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제106화
선우의 계략은 가랑비에 옷 젖듯이 효과를 드러냈다.
기사가 하나 둘 나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선우를 향해 쏠렸다.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는 다시 혼란에 빠졌고 결국 불독상어는 자신의 전략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선우… 이 빌어먹을 새끼….”
“길드장. 이제 더는 입씨름할 필요가 없습니다. 캐삭빵을 건 길드전 각오하고 있습니다. 탈퇴할 놈들은 탈퇴하라고 하십쇼! 왜 우리가 질 거란 것을 미리 깔고 들어가야 한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겁쟁이들이 레비아탄을 버리고 탈퇴해도 저는 끝까지 남아 콜로세움에 가겠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긴다면 그야말로 초대박이죠. 아누비스 저 양아치들을 이 기회에 다 청소해버리시죠!”
“저도 남겠습니다!”
“저도요!”
“아누비스를 치고 김선우를 없애는 거라면 저도 남겠습니다!”
레비아탄 길드원들의 기세가 불타올랐다.
선우가 이들을 궁지로 몰아버리자 결국 레비아탄이라는 생쥐 떼가 아누비스라는 고양이를 물어뜯을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불독상어는 결단을 내렸다.
이미 한 차례 말려봤지만 열혈독사는 들은 척도 안 한다.
아누비스 길드는 이 기회에 레비아탄을 없애거나 남은 잔당을 흡수시킬 셈이었다.
불독상어도 그걸 알고 있었다.
“좋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죽기 살기다. 확률은 반반이다. 야~! 기자들 불러. 공식적으로 김선우 그 자식이 던진 떡밥을 확 씹어 먹어주겠어. 캐삭빵을 건 길드전을 준비해라! 전쟁이다!”
“전쟁이다!!!”
“와아아!!”
* * *
한편 선우는 인피니티 로드에 들어왔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저마다 선우를 타박했다.
“야!! 너 제정신이냐? 상어 형을 저따위로 모함을 해?”
코딱충이 가장 먼저 선우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었다.
선우의 목이 앞뒤로 짤막하게 흔들렸다.
“진정해. 딱충아. 난 네 길드장을 위해서 말한 거니까.”
“닥쳐! 인마! 누가 그딴 입에 발린 구라를 믿을 거 같냐?”
코딱충은 자신이 쫓기면서도 불독상어와의 의리를 놓긴 힘들었다.
언제든지 기회만 된다면 레비아탄으로 들어가 이 모든 사태를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우가 끼어드는 바람에 가면 갈수록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었다.
반면 불나방은 느긋했다.
“야, 코딱충. 흥분하지 말고 지켜봐라. 김선우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나름 생각이 있는 놈이잖아.”
“어쭈? 생각이 있으시다? 아누비스 길드가 레비아탄 길드를 캐삭빵 시킬거라고 당연하게 여기나봐?”
“당연하지. 설마 너희 만년 2등 길드가 아누비스를 캐삭빵 시킬 거라 생각한 거냐? 설마~”
“이 자식이!!”
“야, 야! 진정들 해!”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코딱충과 불나방의 멱살잡이를 뜯어말렸다.
“선우야, 네가 좀 말려봐.”
“놔둬. 레비아탄과 아누비스는 이제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운명의 대결로 접어들었다. 쟤들이 싸워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고.”
“으아아! 김선우, 죽여버린다!”
“배신자에 스파이 누명 씌운 놈이 주제 파악을 또 못하는군. 딱충이 너 여기서 아웃시켜줄까? 지금이라도 레비아탄을 도와주러 콜로세움 가겠다고 투항하던가.”
코딱충은 선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 그렇지! 지금이야말로 내가 누명을 벗을 절호의 기회야. 레비아탄을 도와주러 왔다고 하면 되는 거야!”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갑자기 정색하며 물었다.
“너, 진짜 거기로 다시 가려고?”
“가자마자 죽으면?”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누구냐? 레비아탄 길드 마스터의 오른팔이자 서열 2위 코딱충이다.”
“그래~ 그래~ 빨리 가렴.”
선우가 파리 내쫓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코딱충이 피식 웃음을 뱉으며 선우에게 말했다.
“푸훕, 야, 김선우. 너도 방금 뜨끔 했지? 내가 설마 이 생각을 할 거라고 전혀 예상 못한 눈치인데?”
선우는 말없이 씨익 웃음만 지었다.
코딱충이 모처럼 무언가 알아냈다는 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뿌하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김선우 얘 똑똑한 척 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멍청한 구석이 있다니까. 역시 내 직감이 맞았어. 지금이야말로 레비아탄 길드를 내가 구하고 진짜 길드 마스터가 될 수 있는 기회야.”
코딱충에겐 그동안 숨겨 왔던 욕망이 들끓기 시작했다.
레비아탄 길드 마스터.
불독상어 밑에서 오른팔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젠 지겨웠다.
아르콘 대륙의 만년 2위 길드의 만년 2등 랭커 소리도 지긋지긋했다.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그래! 역시 아르콘은 반란과 배신의 땅이지. 레비아탄 길드를 이 참에 내가 확 먹어버리는 거다. 불독상어 이 새끼… 그토록 충성했던 날 의심하고 껌처럼 뱉어버려? 도와주는 척 하고 콜로세움에서 뒤통수 전력으로 쳐주마.’
코딱충의 눈빛엔 욕망이 가득해졌다.
웃음기가 점점 괴랄해지는 코딱충.
선우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야, 쟤는 내버려두고 난 잠깐 어디 갔다 올 데가 있으니까 당분간 숨어 있어.”
“언제까지 숨어 있어야 되는 건데?”
“내가 안전하다고 할 때까지.”
선우의 말을 듣고 코딱충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야, 김선우. 이제 너 따윈 필요가 없어졌어. 이미 모든 플랜이 내 머릿속에 딱! 자리잡았다. 불나방. 나랑 손잡지 않을래? 날 따라서 레비아탄 길드에 투항하자. 그리고 아누비스와의 길드전을 돕겠다고 해. 콜로세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불독상어를 제거하고 레비아탄 길드를 접수하는 거다.”
“뭐라고?”
불나방과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코딱충을 흐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게… 너 혼자 가능할까?”
“맞아. 선우라면 몰라도.”
이 와중에 자신을 선우와 비교를 하자 열등감이 폭발하는 코딱충.
“닥쳐!! 감히 날 저 근본도 없는 양아치 사기꾼 놈과 비교하는 거냐? 수준 떨어지는 놈들. 분수를 알고 살아라.”
코딱충은 이미 머릿속에 자신은 레비아탄 길드의 마스터가 되었다.
‘이런 수가 있었을 줄이야… 크흐흐. 기다려라. 레비아탄. 나 코딱충이 길드의 역사를 새로 써줄테니까.’
“난 갈 테니까 잘 들 있어라. 멍청한 자식들. 그리고 불나방! 넌 어차피 아누비스로 가봤자 걔들은 절대 안 받아줄 거다. 열혈독사? 그 무식한 놈은 이미 널 버리기로 작정했어. 걔 한 번 마음먹은 거 바꾸는 거 봤냐? 못 봤지? 네 꼴이 어떻게 될지 저 미래에서 훤히 보인다. 에휴, 이 몸은 꿈을 이루러 가보겠다.”
코딱충은 마지막까지 비웃음을 흘린 뒤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과 불나방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코딱충이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금 저 병신 뭐라고 지껄인 거냐?”
“난들 알아? 지 대가리에 뭐 엄청난 전략이 들어있나 보지.”
“만년 2등짜리가 1등 될 기회가 왔으니 눈 돌아가는 거 오싹하네.”
“응? 야, 근데 선우 어디 갔냐?”
“어라, 진짜로 갔네.”
다들 코딱충을 바라보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선우는 없었다.
* * *
선우가 온 곳은 아르콘 대륙의 버려진 대지 ‘뼈들의 무덤’ 이었다.
뼈들의 무덤은 온갖 몬스터들의 사체가 뒹굴고 있었으며 뼈로 가득한 땅이었다.
주로 언데드 계열의 몬스터들이 많이 출몰하지만, 사냥 난이도는 높은 반면에 드롭 되는 아이템이나 골드 등 보상이 짜서 가성비 최악의 사냥터로 불렸다.
보상도 적고 사냥도 어렵고 위험한 곳에 굳이 가려는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선우가 온 이유는 단 하나.
시스템 메시지를 들었기 때문이다.
[뼈들의 무덤에는 아르콘 대륙의 3번째 오크 종족이 살고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오크 부하를 찾기 위해서였다!
선우가 들은 메시지는 조금 전 본 브레이커 길드와 코딱충이 서로 실랑이를 벌이던 순간이었다.
“이곳에 ‘부스러진 해골’ 부족이 살고 있다던데.”
부스러진 해골.
황금 안개 부족,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에 이어 세 번째로 언급된 오크 부족이었다.
선우는 이들은 어떤 능력을 가진 부족들인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곧 벌어질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길드전에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부스러진 해골들아~ 내게 오렴~”
선우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다녔다.
근처에 가끔 보이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오크 부족들만 찾아다닌 선우.
“와, 여기 진짜 넓네. 무슨 사냥터가 이렇게 넓냐?”
뼈들의 무덤은 아프리카 대초원처럼 넓었다.
“안 되겠다. 베카를 불러서 찾아보라고 해야지. 혹시 얘가 부스러진 해골들에 대해 알 수도 있으니까.”
선우는 오랜만에 베카를 소환했다.
관뚜껑을 박차고 나온 베카가 외쳤다.
“피!!!”
“야, 베카. 안녕?”
“응? 오라버니. 나 목말라.”
“베카. 너 혹시 부스러진 해골이란 부족에 대해 아는 거 있냐?”
“으응~? 뭐라고?”
베카의 초롱초롱했던 두 눈이 불그스름하게 핏빛으로 물들었다.
“부스러진… 해~골~?”
“응, 야, 왜 그러냐? 걔들 이랑도 사이가 안 좋아?”
“그 뼈다귀 성애자식들!! 세상 모든 피는 다 먹어도 그 더러운 자식들 피는 안 먹지!!”
사이 안 좋다는 건 확실히 알았다.
“내가 걔들을 지금 찾고 있거든. 너 혹시 걔들 냄새 같은 걸 좀 맡거나 박쥐 데리고 초음파 쏴서 위치 좀 알려줘.”
“오라버니, 걔들을 왜 찾아?”
“내가 지금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부하들 쪽수가 딸려서 그래. 일단 애들 좀 커버해줄 병력도 필요하고. 황금 안개랑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만 갖고는 놈들을 압도할 수가 없거든.”
“뭐~ 그런 건 그 변태들이 제격이긴 하지.”
“베카 네가 걔들이랑 무슨 사이인진 모르겠는데 일단 날 위해서 걔들 좀 찾아주라.”
“흐음~”
선우의 말에 베카는 잠깐 망설였다.
“오라버니 부탁이니까 이번엔 특별히 해주지.”
“고맙다. 베카야.”
“대신 그 변태들을 찾아주면 피 많이 먹여줘야 돼.”
“물론이지.”
베카가 흡혈박쥐를 불러내더니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 * *
한참 뒤에 베카의 흡혈박쥐가 나타났다.
“오라버니. 찾았어. 데려다줄게.”
“수고했다. 베카.”
흡혈박쥐가 선우의 양 어깨를 붙들고 날아올랐다.
뼈들의 무덤의 황색 대지가 끝없이 펼쳐졌다.
“다 왔어. 여기야.”
“오, 고맙다. 베카.”
베카가 선우를 데려온 곳은 뼈들의 무덤에서도 북서쪽으로 한참 들어가야만 하는 거대한 협곡이었다.
협곡은 몬스터의 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부스러진 해골 놈들은 저 안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어. 아마 뼈들의 무덤이 너무 넓어서 눈에 잘 띄지가 않지.”
“걔들은 성격이 어떤데?”
“안 좋아.”
황금 안개 부족들 이후로는 어째 만나는 오크 부족들 상태가 왜 이럴까?
선우는 베카의 안내를 받아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
흡혈박쥐가 초음파를 발산하면서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달그락.
무언가 밟히는 소리가 선우 귀에 들렸다.
“음?”
파앗!
“으왓!”
선우가 재빨리 몸을 날려 옆으로 굴렀다.
베카와 흡혈박쥐가 방향을 돌려 선우를 바라봤다.
“크르르르… 크히엑!”
거대한 하이에나가 군침을 흘리며 선우를 노려봤다.
그 위에는 회색 피부에 검은 줄무늬가 듬성듬성 그려진 오크 한 마리가 타고 있었다.
누리끼리한 눈에는 포악한 살기로 물들었고 넓적한 주둥이에는 손목만한 굵기의 송곳니가 불쑥 튀어나온 놈.
“저놈들이야. 오라버니가 찾는 부스러진 해골 부족.”
“우웨에히히히!”
“퀴히힉!”
선우와 베카의 뒤쪽에서도 거대한 하이에나들이 등장했다.
하이에나 특유의 웃음소리가 협곡 안에 울려 퍼졌다.
“휴우, 이 부족도 피곤한 놈들일 거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