 주인들을 제거하고 세력을 없앴으니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는 건 당연한 수순.
선우는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에게 기회를 열어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르콘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쿤타 대륙으로 향하는 선우와 코딱충, 불나방.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만 봤다.
“젠장… 망했다…. 이거 우린 어떡하냐?”
“야, 어떡하긴 뭘 어떡해? 선우 말이 틀린 건 아니야. 지금이라도 당장 콜로세움으로 가자. 우리들도 한탕 해먹을 기회가 온 거라고.”
“가자, 빨리 빨리!”
선우의 말을 듣고 뒤늦게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 * *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고 있었다.
[쿤타 대륙을 발견 하였습니다.]
[쿤타 대륙으로 진입하시겠습니까? Y/N]
“여기부터 쿤타 대륙의 영역이니 살펴 가십시오.”
친위대들의 안내를 받아 쿤타 대륙으로 오게 된 선우.
“이야, 여기는 완전 무협에 나오는 대륙 같은데?”
선우는 쿤타 대륙을 처음 오는 거였다.
반면 코딱충과 불나방은 쿤타 대륙에 대해서 꽤 많은 정보를 들었었다.
“휴우… 결국 여기를 오고 말았군.”
코딱충이 한숨을 내뱉자 선우가 물었다.
“너 여기에 대해 좀 아는 거 있냐?”
코딱충이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아는 거? 있지. 쿤타 대륙의 정보는 얼마든지.”
“어떻게 아는데?”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길드가 놀고만 있는 줄 아냐? 콜로세움에서 자리가 완전히 잡히면 즉시 쿤타 대륙으로 진출할 준비를 해왔다고.”
코딱충의 말에 불나방이 거들었다.
“쿤타 대륙의 정보는 사전에 진출했던 친분 있던 길드들에게 많이 받았었다. 이곳은 흔히 무협소설에서 많이 보던 무림 세계라고 보면 돼.”
“오, 무협 게임 같은 거네.”
“게임은 게임이지만 진짜 같은 게 문제다. 너 무협 소설 읽어본 적 있냐?”
“없는데.”
“하아, 나 이거 참. 어디부터 설명해줘야 할지 감도 안 오네.”
코딱충이 빈정거리자 선우가 물었다.
“딱충아. 지금 배신하려는 거야?”
웃으면서 물어보는 선우.
코딱충이 움찔 하고 말투를 다듬었다.
“하하, 아니야. 배신은 무슨.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하라고. 하하하.”
“대답해봐. 무림이면 그러니까 뭐 정파랑 사파랑 나눠서 패싸움 하고 그런 거네? 콜로세움 대륙 버전이라고 보면 되잖아.”
“그렇다고 봐야지. 지금 우린 더 아르콘보다 더 상태 엉망진창인 곳에 들어온 거라고.”
쿤타 대륙은 무림 세계를 콘텐츠로 만들어놓은 곳이었다.
이곳에는 온갖 무공 스킬과 비급서, 무구(武具)들이 난무했고 정파와 사파의 NPC들마저 호전적이고 거칠었다.
자칭 무림의 법도를 길드마다 세우고 다니며 자기들 입맛에 맞는 횡포를 부렸는데 아르콘 대륙보다 수위가 높았다.
“여기는 세력 구도가 어떻게 되는 거냐? 아는 대로 털어놔 봐.”
“흥! 그런 거 알아봤자 소용없어. 온갖 배신과 기습이 난무한 곳이니까.”
“알면 그딴 건 문제가 안 된다. 오히려 그럴수록 내가 유리해지지.”
선우의 말에 불나방과 코딱충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말문을 열었다.
“먼저 쿤타 대륙은 길드간의 세력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정파냐, 사파냐 골라야 하거든. 길드를 세우면 가장 먼저 정파를 선택할지 사파를 선택할지 물어보지. 이 중 정파를 선택하면 쿤타 대륙의 NPC들도 정파 무림인들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게 가능해. 하지만 사파 NPC들에게 걸리면? 위험할 수 있어. 이건 사파도 마찬가지고.”
“오, 그거 재미있겠는데?”
선우의 흥미가 더해졌다.
쿤타 대륙에는 무림의 세계관이 완성되어 있었다.
정파와 사파로 나뉘는 NPC들이 있었고 여기에 세외 세력들이 더해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교 세력들도 있다. 이놈들은 정파, 사파를 막론하고 모든 길드와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오~ 걔들은 뭐하는 애들이냐?”
“악당들이라고 보면 된다. 온갖 마공서들이 마교의 영역에 들어가면 가득하거든. 플레이어들 중 이거 구하려고 마교들과 손잡고 퀘스트 하고 무림을 혼란에 빠뜨리는 놈들도 많아.”
“으음~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로군.”
선우는 쿤타 대륙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코딱충은 기가 막히단 표정을 지었다.
“장난 하냐? 여기는 아르콘 대륙과 달라. 거기는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두 길드가 세력 싸움 하는 곳이었지만 무림은 아니라고. 정파와 사파는 단순한 길드 규모가 아니야.”
“길드 규모는 아니지만 어차피 길드들이 모여서 선택한 거잖아? 그리고 자기들끼리 으르렁대는 거고. 맞지?”
“그건 그렇지.”
“여기에 아까 뭐랬더라? 세외 세력들이 있다면 여기랑 손잡은 길드들도 많겠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세외 문파들은 쿤타 대륙에서는 비주류다. 주류는 언제나 정파와 사파에 해당된 문파 세력들이고.”
“거기다가 마교 놈들하고 손잡는 애들도 있다며? 그러면 길드 외에도 파티 규모나 솔플 하는 랭커들도 그럴 수 있지?”
“가능하지.”
“그러면 답은 나왔네. 우린 이놈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틈새 공략을 한다.”
“뭐? 미쳤냐?”
불나방과 코딱충이 아연실색했다.
선우는 자신 있었다.
쿤타 무림 세계의 모든 세력들이 다 선우의 타깃.
“여기서 다음 대륙으로 넘어가려면 뭘 해야 하는 건지 알고 있냐?”
“이거나 읽어봐라”
코딱충이 두루마리를 던졌다.
“이게 뭔데?”
“열어보면 정보 메시지가 들려올거야.”
선우가 두루마리를 열자 알림이 들려왔다.
[플레이어가 해야 할 것은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무림맹주에게 숨겨진 퀘스트를 받을 때까지 친분을 다지고 온갖 퀘스트를 할 것. 이건 말 그대로 무림맹의 손과 발이 되어 머슴살이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건 정파와 사파 중 한 곳을 선택하고 무림 전쟁을 일으켜 나머지 한쪽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갈리고 이긴 쪽은 공로를 인정받아서 다음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무림일통. 쿤타 대륙의 무림을 제패하고 절대 지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림의 전설을 남기면서 다음 대륙으로 진출 가능한 권한이 주어집니다.]
“오, 그거 재미있는데. 그러면 그중 한 가지만 제대로 할 줄 알면 쿤타 대륙에서 다음 대륙으로 넘어간다는 거군.”
“그렇지. 하지만 무림 세계에 적응된 플레이어들은 그냥 여기서 눌러앉는 놈들도 많아. 특히 무협소설 팬이었던 유저들이 더 그렇지. 여기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스트리밍 방송으로 돈 벌고 그러는 걸로 만족하거든.”
“좋아. 이제 쿤타 대륙에 대해 대충 감이 잡혔어.”
선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코딱충과 불나방에겐 불안감이 스쳤다.
가장 불안한 건 코딱충 이었다.
‘젠장, 이 또라이가 여기서 무슨 흉계를 꾸밀지 감이 안 잡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