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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84화 (84/200)

# 84

제84화

“다 했다!”

선우가 신청서를 완료하는 순간 뒤에서 라비트가 불렀다.

“선우야.”

“왜?”

“체로키 형이 너랑 할 말이 있대.”

“뭔데?”

체로키가 다가오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

“다름 아니라 너 우리 애들 꺼 아이템 가져간 거 돌려줄 수 있냐?”

“다 팔았는데.”

“뭐?”

선우의 당당한 대답.

체로키는 잠깐 당혹스러웠다.

‘젠장,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 아이템들 돈을 얼마나 써서 모아놓은 건데 놔둘 리가 없지.’

“그러면 아이템 팔아서 번 돈 절반은 줘야겠다. 나도 애들한테 체면이 있어야지.”

“내가 왜?”

선우의 대답에 체로키는 번번이 말문이 가로막혔다.

“야, 네가 가져간 아이템이 네 건 아니잖아.”

“나 혼자 가져갔냐? 쟤들도 다 가져갔는데.”

갑자기 선우가 체로키의 주위를 분산시키는 대답을 했다.

체로키가 옆에 있던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을 쓱 둘러봤다.

록희, 마강쇠, 펠트리어가 재빨리 눈을 피했다.

딴청을 부리는 걸 본 체로키는 한숨을 내쉬며 라비트에게 말했다.

“야, 라비트. 나도 명색이 독버섯 길드 마스터잖아. 내 체면 좀 살려주라.”

“형, 그러지 말고 그냥 나오세요. 길드 해산해버려요.”

“뭐? 야, 인마. 그게 나한테 할 소리냐?”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지금 독버섯 길드가 완전히 형 거예요? 아누비스 애들이 밑의 놈들 다 포섭해서 그냥 껍데기만 독버섯이지 내용은 아누비스 2중대잖아요.”

“그건….”

체로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크흡….”

“에이, 형 왜 눈물을 흘리고 그래?”

옆에 있던 록희가 투덜대듯이 물었다.

“이 자식들아! 니들이 내 입장 돼봤어? 길드원이라는 새끼들은 어느 순간 내 말보다 아누비스 길드원 말을 더 잘 듣고 사냥을 해도 걔들이랑 몰래 하러 다니고. 거기다가 콜로세움 출전할 때 걔들 꺼 아이템 빌려 쓰면서 밖에서도 형 동생 하면서 술 얻어먹고!”

선우는 체로키의 한탄을 흐린 눈빛을 띄고 듣고 있었다.

“그 자식들이 날 은연중에 얼마나 무시… 크흡….”

“야, 야. 체로키라고 했지? 그만 찌질 거리고 네가 온 목적이 아이템 돌려받으려고 온 거냐?”

“응?”

“야, 김선우. 아무리 그래도 말은 조심해라. 한때나마 우리 길드장이셨다.”

“알게 뭔데? 내 길드장은 아니잖아. 그리고 아누비스인지 뭔지 그런 애들 하나 제대로 못 컨트롤해서 길드 홀라당 갖다바치는 거면 길드 마스터 자질도 없는 거네. 체로키. 너도 내 밑에 들어와서 일 좀 할래?”

선우의 갑작스런 제안.

라비트를 비롯한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야, 체로키 형이 우스워 보이냐?”

록희가 발끈했다.

“지금까지는 좀 우습다.”

선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크흡….”

체로키는 눈물을 터뜨렸다.

“에이, 형. 왜 울어? 쪽팔리게.”

그동안 서러운 게 쌓였는지 체로키는 눈물을 닦았다.

이쯤 되니 선우도 약간 측은지심이 들었다.

“야, 울진 마라. 내가 울린 거 같잖아. 잔말 말고 내 밑으로 들어와. 어차피 얘네들 대장이었다며? 그러면 통솔력도 좋고 쓸 만하겠구먼.”

선우가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자 체로키는 더 쪽팔렸다.

‘젠장, 그래도 명색이 길드 마스터였는데 이런 놈 밑에 들어가야 하는 건가.’

하지만 라비트가 체로키 귀에 대고 속삭거리는 걸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형, 쟤가 말투는 저래도 진짜 능력 있는 놈 이에요. 데스 윙 길드를 아예 가지고 놀았어요. 우리들만 갖고.”

“뭐? 진짜야? 데스 윙 길드를? 너희들이?”

“예, 그렇다니까요. 우리도 깜짝 놀랬죠.”

체로키는 비로소 젖은 눈으로 선우를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렸다.

“커흠! 그러면 니 밑으로 들어간다는 표현보다는 혈맹을 맺는 게 어떨까?”

“혈맹은 무슨 혈맹. 내 밑에 들어와서 쟤네들 통솔하면서 시키는 것만 잘해. 그러면 무조건 본전 뽑는다. 아누비스 길드에 갚아줘야 할 게 있는 거 같은데 한 방 먹이고 싶지? 그러면 내 밑에 들어와.”

선우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체로키마저 흔들렸다.

‘이 자식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해 하지?’

선우의 자신감에 체로키는 혼란스러웠다.

뭘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렇게 떠드는 것일 터.

특히 한때 자신의 부하 플레이어였던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마저 선우의 능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 존심 상하지만 그래도 믿고 해보자.’

체로키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네 밑에 들어간다면 넌 나한테 뭐 해줄 건데?”

마지막 자존심을 담은 한 방.

“질문의 순서가 바뀌었어. 내가 물어볼게. 내가 널 받아주면 넌 나한테 뭘 해줄 거냐?”

체로키의 한 방을 선우는 매몰차게 걷어찼다.

“뭐라고?”

선우의 역제안을 들은 체로키는 당황했다.

이건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체로키는 독버섯 길드 마스터였지만 자존심과 직위를 버리고 선우 밑에 들어가는 것은 용납되기 어려웠다.

반면 선우는 체로키가 쓸 만한 플레이어가 될 거라 생각했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을 통솔하는 대장 역할을 맡는다면 선우는 체로키만 잘 컨트롤 하면 되니까 훨씬 편리해진다.

콜로세움에서의 승률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체로키를 길들이는 게 중요하다.

선우는 체로키와의 기 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아나갔다.

“내 말이 맞잖아. 아쉬운 건 너지 난 아니거든.”

체로키는 옆에 있던 라비트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 눈치를 봤다.

“걔들도 아쉬울 건 없어. 내가 있어야 콜로세움에서 돈 좀 만질 거니까.”

라비트와 록희가 체로키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형, 그냥 접고 들어가요. 편하게 가자구요.’

복화술까지 총공세를 가하자 체로키는 결국 수긍하기로 했다.

“좋아. 그러면 네 밑으로 들어가겠다.”

“내 밑에 들어오는 대신 조건이 있다.”

“뭐?”

“아까 말했잖아. 널 받아주면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냐고.”

“그, 그랬지.”

“내 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너는 내가 하는 모든 말에는 군말 없이 따라야 한다. 시키는 건 의심없이 무조건 다 해야 돼. 할 수 있냐?”

“…그, 그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아누비스 길드를 무너뜨려주지.”

선우의 말에 체로키는 당황하다 못해 놀라 자빠질 뻔했다.

‘대체 이놈 뭐하는 놈인데 이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너무 자신감이 넘치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체로키는 믿어보기로 했다.

“무조건 다 하겠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좋아. 지켜보겠어. 만약 네가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즉시 퇴출이다. 너만. 알겠냐?”

쐐기를 박아버리는 선우였다.

체로키는 길드 마스터였기 때문에 남의 밑에 들어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언제 어느 순간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과 합심하여 선우의 뒤통수를 노릴 수도 있었다.

선우가 체로키를 콕 짚어서 퇴출 카드를 꺼낸 것은 안전 장치였다.

만약 선우가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시 경고 없이 자신 혼자 퇴출당한다면?

결국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과 같이 움직일 수 없으니 선우의 뒤를 노리고 작당을 꾸밀 엄두를 못 내게 된다.

선우의 노림수는 적중했다.

결국 체로키는 선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좋았어. 이제 새로운 신입이 들어왔으니까….”

“잠깐만.”

“뭐냐?”

“내가 아직 독버섯 길드 마스터인데. 이거 일단 입장 정리는 하고 와야 되지 않을까?”

“그러면 길드 해산 시켜.”

“그게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해산 시킬 명분이 없는데….”

체로키는 난감했다.

선우에게 아이템을 빼앗긴 길드원들에게 되찾아주겠다고 왔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선우 밑으로 들어가 버렸으니까.

선우의 말빨에 홀려버린 것.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체로키는 모든 걸 체념하기로 했다.

“명분, 명분이라… 그까짓 거 만들어주면 되지. 뭐가 어려워?”

“어떻게?”

“일단 너네 독버섯 길드원들 총 몇 명이냐?”

“아직 남아있는 애들은 다 합하면 20명쯤 된다.”

“그 중에 당장 전투 뛸 수 있는 애들은?”

“네가 아이템 뺏은 애들이 10명이었으니까 나머지 10명만 가능하지.”

“딱 됐네. 그러면 그 10명한테 지금 콜로세움으로 오라고 해.”

“뭐? 콜로세움은 갑자기 왜?”

선우가 씨익 웃음을 보였다.

라비트와 록희, 마강쇠, 펠트리어는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나왔다, 저 웃음.’

선우에게 무슨 계책이 있으면 슬며시 모습을 비추는 웃음.

라비트는 전율에 떨었다.

지금까지 선우의 계략대로 모두 먹혔으니까.

“내가 아까 뭐랬냐? 네가 내 밑에 들어오면….”

“아, 그렇지! 미안! 미안하다. 지금 부를게.”

“오면 신청서 작성하고 콜로세움 전투하자고 해. 나하고 여기 본 브레이커 애들이 걔네 아이템 갖고 전투 출전한다고 우리랑 붙어서 먹으면 된다고 해라.”

“그러면 나는?”

“체로키 넌 출전할 땐 걔들하고 같은 팀으로 해야지.”

“뭐? 설마 너….”

선우가 낄낄거렸다.

“살면서 배신 같은 거 안 해봤냐? 어차피 네 밑의 부하들은 다 아누비스 쪽 애들이라며. 그러면 무늬만 대장인데 죄책감 같은 거 들 필요도 없잖아? 널 길드장으로 존경하고 따르는 애들도 아닌데. 언젠가 뒤통수 맞을 거라면 네가 먼저 쳐버려.”

선우의 말에 체로키는 공감이 갔다.

‘그래, 맞아. 어차피 아누비스 놈들한테 포섭돼서 내 뒤통수를 노리는 거라면… 내가 먼저 친다.’

체로키는 결심했다.

“알겠다. 그러면 놈들을 부르지.”

“좋아. 그러면 모든 작전은 이렇게 한다. 체로키 네 역할 중요해. 잘 들어라.”

선우는 체로키와 본 브레이커 애들을 모아놓고 작전을 설명했다.

* * *

“길드장, 여기에 놈들이 있다구요?”

“그래, 빨리 와라.”

체로키는 콜로세움에서 독버섯 길드의 남은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한 플레이어들은 각자 최고의 아이템으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애들이 빼앗긴 아이템을 되찾아가고 싶으면 콜로세움에서 결투를 벌이자고 한다. 그놈들은 먼저 콜로세움에 들어가 있어.”

“이 자식들이 겁도 없이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알겠습니다. 길드장. 지금 출전 신청 할게요.”

“아니야. 내가 이미 해뒀다.”

“아, 벌써요? 저희한테 시키시죠.”

“걱정 마라. 그건 그렇고 너희들 내가 말한 대로 아이템 다 챙겨왔냐?”

“물론입니다. 이걸 보십쇼. 이게 뭔지 아십니까? 무려 아누비스의 제 2공격대장님께서 저한테 특별히 빌려주신 칼입니다. 아끼시는 검 중 하나라서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는데 제 부탁 듣고 잠깐 대여해주셨죠. 하하.”

“그, 그래? 얼마짜린데.”

“놀라지 마십시오. 현재 시세로 5천만 원은 무조건 받을 수 있데요. 이런 검들이 몇 개 더 있다고 하시니 정말 대단한 분 아닙니까?”

“그렇구만. 야, 말똥구리 넌 뭘 가져왔냐?”

“저는 이걸 빌려왔죠. 제가 공격 무기는 돈 좀 써서 빵빵한데 방어구가 부실했잖아요. 아누비스 길드에서 손꼽히는 탱커이신 불도저님의 콜렉터 중 하나인 드래곤 아머입니다. 용 가죽으로 만든 레어 갑옷이죠.”

“이야, 너희들 엄청나구나. 이런 걸 다 빌려오고.”

“아유, 뭘요. 아누비스 길드에서 우릴 그만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뜻이죠.”

“하하, 그렇지. 이제 들어가자. 시간 다 됐으니까.”

독버섯 길드원 10명을 데리고 체로키가 콜로세움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이미 선우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안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체로키는 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알겠냐? 무조건 아누비스 길드에서도 고급이라 할 만한 아이템들 빌려오라고 해. 걔들 어차피 아누비스 충견들이라며? 좀 비싼 뼈다귀 물어오라고 꼬셔. 그 다음 콜로세움에서 내가 뼈까지 발라 먹어줄 테니까.’

체로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김선우, 정말 무서운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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