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제110화
선우의 귓속말을 들으며 불독상어가 열혈독사의 위치를 확인했다.
‘어라? 진짜잖아.’
처음엔 선우가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는지 의심했다.
불독상어의 의심이 풀린 건 2가지 상황을 관찰한 뒤였다.
먼저 열혈독사의 근처에서 선우가 말한 방향에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것.
그 다음 선우의 말대로 마법사 플레이어의 공격이 주기적으로 열혈독사를 향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우연의 일치로 발생하는 거였다.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의 집단 난투극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마법 이펙트 효과로 번쩍이다 보니 헷갈릴 때가 많았다.
열혈독사를 노린 것이 아니라 마법을 썼는데 상대가 피하는 바람에 열혈독사에게 날아간 거였다.
선우는 이걸 관찰하고 역이용한 것.
불독상어는 선우의 귓속말을 확인하고 계속 열혈독사를 관찰했다.
마법사 플레이어들이 다른 곳에 벌어지는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일부러 열혈독사 쪽으로 레비아탄 길드원들을 유인하는 것 같았다.
‘저놈들이… 김선우의 스파이다? 뭐 아무려면 어때? 잘 됐지. 난 저 놈들을 이용해먹고 마지막엔 김선우를 제거하면 되니까.’
불독상어가 눈을 반짝이며 레비아탄 길드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모두들 잘 들어라. 열혈독사가 매직 미사일을 한 번 더 피하면 그때 기습을 해라.”
근처에서 전투하고 있는 레비아탄 길드원들에게 명을 전달했다.
한편 열혈독사는 선우의 귓속말을 듣고 있었다.
-야, 독사.
-꺼지라고 했지? 한 번 더 귓말 보내면 너 대기실 뒤집어서 죽여버린다.
-까불지 말고 내 말 들어봐. 널 살려주려는 거니까.
-뭐?
열혈독사는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는 와중 선우의 귓속말을 확인했다.
-이거… 진짜냐?
-걔가 왜 자꾸 널 공격하겠어? 조금 있다가 내가 방향을 알려주면 바로 검기를 날려. 그러면 무조건 레비아탄 길드 애들이 맞게 될 거야. 불독상어가 보낸 딜러들이지. 지금 네 측근 마법사랑 불독상어가 한통속이라고.
선우의 귓속말에 열혈독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팝콘소년 이 자식이…?’
아누비스 길드에서 마법사 랭킹 1위의 플레이어.
그가 바로 팝콘소년이었다.
뭐든지 싸움이 나고 트러블이 발생하면 끼어들지 않고 구경만 하면서 팝콘 먹는 걸 좋아하는 플레이어였다.
그런 성격을 잘 알기에 열혈독사가 의심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평소에 이렇게 적극적인 전투를 안 하는 놈인데… 왜 이렇게 적극적이야? 그것도 나한테만?’
사실 팝콘소년이 적극적인 건 아니었다.
그냥 레비아탄 길드원들이 워낙 개떼처럼 달려드니까 정신없이 전투를 할 뿐이었다.
코딱충이 자신을 따르던 무투가 클래스의 플레이어들을 한 팀 꾸려서 팝콘소년 제압에 나섰고 마법사들에게 버프를 주면서 딜러를 보강해서 총공격을 펼쳐왔다.
팝콘소년 입장에서도 지금 콜로세움에서만큼은 구경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것.
선우는 이미 망원경으로 콜로세움의 모든 전장 상황을 파악하면서 적재적소에 혼란을 일으켰다.
“딱충이가 열심히 패네. 그래, 그렇게 패다가 죽어보면 알겠지. 무슨 선택을 했는지를.”
선우가 혼잣말로 킬킬거리면서 망원경으로 계속 코딱충의 위치를 관찰했다.
코딱충은 어느 때보다 열심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아누비스를 꺾을 수 있다. 그리고 불독상어의 목을 날려버릴 거야. 속전속결. 불독상어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 마음을 놓는 버릇이 있지.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내가 아르콘 대륙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니까.’
코딱충의 머릿속엔 온갖 야망이 뱀처럼 꿈틀거렸다.
이걸 놓칠 리 없는 선우.
“딱충이에게 귓말을 보낼 타이밍이군.”
선우는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귓속말을 보냈다.
-야, 딱충아. 특급 정보 하나 알려줄까?
-꺼져. 개자식아.
-딱충이 너 진짜로 열혈독사랑 불독상어만 제거하면 이기는 줄 아냐?
-뭔 헛소리를 하려고 사기꾼 새끼가 안 꺼져? 귓말 보내지 마라.
-내가 한때나마 널 데리고 있던 주인으로서 특급 정보를 하나 풀어줄게.
-뭐? 주인? 이 새끼 넌 제일 마지막에 죽을 줄 알아. 그때까지 열심히 까불고 있어라.
-딱충아. 레비아탄 길드가 이기면 넌 불독상어를 치려고 할 거야. 근데 그런 널 노리는 애가 있을 건데 그걸 막을 수가 있을까?
선우의 귓속말에 코딱충이 흠칫 했다.
자신을 노리는 또 다른 적?
물론 선우의 거짓말이지만 코딱충의 귀는 이미 꿈틀거렸다.
-그게 뭔 소리냐?
-아누비스 길드에 마법사 플레이어가 바로 널 노리는 적이다. 누군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꽤 강한 놈이지.
코딱충은 선우의 귓속말을 들으며 계속 전투 중이었다.
“이야압!”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쌍검.
“흐읍.”
코딱충이 마나를 끌어올려 양쪽 팔뚝을 휘감았다.
투카앙!
쌍검을 막으면서 기를 발산시켜 부숴버렸다.
아이템이 손상되는 걸 보던 아누비스의 딜러들은 넋을 놓고 코딱충을 바라봤다.
“하아압!”
퍼퍼퍽!
코딱충의 손발이 딜러들을 사정없이 패버렸다.
그 다음 뒤에 쫓아오는 놈들을 피하며 선우에게 물었다.
-그게 뭔 소리냐? 자세한 정보를 말해라. 그러면 네놈을 죽일 때 레벨 다운을 면해줄 수는 있다.
-너라면 알고 있을 거다. 열혈독사의 측근들이 누구인지.
코딱충의 눈빛이 번뜩였다.
‘열혈독사의 측근이라면….’
그의 눈이 향하는 곳에는 팝콘소년이 있었다.
-설마 팝콘소년 말하는 거냐?
-응. 팝콘소년은 지금 열혈독사를 실수로 가장해서 죽이려고 하거든.
-뭐라고?
-걔는 그동안 내가 하는 걸 쭉 보면서 영감을 얻어서 음모를 꾸민 새로운 배신자지.
선우는 아무 생각 없이 막 지껄여댔다.
팝콘소년이라는 닉네임까지 처음 들어봤다.
하지만 상관없다.
코딱충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이미 선우의 귓속말에 코딱충은 다시 한 번 홀려버렸다.
“새로운 배신자?”
선우의 말을 100퍼센트 믿을 수는 없는 코딱충.
하지만 납득이 가는 정보였다.
“그렇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놈이 없을 리는 없어. 팝콘소년 저 자식도 틀림없이 나랑 비슷한 생각으로 길드 마스터 배신을 계획했을 거야.”
지금 콜로세움에서 벌어지는 아누비스와 레비아탄의 길드전은 단순한 길드전이 아니었다.
캐릭터 삭제가 걸렸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한 번 죽고 나면 앞으로 볼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다른 캐릭터로 새로 키워봤자 그 사이에 당사자는 훨씬 많은 레벨을 올려 앞서나갈 테니까.
“팝콘소년… 미리 제거해야겠군.”
코딱충의 눈빛에 욕망이 꿈틀거렸다.
아르콘 대륙의 지배자.
콜로세움의 왕.
랭킹 1위의 길드 마스터.
전설의 무투가.
이 온갖 수식어가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해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하하하!! 다 처죽여주마! 아하하!”
미친놈처럼 웃어대며 싸움을 해대는 코딱충.
그를 광견병 걸린 개처럼 바라보는 불독상어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 김선우의 개자식을 어떤 식으로 솎아내지? 틀림없이 날 노리긴 할 건데….”
사실 불독상어도 겉으로 내색 안 해도 코딱충의 위치를 끊임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콜로세움은 어떤 수단과 방법도 반칙이 아니다.
이기기만 하면 되고 패한 놈은 변명할 수도 없다.
물론 선우는 이 모든 것을 손 안에 주무르고 있는 제 3의 세력이었다.
“이제… 열혈독사한테로 가는 구만. 빨리 가서 콱 물어버려.”
선우가 말한 대로 불독상어는 원거리 딜러와 근접 딜러들을 꾸려서 열혈독사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팝콘소년의 매직 미사일 한 다발이 또다시 열혈독사를 맞출 뻔했다.
“야!!! 팝콘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의도가 뭐냐! 이 새끼야!!”
드디어 폭발한 열혈독사가 검을 빼들고 팝콘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예? 으아아!! 길드장. 왜 이래요? 정신 차려요!”
“정신은 네가 차려야지 새끼야! 감히 날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죽이려고 들어? 한 번은 실수라고 치자. 두 번까지도 실수라고 치자. 근데 세 번은 아니지 이 배신자 새끼야!”
“배신자라뇨? 무슨 말이에요?”
팝콘소년은 황당한 표정으로 열혈독사의 공격을 방어했다.
매직 실드를 펼쳐 열혈독사의 검을 막는 순간.
“이야압!”
“길드장! 뒤, 뒤.”
“하하. 안 속지롱~”
“진짜로 뒤!”
“응? 으어!”
열혈독사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날렸다.
파캉! 쯔겅!
불독상어가 보낸 딜러 부대가 날린 검기.
열혈독사가 피하는 바람에 팝콘소년의 매직 실드와 충돌했다.
파자자작-
쿠콰앙!
하얀빛이 번쩍이고 번개 줄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사라졌다.
“크읍….”
열혈독사가 몸을 일으켰다.
“저기다! 죽여라! 열혈독사를 제거해라!”
파바밧!
팝콘소년이 열혈독사를 쫓는 딜러들을 공격하려는 찰나였다.
“이야압!”
갑자기 뒤에서 날아온 발차기.
“읏!”
팝콘소년의 몸을 감싸던 로브가 펼쳐지면서 매직 실드가 생성되었다.
코딱충의 발을 튕겨내버린 매직 실드.
공중제비를 하며 착지한 코딱충이 바닥을 차고 날아들었다.
“죽어버려!”
“코딱충. 김선우의 스파이가 여기서도 설치고 있었냐!”
“닥쳐라! 열혈독사를 배신한 놈 주제에.”
“뭐? 그게 무슨… 으악!”
코딱충의 권격 스킬이 팝콘소년을 강타했다.
퍼퍽! 퍽! 퍼퍽!
그 사이 열혈독사는 레비아탄의 딜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불독상어는 선우의 귓속말을 듣고 미리 대기하던 탱커들에게 명을 내렸다.
“지금이다!! 감싸라!”
“우와아아!!”
“이런 젠장!”
열혈독사가 아누비스 길드원들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위치에 놓였다.
딜러 부대가 계속 몰이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근처 조형물 속에 숨어 대기하던 탱커들이 나타났다.
“으아압!”
모두 몸에 방어막을 두르고 열혈독사에게 돌진했다.
퍼컹!
“크윽!”
열혈독사가 검기를 날리며 공격했지만 탱커들의 방어벽이 몰려왔다.
“좋았어!! 독사를 잡았다!! 죽여버려!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빨리 끝내버려라!”
“이야아압!”
불독상어가 주먹을 불끈 쥐면서 외쳤다.
딜러 부대들이 열혈독사에게 총공세를 퍼부었다.
파지직!
서걱! 서걱!
“크아악! 이 망할 새끼들이!!”
열혈독사가 미친 듯이 칼질을 해댔다.
소용없었다.
그러기에는 탱커들의 방어막이 튼튼했다.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은 계속 소나기처럼 몰아닥쳤다.
열혈독사가 허겁지겁 물약을 들이켰다.
“야!! 뭐하고 있냐 이 새끼들아!! 나 안 보이냐!”
“어? 길드장! 야! 길드장이 위험에 처했다! 빨리 딜러들 보내!”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다급히 열혈독사 쪽으로 뛰어갔다.
불독상어가 환호했다.
“모두들 저놈들의 뒤를 공격해라!! 마법사들은 저놈들 앞을 막아!!”
불독상어의 명을 들은 레비아탄 길드의 마법사들이 아누비스 길드원들을 막아섰다.
“매직 볼!”
두우웅.
커다란 구체의 마법 결계가 형성되었다.
투슝!
대포알처럼 발사된 매직 볼이 점점 커졌다.
그리고 몰려오는 아누비스 길드원들을 덮쳤다.
“피해라!! 이건 속박 마법이다!”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사방팔방 흩어지는 사이.
“지금이다!! 각개 격파로 조져버려!”
불독상어가 외쳤다.
그가 명령을 내릴 때마다 착착 전개되는 전투.
그 배경엔 선우의 귓속말이 있었다.
‘김선우 이 자식 참 신기한 놈이라니까. 정말 하라는 대로 하니까 꼭 짜고 치는 것처럼 술술 풀리네. 어떻게 이런 걸 미리 예측하고 알아내는 거지? 적만 아니었다면 내 밑에 두고 싶은 놈인데… 아깝군.’
불독상어는 선우의 능력에 새삼 놀라워했다.
한편 선우는 새로운 작전을 꾸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