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제97화
코딱충은 선우에게 귓속말을 계속 날려댔다.
-야, 김선우! 죽고 싶냐? 어디냐고!
-김선우! 야! 야! 어쭈? 이제 귓말 씹냐?
정신없이 도망치는 코딱충은 일단 안전한 곳으로 숨었다.
“젠장, 젠장. 대체 나한테 이런 일이 왜 생긴 거지?”
코딱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틀림없이 김선우가 무슨 작업을 한 거다.”
사실 선우는 아무 짓도 안 했다.
불독상어의 의심이 저절로 들불처럼 코딱충을 향해 번졌을 뿐이지.
때마침 코딱충에게 귓속말이 왔다.
선우였다.
“오~ 거기에 계셔? 넌 죽었어!!”
코딱충은 엄청난 속도로 선우가 있는 곳을 향해 질주했다.
선우는 콜로세움 무기 시장 뒷골목의 포장마차에서 놀고 있었다.
“흐억…흐억….”
“어라? 야, 쟤 코딱충 아니야?”
체로키가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씹어 먹으면서 코딱충과 눈이 마주쳤다.
여기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뛰느라 체력과 마나가 바닥을 쳤다.
코딱충은 지친 숨을 내쉬면서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선우는 코딱충을 등진 채 낄낄거리며 닭꼬치에 양념장을 바르고 있었다.
“맛있는~ 양념장을~”
“야! 김선우!!”
선우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코딱충의 양손이 날아들었다.
“으앗!”
양념장이 뚝뚝 떨어지는 닭꼬치를 든 선우가 다급히 손을 휘저었다.
닭꼬치의 양념장이 달려드는 코딱충의 눈에 들어갔다.
“아! 매워! 씨!”
가상현실이지만 모든 감각은 현실과 똑같은 세계.
코딱충은 눈에 들어간 양념장을 물약을 꺼내 다급히 들이부어 씻었다.
“아, 깜짝 놀랐네. 야, 날 왜 보자는 건데?”
선우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닭꼬치를 한 입씩 빼먹고 있었다.
물약 세수를 하고 간신히 눈을 뜬 코딱충.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뭔 짓?”
선우가 닭꼬치를 쏙쏙 빼 먹는 꼴이 너무 얄미웠다.
자신을 레비아탄 길드의 배신자로 내몰린 건 선우 때문이라고 여겼다.
“날 우리 길드의 스파이로 만들었잖아! 내가 언제부터 네 밑에 있었냐! 앙!”
“야, 라비트. 얘 지금 뭔 소릴 하는 거냐?”
선우는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이 코딱충을 더욱 열 받게 만들었다.
“으아! 김선우 너 죽고 싶냐! 안 되겠다. 당장 나와라. 결투다.”
“결투는 됐고. 나 지금 먹는 중이잖아. 너도 이리 와서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자.”
“뭐라고?”
선우의 반응에 코딱충은 황당해서 할 말을 잊어먹었다.
“야, 너 지금 이 와중에 처먹고 싶냐?”
“사람이 어떻게 게임만 하냐? 먹기도 하고 그래야지. 빨리 와. 뭐 먹을래?”
코딱충을 보면서 강아지 부르듯이 손짓하는 선우.
선우의 손짓을 보며 코딱충은 뭐에 홀린 듯이 다가왔다.
“닭꼬치 여기 죽이더라. 먹어봤냐?”
“아, 예전에 먹어본 적이 있긴 한데… 아니지. 야, 김선우. 지금 내가 이걸 먹으러 온 게 아니…웁!”
선우는 닭꼬치를 양념장에 푹 담궜다가 꺼낸 뒤 코딱충의 입에다 우겨넣었다.
“맛 어떠냐?”
“맛있기는 한데 내가 여기 온 건 이걸 먹으러 온 게 아니라고!”
“뭐 때문에 온 거냐?”
“아까 말했잖아. 날 왜 스파이로 몰아붙인 거냐?”
“난 그 말이 뭔 말인지 모르겠다니까? 네가 설명 좀 해봐. 어떻게 된 건데?”
선우의 말에 코딱충은 닭꼬치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한편 불독상어는 열혈독사와 만남을 가졌다.
열혈독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날 왜 보자고 한 거냐?”
“네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어. 하지만 이건 너와 내가 각자 만들어온 길드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뭔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로 날 속일 생각이면 저 문으로 나가면 된다.”
불독상어는 열혈독사의 비아냥을 무시했다.
“나는 네 길드에 스파이를 보낸 적이 없다.”
“아유~ 그러셨어요?”
“그리고 너도 내 길드에 스파이를 보낸 적이 없어.”
“아유~ 그러… 잠깐,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다. 너도 나도 서로 스파이를 보낸 적이 없어. 즉,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길드 내부에는 스파이가 없다는 거다.”
열혈독사는 그제야 의자에 붙이고 있던 등을 떼고 테이블로 몸을 끌어당겼다.
불독상어가 말문을 열었다.
“김선우의 짓이었어.”
“뭐? 그 자식이 여기서 왜 나와?”
“김선우가 스파이를 보낸 거라고.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에 누군가를 포섭한 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 판을 이끌고 있는 거야.”
불독상어의 말에 열혈독사는 충격을 받았다.
“진짜냐?”
“이미 나는 김선우가 레비아탄 길드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찾아냈어.”
“그게 누군데?”
“딱충이였다.”
“따…딱충? 코딱충? 네 오른팔?”
불독상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잘못 안 거 아니야?”
“처음엔 나도 믿질 못했다. 코딱충이 날 향해 살기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뭐? 설마 코딱충이 널 죽이려고 했던 거냐?”
“자세한 건 아직 알 수 없어. 일단 길드원들에게 코딱충 포획령을 내려놓았다. 잡아와서 알아내야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아니라 뒤통수가 찍혔군.”
“그리고 난 아누비스에 심어놓은 김선우의 스파이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
“뭐라고?!”
열혈독사가 벌떡 일어났다.
김선우의 스파이.
지금 열혈독사에게 선우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쫄깃해지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게… 어떤 놈인데? 빨리 말해봐.”
“아마 너도 들으면 믿지 못할 거다. 내가 코딱충한테 느꼈던 기분을 알게 될 거야.”
“상관없어. 누군지 말해!”
“불나방. 걔가 아누비스 길드에 숨어있는 김선우의 스파이일 거야.”
“뭐?”
열혈독사는 다시 맥없이 앉았다.
“야, 상어. 너 근거가 있어서 하는 소리냐?”
“물론이지. 기억해봐. 코딱충은 김선우 로부터 불나방의 콜렉션을 구입했어.”
“그랬지.”
“왜 구입했을까? 아마 김선우의 지시가 있었을 거야. 그리고 불나방은 그 콜렉션을 코딱충이 구입하도록 짜고 치는 연극을 했던 거다.”
“그게 뭔 소리냐?”
“지금 너와 나의 분쟁이 어디에서 먼저 시작된 거냐?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바로 김선우가 불나방의 아이템을 코딱충에게 팔아버리면서 시작된 거다.”
“하지만 불나방은 그거 알고 완전 난리 났었는데?”
“그게 바로 쇼지. 김선우가 기획한 쇼. 그래야 네 의심에서 벗어날 테니까.”
열혈독사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뜬금없이 자기가 아끼는 콜렉션을 독버섯 같은 애들한테 빌려줬다는 것부터 조금 이해가 안 갔어.”
“일단 나는 코딱충을 포획하는 대로 심문에 들어갈 거다. 너도 빨리 불나방을 데려와. 서로 대면시켜서 사실을 불게 하는 게 좋아. 그래야 김선우를 잡을 수 있어.”
“그러지. 불나방에게 먼저 물어봐야겠어.”
열혈독사와 불독상어는 헤어졌다.
* * *
“으음~ 그렇게 된 거였군.”
“이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 되냐? 나 지금 완전 X됐다고!”
코딱충 옆에는 빈 접시가 여러 장 쌓여 있었다.
선우가 얘기를 들으면서 자꾸 이것저것 시켰고 코딱충은 얼떨결에 먹으면서 얘기를 했다.
“야, 왜 그렇게 엄살이냐? 라비트한테 얘기를 들어보니 너 그 길드에서 쎄다며? 니 몸 정도는 보호할 수 있잖아?”
“뭔 소릴 하는 거야? 지금 불독상어가 날 잡아오라고 포획령을 내렸다고. 너 포획령이 뭘 의미하는지 아냐?”
“몰라.”
선우의 표정은 자기 일 아니라고 쓰여 있었다.
코딱충이 갑자기 울컥했다.
“후우… 포획령은 길드의 배신자를 잡아와서 고문하는 거다. 그 고문이 뭘까? 배신한 정도에 따라서 레벨을 다운시키는 거라고.”
선우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
“그렇군.”
“뭐가 그렇군 이야 인마! 너 때문에 내가 지금 그 꼴 당하게 생겼는데!”
“야, 불독상어랑 너랑 친했다며? 그러면 이야기를 해서 잘 풀면 되는 걸 왜 튀냐? 그러니 의심을 받지.”
“뭐? 그걸 말이라고 하냐? 이야기로 풀 거였으면 나도 안 튀었지. 말이 안 통할 분위기니까 튄 거잖아. 잡히면 레벨 다운인데.”
“불독상어는 왜 그런 의심을 했을까? 난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 한 적이 없는데.”
“거짓말 하지 마! 네가 뭔 짓을 안 하고서야 상어 형이 날 의심할 리가 없잖아!”
코딱충의 사정을 파악한 선우의 머릿속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미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와의 전면전이 시작될 조짐이 많았다.
선우가 올렸던 커뮤니티 글은 오징어 맥주 집에서 열혈독사의 난동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선우는 일단 코딱충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난 한 게 없는데 네가 자꾸 그러니까 뭐라고 해줄 말이 없다.”
“이 자식이!”
코딱충이 선우의 멱살을 잡았다.
“진정해. 하지만 네가 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딱 하나의 방법이 있기는 하지.”
선우의 말에 코딱충의 표정이 바뀌었다.
멱살을 쥔 손의 악력도 풀렸다.
“뭐라고? 그게 뭔데? 당장 말해!”
“야, 일단 이건 놔라. 그래야 얘기를 해주지.”
코딱충이 선우의 멱살을 놨다.
선우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내가 볼 땐 넌 레비아탄하고 오해를 풀기엔 글렀어.”
“이 자식이!”
“야, 내 말을 끝까지 들어.”
선우가 라비트가 있는 쪽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라비트가 재빨리 어묵이 담겨있던 국물을 컵에 떠줬다.
“호로록.”
선우가 어묵 국물을 마시는 걸 뱀의 눈빛으로 째려보는 코딱충.
“어~ 국물 끝내준다.”
“빨리 말해.”
“먼저 코딱충 네가 원하는 건 뭐냐? 레비아탄으로 돌아가는 거냐?”
“당연한 거 아냐! 레비아탄은 내가 상어 형하고 같이 만든 길드라고. 벨론 대륙부터 같이 시작해왔고 인피니티 로드 유저로서의 커리어가 녹아 있는 길드다. 너 같은 근본도 없는 양아치 자식이 오합지졸들 모아놓고 얼렁뚱땅 만든 길드인 줄 아냐?”
본 브레이커 길드를 돌려서 까는 코딱충이 선우는 조금 거슬렸다.
“아~ 어묵 국물 맛있네. 야, 라비트. 여기 새로 나온 메뉴가 뭐라고 했지?”
“용머리 국밥.”
“오, 그거 좋다. 야, 시켜봐.”
선우가 딴청을 피우자 코딱충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쳤다.
“야, 김선우.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내심이 약해. 더 열 받게 하지 마라. PVP 시작하고 얘기를 할래?”
“코딱충, 넌 기본 태도부터가 글렀어.”
“뭐라고?”
“넌 나한테 부탁을 하러 왔잖아. 근데 이게 지금 부탁하는 놈의 태도냐?”
“뭐야?”
“생각해봐. 나야 아쉬울 거 없어. 네가 레비아탄 애들한테 쫓기든 잡혀서 레벨다운 당하든 솔직히 관심도 없고.”
테이블을 누르는 코딱충의 주먹이 우들우들 떨렸다.
“이게 진짜… 죽고 싶냐? 말로만 하니까 안 믿겨지지? 너 내가 어떤 랭커인지 알고 이러냐?”
선우가 어묵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서 눈빛으로 약 올렸다.
“딱충아. 넌 지금 날 협박할 상황이 아니야. 냉정하게 네가 처한 상황을 잘 따져봐.”
“이걸 확!”
코딱충은 선우를 당장이라도 한방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레비아탄 길드와의 스파이 오해를 풀어내려면 선우가 필요했으니까.
“원하는 게 뭐냐?”
결국 선우에게 굽히기 시작한 코딱충 이었다.
“먼저 나랑 손잡아라.”
“뭐?”
“어차피 너 지금 레비아탄에서 스파이 취급 받잖아? 그러면 그걸 역이용하는 거야. 이왕 스파이 욕먹는 거 진짜 스파이 노릇을 하면서….”
“이제 진짜!”
코딱충이 다시 선우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거 자꾸 잡으면 원하는 걸 얻을 순 없을 거다.”
이미 주도권은 선우에게 있었다.
“일단 앉아라. 나 아직 덜 먹었으니까.”
코딱충은 마지못해 앉았다.
“일단 어차피 지금 딱충이 넌 레비아탄 길드에서 버림받은 스파이가 된 걸 인정해야 돼. 내가 보낸 스파이로 안다고 했지? 그러면 지금 나랑 인터뷰 방송 한 번 하자.”
“무슨 뜬금없이 인터뷰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일단 사전에 나하고 멘트를 좀 맞춰두자. 먼저 내가 이렇게 물어 볼 거야.”
코딱충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선우의 말을 계속 듣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응? 야, 잠깐만. 불나방한테 귓속말이 계속 오는데.”
“불나방? 걔가 너 잡으러 오는 거 아냐?”
“몰라, 젠장. 일단 확인 좀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