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제89화
선우는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에게 잠깐 대기하라고 했다.
그 다음 김유한과 만나기로 약속한 근처 마을로 갔다.
가는 와중에 또 레벨업 알림이 들려왔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250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250
민첩: 250
체력: 250
마력: 250
스킬: 없음
소유 스킬: 소환의 진
스킬 사용권: 없음
붐비는 마을 사람들 틈에서 김유한이 선우를 발견했다.
“형! 여기예요!”
“어, 그래. 유한아. 뭔 일이냐?”
“여기는 보는 눈들이 많으니까 잠깐 이쪽으로 오세요.”
김유한은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러자.”
선우는 김유한을 따라가며 몰래 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무언가 써먹을 만한 사건이 발생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선우가 털레털레 따라간 곳은 사람들이 거의 없는 한적한 대장간 뒷골목.
“흐음, 여기서 해야 할 말이란 게 뭔데?”
“형, 이러시면 안 되죠.”
“뭘?”
“저도 방송 봤어요. 불나방 형 콜렉션을 코딱충한테 팔아버리면 어떡합니까? 레비아탄 길드에 아누비스 길드 아이템이 넘어간 거나 마찬가진데요.”
“니가 뭔 상관인데? 내가 정당하게 먹은 아이템 구매자가 나타나서 팔아 치운 건데.”
“하아~ 형. 아르콘 대륙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여기는 사냥터, 던전보다 콜로세움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인데 상도덕이라는 게 있잖아요.”
“난 없는데. 넌 그런 것도 있냐?”
김유한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형. 내가 진짜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솔직히 형 벨론에서 버벅거릴 때부터 길드 사람들한테 형 영상 보여주면서 아르콘 대륙 넘어오면 길드원으로 가입 시켜주라고 얘기 다 해놓고 다녔어요. 이 정도면 나한테 뭘 해주진 못할망정 고마워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김유한이 버럭 짜증을 쏟아냈다.
이쯤 되니 선우도 슬슬 기분이 거슬렸다.
“야, 김유한. 너 지금 뭔 소릴 하는 거냐? 내가 언제 너한테 니네 길드 가입시켜달라고 했어? 필요 없다고 했지. 근데 네 혼자 길드 가입 시켜달라고 돌아다녀놓고 이제 와서 왜 내 탓을 해?”
선우의 말에 김유한은 버벅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하지만 짜증이 울컥 솟아올랐다.
지금 아누비스 길드 안에서 김유한의 입지는 꽤 심각해보였다.
“아, 형. 장난해요? 제가 형 영상 길드원들한테 보여주고 다니다가 지금 사건 터져서 완전 쌍욕 먹고 있다고요. 불나방이 저 보자는 거 길드 마스터가 막아줘서 이렇게 형한테 찾아온 겁니다. 안 그랬으면 찾아오지도 못해요.”
“그러니까 그런 길드를 왜 나한테 가입시키려고 했냐고. 딱 들어봐도 쓰레기들이네. 조폭 흉내나 내고 자빠진 양아치.”
만나자마자 선우한테 계속 짜증내는 김유한.
이젠 선우도 들어주지 않고 김유한의 속을 긁어대는 발언을 했다.
선우는 김유한에게 잘못을 한 게 없었다.
김유한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다.
지금 아누비스 길드에서 김유한이 욕을 먹고 다니는 건 선우의 책임이 아니었다.
선우는 일찌감치 아누비스 길드 가입하는 건 관심 없다고 말했었으니까.
그런데 김유한은 선우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멋대로 길드 가입 여부를 꺼내고 다녔던 것이다.
따라서 선우가 아닌 김유한 본인의 책임이었다.
문제는 김유한은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엔 상황이 짜증나고 손해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 누군가의 탓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다.
지금 아누비스 길드는 레비아탄 길드와 본격적인 길드 전쟁을 벌이기 직전이었다.
그 사건의 발단은 선우가 시작한 것이다.
“형, 초짜가 아르콘에 들어왔으면 저한테 뭐 물어라도 보던가요. 쪽지나 귓속말 한 번 보내는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워요? 아르콘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저한테 물어봤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요.”
선우는 기가 찼다.
지금 대체 누가 누구에게 훈계질이지?
“어쭈? 초짜? 형한테 말하는 거 봐라. 야, 김유한. 너 아까부터 뭐라고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내가 너한테 왜 물어봐? 네가 여기서 뭐라도 되냐?”
“뭐요? 적어도 형보다는 뭐라도 되는 거 같은데? 지금 형 때문에 내가 X되게 생겼다고요. 내가 계속 형 대접해주니까 우스워 보여요?”
“해주지 마. 누가 너 같은 애한테 형 대접 받고 싶겠냐? 혼자 설치고 다니다가 독박 쓰게 생겼으니 내 탓을 하고 싶은 거겠지. 너 같은 놈들 심리는 내가 좀 알거든. 얄팍하게 잔머리 좀 굴리면서 내 영상들이 인기 좀 끄니까 어떻게든 아누비스 길드에 영입시켜서 돈벌이를 하면 거기서 네 입지가 넓어지고 역할도 커질 테니까. 안 그래?”
“뭐, 뭐라고요?”
“유한아. 인생 그렇게 얄팍하게 살지 마라. 솔직히 까놓고 말해봐. 너 진짜 나를 위해서 아누비스 길드 가입시키고 싶었냐? 아니면 그 길드에서 네가 승진하고 인정받기 위한 미끼로 날 써먹고 싶었던 거냐?”
선우의 말은 김유한의 정곡을 찌르다 못해 관통해버렸다.
“아니, 이 양반이 미쳤나. 혼자서 무슨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여? 누가 당신을 미끼로 쓴다는 거야? 당신이 그럴 만한 가치나 돼?”
김유한이 결국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선우를 칠 것처럼 기세를 뿜었다.
이곳은 아르콘 대륙의 마을.
다른 대륙과 달리 마을 안에서도 PVP는 가능하다.
“이보쇼, 김선우 씨. 자꾸 이렇게 나오면 나도 참기 어려워요. 내가 지금 이러려고 당신을 부른 건 아니거든. 근데 이렇게 나한테 대하면 안 되지.”
선우에게 김유한은 으름장을 놓으며 시비를 걸었다.
“이야~ 우리 유한이 많이 컸다. 이제 형 떼고 당신이라고 부르네. 아누비스 길드에서 그렇게 가르쳤냐? 거기도 알 만하다. 근본도 없고 족보도 없는 무근본 양아치들 모임 이었네. 야, 너 날 그런 싸구려 길드에 넣으려고 발악하고 다녔냐?”
선우의 말에 김유한은 욕설을 뱉었다.
“아우, X발!”
김유한의 욕설에 지나가던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두 쳐다봤다.
“어? 야, 저기 봐. 싸움 난 거 같은데.”
“가보자!”
“야!! 싸움 났다~!”
“어디? 어디?”
플레이어들 몇 명이 선우와 김유한의 분위기를 대충 보더니 싸움 났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싸움 났대! 싸움!”
“어디냐! 누가 붙는 거냐!”
“김선우야! 코딱충한테 불나방 콜렉션 팔았던 놈이랑 누가 붙나봐!”
“뭐? 김선우? 빨리 가자!”
“아누비스 애들이 김선우 조질려고 온 거 아냐?”
“가자, 가자!”
갑자기 몰려든 플레이어들에 김유한은 당황했다.
“이게 뭔… 당신.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린 건데?”
김유한이 선우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선우는 황당한 나머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어쭈? 웃어? 역시 뭔 수작을 부렸구만? 갑자기 이렇게 많은 플레이어들이 나타날 리가 없잖아!”
김유한은 크게 당황했다.
반면 선우는 느긋했다.
“내가 수작을 부리긴 뭘 부려? 그냥 내 영상이 좀 인기가 있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하나 더 참고로 말하자면 유한아, 난 네가 나한테 했던 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 촬영해뒀다. 기대해라. 널 확실하게 띄워 줄 거야.”
“뭐?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멘트 좋고~”
“으으… 김선우 X새끼야!!”
부우웅!
김유한이 건틀렛을 낀 오른손으로 선우를 공격했다.
빠악!
선우는 막을 수 있었지만 안 막았다.
일부러 맞았다.
왜냐고?
다음과 같은 반응을 노렸으니까.
“우와! 쳤어!”
“이제 PVP 자동 성립! 붙어라!”
“친 놈 누구냐?”
“아누비스 길드원이래. 김유한이라고.”
“아, 나 걔 몇 번 들어봤어.”
“딜러로 좀 잘나간다던데.”
“보면 알겠지.”
구경하던 플레이어들부터 NPC까지 난리였다.
선우를 먼저 치는 바람에 자동 PVP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형을 쳤냐? 유한이 너도 근본이 없는 놈이었구나. 이런 무근본 플레이어를 동생이라고 여겼다니.”
“야, 김선우. 주둥이 좀 닫아줄래? 한번만 더 근본 타령 하면 너 진짜 죽는다.”
“근본도 없고~ 생각도 없고~ 예의도 없고~ 유한아. 도대체 넌 있는 게 뭐냐?”
선우의 말에 구경하고 있던 플레이어들이 빵 터졌다.
“푸하하하하!”
“있는 게 뭐녜, 큭큭큭.”
“아누비스 길드 자존심이 있지. 어이, 김유한. 그 말 듣고도 참을 거야? 빨랑 죽여버려!”
플레이어들의 말에 김유한의 얼굴이 구겨졌다.
“김선우! 죽어!”
김유한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더는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는 뜻.
하지만 선우도 이젠 가만있지 않았다.
스겅!
김유한의 검이 허리에서 뽑혀지며 곡선을 그렸다.
“반월 베기!”
검신이 반월 형태로 휘둘러졌다.
선우의 목을 노리는 검.
차캉!
선우가 플레임 블레이드를 뽑아 검을 막아냈다.
그 다음 손날로 김유한의 머리통을 타격했다.
빠각!
“끄억!”
선우의 족발 당수 스킬이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진 김유한.
발이 제 자리에 붙어있지 않고 비틀거렸다.
다리가 흐느적거리는 찰나.
플레임 블레이드가 김유한의 몸통을 베었다.
화르르!
불길에 휩싸이자 김유한은 서둘러 물약을 꺼내 마셨다.
“으으… 젠장!”
김유한이 물약을 마시면서 회복을 했고 다시 검을 들었다.
“야, 우리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선우는 마음에도 없는 멘트를 날렸다.
영상 촬영 중이었으니까.
‘이걸 편집하면 쏠쏠한 재미를 뽑아낼 수 있겠는 걸?’
선우의 머릿속에는 온통 영상 편집뿐이었다.
김유한의 도전과 시비, 그리고 아누비스 길드와 얽혀있는 사연은 틀림없이 대박을 칠 것이다.
반면 김유한의 머릿속에는 혼돈, 절망, 분노, 당황 등 엉망진창이었다.
‘빌어먹을. 일부러 사람들 없는 곳에서 망신 줄려고 했는데 이게 대체 뭐냐고. 김선우 저 인간이 아르콘에서 인지도를 이렇게나 높았던가?’
김유한은 당황을 애써 숨겼다.
아르콘 대륙에 넘어와서 선우의 활약을 아직 보진 못했다.
선우는 김유한에게 연락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김유한이 가끔씩 선우에게 연락을 했지만 선우는 오면 받고 안 오면 안 받았다.
그러니 아르콘 대륙에서 지금 선우가 어떤 플레이어로 이름을 높이는지 김유한이 알 턱이 없었다.
“유한아, 지금이라도 나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게 어떠냐?”
“닥쳐! 새끼야!”
파앗!
김유한이 돌격했다.
“빗물 베기!”
챙! 챙! 챙! 챙!
“우와!”
구경꾼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김유한의 쾌검 스킬.
순식간에 검신이 여러 개로 보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적을 궤멸시키는 연속기였다.
하지만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로 모조리 막아냈다.
김유한의 공격보다 선우의 방어에 플레이어들이 더욱 놀라워했다.
“쩐다. 봤냐? 저거 어떻게 막아냈지?”
“쟤가 뭔 깡으로 아누비스 길드 아이템을 팔았나 했는데 믿는 구석이 있었네.”
“맞아. 저 정도 실력이면 콜로세움 안에서는 죽지는 않겠는 걸.”
“야, 그래도 모르는 거야. 아누비스 길드가 센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김선우가 쎄긴 쎄구나.”
플레이어들은 선우의 전투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영상으로는 봤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선우의 방어 스킬에 당황한 건 김유한.
‘아니, 저 인간 실력이 이렇게 좋았던가? 분명 벨론 대륙에서 하는 것도 봤었고 로젠하임 대륙에서 황궁 퀘스트 영상 올린 것까지 다 봤었는데 이 정돈 아니었어. 어떻게 된 거야?’
김유한은 선우가 벨론 대륙에서 길드 전쟁에 참가하는 것과 로젠하임 대륙에서 올린 영상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봤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선우는 자신이 본 영상 속 선우와는 또 다른 실력이었다.
선우에게 시비를 건 것도 영상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 달라. 젠장!’
김유한은 알지 못했다.
선우의 비밀을.
영상 촬영으로 돈 냄새 맡느라 본인조차 신경 안 쓰는 선우만의 레벨업 시스템.
김유한과 만나기 전에 들었던 레벨업 알림이 선우에게 또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