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제103화
선우가 등장하자 독구렁이와 물개왕이 째려봤다.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에헴.”
선우가 뒷짐을 지고 일부러 퍼포먼스를 보이며 원탁의 바위에 앉았다.
그것도 가장 상석에.
“야, 김선우. 왜 거기에 앉고 지랄이야? 네가 뭐 대장이야?”
“맞아. 이리 내려와서 우리랑 마주 보고 앉아라.”
“여기가 내 자리니까 앉았다. 왜?”
“뭐? 이게 진짜.”
“야, 독구렁이. 참아. 초반부터 저 자식 수법에 넘어가면 안 돼.”
물개왕이 다시 앉자 독구렁이가 말문을 열었다.
“자, 이제부터 배틀 스트리밍을 시작하지.”
사실 배틀 스트리밍이란 건 없다.
단지 우연을 계기로 선우로 인해서 방금 생겨났을 뿐이다.
“먼저, 김선우보다 우리가 먼저 발언하겠다. 이의 없지?”
“해라.”
순순히 대답하는 선우.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물개왕이 약간 긴장했다.
독구렁이가 눈치를 줬다.
‘쫄지 마, 이 바다 뚱띵아.’
물개왕이 침을 삼키면서 말문을 열었다.
“난 아누비스… 아니지, 레비아탄 길드 마스터 불독상어를 대변하러 나온 물개왕이라고 한다.”
“난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 열혈독사를 대변하러 나온 독구렁이다.”
“…….”
선우는 아무 말 없이 물개왕과 독구렁이의 대답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야, 김선우. 너도 말해.”
“난 말할 필요가 없지.”
“그게 뭔 소리냐?”
“나는 말하지 않아도 이 방송을 지켜보는 모든 시청자님들이 다 아니까.”
선우의 말이 틀리진 않다.
하지만 물개왕과 독구렁이는 어딘가 시작부터 선우에게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은 길드를 대신하여 원탁의 바위에 앉은 말싸움꾼들.
어찌 보면 길드의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책임감을 진 플레이어들이 처음부터 순순히 지고 들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건방진 자식. 감히 처음부터 기 싸움을 걸어?’
독구렁이가 눈을 번쩍이며 논쟁의 포문을 열었다.
“김선우. 우리 길드장한테 사과해라.”
돌직구가 선우에게 날아갔다.
“내가 걔한테 잘못을 했던가?”
가볍게 걷어내는 선우.
“뭐? 걔? 너 지금 독사 형님한테 걔라고 했냐?”
“걔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시작부터 논점을 교묘하게 다른 쪽으로 돌리는 선우.
독구렁이는 결국 선우에게 넘어가버렸다.
열혈독사의 이미지를 선우가 망쳐놨다는 걸 꺼내서 모조리 공격으로 몰아붙이려는 것이 독구렁이의 초반 전략.
하지만 선우는 열혈독사를 걔라고 표현하면서 도발을 했다.
독구렁이는 길드의 충성심이 강한 플레이어.
그에게 있어 자신의 길드 마스터를 걔라고 부르는 것은 모욕과 다름없는 일.
“당장 사과해라. 독사 형님을 걔라고 부른 것을.”
“걔는 내 적이야. 넌 길드전할 때 서로 존중하면서 붙냐? 아유~ 죄송한데 딜량 좀만 줄여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한데 힐 좀 부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한데 아이템 드시지 말고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이러면 잘도 재밌겠네.”
선우의 표현을 들은 시청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유 하는 거 보소 ㅋㅋㅋㅋㅋ
-역시 예상대로 방장님 보는 게 젤 재밌네 ㅋㅋㅋㅋㅋㅋ
-미친 ㅋㅋㅋㅋㅋ X나 웃겨 ㅋㅋㅋㅋㅋ
-틀린 말은 아니지 방장님한테 열혈독사는 자길 죽이려는 적인데 온갖 쌍욕 해도 정당방위 각 ㅇㅈ?
-독구렁이 저거는 머리통이 안 굴러가는 놈이네. 지들한테나 길드 마스터지 방장님이 아누비스 길드원이냐? 걔라고 하든 얘라고 하든 방장님 마음이지 뭔 상관?
뜻하지 않은 초반 공격이 독구렁이에게 쏠렸다.
독구렁이의 스트리밍 채팅방에는 선우처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방송을 지켜보던 아누비스 길드원들에게 귓속말이 쇄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실시간으로 선우의 채팅방 동향을 살피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야! 멍청아! 지금 독사 형을 걔 라고 표현한 걸 따지는 게 중요해?
-돌대가리냐? 말싸움 하랬더니 무슨 예의 타령이야! 그냥 김선우 까버리라고!
독구렁이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김선우 네가 아누비스 길드에 했던 모든 만행을 지금부터 다 까발려주겠다.”
선우는 대답하지 않고 빤히 쳐다만 봤다.
물개왕과 독구렁이가 눈치를 서로 주고받았다.
‘네가 먼저 해.’
이번엔 물개왕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야, 김선우. 너 코딱충을 어떻게 포섭했냐?”
선우는 독구렁이와 물개왕을 원탁의 바위에 온 뒤로 잠자코 관찰만 했다.
그리고 지금은 파악을 끝냈다.
‘이것들 뭐 말빨 세니 마니 하길래 기대했는데 순 멍청이들이잖아. 잘 됐네. 얘들 갖고 써먹으면 딱이겠어.’
선우는 혼자 피식거리며 웃고 있었다.
“왜, 왜 웃냐? 이게 웃겨? 죽고 싶냐?”
물개왕은 사실 속으로 선우를 엄청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르콘 대륙에서 아누비스 길드와 세력싸움을 하던 레비아탄 길드.
그 길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불독상어와 길드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망가졌다.
선우가 등장하면서부터.
물개왕은 선우의 노림수가 뭔지 파악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지금 웃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지 짐작도 못했다.
이걸 알고 있는 선우의 머릿속에 재미있을 거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뻥을 좀 쳐볼까?’
선우가 슬쩍 대답했다.
“난 코딱충을 포섭한 적 없다. 이건 아누비스가 나에게 덮어씌운 음모지.”
“아누비스가 덮어씌운 음모?”
“지금 뭔 헛소릴 하는 거냐! 김선우! 뻥 치지 말고 사실대로 대답해라! 아누비스 길드를 여기다 끼워 넣지 말라고!”
“봤지? 쟤 지금 막 흥분하는 거. 저게 증거야. 찔리는 게 있으니까 저래.”
선우의 말을 듣고 있던 물개왕의 눈빛이 독구렁이를 향했다.
“야, 인마! 날 왜 봐? 정신 차려. 저 자식이 지금 아누비스 길드를 모함하고 있는 거라고.”
선우가 다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물개왕이라고 했지? 잘 생각해봐. 아누비스는 레비아탄 길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손가락으로 머리를 콕콕 찌르는 선우.
물개왕이 혼자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지. 스파이를 먼저 심어서 레비아탄 길드를 와해시키려고 한 적도 있었고.”
“야, 물개왕! 정신 차리라고! 그건 옛날 얘기다. 과거 일을 왜 지금 들추는 거냐? 지금 우린 김선우의 실체를 폭로하려고 나온 거다.”
선우는 독구렁이를 무시하고 물개왕을 계속 공략하기 시작했다.
“개왕아. 잘 들어봐. 나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아누비스가 레비아탄이 잘 되기를 바라겠냐? 너네 길드 삼키려고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만 엿 보는 애들이잖아. 그런 애들이 갑자기 왜 너네랑 동맹을 하지? 왜일까? 생각해봐.”
물개왕은 갑작스런 선우의 공격에 혼란스러워졌다.
선우는 치밀했다.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의심을 품게 만들었다.
선우가 생각해 보라고 말할 때마다 물개왕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정답을 눈앞에서 놓치는 법이니까.
특히 아누비스 길드가 레비아탄 길드를 스파이로 혼란에 빠뜨린 적이 몇 번 있었기에 선우의 말은 더욱 설득력을 가졌다.
그리고 독구렁이의 민감한 반응까지.
“닥쳐! 김선우! 지금 당장 그 주둥이를 비틀어버리기 전에!”
“저거 봐라. 저거 봐. 개왕아. 내 말 명심해. 아누비스는 너희 레비아탄을 지금도 노리고 있어. 너네 길드가 어떤 길드냐? 아르콘 대륙의 2위지만 잠재력은 1위 아니었냐?”
“그, 그랬지.”
물개왕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왜 아누비스가 레비아탄 길드에 스파이를 심었을까? 그건 바로 레비아탄과의 전면전이 무섭기 때문이지.”
선우는 사실 레비아탄과 아누비스 둘 중 누가 이기든 지든 관심도 없다.
그냥 아무거나 툭툭 던지면서 물개왕을 흔들어놓을 뿐이다.
물개왕은 선우의 말에 무언가 호감이 느껴졌다.
“그건 맞아. 나도 비슷한 걸 느낀 적이 있어. 레비아탄과 전면전을 하는 게 무서우니까 스파이를 심었을 거라고. 나도 그런 생각한 적이 있어! 지금 생각났어!”
독구렁이가 원탁의 바위를 손바닥으로 쾅 하고 내리쳤다.
“야! 이 멍청한 해산물 돼지 새끼야!! 비슷하긴 뭐가 비슷해! 뭘 느껴! 너 같은 미련 뚱땡이 자식이! 그리고 뭐? 아누비스 길드가 레비아탄과 전면전 하는 걸 무서워해? 푸하하! 아르콘 대륙의 몬스터가 비웃는다.”
독구렁이가 참다 못한 나머지 물개왕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이걸 지켜보던 아누비스 길드원들과 열혈독사는 기겁했다.
“야! 저거 왜 저러냐?”
“지금 귓속말로 진정시키고 있습니다. 형님.”
“아니! 진정이고 나발이고 지금 저 자식이 공격해야할 건 김선우잖아! 근데 왜 연합하고 나온 물개를 공격하냐고!”
“그게 저… 일단 아누비스 길드를 자꾸 김선우가 모함하잖습니까? 근데 물개 저 멍청한 놈이 거기에 동조하고 있으니 열이 받는 거죠. 레비아탄 길드가 무서워서 스파이를 심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 같아도 열 받겠습니다. 형님.”
심지어 같이 지켜보던 아누비스 길드원들까지 독구렁이의 심정에 공감하고 있었다.
열혈독사 또한 조금씩 공감하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아누비스가 레비아탄 길드랑 한판 붙는 게 무서워서 스파이를 보낸 거다? 아니 이것들이 설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형님. 독구렁이를 말려야 되는 게 아니라 본보기로 물개왕을 없애버리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열혈독사와 아누비스 길드원들은 단순무식한 성격답게 감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희들 말이 일리가 있어. 야, 독구렁이한테 귓속말 보내라. 배틀 스트리밍에서 대화는 끝났다고. 이제 몸으로 실력 차이를 증명하라고 해. 아누비스 길드의 위엄을 김선우 방송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시간이 온 거다.”
한편 선우는 독구렁이의 흥분을 역이용 하고 있었다.
“야, 구렁아. 너 개왕이랑 붙으면 지냐?”
“뭐? 이 새끼가 지금 뭔 헛소릴 이렇게 화끈하게 하냐? 내가 진다고? 저 돼지한테?”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개왕이한테 그냥 말로만 하니까 속으론 좀 무서워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 있던 물개왕은 속으로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 뭐 내가 쟤보다 좀 세기는 하지. PVP 승률도 더 높고.”
“아, 그랬구나. 어쩐지….”
선우는 발바닥을 벅벅 긁으면서 거들었다.
물개왕과 독구렁이는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 플레이어들이었다.
이걸 눈치 챈 선우는 서로 자존심을 바느질로 풍선 터뜨리는 것처럼 콕콕 찔러줬다.
결과는 선우의 생각대로였다.
선우를 공격하려고 나왔던 폭로 방송이 갑자기 물개왕과 독구렁이의 싸움으로 흘렀다.
독구렁이가 물개왕을 째려보면서 대답했다.
“야, 물돼지. 너 죽고 싶냐? 누가 누구보다 세다고? 한판 뜰까?”
“뭐? 물돼지? 너 아까부터 나한테 뚱땡이니 해산물 어쩌고 할 때 내가 그냥 참아줬던 거 모르냐? 이게 봐줬더니 주제 파악을 못하네.”
“맞아, 맞아. 나도 아까 보니까 개왕이가 많이 참아주더라. 개왕아, 내가 그거 보고 눈치 챈 거야. 보통 센 놈들이 약한 놈들 개길 때 봐주고 그러잖아.”
물개왕은 선우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헷갈리는 말에 괜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우쭐거리는 마음이 들면서 물개왕이 키득키득 웃었다.
“뭐, 내가 세니까 봐준 것도 있지.”
그리고 독구렁이는 폭발해버렸다.
“야!! 물돼지!! 일어나! 여기서 PVP 한 판 뜨자!! 길드의 자존심을 걸고 캐삭빵을 하는 거다!”
“어쭈? 좋아~ 나도 바라던 바다. 안 그래도 너 마음에 안 들어서 캐삭빵 한 번 할까 싶었는데 잘 됐네. 나와. 지렁아. 넌 이제 끝났어.”
선우는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면서 말리는 척을 했다.
“야~ 야~ 왜 그러냐? 굳이 캐삭빵까지 할 필요 있냐?”
“닥쳐! 김선우. 저 자식 없애면 그 다음은 네 차례니까 목 씻고 대기해라.”
“야, 독지렁이. 사라지는 건 너지. 그 다음엔 아누비스가 사라질 거니까 기대하라고.”
“아~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군. 물돼지 널 캐삭빵 시키는 대로 아누비스 길드는 레비아탄 길드 전체를 캐삭빵 걸고 길드전을 신청할 거다. 콜로세움에서 구경이나 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