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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76화 (76/200)

# 76

제76화

라비트로부터 아르콘 대륙의 기본적인 정보는 모두 수집했다.

자신이 이끄는 본 브레이커 길드와 그 외 다른 길드간의 세력 구도까지 모두.

“그러면 레비아탄 길드랑 아누비스 길드가 아르콘의 가장 규모가 큰 길드고 나머지는 그 밑에 있는 거네.”

“아니지,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내가 이끄는 본 브레이커 길드는 그놈들 밑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생하는 관계라고.”

라비트는 목소리에 힘주어 대답했다.

나름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대개 이런 플레이어들이 잘 구슬리면 엄청난 충성심을 보인다.

선우는 라비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대충 견적을 뽑아냈다.

‘아르콘 대륙의 세력 구도는 레비아탄과 아누비스 두 군데 외에는 일단 제외시키자. 단순하게 계획을 세워야지.’

“야, 라비트. 그러면 니가 있는 길드는 서열이 3위인거야?”

“음, 뭐, 굳이 따지자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선우는 약간 의심스런 눈빛을 보였다.

“진짜라니까! 본 브레이커 길드에 대해서 다른 놈들한테 물어 보라고.”

“알겠어. 뭐 그게 중요하진 않으니까. 일단 아르콘 대륙에서 다음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기본적인 것만 말해줘.”

“다음 대륙? 아, 페르키안 대륙 말하는 거냐? 간단하지. 아르콘 최대의 투기장인 콜로세움에서 1위를 하면 되니까.”

“투기장?”

인피니티 로드에서 투기장은 흔히 플레이어들간의 1:1 대결을 벌이는 시스템이었다.

“아르콘 대륙은 항상 싸움이 끊이지 않는 땅이야. 결국 보다 못한 아르콘 황제가 콜로세움을 세워서 싸움을 하고 싶다면 여기서 실컷 하라고 만들었다지.”

“거기서 1위만 하면 무조건 다음 대륙 진출이야? 너무 간단한데.”

선우의 말에 라비트는 잠깐 말을 잇지 못하더니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왜?”

“아니, 하하. 아니야.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널 비웃은 게 아니고 그냥 잠깐 웃음이 나서.”

“비웃는 거 같은데?”

“아냐, 아니라고. 진짜야. 내가 웃은 건 아르콘 콜로세움의 투기장 1위를 한다는 게 뭘 뜻하는 건지 모르는 것 같아서야.”

“뭔데?”

라비트는 오징어 맥주를 한 잔 벌컥 들이켰다.

“크으, 주인장. 여기 큰 잔으로 하나 더 추가.”

오징어 맥주를 다 비운 라비트가 말문을 열었다.

“아르콘 콜로세움에서 투기장 1위를 기록하는 건 단순한 1위가 아니야. 지금까지 세워놓은 역대 플레이어들의 기록을 깨야만 1위로 인정해준다고.”

“그러니까 당대가 아닌 역대 1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사상 최고의 승률을 보이지 않는다면 1위는 불가능해. 일종의 기록 싸움이지.”

“콜로세움 룰이 뭔데?”

“흥, 알고 싶냐?”

라비트가 갑자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말해봐. 뭐냐니까?”

“아르콘 콜로세움의 투기장 룰은 간단해.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를 이기기만 하면 돼. 공정한 룰 이딴 거 없어. 그냥 상대를 이기면 되는 거야.”

“수단과 방법을 안 가려? 그러면 반칙 같은 거 해도 된다고?”

“물론. 반칙을 대놓고 해도 뭐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아르콘 대륙에 사는 인간들은 그런 걸 봐야 재미있다고 낄낄대는 놈들이니까.”

“그러면 1:1 PVP라는 조건만 지키면 되는 거네.”

“흥. 웃긴 게 뭔지 아냐? 그런 것도 지킬 필요 없어. 원한다면 미리 입 맞췄다가 1:1 대결 시작되면서 슬쩍 끼어들어서 팀플로 공격해도 되거든.”

“뭐? 진짜야?”

“그렇다니까. 다른 곳 투기장 같으면 난리나지. 1:1 싸움이어야 하니까. 근데 여기는 그딴 거 상관 안 해.”

“왜 안 하지?”

“쪽수를 불러 모아서 이기는 것도 실력이래나? 어떻게든 이기는 것만 좋아하는 미친 관중들이니까.”

아르콘 콜로세움의 룰은 들으면 들을수록 선우의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나를 위한 투기장이잖아?’

그랬다. 선우의 마음에 쏙 드는 룰과 조건들

뿐이었다.

PVP 시스템으로 시작되는 일대일 결투가 아니라 일대다수의 결투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필요하다면 반칙과 온갖 더러운 수를 써서 이기고 마는 것.

그것이 아르콘 대륙의 콜로세움에서 1위가 되는 비결이었다.

다음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콜로세움에서 역대 1위의 성적을 거두면 된다.

“야, 라비트. 그러면 역대 1위 랭크를 매기는 조건은 뭔데?”

“연속으로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들을 이기냐가 관건이지. 100명을 이긴 놈이 기존의 역대 1위 성적이면 101명만 이겨도 그 기록을 깨버리니까.”

“음,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뭐라고? 이게 마음에 든다고?”

“넌 안 드냐?”

라비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봤다.

‘이놈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해하지? 그동안 스트리밍 방송에서 본 걸로는 실력은 있는 게 확실한데.’

선우의 태도에 라비트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꼈다.

아르콘 대륙에서 다음 대륙으로 진출하는 조건을 들으면 대부분 플레이어들은 고민에 빠진다.

라비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선우는 달랐다.

마치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야, 만약 쪽수를 불러서 이기는 거면 같이 공격해서 이긴 놈들도 다음 대륙 진출 가능하냐?”

“물론이지. 그러니까 아르콘 콜로세움에서 역대 1위를 하고 싶다면 나 혼자 잘났다고 방심하면 안 되는 거야.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으니까.”

일리 있는 말.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라고 해도 1:1 결투가 아니라면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것은 반면에 레벨이 떨어지거나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에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한다.

부족한 실력과 아이템, 레벨의 차이를 더 나은 플레이어들과의 팀 플레이로 메꿔버릴 수 있으니까.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선우를 위해 맞춰진 룰 같았다.

“좋아. 그러면 아르콘 콜로세움에서 결판이 나는 건 알았고 여기 혹시 참가하려면 조건 같은 거 있어야 되냐?”

“그런 건 없어. 하지만 아르콘 대륙에는 퀘스트 포인트라는 제도가 있지.”

“퀘스트 포인트? 그건 또 뭐냐?”

“여기 오징어 맥주 큰 거.”

“고맙수, 아, 주인장. 물개염통 1인분, 아 잠깐. 야, 너도 먹을래?”

“맛있냐?”

“오징어 맥주의 단짝 같은 안주지. 먹어봐.”

“사주면 먹지.”

“주인장, 물개염통 2인분에 여기 오징어 맥주 잔 좀 채워줘요.”

라비트가 주문을 마치고 다시 입을 열었다.

“퀘스트 포인트가 뭐냐면 아르콘 대륙의 NPC들을 찾아다니면서 퀘스트를 한 뒤에 받는 보상 점수 같은 거야.”

“음, 다른 대륙하고는 다르네.”

“그렇지. 벨론과 로젠하임 대륙에는 없었으니까.”

“그거 모으면 뭐가 좋아?”

“퀘스트 포인트는 아르콘 콜로세움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써먹을 수 있어. 만약 네가 콜로세움에서 투기장 릴레이를 시작한다고 치자. 그러면 계속 올라오는 상대와 전투를 하다보면 지칠 거 아냐?”

“그렇지.”

“그때 퀘스트 포인트를 얼마나 모았냐에 따라 네가 쓸 수 있는 아이템, 찬스, 뽑기 이런 게 주어져.”

“오? 그게 뭔데?”

“퀘스트 포인트 1점당 대여 가능한 아이템 1개, 아 물론 이건 어떤 템이냐에 따라 퀘스트 포인트가 더 많아질 수도 있고. 찬스, 뽑기 이것도 마찬가지야. 퀘스트 포인트를 많이 모아놓을수록 다양하고 많이 쓸 수 있어. 결정적으로 상대보다 훨씬 고급을 쓸 수 있고.”

아르콘 콜로세움에서 퀘스트 포인트는 일종의 무기로 쓰이고 있었다.

선우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 대충 감이 잡혀갔다.

‘이거 재미있군. 잘만 하면 손 안 대고 코 풀 수 있는 룰이잖아?’

“그러면 퀘스트 포인트는 NPC들마다 찾아다니면서 퀘스트만 하면 되는 거냐?”

“기본적으로는. 하지만 아르콘 대륙의 던전, 사냥터 같은 곳에서도 몬스터를 잡으면 퀘스트 상자가 나오는데 거기서도 퀘스트를 할 수 있지. 특히 퀘스트 상자에서 나오는 퀘스트는 포인트를 많이 주는 게 많이 나오거든.”

“좋아. 그러면 일단 퀘스트 상자 찾으러 가자.”

“응? 벌써? 물개염통 안 나왔는데?”

“아, 그렇지. 그것만 먹고 가자.”

선우와 라비트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물개염통을 오징어 맥주와 같이 다 먹고 나왔다.

* * *

“자, 인사해라. 여기는 김선우 라고 다들 한번쯤 이름은 들어봤겠지?”

“쟤가 김선우야?”

“흐음, 방송에서 생긴 거랑 다르게 노네.”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은 선우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이봐, 사람 앞에 두고 그렇게 수군대지마. 다 들린다고.”

“아, 라비트. 궁금한 게 있다.”

“뭐냐? 록희.”

록희는 우락부락한 체격을 지닌 무투가 클래스였다.

목이 원체 굵고 어깨가 너무 넓어서 큰 머리통이 작아보였다.

불곰 허리처럼 두꺼운 상체는 근육으로 꽉 차 있었고 팔뚝은 수박만한 크기의 알통이 껌처럼 붙어있었다.

허리에는 챔피언 벨트를 차고 있었고 얼굴은 프로레슬러들이 쓸 것 같은 괴상한 가면을 투구 대신 착용하고 있었다.

“쟤는 왜 데려온 건데? 길드에 가입시키려고?”

“가입… 이라기보다는….”

라비트가 선우의 눈치를 슬쩍 봤다. 선우가 대충 파악하고 말문을 열었다.

“아, 가입 같은 건 안 한다. 걱정 마. 난 길드 같은 거 만들 생각 없거든.”

“길드 같은 거?”

록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간이 구겨지고 이마에 핏줄이 실뱀처럼 툭 튀어나왔다.

“워, 워. 록희 진정해. 김선우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그러면 대답해봐. 여기엔 뭐 때문에 온 거냐?”

“야, 라비트. 쟤는 왜 저렇게 예민하냐?”

라비트가 록희를 보면서 손짓을 했다. 진정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선우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거렸다.

“이해해줘라. 아르콘 대륙은 상대를 이기고 짓밟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곳이라서 그래. 여기서 버티려면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은 경계하는 게 정상이거든. 물론 그것도 좀 당해본 뒤 경험이 쌓여야 하지만.”

“으음, 그렇군. 야, 록희. 너무 걱정 마라. 난 너희들 뒤통수는 안 친다.”

“웃기지 마. 네 영상 다 봤어. 벨론 대륙부터 로젠하임까지 제법 화려하더군? 특히 벨론 대륙에서 길드 농락하는 건 아주 끝내줬지.”

“오, 그걸 다 봤냐? 하하. 고맙다. 내 팬이 여기 있었네.”

“누가 네 팬이래? 난 그 영상들을 다 보면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네놈은 절대 믿을 수 없는 놈이란 걸.”

록희의 팔뚝에 힘이 서서히 들어갔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만 보던 다른 길드원들이 하나둘 말리기 시작했다.

“야, 록희. 일단 진정해. 아직 모르잖아.”

“그래, 맞아. 일단 길드장이 데려왔으니까 지켜보자고. 우리들도 여기서 다음 대륙 진출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돈 맛도 좀 봐야지.”

“지켜보기는 뭘 지켜봐? 야, 마강쇠. 넌 여기 오자마자 뒤통수 제일 많이 맞아놓고 그런 소리가 나와?”

엄청난 크기의 대형 해머를 등에 메고 있던 플레이어가 머릴 긁적거렸다.

“그거야 뭐 처음이었잖아.”

“맞아. 록희는 일단 진정 좀 해라. 마강쇠랑 펠트리어가 틀린 말 하는 건 아니잖아.”

“웃기시네. 야, 니들도 쟤 방송 보면서 같이 욕하고 그러지 않았어? 다 같이 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손을 잡고 동맹을 맺자는 건데?”

“야, 쉿! 쉿!”

펠트리어가 선우의 눈치를 보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댔다.

라비트가 재빨리 선우에게 해명했다.

“야, 절대로 우린 널 씹지 않았어. 쟤가 흥분하면 가끔 저렇게 막나갈 때가 있으니까 이해해줘.”

선우는 본 브레이커 길드원들의 반응을 쭉 보면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음, 일단 얘네들하고 신뢰관계를 좀 만들어야 편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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