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96화 (96/200)

# 96

제96화

불독상어에게 코딱충이 귓속말을 보냈다.

-형,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코딱충의 귓속말을 듣기만 할 뿐 불독상어는 대꾸가 없었다.

그의 눈은 열혈독사에게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야, 독사. 난 너와 동맹을 맺으러 온 거야. 그런데 반응이 왜 이러냐? 누군 동맹을 맺고 싶어서 온 줄 알아? 이번에도 내가 너한테 한 번 굽혀주려고 온 거라고.”

“풉! 푸하하하!”

열혈독사가 크게 비웃음을 터뜨렸다.

듣고 있던 불독상어가 발끈했다.

“어이, 지금 내 말이 웃기냐?”

“불독상어. 솔직하게 대답하면 그냥 한 번은 봐주마. 뭐 때문에 온 거냐?”

“뭐?”

열혈독사의 귓가에는 이미 선우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

‘레비아탄 애들이 널 위해 준비를 한 게 있다.’

불독상어를 볼 때마다 선우의 말은 메아리쳤다.

열혈독사는 이를 부득 갈았다.

‘이 자식들. 날 위해 준비한 거면 뻔하지. 뒤통수를 치려고 동맹까지 위장을 해?’

코딱충과 불독상어를 노려보는 열혈독사.

불독상어가 입을 열었다.

“이봐, 열혈독사. 네가 날 의심하는 건 알아. 하지만 이번엔 진짜야. 일단 동맹을 맺고 김선우를 없애버리자.”

“의심? 하하! 의심하는 건 어떻게 아셨을까?”

영문을 모르는 불독상어.

열혈독사의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갔다.

‘틀림없어. 김선우 이 자식 말대로 레비아탄이 날 위해 준비한 건 어떤 음모가 있는 거야. 찔리는 게 있으니 저따위로 말하지.’

불독상어는 열혈독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기껏 선우를 잡아내려고 동맹을 제안하려고 온 거다.

레비아탄 길드의 자존심을 뒤로 하고 먼저 손을 내민 자신에게 열혈독사의 태도는 무례했다.

“열혈독사. 후회하지 말고 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잡는 게 좋아.”

“하하하! 그럴 일 없으니 꺼지시지. 감히 천하의 아누비스 길드의 뒤통수를 치려고 해? 누가 속을 줄 아냐? 나도 다 듣는 귀가 있다고.”

듣는 귀는 있어도 생각하는 머리가 없는 열혈독사였다.

불독상어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이번에 내 제안을 뿌리친 건 두고두고 후회할거다.”

“하하! 들켰으니 쪽팔리지? 앙?”

열혈독사를 무시하고 불독상어는 자리를 떠났다.

선우로 인해 아르콘 대륙을 양분하던 길드 사이의 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선우는 열혈독사와의 맥주 집 난동 영상을 보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레벨업 알림까지 듣고 있었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285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285

민첩: 285

체력: 285

마력: 285

스킬: 없음

소유 스킬: 소환의 진

스킬 사용권: 없음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그런 선우에게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그중 가장 먼저 선우와 만났던 라비트는 선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만약 쟤랑 적으로 만났으면 어땠을까? 어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선우는 자신이 열혈독사에게 멱살을 잡힌 포인트를 주목했다.

‘이 정도면 아누비스 길드의 이미지는 안 봐도 뻔하지.’

오징어 맥주 집 난동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이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인피니티 로드를 하는 플레이어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선우가 열혈독사에게 멱살 잡혀 비명을 질러대는 영상은 실시간 조회수 1위를 기록하면서 모두가 주목했다.

가장 자극적인 영상이었으니까.

여기서 가장 많은 욕을 먹는 건 당연히 열혈독사였다.

선우는 여기서 좀 더 확실한 그림을 만들려고 했다.

‘일단 어그로를 한 번 더 끌어야지.’

“야, 라비트. 나 잠깐 나갔다온다.”

선우가 캡슐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선우는 가장 먼저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이랬다.

[안녕하십니까? 저 김선우입니다.]

제목에 선우의 이름이 들어가자 조회수는 빠르게 올라갔다.

내용은 간결하고 핵심만 썼다.

-오징어 맥주 집에서 열혈독사한테 하마터면 죽을 뻔했습니다. 쎄긴 쎄더군요. 하지만 그 힘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썼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따라주지 않으면 무조건 폭력적으로 나오는 아누비스의 길드 마스터. 이런 자가 CF에 나온다는 건 소비자들을 기만하고 인피니티 로드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것 아닐까요?

선우의 내용은 많은 공감을 불러왔다.

다들 열혈독사가 선우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부터 선우의 비명소릴 듣고 꽤 충격을 받았었다.

물론 선우의 비명은 철저히 만들어진 쇼다.

선우는 이걸 이용해서 열혈독사와 불독상어를 혼란스럽게 만들 생각이었고 결과는 적중했다.

타닥타닥.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는 선우.

그의 손가락에서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를 또 한 번 혼란으로 몰고 갈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여러분들. 놀라지 마십시오. 레비아탄 길드가 조만간 아누비스 길드를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단 첩보를 받았습니다. 아누비스 길드 또한 가만있을 순 없겠죠? 여러분들의 볼거리를 위해 두 길드가 엄청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네요. 어떤 이벤트일지 정말 궁금해요. 열혈독사님.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노코멘트~

선우는 그냥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지껄여댔다.

어차피 자기가 책임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전투는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둘이 알아서 할 문제였으니까.

선우의 목적은 오직 하나. 아누비스와 레비아탄을 서로 싸움 붙이는 것이었다.

두 길드는 어차피 선우가 콜로세움 승률 1위 신기록을 세우는 데 방해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으면 치워버리는 건 인지상정.

마지막 순간까지 이긴 자가 모든 걸 다 갖는 아르콘 대륙의 콜로세움은 이래서 잔혹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르콘 대륙에서 콜로세움 전쟁은 매일 벌어졌고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 유일한 원칙이란 말이 있는 곳이니까.

선우가 글을 올리고 나서 1시간 쯤 지났을까?

권정아 실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우 님. 지금 커뮤니티에 올린 글 이거 진짜예요?

“옙! 진짭니다.”

선우는 즉석에서 이야기를 마구 지어냈다.

권정아 실장에게 사실대로 말해도 되지만 아직 완전히 믿을 순 없었다.

혹시라도 진짜 정보가 새어나가면 선우의 작전은 물거품이 되니까.

-세상에! 그러면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는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저는 이 둘의 길드 전쟁을 촬영하면서 꿀이나 빨려고 구상 중입니다.”

-헉! 선우 님.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저 두 길드는 선우 님을 타겟으로 잡고 있을 건데.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이기는 건 저니까요.”

선우는 권정아와 통화를 끝내고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이미 밖에서 커뮤니티를 뒤집어놓고 들어온 선우.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게임을 하면서 커뮤니티 글에 대해 소식을 들은 뒤였다.

“야, 선우야. 레비아탄 애들이 뭘 준비한 거야?”

“그건 곧 알게 될 거야.”

사실 레비아탄 길드가 준비하는 건 없다.

선우는 일단 내뱉고 봤다.

이미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고 있었다.

사실이 아니어도 레비아탄 길드는 아누비스를 상대로 뭘 준비하고 있는 게 돼버렸다.

가장 당황하는 건 불독상어였다.

“이런 망할… 이게 대체 무슨 헛소리야!!”

와장창!

불독상어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날뛰었다.

그를 말릴 수 있는 코딱충 뿐.

“형. 진정해.”

“놔 인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아누비스 애들 상대로 뭘 준비하고 있었으면 내가 알아야 할 거 아냐! 근데 왜 난 처음 듣는 거냐? 앙!”

불독상어의 말에 코딱충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러자 불독상어의 눈빛이 흐려졌다.

“야, 딱충아. 혹시 너… 아니다.”

“내가 뭐?”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뭐가 아닌데? 말해봐. 뭔데?”

“…너냐?”

불독상어의 말에 코딱충은 무언가를 눈치챘다.

그리고 눈빛이 달라졌다.

“형. 설마 날 의심하는 거야?”

선우의 농간에 혼란스러운 건 열혈독사만이 아니었다.

불독상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선우가 보낸 스파이가 레비아탄과 아누비스에서 활약하고 있을 거라고 잘못된 추측을 한 뒤였다.

그런데 이번엔 레비아탄이 아누비스를 노리고 뭘 준비하고 있댄다.

가관인건 길드 마스터인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결국 불독상어는 선우가 보낸 스파이가 자기를 대신하여 길드 내부에서 작업하기 편리한 위치에 플레이어라고 의심했다.

“딱충아. 사실대로 말해라. 너, 왜 김선우한테 불나방 콜렉션을 산거냐?”

“와~ 이거 재밌네. 형. 지금 내가 불나방 아이템을 김선우 한테 샀다고 스파이다 이거야?”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가. 불나방이 자기 콜렉션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 그걸 구입을 한다? 그 말은 김선우와 뭔가 커넥션이 있다는 뜻 아니야?”

불독상어의 말을 들은 다른 레비아탄 길드원들이 코딱충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야~ 환장하겠네. 상어 형. 날 못 믿는 거야? 우리 사이가 이거밖에 안 되는 거였어?”

“딱충아. 말 돌리지 마라. 내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아냐? 억울하면 네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줄게. 왜 김선우한테 불나방 아이템을 구입했냐?”

“형도 알잖아. 불나방 그 새끼는 나랑 아주 원수지간인거. 저번에 사냥터에서 우리 애들이 다 잡아놓은 보스몹 막타 쳐서 그 새끼 혼자 먹고 튄 거 형도 알지? 내가 이번에 엿 먹이려고 그랬다. 왜? 이게 배신이야? 스파이야?”

사람의 마음속에 의심이 싹트면 좀처럼 죽지 않는다.

의심이 무서운 것은 사람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것이다.

불독상어의 의심은 코딱충의 반론을 들을수록 커져만 갔다.

“굳이 불나방을 엿 먹이려고 꼭 김선우와 거래를 했어야 했냐? 너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엿 먹일 수 있었잖아. 걔들 레이드 갈 때 몰래 가서 막타 치고 똑같이 해주면 될 건데… 왜 꼭 김선우와 거래를 해야 했지?”

불독상어의 말에 코딱충이 웃었다.

“푸하하하! 하하하!”

“딱충아. 형은 지금 재밌지가 않다. 사실대로 말해. 그러면 너니까 내가 용서해주마.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오른팔인 널 내가 어떻게 자르겠냐?”

불독상어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것을 코딱충은 알게 되었다.

“아니!! 뭔 말 같은 소릴 해야 대답을 하지!! 상어 형. 이거 지금 나한테 실수하는 거야. 알아?”

콰장창!!

열받은 나머지 레비아탄 길드 아지트의 테이블을 박살낸 코딱충.

“딱충이 형. 진정하시죠.”

“상어 형님의 의심에 저도 동의합니다. 사실대로 말씀해주십쇼.”

레비아탄 길드원들의 반응에 코딱충은 더 황당했다.

너무 황당하고 열이 받으니 욕설이 아닌 웃음이 터졌다.

“풉… 푸하하!! 와~ 나 이거 진짜 돌겠네. 이것들 다 미친 거 아냐? 너희들 내가 진짜 김선우 스파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라면 증명해주시면 될 거 아닙니까?”

“이 새끼들이 니들 진짜 죽고 싶어!!?”

“딱충아. 이렇게 화를 낸다고 해결될 게 아니다. 들키니까 당황스럽겠지. 너도 날 알고 나도 널 안다. 나 불독상어가 지금껏 예측한 게 빗나간 적이 있더냐? 한 번도 없었어. 김선우는 날 너무 우습게 봤던 거다. 김선우가 널 어떻게 꼬드겼는지 말 안 해도 된다. 지금이라도 내 편에 서서 김선우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라. 이중 스파이로 널 쓸 거야. 임무를 충실히 성공시켜서 김선우를 잡아내면 네 죄는 용서해주겠다.”

“아니, 상어 형. 정신 차려. 난 스파이가 아니라니까! 김선우 그 자식이 누군지 아는 게 없는데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안 되겠군. 얘들아. 일단 딱충이 잡아놔라. 본격적인 고문을 시작한다.”

“예!!”

“이런 젠장!!”

따각! 따각! 빡!

“끄아악!”

코딱충은 자신을 에워싸려던 길드원들을 순식간에 때려눕히고 튀었다.

불독상어는 슬픈 눈으로 코딱충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귓속말로 레비아탄 길드원 전체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 레비아탄 길드 마스터 불독상어가 지금부터 포획령을 내린다. 김선우의 스파이 코딱충을 잡아와라.

이 귓속말은 당연히 길드 소속인 코딱충에게도 전달이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김선우 이 새끼 무슨 짓을 한 거냐!”

코딱충은 도망치면서 선우에게 귓속말을 넣고 어디 있냐고 물었다.

선우의 대답이 왔다. 알아 맞춰봐.

코딱충이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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