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제81화
승부는 끝이 났다.
선우가 꿀떡치즈의 리플렉트 소드를 들고 튀는 바람에.
“우와아!”
고막이 떨리도록 함성이 터져 나왔다.
“데스 윙 길드가 저렇게 당할 줄이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본 브레이커 애들한테 돈 거는 건데.”
선우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의 승리였다.
단숨에 콜로세움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선우.
“내 말 들으니까 간단하지?”
“아까 의심해서 미안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가장 먼저 선우에게 사과를 하는 록희.
직접 눈앞에서 선우가 보여준 결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 진짜 듣던 대로구나. 덕분에 시원하게 이겼다. 고맙다.”
펠트리어와 마강쇠가 선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거 봐. 내가 뭐라고 했냐?”
라비트가 처음 선우를 길드원들에게 소개할 때와는 달리 우쭐한 표정이었다.
“이제 겨우 1승 올린 거야. 역대 1위 기록은 몇 승이지?”
“99승이다. 아직 100승을 거둔 팀이 나오진 않았어.”
“99연승이라면 우리가 결국 100연승을 해야만 다음 대륙 진출 가능 하단 건데.”
선우는 대충 연승을 해나갈 시간을 따져봤다.
“100연승을 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데. 야, 다른 방법으로 아르콘 빠져나가는 건 없냐?”
“있기는 한데….”
“뭔데?”
라비트가 약간 뜸을 들였다.
“그건 돈이 많아야 돼.”
“돈? 얼마나?”
“아르콘 대륙의 황제는 돈을 엄청나게 밝히거든. 황제가 좋아할 만한 온갖 금은보화부터 화려한 고급 장신구, 유니크한 무기 같은 것들을 돈으로 잔뜩 구입해서 갖다 바치면 황제가 대륙을 빠져나갈 수 있는 특별한 칙서를 써줘. 그걸 갖고 다음 대륙으로 갈 수는 있어.”
“그러니까 NPC인 황제한테 돈을 갖다 바쳐라?”
“응. 인피니티 로드 만든 놈들이 완전 유저들 돈 빨아먹으려고 넣어둔 설정일 거야.”
“흙수저 게이머들은 꿈도 못 꾸는 방법이지. 오직 금수저들만 가능한 거야.”
“돈이 얼마 정도 있어야 하는데?”
“못해도 팀당 천만 원은 질러야 한다.”
“맞아. 몇 명이든 최소 천만 원은 넘게 캐시 아이템 같은 거 질러서 황제에게 공물로 바쳐야 해.”
“돈내기 싫으면 콜로세움 가야되고.”
“으음.”
선우는 잠깐 고민을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건데. 꼭 콜로세움을 통해서만 가는 건 아니었어. 어쩐지. 저 많은 플레이어들을 일일이 연속으로 다 이긴 놈만이 진출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돈을 많이 써서 아르콘 대륙을 빠져나오는 방법이 있었다.
다만 돈을 쓰기 싫은 게이머들은 자신의 레벨을 올리면서 길드 혹은 랭커들과의 친목을 다질 겸 콜로세움을 선호하기도 했다.
각자 선택이었지만 일반적으로 콜로세움을 훨씬 선호했다.
왜냐고?
“그렇지만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콜로세움을 놓칠 수 없는 건 방송 때문이야.”
“맞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콜로세움 전투를 보여주면 시청자들 엄청 몰리거든.”
“거기다 달풍선 장난 아니게 터지고. 그걸로 번 돈으로 아르콘 대륙 빠져나가는 건 간단하지.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그렇게는 안 해. 돈줄이 끊어지게 될 거니까.”
라비트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르콘 대륙에서 콜로세움은 인피니티 로드 플레이어들의 주요 돈벌이 수단으로 통했다.
비록 1번이라도 패배하면 가진 걸 모두 잃어버리지만 연승을 할수록 시청자들의 조회수와 후원금이 폭발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이 콜로세움에서 노리는 건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한 가지는 바로 레어 아이템 획득.
압도적인 연승과 방송 스트리밍 수입을 얻기 위해 플레이어들은 고가의 아이템을 갖고 들어온다.
돈 많은 플레이어들은 자금이 넉넉하기에 고급 아이템 몇 번 사라지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들은 그저 사람들의 관심을 원했다.
그렇기에 콜로세움으로 향했고 이들의 아이템을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몇 승 건지면서 그 중 1개라도 유니크 아이템을 먹는다면?
그걸 경매장에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오직 돈만을 위한 게임 플레이.
선우는 생각을 정리했다.
“좋아. 일단 콜로세움에서 계속 연승을 해서 100승을 한다. 그러면 황제가 부를 거라며?”
“아르콘 황제가 직접 불러서 보상도 주고 다음 대륙으로 갈 수 있는 칙서를 주거든.”
“그래? 그러면 콜로세움에서 신기록 세워도 황제는 보러 가야 한다는 거네?”
“그렇지.”
선우가 잠깐 말이 없었다.
라비트가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일단 콜로세움에서 100연승 채운다. 그 다음 황제에게 간다.”
“휴우, 근데 100승 채울 수 있을까?”
마강쇠가 자신 없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내가 있기 때문에 세울 수 있다. 야, 일단 다음 대결은 언제냐?”
“얼마든지 신청할 수 있어. 이긴 팀은 무조건 신청만 하면 상대 팀을 잡아주니까.”
“좋아. 그러면 그 전에 퀘스트 포인트 좀 넉넉하게 쌓아두자.”
“그러지.”
퀘스트 포인트가 많을수록 콜로세움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특히 데스 윙 길드와 한판 붙어보니 더욱 절실하게 와 닿았다.
“그런데 우리가 데스 윙 놈들 깨버렸는데 놈들 가만히 있을까?”
“가만있을 리가 있냐? 걔들이 어떤 놈들인데.”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갑자기 한숨을 토했다.
영문을 모르는 선우만이 말문을 열었다.
“뭐냐? 분위기가 또 왜 이러냐?”
“아, 이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리가 이긴 상대가 데스 윙 길드라는 게 이제 생각난다.”
“왜 그러는데? 데스 윙 길드가 잘나가서?”
“잘나가다 뿐이야? 걔들 길드 마스터가 레비아탄 길드하고 엄청 친하거든.”
“레비아탄은 뭔데?”
“아르콘 대륙에서 기생하고 있는 악질 길드 끝판왕 이지. 아누비스 길드도 비슷한데 걔들보다 더 한 애들만 모여 있는 길드라고 보면 될 거야.”
팔짱을 끼고 갸우뚱거리는 선우.
라비트가 아르콘 대륙의 길드 세력에 대해 선우에게 설명을 해줬다.
“그랬구만. 그러고 보니 아누비스 길드는 내가 아는 동생에게 들어본 거 같네.”
“뭐 두 길드 특징은 사실 아르콘 대륙에서 조직된 길드지. 각자 다음 대륙 진출하려고 콜로세움 연승하다가 방송으로 돈 맛을 좀 봤거든. 그 뒤에 뜻이 맞는 플레이어들끼리 하나 둘 모이면서 길드가 된 거야.”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는 아르콘 대륙을 양분하는 대표적인 길드였다.
선우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요 두 놈들을 잘 구워 삶아보면 내가 완전 이득이 될 수 있겠는 걸?’
콜로세움에서 연승을 하다가 아르콘 대륙에 자리를 잡고 돈을 벌고 있는 길드라면 틀림없이 선우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재료가 되어줄 것이다.
혼자 이유 없이 킥킥 거리며 웃음을 흘리는 선우.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모두 의아한 눈빛을 뿌렸다.
“왜 웃냐?”
“설마 이게 재미있어 보이냐?”
“응? 아, 아냐. 아무것도. 너희들은 그냥 걱정 마라. 다음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은 거라면 내 말만 잘 듣고 따라오면 된다.”
선우가 웃음을 참으며 대답하자 라비트조차 당황스러워했다.
‘대체 얘는 자신감이 어디서 이렇게 뿜어져 나오는 걸까?’
아무리 봐도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의 눈에는 선우가 신기한 플레이어 같았다.
이미 선우의 머릿속에는 레비아탄 길드와 아누비스 길드를 어떻게 삶아 먹을지 아이디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퀘스트 포인트부터 빨랑 모으자. 야, 아이템하고 이런 거 넉넉하게 장착하려면 최소 몇 점을 먹어야 되는 거냐?”
“못해도 2000 점은 넘어야지.”
“2000점. 까짓 거 얼마 높지도 않네. 빨리 사냥터로 가자.”
* * *
선우와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콜로세움에서 멀지 않은 곳의 던전에 들어왔다.
던전에 입장하자 레벨업 알림이 들려왔다.
선우가 레벨을 확인했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220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220
민첩: 220
체력: 220
마력: 220
스킬: 없음
소유 스킬: 소환의 진
스킬 사용권: 없음
“여기 던전이 그래도 퀘스트 상자 드랍률이 좀 높아.”
“그렇군.”
“하지만 1층에서만 노는 게 좋아. 2층부터는 통행료를 내야 하거든.”
“왜?”
“2층부터 퀘스트 상자가 1층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데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몰려서 통행료를 걷고 있어.”
“뭐? 야, 그런 건 그냥 밀어붙이면 되잖아. 너네들 자존심도 없냐? 본 브레이커 어쩌고 잘나가는 척 하더니 순 맹물들이구만.”
“뭐라고?”
“야, 록희 참아. 틀린 말은 아니잖아.”
“참기는 뭘 참아! 놔봐.”
“워, 워. 록희. 진정해. 일단 선우가 하는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 들이지마.”
“그럼, 그럼. 내가 하는 말은 그냥 대충 들어도 된다.”
선우가 일단 록희를 진정하게 했다.
록희는 아르콘 대륙에서 당한 게 많아보였다.
“2층은 어느 길드가 독점하고 있는 거냐?”
“독버섯 길드라고 있는데 길드 마스터가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와 의형제래.”
“잘 됐네. 야, 올라가자.”
“뭐? 야, 김선우! 기다려봐. 잠깐만.”
“어떻게 해야 되냐? 말려야 되는 거 아냐?”
“일단 따라가보자.”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선우를 따라 던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확실히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음~ 역시 여기는 때깔부터가 다른 거 같네. 퀘스트 포인트 빨리 모으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게 훨씬 빠르겠네.”
“그렇긴 한데, 목소리 좀 낮춰줄래? 길드 애들한테 걸리면….”
“어이, 거기 누구냐?”
“젠장, 들켰다.”
“야, 이리 와.”
뒤쪽에서 플레이어 1명이 다가왔다.
오른쪽 가슴에는 독버섯 그림이 그려진 길드 마크가 보였다.
독버섯 길드원이었다.
“너희들 1층에서 올라온 애들이지?”
라비트가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아닌데.”
선우가 먼저 대답해버렸다.
당황한 라비트와 길드원들.
독버섯 길드원이 껄렁거리면서 다가오더니 선우를 노려봤다.
“아니라고? 여기 2층에서 사냥하는 애들은 다 내가 봤는데 너희들은 처음 보는 놈들인데. 올라왔으면 통행료를 내야지. 시간당 100골드다.”
독버섯 길드원이 손바닥을 보이며 까딱거렸다.
선우가 코를 후비면서 대답했다.
“야, 그건 너무하잖아. 시간당 100골드면 없는 살림에 게임하는 애들은 어떻게 하라고. 여기 애들 다 흙수저라서 그건 어려워. 그냥 이번 한번만 봐줘라.”
“뭐라고?”
독버섯 길드원이 눈썹을 구기면서 선우 앞으로 다가왔다.
“통행료가 비싼 거 같으면 그만큼 너희들이 열심히 퀘스트 포인트 모으고 아이템 먹고 팔면 되잖아. 투자 한만큼 본전 뽑아가는 건 너희들 몫이지. 안 그래?”
“너무 비싸. 그냥 이번엔 공짜로 해줘라.”
선우는 막무가내였다.
당연히 의도적이었다.
“이게 진짜. 너 죽고 싶냐?”
독버섯 길드원이 슬슬 열을 받고 있었다.
“너, 내가 누군지나 아냐?”
“몰라, 보내줘.”
“뭐?”
선우의 반응에 독버섯 길드원은 기가 막혀했다.
통행료를 거부하는 플레이어가 선우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 독버섯 길드가 어떤 길드인지 알게 되면 순순히 통행료를 납부했다.
그런데 선우는 달랐다.
“야, 꼴을 보아하니 아르콘에 넘어온 지 얼마 안 된 놈 같은데, 이번만은 내가 특별히 알려주지. 내가 속한 독버섯 길드는 아르콘 대륙에서 가장 악명 높은 아누비스 길드와 의형제 같은 길드라고. 무슨 뜻인지 알겠냐? 그러니까 말로 할 때 통행료….”
“알았으니까 이번엔 공짜로 보내줘.”
“후우, 안 되겠다. 일단 좀 맞자.”
독버섯 길드원이 어이없다는 듯이 선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보란 듯이 한 방 먹이려는 찰나.
빠악!
“으아악!”
선우의 손날이 먼저 길드원의 이마에 박혔다가 빠졌다.
족발 당수 스킬이었다.
“으어어….”
길드원은 난생 처음 맛보는 고통에 두 눈을 감지도 못했다.
마치 500킬로 나가는 돼지가 머리통을 앞다리 족발로 콱콱 찔러대는 것 같았다.
선우가 한손을 들어 올리고 다른 손은 길드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제 보내줄 거야?”
길드원이 말을 버벅 대며 대답했다.
여전히 족발 당수 위력에 머리통이 어질어질했다.
“으…아…보, 보내줄게….”
“고맙다. 야, 가자!”
선우가 사라지는 걸 누워서 보던 독버섯 길드원.
“저 자식 두고 보자. 가만 안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