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제92화
“자, 너무 긴장하지 말고 릴렉스~ 편하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선우가 낄낄대며 물었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모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체로키는 언제 폴리모프 마법 시술을 받았는지 얼굴이 괴상하게 변형되었다.
목소리까지 변조시킨 뒤에 본 브레이커 길드원 옆에 두 손 모아 공손히 서 있었다.
선우는 먼저 등을 돌리고 있던 마강쇠에게 먼저 물었다.
“아누비스 길드에게 맞은 적 있나요?”
“이…있어요.”
“왜 맞았죠?”
“불나방이 시키는 거 안 했다고요.”
“와~ 여기서도 불나방이 나오네요.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선우가 일부러 방송 시점을 주변에 구경하던 플레이어들을 향했다.
플레이어들이 즉각 반응했다.
“역시 쓰레기!”
“불나방 꺼져라!”
“우우~우우~”
플레이어들이 선우의 장난스런 물음에 낄낄대며 맞장구를 쳤다.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을 구경하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나방 딜량 장난 아니네 ㅋㅋㅋㅋ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 불나방 이미지 개박살 ㅋㅋ
-불나방 꼬시다. 양아치 짓의 최후 실감나고요?
-야 불나방 데려오라고 해. 뭐라고 말하는지 좀 보게.
-콜로세움에서 만나면 팝콘 각.
-이 방송 보다가 아누비스 길드가 갑자기 만만해 보인다. ㄷㄷㄷㄷ
-길드 이미지 박살내고 다니시는 방장님 여기서도 여전하십니다. ㅋㅋㅋㅋㅋ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의 인기는 아르콘 대륙 진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는 선우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길드원들을 풀었다.
“야, 김선우 데려와. 절대로 아누비스 놈들이 먼저 데려가지 못하게 해.”
“김선우 저 새끼 빨리 잡아와! 레비아탄 애들이 채가면 안 된다. 만약 놓치면 니들 다 죽어!”
레비아탄의 불독상어와 아누비스의 열혈독사는 서로 김선우를 찾아다녔다.
실시간 스트리밍 인터뷰로 방송을 진행 중이던 선우에게 채팅방에 있던 시청자들이 경고했다.
-방장님! 빨리 튀셈! 지금 아누비스 애들이 님 잡으러 거기로 간대요!
-빨리 튀어요! 레비아탄 애들이 님 방송하는 장소 알아냈음.
선우는 시청자들의 경고에 대답했다.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청자님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지금 저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계신 눈들이 대체 몇 개입니까?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이곳에 계신 플레이어들이 몇 명입니까? 엄청나게 많죠. 이렇게 보는 눈들이 많다면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라고 해도 저를 함부로 대하진 못합니다. 자기들 후원하는 스폰서들 귀에도 들어갔을 걸요?”
선우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 모두 각자 후원을 받는 스폰서들이 있었다.
이들 길드를 후원 해주는 기업들은 어느 정도 사회적 이미지를 고려한다.
무작정 길드가 유명하다고 해서 후원을 하는 게 아니었다.
만약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질러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면 가차 없이 계약 위반으로 소송을 걸기도 했고 손해 보상을 받아냈다.
그렇기에 아무리 유명한 길드라고 해도 자신들이 해당 기업을 직접 소유할 만큼의 재력과 영향력이 받혀주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눈치를 봐야 했다.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는 선우의 멘트를 방송으로 보면서 움찔거렸다.
특히 열혈독사와 불독상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길드원들에게 다시 명을 내렸다.
“최대한 점잖게 데려와라. 거칠고 폭력적인 그림은 연출하지 말고.”
“가능한 말로 해서 끌고 와. 사람들 보는 눈에서만 벗어나면 되잖아. 어차피 자세한 건 내가 직접 물어보면 되니까.”
선우의 방송 인터뷰 현장에 마침내 그들이 나타났다.
“아누비스 길드다!”
플레이어들의 말에 선우와 인터뷰를 하고 근처에 있던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화들짝 놀라 숨었다.
잔뜩 모여 있는 플레이어들 틈으로 각자 흩어져서 숨어 있었고 체로키와 라비트만이 선우 곁에 있었다.
이들은 폴리모프 마법을 받아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었으니까.
아누비스 길드와 레비아탄 길드가 알아보지 못할 거라 안심했다.
“서, 선우야. 이제 어떻게 하냐? 쟤들 나타났는데.”
“야, 라비트. 걱정 마라. 체로키하고 이리 와봐.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알았냐?”
선우는 아누비스와 레비아탄 길드원들이 나타나자 재빨리 체로키와 라비트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라비트와 체로키는 선우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고 재빨리 서로 모르는 척을 했다.
“어이, 이게 누구야? 체로키 아니야?”
“야, 라비트. 간만에 본 형들한테 인사 안 하냐? 꼴에 본 브레이커 길드 마스터라고 이제 위아래도 없다 이거야?”
“라비트, 길드 마스터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정신 차려.”
느닷없이 라비트에게 다가오며 껄렁대는 아누비스 길드원들.
“누, 누, 누구시죠. 저는 처음 뵙는 분들인데….”
“어쭈? 누구시죠? 이게 아주 우릴 대놓고 무시하네. 야, 너 지금 장난 하냐?”
“이 새끼 어리버리한 건 여전하네. 야, 네가 폴리모프로 그 짜증나는 면상 숨긴다고 너한테서 느껴지는 특유의 찌질한 기운은 못 숨겨. 알아?”
퍽!
“크윽.”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낄낄거리며 가볍게 라비트의 복부를 쳤다.
반 장난 식이었는데 갑자기 라비트가 허리를 확 굽히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크으으….”
라비트가 신음을 토하자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하! 요거 봐라. 야, 얘가 지금 쇼를 하는데?”
“어이, 넌 체로키지? 네 부하 왜 저러는 지 좀 물어봐줄래?”
“누, 누구세요. 저는 오늘 처음 뵙…컥!”
“이 새끼들이 진짜 장난 까나! 야! 우리가 지금 여기 놀러온 줄 알아?”
라비트에 이어 체로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다음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체로키를 보면서 라비트도 따라했다.
그러자 이들의 비명소릴 들은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렸다.
“뭐, 뭐냐? 지금 다짜고짜 처음 보는 애들을 팬 거야?”
이때를 놓칠 리 없는 선우.
“아니! 저게 뭐하는 짓이죠? 저 사람들 아누비스 길드 맞죠? 레비아탄은 어디 있습니까? 다른 곳에서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 패고 있나요? 이게 플레이어입니까? 양아칩니까? 누가 구분 하는 법 좀 알려주실래요?”
선우가 호들갑을 떨어대면서 스트리밍 방송의 시청자들과 다른 플레이어들 들으라고 떠들어댔다.
분위기를 한순간에 잡아버리자 갑자기 아누비스 길드원들을 쏘아보는 눈빛이 많아졌다.
“어? 아… 저기… 야, 너희들 오해는 하지 말고. 내가 얘들을 팬 게 아니라 그게 저… 그냥 쓰다듬었는데….”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당황한 나머지 말을 버벅였다.
선우가 이때 재빨리 뛰어갔다.
그리고 맞아서 뒹구는 척을 하며 오버액션 중인 체로키에게 인터뷰를 했다.
“뭐 때문에 맞았습니까?”
“야, 김선우. 잠깐 길드장이 보자신….”
“이 새끼들이 다짜고짜 우릴 때렸어요!”
체로키는 선우가 시키는 대로 오버액션을 크게하며 버럭 소릴 질렀다.
오죽하면 선우에게 다가오던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움찔 하고 뒤로 물러날까?
“아으, 씨. 깜짝야. 체로키. 내가 널 때린 게 아니고….”
“이 새끼들이 갑자기 날 보자마자 이유 없이 막 패잖아요.”
라비트가 거들었다.
“저도 맞았어요. 오더니 갑자기 패더라고요.”
“야, 라비트. 내가 널 때린 게 아니라… 그냥 반가워서 가볍게….”
선우가 끼어들었다.
“반가워서 가볍게 패셨다? 시청자님들. 보셨습니까? 이게 지금 CF 촬영이다 뭐다 하고 있는 아누비스 길드의 본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양아치들이 이미지 메이킹만 잘하면 얼마든지 세상의 눈을 속이고! 시청자님들을 기만하고!! 기업하고 손잡고 돈만 잘 헤 처먹으면 된다! 이걸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선우의 멘트에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얼어붙어버렸다.
“야, 저거 뭐, 뭐라고 대꾸해야 되는 거냐?”
“저기… 지금 독사 형한테 귓말이 엄청 오는데… 나 쫄려서 확인을 못하겠어. 누가 확인 좀 해주라. 니들한테도 단체 귓속말 갔을 거야.”
“네가 해봐. 난 못 열겠어.”
레비아탄 길드원들은 플레이어들 틈에 숨어 있었다.
처음엔 아누비스 길드원보다 더 빨리 선우를 데려가려고 했다.
여차하면 한판 붙을 생각도 했다.
지금은?
“야, 빨리 상어 형한테 귓말 넣어. 지금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고.”
“에이 씨. 김선우 저 새끼 입에 모터가 달렸나. 무슨 말빨이 저렇게 세냐?”
“완전 미친놈이야. 저거 괜히 손댔다가 우리 몸에 똥 묻겠다고. 그냥 여기서 손 떼고 물러나자고 상어 형 설득하는 게 낫겠어.”
레비아탄 길드는 아누비스 길드원들이 난감한 처지에 놓인 걸 보면서 뒤로 후퇴했다.
조용히 빠져나와서 분위기를 좀 더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불독상어 역시 스트리밍 방송으로 선우의 원맨쇼를 감상하며 길드원들 생각에 동의했다.
“야! 빨리 후퇴해라! 그냥 거기 있지 말고 조용히 빠져나와. 괜히 끼어들었다가 우리 길드 이미지만 박살나게 생겼다. 가급적 김선우한테 손대지 말고 일단 물러나.”
레비아탄 길드는 아누비스 길드를 보면서 간신히 선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망할… 이게 뭔 개망신이야!”
한편 불독상어와 달리 열혈독사는 선우의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고 있었다.
“독사 형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이것보다 더 큰일이 뭐가 있어? 나중에 얘기해.”
“아니요. 회장님 비서가 지금 접속해서 여기로 찾아왔습니다.”
“뭐라고?”
끼익.
열혈독사의 아지트 문이 열렸다.
“아, 김 비서님. 오셨습니까?”
아지트로 들어온 플레이어는 아누비스 길드를 공식 후원하고 있는 대일그룹 회장의 비서였다.
이들 또한 인피니티 로드에 접속하여 직접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야, 열혈독사. 너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예?”
“회장님께서 얼마 전에 기업 비자금 문제로 좀 시끄러우셨어. 이럴수록 너희 길드에서 사회적인 이미지를 더 깔끔하게 보여줘야 니들 후원하는 우리 회장님 체면이 서는 거 아니야?”
열혈독사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비서님.”
“지금 김선우 라고 했나? 저 플레이어 방송에서 너네 길드원들이 벌인 행패로 우리 회장님까지 덩달아 욕먹고 있다고.”
“예에?”
“독사야. 저번에 얼핏 들으니까 스폰서 바꾸고 싶다고 새로 물색한다는 루머가 있던데… 그게 사실이냐? 만약 그게 사실이면 지금 저 방송에서 니네 애들이 하고 다니는 짓거리가 이해가 되는데.”
열혈독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을 내저었다.
“저, 절대로 그런 의도로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믿어주십쇼! 제가 왜 감히 회장님을 배신하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그런 루머를 퍼뜨리고 다니는지 제게 알려주십쇼. 그건 말도 안 되는 음해입니다! 음해!”
김 비서가 싸늘한 눈빛을 뿌렸다.
열혈독사는 다시 차갑게 굳었다.
“독사야. 음해고 나발이고 지금 회장님께서는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실 시간이 없어. 그러니 네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해라. 널 키워주고 먹여주는 회장님의 체면을 좀 세워주라고.”
“알겠습니다.”
“김선우 쟤 어떤 식으로든 처리해. 단, 지금처럼 눈에 띄는 곳에서 깽판치지 말라고. 너네가 깽판 칠수록 회장님 얼굴에 먹칠하는 거니까. 알겠냐?”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께 아무 걱정 말라고 전해주십쇼.”
김 비서가 로그아웃을 하고 사라졌다.
열혈독사는 이를 바득 깨물었다.
“아우 짜증나! 진짜. 김선우 저걸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일단 부드럽게 말로 대화를 나눠보시는 게 어떨까요?”
“저놈한테 그게 먹히겠냐?”
“김선우는 입 터는 거 하나는 이미 신의 경지에 올라간 수준입니다. 그냥 대화를 하자고 설득해서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뒤 단물만 쪽 빨아먹고 버려야죠.”
열혈독사가 비열하게 웃었다.
“아, 그러면 되겠네. 야, 일단 김선우한테 대화를 하자고 연락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