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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98화 (98/200)

# 98

제98화

불나방한테 온 귓속말을 차분히 읽고 있던 코딱충.

“야, 뭔데? 뭐라는데?”

선우는 마침 주문한 용머리 국밥을 떠먹고 있었다.

“…얘는 또 왜 이러는 거야?”

“뭐냐니까?”

코딱충은 황당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누비스 길드로부터 도망치는 중이라는데?”

“왜?”

선우는 계속 용머리 국밥을 훌훌 말아먹고 있었다.

“어~ 맛있네. 이거.”

불나방의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는 건 코딱충 뿐이었다.

사실 선우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남 일이니까.

“야, 야. 김선우. 지금 불나방이 막 귓속말을 보낸 거 다 읽어봤는데 얘도 지금 아누비스에서 스파이 의심을 받고 있데.”

“그으래?”

선우가 용머리 국밥을 한 입 가득 넣고 있었다.

“야, 관심 좀 가져라. 얘가 지금 누구 때문에 쫓기는 줄은 아냐?”

“누군데? 후루룹.”

“너 때문이잖아! 김선우 스파이라고 열혈독사가 다짜고짜 불나방 무식하게 때려 갈겼다는데.”

불독상어와 열혈독사는 성격 자체가 달랐다.

코딱충에게 인간적으로 대하던 불독상어와 달리 열혈독사는 화나면 단순 무식해졌다.

불독상어로부터 불나방이 김선우 스파이일 확률이 높다면 일단 확인을 해야 순서다.

하지만 열혈독사에게 그런건 없었다.

그냥 무작정 잡아다 고문하면서 실토하라고 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물론 선우는 그런 것조차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 왜 다들 자기가 보낸 스파이라고 책임지라고 따지는지 이해가 안 갔다.

선우가 한 건 그저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길드가 서로 스파이를 심어놨다고 뻥을 친 거 밖에 없었는데.

“야, 불나방이 지금 너 찾는다. 어떻게 할래?”

“알려주지 마. 자기 알아서 하라고 해. 너 하나 케어하는 것도 솔직히 귀찮은데 내가 걔까지 떠맡아야겠냐?”

선우의 냉담하고 차분한 반응.

코딱충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불나방의 귓속말을 받고 있었다.

“야, 얘 지금 심각한가봐. 아누비스 애들이 포획령을 내린 게 아니고 척살령을 내렸다는데?”

“내가 내렸냐? 걔네 두목이 내렸겠지. 그리고 내가 걔 스파이 시킨 적이 없는데 왜 나더러 자꾸 책임지래?”

선우는 당당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길드 사이의 스파이가 있다는 걸로 혼란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스파이가 있는 건 거짓이지만.

코딱충이 이런 내막을 알 턱이 없었다.

이건 선우 밑에 있는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으니까.

코딱충은 그저 불나방이 귓속말로 퍼부어대는 욕설을 흐린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야, 김선우. 얘도 일단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네가 시켰건 안 시켰건 일단 선의의 피해자잖아.”

“누가? 불나방이? 날 만나면 어떻게 한다는데? 말해봐.”

“…그게 그러니까….”

코딱충이 머뭇거렸다.

선우를 만나면 껴안아주겠다는 말을 할 리는 없었다.

“에이~ 괜찮으니까 말해봐. 불나방 지금 너한테 뭐라는데?”

“이거 진짜 있는 그대로 읽어줘도 되냐?”

“응. 그걸 알아야 내가 불나방을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선우가 시키는 대로 코딱충은 불나방의 귓속말을 읽기 시작했다.

“야, 코딱충. 너 지금 어디냐? 나랑 같이 김선우 잡으러 가자. 이 새끼 때문에 내가 지금 스파이 누명을 썼어. 김선우 이 X자식이 날 덮어 씌웠다고. 이 X새끼가! 감히 날!! 죽여버릴 거야! 김선우 어디 있는지 아는 거 없냐? 나 지금 쫓기고 있다. 척살령이 떨어졌어! 김선우 때문에 나 완전 X됐어!”

“아아, 그만그만.”

선우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손가락으로 양쪽 귀를 틀어막으면서 눈을 감았다.

“이 정도면 대충 분위기 짐작 가지?”

“응. 감 왔다.”

선우는 다시 숟가락으로 용머리 국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어떻게 할 건데?”

“걔는 버리자.”

“뭐라고?”

코딱충이 놀랐다.

“왜? 얘도 지금 욕을 해서 그렇지 절실하다고.”

“절실한 놈이 날 죽이겠다고 어딨냐고 물어보냐? 걔는 글렀어. 그냥 타 죽게 내버려.”

선우의 반응에 코딱충은 난감했다.

“야, 불나방이 계속 귓속말 보내는데 얘 지금 심각한 가봐.”

“죽게 놔두라니까. 만약 걔가 내 도움이 절실한 거라면 마음가짐을 반듯하게 새로 하고 날 찾아오라고 해.”

“어떻게?”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겠냐고 물어봐.”

“그걸 하겠냐?”

“목말라 죽을 거 같으면 사막에서도 우물 파려고 하는 게 사람이다. 해봐.”

코딱충은 선우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야, 불나방 지금 욕 수위가 엄청 하드코어 해지는데. 나더러 너랑 같이 있냐고 물어본다.”

“같이 있다고 해. 너도 스파이 누명 써서 살려고 날 찾아왔다고 사실대로 얘기해.”

“뭐 인마? 내가 살려고 찾아온 게 아니라 널 잡아다가 해명을 시키려고….”

선우가 먹던 숟가락을 위로 들어올렸다.

“너도 내 도움이 필요 없으면 저 쪽 들어온 입구로 겸손하게 나가렴.”

선우의 숟가락이 코딱충이 들어온 포장마차 입구를 가리켰다.

말없이 선우와 입구를 힐끔거리던 코딱충.

“아, 알았어. 네가 시키는 대로 할게.”

선우는 다시 국밥을 먹었고 코딱충은 불나방과 귓속말로 대화를 했다.

“야, 김선우. 불나방이 네가 하라는 대로 하겠대.”

“그러면 오라고 해. 여기로.”

“알았다.”

“만약에 여기 와서 불나방이 깽판을 치려고 하면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뭐?”

“내 도움 필요한 거 아니었어?”

“아, 그렇지. 알았다.”

코딱충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용머리 국밥 맛있다며 한 그릇 더 시키는 선우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었다.

레비아탄 길드 역시 아누비스처럼 벨론 대륙부터 아르콘 대륙까지 온갖 양아치 짓을 서슴지 않고 살아왔다.

‘젠장, 나도 양아치 짓을 맨날 하고 다녔다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 김선우 저 자식은…’

양아치 짓만 하다가 자신이 당하기 시작하자 적응이 안 되는 코딱충 이었다.

“야, 딱충.”

“응? 왜?”

“너도 뭐 하나 시켜라. 여기 용머리 국밥이 끝내줘. 드래곤 육수로 우려냈는데 몸에 좋대.”

선우가 새로 나온 용머리 국밥을 보여줬다.

새끼 드래곤의 대가리가 포효하듯 장식처럼 꾸며져 있었고 하얀 육수에서 우러나온 붉은 용 고기가 듬성듬성 썰어져 있었다.

그 위에 레몬 빛깔의 쌀알이 가득 적셔져 있었는데 국물에서 나오는 향이 기가 막혔다.

“나, 나도 그럼 한 그릇만.”

“여기 용머리 국밥 추가요!”

* * *

선우가 있는 포장마차의 문이 발칵 열렸다.

“흐어… 흐어….”

불나방이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적셔졌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전투가 꽤 있었는지 피로 얼룩진 칼을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불나방.

“어, 불나방. 여기다.”

코딱충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용머리 국밥이 놓여 있었다.

불나방의 시선이 코딱충 옆에서 밥을 먹는 플레이어로 옮겨졌다.

어디서 본 거 같은 낯익은 뒷모습.

“김선우….”

불나방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쥔 채로.

코딱충이 밥을 먹다가 재빨리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야, 불나방. 일단 내 말을 들어봐.”

“비키라니까.”

“너랑 나 둘 다 스파이 누명 벗어야 할 거 아냐?”

“그러니까 비키라고.”

“스파이 누명 벗으려면 뒤집어씌운 놈이 벗겨줘야 될 거 아니냐.”

코딱충의 말을 들은 불나방이 선우의 뒷모습을 째려봤다.

선우는 들은 척도 안 하고 열심히 용머리 국밥을 흡입 중이었다.

그릇째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는 선우.

“불나방. 일단 앉아라.”

코딱충의 말에 마지못해 빈자리에 앉는 불나방이었다.

“으어~ 이거 국물이 끝내주는군.”

선우는 불나방이 와도 아는 척도 안 했다.

일종의 기 싸움이었다.

불나방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보다 못한 코딱충이 나섰다.

“야, 불나방. 얘가 김선우다. 너도 알지?”

불나방은 대답이 없었고 선우도 반응이 없었다.

그저 선우는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디저트를 주문하고 있었다.

“어이, 김선우. 사람을 불렀으면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냐?”

선우가 이쑤시개를 퉤 하고 뱉었다.

“사람을 불러? 내가 언제? 말은 바로 해야지. 급해서 날 찾아온 건 너희들이잖아?”

불나방이 벌떡 일어났다.

“날 누명 씌워놓고도 잘도 여기서 국밥이나 처먹고!! 니가 사람 새끼냐!!”

“어차피 양아치 짓 하는 놈들하고 경쟁해서 이기려면 동등한 양아치가 돼야 한다. 뭐 이런 거 어디 가서 안 배웠냐?”

“이 자식이!”

불나방이 코딱충의 만류에도 선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양아치 짓도 정도가 있지. 니가 한 짓이 사람이 할 짓이냐?”

선우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는 그저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길드를 향해 사소한 뻥 하나 쳤을 뿐인데 난데없이 나타나서 스파이 누명을 씌웠다는 둥, 책임지라고 떠들어대니 황당하지.

그렇다고 선우가 사실 스파이 심어뒀다는 거 뻥이었다는 말을 할 리도 없다.

계획은 선우가 원하는 대로 착착 진행 중이었으니까.

선우가 할 건 그저 가볍게 레비아탄과 아누비스를 흔들어주는 것이었다.

“야, 됐고. 일단 이것만 대답해라. 스파이 누명 벗을래? 말래?”

불나방이 코딱충과 눈을 마주쳤다.

“대답 안 하냐?”

“벗고 싶다. 도와줘라.”

코딱충이 나섰다.

불나방이 여전히 대답이 없자 선우가 물었다.

“대답 없는 놈은 벗기 싫은가 보네. 그러면 코딱충만 벗겨줘야지~”

“야, 잠깐. 나도 버, 벗고 싶다.”

“응?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선우가 손바닥을 귀에 가져다대고 약올리자 불나방이 폭발했다.

“나도 벗고 싶다고!!”

포장마차 안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선우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았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밥 먹다가 화들짝 놀라며 불나방을 쳐다봤다.

때마침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오던 플레이어들이 불나방의 발언을 들었다.

“어우…. 뭐야… 더럽게.”

“안에서 뭔 짓들 하는 거야? 야, 가자.”

“야, 쟤 불나방 아니야?”

“몰라, 징그러.”

플레이어들은 입구에 들어오려다가 말고 그냥 나가버렸다.

불나방은 황당해하며 어설픈 손놀림으로 방금 나가는 사람들에게 외쳤다.

“내, 내가 그런 뜻으로 한 거 아니야! 다 김선우 이 자식 때문이라고!”

“큭큭큭.”

선우는 이미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이 자식이!”

다시 선우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대는 불나방.

“대체 어디서 이런 쓰레기가 나타난 거냐!”

“야, 놔라. 이거. 누명 벗기 싫냐?”

선우는 전략을 바꿨다.

처음 코딱충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누명 씌웠다며 스파이 타령 할 땐 뭔 소린가 했다.

하지만 불나방까지 나타나 스파이 타령을 하자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한 것이다.

선우는 이 상황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파이 누명 씌운 적은 없었고 어떻게 해서 코딱충과 불나방이 자신의 스파이로 오해 받는지 알진 못했다.

하지만 굳이 알 필요 있을까?

‘이게 웬 행운이냐? 잘만 하면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둘 다 가지고 놀 수 있겠어.’

다시 표정 관리를 하고 시치미 뚝 뗀 선우.

“커험! 일단 코딱충하고 불나방 내 말 잘 들어라. 너희들이 스파이 누명을 벗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그게 뭔데?”

코딱충과 불나방이 선우의 입을 주목했다.

선우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포장마차로 누군가 들어오더니 밖을 향해 외쳤다.

“찾았다! 여기 있다!! 길드장 말이 사실이었어!! 불나방하고 코딱충이 김선우 스파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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