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제93화
선우는 플레이어들과의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때마침 레벨업 알림이 들려온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272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272
민첩: 272
체력: 272
마력: 272
스킬: 없음
소유 스킬: 소환의 진
스킬 사용권: 없음
“후후, 이제 영상들 편집 맡겨서 올리면 대박이네.”
벌써 영상을 올릴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방송을 종료한 걸 확인하고 선우에게 다가왔다.
“선우야,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
“아무래도 얘랑 손잡은 건 실수 였던 거 같아.”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벌레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우는 코를 긁으면서 대답했다.
“뭐 이렇게들 쫄았냐? 장사는 이제부터 시작인데.”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 모두 아연실색했다.
“이, 이제 시작이라고? 끝이 아니야?”
“내가 뭐랬냐? 날 믿고 따라오면 알아서들 돈을 거저먹을 수 있다고 했지?”
“그, 그랬지.”
“그러면 군말 말고 시키는 거나 잘하셔.”
선우는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촬영한 영상들을 정리했다.
이때 체로키가 선우를 불렀다.
“선우야,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가 널 보자는데.”
“난 볼 일 없다고 전해.”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대화를 하고 싶대.”
“대화?”
“응. 지금 사태에 대해 수습하기 위해 좋게 대화를 하자고 전하라고 방금 귓속말이 왔어.”
“길드 마스터가 직접?”
“아니, 길드원이 그랬어.”
“그러면… 이렇게 전해라. 때와 장소는 내가 정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뭐? 야, 상대가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인데 그래도 돼?”
“되지. 안 될 건 뭐 있냐?”
선우는 겁이 없었다.
아누비스 길드라는 간판에 겁을 먹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과는 근본이 달랐다.
반면 체로키는 입이 바싹 타들어갔다.
“이, 일단 말해볼게.”
“쫄지 말고 겁 없이 그냥 막 들이대. 어차피 아쉬운 건 걔들이지 우리가 아니야.”
체로키는 잠깐 동안 아누비스 길드원과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선우야. 원하는 장소와 시간을 말하라는데.”
“좋아. 그러면….”
선우가 체로키에게 장소와 시간을 전달했다.
“그러면 이제 난 잠깐 로그아웃 좀 하고 온다.”
* * *
캡슐에서 나온 선우는 인터뷰 영상들을 모두 권정아 실장에게 전송했다.
권정아와 직통으로 연결된 메신저에 알림이 들렸다.
선우에게 받은 인터뷰 영상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즉시 편집에 착수했고 끝나는 대로 선우의 채널에 업로드 하겠다고 대답했다.
선우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일단 나온 김에 커뮤니티에 어그로를 좀 끌어볼까?”
손가락을 가볍게 풀고 선우는 키보드 앞에 앉았다.
인피니티 로드의 커뮤니티에는 이미 선우의 인터뷰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야, 아까 김선우 인터뷰 하는 거 본 사람 있음? 개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봤음. ㅋㅋㅋㅋㅋㅋㅋㅋ 쩔더라.
-난 현장에서 인터뷰도 했다. 아누비스 짜증났는데 없던 거 다 지어내서 공갈침 ㅋㅋㅋㅋㅋ
-나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재밌었음. 그런 식으로 방송 진행하는 플레이어는 처음 봐서 신선하더라.
-확실히 참신했지. 인터뷰로 아누비스랑 레비아탄 동시에 물 먹이는 놈은 처음 봤음.
선우는 만족스러웠다.
“크으… 역시 예상대로야. 여기다가 떡밥을 솔솔 뿌려두면….”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선우는 글을 올렸다.
글의 제목부터 관심을 끌었다.
[이따가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랑 김선우 만난다.]
글 제목을 저렇게 올려놨는데 순식간에 조회수가 올라갔다.
내용은 간단하게 제목이 곧 내용이란 뜻으로 제곧내 라는 세 글자만 있었다.
댓글의 개수 역시 폭발적이었다.
-뭔데? 한판 붙음?
-싸움? 1:1로? 결투?
-PVP 결정난 거?
-야, 글쓴 놈 뭐냐 제목만 어그로 끌고 내용이 없잖아.
-뭐라는 거냐? 붙는다는 거야? 아니면 뭐 얘기를 한다는 거야?
-어디서 만나는데?
-언제? 어디서?
-이거 낚시글이네. 그냥 김선우 인터뷰가 인기 끄니까 조회수 어그로 끌라고 ㅋㅋ
댓글 반응을 살펴보던 선우는 다시 글을 올렸다.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하고 김선우 만나는 장소 알려준다.]
-너네들 콜로세움 옆에 무기 시장 가보면 오징어 맥주 골목 쫙 깔린 곳 알지? 거기서 제일 큰 오징어 맥주 집이 있음. 입구에서 가까움. 김선우랑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가 거기서 만날 예정임. 결투는 아니고 대화를 하는 건데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가 먼저 대화하자고 김선우에게 매달렸다함. 김선우는 별 관심 없었는데 자꾸 매달려서 일단 만나주겠다고 했음. 시간은 30분 뒤임. 늦지 말고 구경갈 거면 가셈.
아누비스의 길드 마스터 열혈독사는 김선우에게 매달린 적이 없었다.
이건 선우가 의도적으로 꾸민 거짓말.
결과는 대박이었다.
선우가 댓글을 확인하니 아까보다 훨씬 많은 댓글이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인가 ㅋㅋㅋㅋㅋ
-뭐지? 열혈독사가 왜 김선우랑 대화하자고 매달림?
-열혈독사 그 양아치 뱀대가리가 뭔 수작을 부릴지 궁금하군.
-김선우한테 열혈독사가 매달렸다고? 실화냐?
-이거 글쓴 놈 누구냐? 김선우 본인이냐?
-멍청아, 본인 같으면 저렇게 대충 써놨겠냐? 본 브레이커 애들이지 뭐.
-구경 가야겠다. 김선우 vs 열혈독사 가즈아!!
선우는 열혈독사와의 만남 이전에 미리 떡밥으로 예고편을 날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엄청난 구경꾼들이 또 몰려들 거고 열혈독사는 어떤 수작도 부리지 못할 것이다.
이미 구경꾼들과의 인터뷰 영상으로 아누비스 길드의 실체가 폭로되었고 레비아탄까지 덩달아 엮여서 스파이 사태가 벌어졌다.
그 가운데에 선우가 있었다.
선우는 이미 아누비스 길드를 제물 삼아서 아르콘 대륙에서 자신의 인지도를 대폭 올리는 데 성공했다.
어디 그뿐일까?
레비아탄 길드마저 동시에 묶어서 김선우 라는 이름을 알려버렸다.
여전히 많은 플레이어들은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두 길드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선우 때문에 이 두 길드의 이미지가 깎여버렸다.
그로 인해 주제 파악 못하고 이들에게 도전하려는 멍청한 플레이어들이 조금 늘어나고 있었다.
“끄악!”
퍼퍼퍽!
코딱충이 플레이어 4명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다.
모두 코를 움켜잡고 바닥에서 신음을 흘렸다.
“이것들이… 지금 정신을 어디다 흘리고 다니는 거야? 레비아탄 길드가 갑자기 우스워졌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 따위 필요 없고 야, 얘들 척살령 내려서 레벨 1로 초기화시켜줘라.”
“하, 한번만! 한번만 용서해주십쇼! 진짜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뭘 크게 착각하고 분수를 모르고 설쳤습니다! 제발 한 번만요!”
“레벨 다운만큼은 봐주세요! 제발요!”
이들은 레비아탄 길드원과 사냥 중이던 코딱충을 보더니 낄낄거리면서 놀려댔다.
그리고 코딱충이 다가와 경고를 하자 다시 낄낄거리며 시비를 걸었다.
선우의 인터뷰 영상으로 인해 공포의 대상 중 하나였던 레비아탄의 이미지가 가벼워진 것이다.
코딱충은 자존심이 상했고 이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좋아. 레벨 다운은 봐줄 테니 갖고 있는 아이템은 순순히 털어놔라.”
플레이어들은 마지못해 가진 아이템을 모두 꺼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레비아탄 길드의 척살령이 떨어질 것이고 자신들은 아르콘 대륙에서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지니까.
“여기 있습니다.”
“그래, 어이. 잠깐.”
“예? 무슨 하실 말이라도….”
“고맙단 인사를 해야지. 너희들이 앞으로 아르콘 대륙에서 계속 먹고 살 수 있게 봐줬는데.”
“고, 고맙습니다.”
인사까지 받아내며 서열 정리를 확실히 하는 코딱충이었다.
“하! 나 이거 참… 김선우랑 엮이는 바람에 무슨 개망신이야?”
“딱충이 형. 김선우 한 번 손봐줘야 하지 않을까요?”
“정신 차려. 상어 형님이 당분간 김선우 손대지 말고 일단 물러나 있으라고 했잖아.”
“하지만 이대로 그 자식이 다람쥐처럼 설쳐대는 걸 두고 볼 순 없다고요. 벌써 몇 번째 입니까? 우리 길드를 보고 겁먹는 게 아니라 들이대고 있잖아요.”
“일단 지켜보자니까. 야, 김선우가 열혈독사를 어디서 만난다고?”
“오징어 맥주 골목이요. 거기서 제일 큰 맥주집에서 협상을 한다나 봐요.”
“무슨 협상일까?”
코딱충은 팔짱을 끼고 눈썹을 구겼다.
“형님. 김선우 그 자식이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 길드장 몰래 보냈다던 스파이의 정보를 뿌리는 거 아닐까요?”
“스파이라… 야, 근데 도대체 우리 길드에서 보낸 스파이가 왜 아직도 확인 안 되냐?”
“그게 잘… 솔직히 아무리 찾아봐도 스파이가 없습니다.”
“없기는 왜 없어. 우리가 스파이 보낸 적이 있었잖아.”
“그때 딱충이 형이 스파이 보냈잖아요.”
“그랬지. 근데 난 이번에 안 보냈다니까?”
“그럼 누가 보냈을까요?”
“내가 아냐? 니들이 찾아봐야지. 야, 됐고, 일단 김선우랑 열혈독사 만나는 곳으로 가자.”
“우리들 갔다가 눈에 띄면요?”
“폴리모프 마법 있잖아.”
“아, 그렇지. 그러면 지금 준비하겠습니다.”
* * *
콜로세움 옆 무기 시장의 오징어 맥주 골목.
이곳에는 온갖 오징어 맥주집들이 즐비했다.
그중 가장 큰 오징어 맥주집에 사람들이 줄을 서며 들어가고 있었다.
오징어 맥주집은 6층까지 있었는데 가운데 홀이 탁 트여 있었고 위층의 계단, 난간에서 1층 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선우가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바람에 엄청난 숫자의 구경꾼들이 이미 맥주집 위층을 다 차지했다.
“아우, 씨. 이거 뭔 놈의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
“어떤 놈이 커뮤니티에다 정보를 까발렸습니다. 김선우하고 형님이 여기서 만난다는 걸요.”
“뭐라고? 누군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김선우가 떡밥으로 흘린 스파이 짓 같습니다.”
“젠장. 이렇게 보는 눈들이 많아서야… 여차하면 김선우 패버리려고 했는데 어렵겠네.”
“일단 여기서는 길드 이미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형님. 김 비서님이 경고했잖습니까?”
“알고 있어.”
여기에 아누비스의 길드 마스터 열혈독사가 도착했다.
“형님. 이쪽에 앉으시죠.”
“김선우는 아직 안 왔냐?”
“예, 아직 안 온 거 같습니다.”
“건방진 새끼. 감히 날 오라 가라 하는 것도 모자라서 늦게 와?”
“형님. 그 자식은 싹수가 글러먹은 놈입니다. 이참에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되요.”
“야, 진정해라. 우린 오늘 결투하러 온 게 아니야. 대화하러 온 거지.”
“알겠습니다.”
“형님! 김선우가 옵니다!”
“그래? 뛰어오라고 해.”
“걸어오는데요.”
“가서 뛰어오라고 하라고 인마!”
“알겠습니다.”
길드원이 뛰어나간 다음 열혈독사는 오징어 맥주를 시켰다.
“야, 요즘 여기가 핫 하다며?”
“그럼요. 형님. 오징어 맥주가 제일 맛있는 집이래요.”
“근데 왜 이렇게 비싸냐?”
“돈값을 하는 맛이랍니다. 드셔보시겠습니까?”
“일단 시켜. 김선우 한테 이거 다 계산하라고 하자. 야~너희들도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빨리 시켜놔.”
“형님이 쏘시는 겁니까? 헤헤헤.”
“아니야 인마. 김선우가 쏘는 거야.”
“야, 김선우가 쏠 거래. 큭큭. 뭐 먹을래?”
열혈독사와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오징어 맥주를 잔뜩 시켰다.
“아줌마, 여기 순대 국수도 하나 주세요.”
“나는 드래곤 육포.”
이것저것 잔뜩 시키는 와중에 열혈독사가 정문을 보며 투덜거렸다.
“아, 이 새끼는 뛰어오랬더니 왜 안 와?”
때마침 뛰어나간 길드원이 보였다.
열혈독사가 입을 열려는 찰나.
“어라? 저 새끼가 이제 오네. 끝내 걸어오네.”
길드원이 아무리 뛰라고 협박을 해도 선우는 끝까지 걸어왔다.
일부러 더 천천히 느긋하게.
선우가 오징어 맥주집 입구로 들어왔다.
“우와아!!”
“김선우다! 쟤야, 내가 말한 인터뷰 방송한 애가.”
“오, 쩔어. 진짜로 열혈독사랑 담판을 지으러 나타난 건가.”
열혈독사가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오징어 맥주집에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선우가 들어오자 갑자기 환호를 하면서 반응이 폭발했다.
선우는 씨익 웃으면서 위층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뒤에 열혈독사의 테이블로 왔다.
“네가 김선우냐? 앉아라.”
“야, 일단 처음 봤으니까 악수 정돈 해야지. 보는 눈도 많은데.”
열혈독사가 주위의 눈치를 보더니 슬쩍 일어나 악수를 했다.
선우가 초반부터 기선을 잡아냈다.
“이제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