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제73화
선우는 로젠하임 황궁으로 향하면서 스트리밍 방송에 여념이 없었다.
시청자들은 선우가 촬영한 영상들을 같이 보면서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드는 중.
-와, 방장님. 투명망토 입어봤어요?
-마탑에 저런 게 있을 줄이야. ㄷㄷㄷ
-부럽다. ㅠ
-방장님. 그러면 황제의 보물 다 찾으신 거예요?
-쩐다. 황제의 보물 3가지 다 찾으면 무슨 보상이 나오려나?
-저거 보물 만약 퀘스트 안 하고 팔면 얼마 받을까?
-부르는 게 값이지.
-투명망토 입고 인증샷 좀.
-방장님, 황제의 보물 능력치 뭐뭐 있어요?
시청자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대폭발.
선우는 낄낄거리면서 황제의 보물들을 하나씩 보여줬다.
그럴 때마다 터지는 달풍선.
“감사합니다. 시청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여러분들이 저를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덕분입니다.”
선우는 열심히 꾸벅꾸벅 허리를 숙여 자본주의 인사를 퍼부었다.
이때 갑자기 선우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 선우 님. 저 권정아 실장이에요. 지금 마탑에서 나오셨죠? 황궁으로 가시는 중이세요?
선우는 귓속말로 대답했다.
- 예, 이제 막 가고 있어요.
- 헉! 선우 님. 그러면 가지 말고 거기서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그리로 먼저 갈게요. 지금 계신 위치 좌표 좀 찍어서 전송 해주시겠어요?
갑자기 권정아 실장이 인피니티로드에 들어왔다.
선우는 알겠다면서 위치를 보내줬다.
“자, 시청자님들. 제가 지금 또 할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한 10분만 양해 부탁드려요. 방송 잠깐만 끄고 조금 있다 다시 켜겠습니다. 황궁 가기 전에 방송 시작할 테니 기다려주세요.”
선우가 방송을 끄고 나서 얼마 후.
“여깁니다.”
“아, 한참 헤맸네요.”
권정아 실장이 급조한 캐릭터로 나타났다.
머리에는 버섯 같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가렸다.
발은 두툼한 곰발바닥 부츠를 신고 아장아장 거렸다.
“음, 이거 무슨 컨셉의….”
“아, 신경 쓰지 마세요. 계약한 유저들하고 게임 상으로 대화하려면 임시 캐릭터 하나 정돈 만들어둬야 하니까요.”
“아, 예.”
“그건 그렇고 선우 님. 지금 황궁 쪽으로 가시면 위험해요.”
“왜요?”
“뭐예요? 설마 모르고 계신 거예요?”
선우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권정아는 한숨을 뱉으며 대답했다.
“선우 님이 황제의 보물 다 찾았다고 혼자서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셨잖아요. 스트리밍 방송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이 다 봤다고요. 이제 선우 님 아이템 노리는 놈들이 황궁으로 몰려들고 있어요. 특히 라오딘 길드가 아주 작정했나 보더라고요.”
“으음. 그렇군요.”
“그렇군요가 아니라니까요. 여기서 아이템 뺏기시면 어떡하시려고요?”
선우가 스트리밍 방송으로 황제의 보물을 모두 찾았다고 떠든 건 철저히 의도적이었다.
왜냐고?
“그건 걱정 마십시오. 실장님 저번에 그러셨잖아요. 제가 계약했던 하이 오우거 퀘스트 그거랑 서사를 엮어나갈 수 있는 화려한 영상들이 필요하다고.”
“그랬었죠.”
“제가 그래서 준비한 게 바로 황궁에서 벌어질 전투죠. 하하.”
“예에? 그러면 설마 일부러?”
“물론입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죠.”
선우가 노린 것은 모두 황궁에서 벌어질 전투 영상들.
하이 오우거 사냥은 어차피 액션 씬 일부에 불과하다.
단지 아이로드 컴퍼니를 통해 1차적으로 판권을 팔았던 것일 뿐, 선우가 추가로 만들어내는 영상 콘텐츠들이 쌓인다면 틀림없이 추가 계약을 하자고 요청이 올 것이다.
인피니티 로드의 영상들은 플레이어가 부분적으로 나눠서 얼마든지 거래가 가능했다.
단, 상업적 가치가 얼마나 되느냐에 한해서.
“선우 님. 그러면 황궁에서 혼자서 전투를 하실 생각 이신 거예요?”
“아니요. 일단 제가 어떻게 하는지는 보시면 압니다. 실장님도 근처에서 구경이나 해보세요. 아, 영상 촬영 하고 싶으시면 하셔도 됩니다. 저도 방송 촬영 들어가면서 동시에 황궁으로 갈 거라서요. 제 시점하고 실장님 시점에서 찍은 영상 있으면 더 좋지 않겠어요.”
“아, 그렇네요. 저도 깜빡 잊고 있었어요. 이런 걸 어떻게 또 아시고 대단하시네요.”
“별 것 아닙니다. 그러면 저 먼저 갈게요. 이제 방송 틀어야 되요. 황궁에서 봐요!”
선우는 후다닥 사라졌고 권정아는 황궁으로 갈 수 있는 귀환 주문서를 펼쳤다.
* * *
로젠하임 황궁 정문.
라오딘 길드원들이 모두 근처에 숨어 있었다.
“야, 진짜 김선우가 여기로 오는 거 맞아?”
“몰라. 길드장이 숨어있으라던데.”
친 라오는 황궁 내부에서도 황제가 있는 집무실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황궁 입구부터 모든 곳에 라오딘 길드원들을 배치한 그는 정문 앞에서 조용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길드장. 다른 길드 놈들이 냄새 맡고 여기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상관없어. 김선우가 나타나면 즉시 애들을 풀어서 포위하고 나머지 애들은 길드 놈들을 맡아라.”
“예!”
“애들은 모두 불렀냐?”
“싹 모아놨습니다. 빠진 애들은 없습니다.”
“그래. 이번 퀘스트는 반드시 우리 라오딘 길드가 클리어 해야 한다. 김선우 같은 양아치한테 줄 수는 없어.”
“길드장! 김선우가 오고 있습니다.”
“그래? 모두들 준비해라.”
“옙!”
라오딘 길드원들이 재빨리 각자 위치로 흩어졌다.
선우는 보란 듯이 황궁 정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선우가 정문으로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것이 있었다.
‘굴돈을 불러서 황금안개 부족들이 소환될 게이트 표식을 저쪽에다 해두라고 했으니까. 신호만 떨어지면 오크들이 나올 거다. 그러면 나는 베카를 소환해서 정면 돌파를 한다.’
선우는 미리 굴돈을 소환하여 황궁과 가장 가까운 곳 성벽에 소환 표식을 해두라고 시켰다.
황금 안개 부족의 오크 전사들을 불러낼 소환 게이트를 열 수 있었으니까.
그 다음 탁 트인 정문 앞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제 날 노리는 놈들이 나타날 차례인데.’
아니나 다를까.
“야, 네가 김선우지?”
“황제의 보물을 여기까지 갖고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이제 푹 쉬고 우리한테 넘겨.”
“수고비로 네 목숨은 보장할게.”
라오딘 길드원들이 아닌 처음 보는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딱 봐도 양아치 같은 행동들.
이들은 그저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을 보다가 황제의 보물 이야기를 듣고 한탕 해먹으려고 온 놈들이었다.
선우가 이런 놈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자~ 지나갑니다. 꺼져주세요~”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냐?”
선우가 대답 대신 플레임 블레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플레이어들도 모두 무기를 꺼냈다.
“한판 붙고 주워 먹는 아이템이 원래 맛있지.”
플레이어들이 선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멀리서 촬영하는 권정아 실장.
“와, 대박. 이런 그림을 연출하려고 황제의 보물을 공개했던 건가?”
선우는 자신의 시점으로 방송 중이었고 권정아는 제3자의 시점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압도적으로 선우의 승리.
그리고 얼마 안 가 또 다른 플레이어들이 나타났다.
“에휴, 일일이 상대해서는 답이 없겠군.”
선우는 라오딘 길드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야! 잡아! 튄다!”
광장에서 걸어가던 선우가 갑자기 후다닥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모두 쫓아왔다.
라오딘 길드원들 역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야, 가자.”
“다른 놈들은 어쩔까요?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아진 거 같은데요.”
“뭔 상관이야? 김선우만 따로 빼내고 포위시켜. 다른 놈들이 주워 먹을 틈을 주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라오딘 길드원들도 모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우는 엄청난 속도로 도망치다가 투명망토를 꺼내 입었다.
“어?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방금 여기로 들어왔는데.”
투명망토의 효과는 굉장했다.
선우가 바로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플레이어들이 보질 못했으니까.
‘이제 굴돈을 만나러 가야지.’
플레이어들의 추적을 따돌린 선우는 굴돈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가는 와중에 다시 레벨 업 알림이 들려왔다.
[상태창]
이름: 김선우
레벨: 200
직업: 인피니티 마스터(Only one)
칭호: 없음
근력: 200
민첩: 200
체력: 200
마력: 200
스킬: 없음
소유 스킬: 소환의 진
스킬 사용권: 없음
“드디어 200!!”
좋아하는 선우에게 굴돈이 다가왔다.
“주군, 알려주신 대로 표식을 그려놨습니다.”
“수고했다.”
선우는 투명망토를 벗고 굴돈이 그려놓은 성벽의 표식에 손을 갖다 댔다.
후우웅.
빛이 일렁거리더니 표식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번쩍이는 황금갑옷을 입은 오크 전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아군 병력들이 생겼으니 황궁으로 진격한다.”
“예, 주군. 모두 출발한다.”
철커덕, 철커덕.
황금갑옷과 무기로 중무장한 오크 병력이 나타났다.
선우의 명에 따라 이들은 각자 분대로 나뉘어 흩어졌다.
황금 투구로 얼굴을 철저히 가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그냥 코스프레 아이템으로 놀고 있는 플레이어로 알 정도.
“이제 황금안개 부족 애들은 불러냈고. 베카하고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만 불러내면 되지.”
선우는 황궁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근처에는 선우를 쫓던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굴돈, 쳐라.”
구워어!!
굴돈을 따르던 오크 전사들이 짐승 같은 포효를 터뜨렸다.
그러자 선우를 보며 신나게 달려오던 플레이어들이 움찔 거렸다.
“뭐, 뭐야? 저거 설마 오크야?”
“오크다! 오크가 저기서 왜 나와?”
“야, 나오고 말고 지금 이쪽으로 오잖아.”
“쳐야 되는 거야? 말아야 되는 거야?”
“숫자가 좀 많은 거 같은데.”
플레이어들 중 소규모 파티원들은 우물쭈물거리다가 도망쳤다.
“야, 일단 후퇴해!”
오크들이 무섭게 돌격하자 플레이어들은 기세에 눌려 후퇴를 했다.
선우가 바라던 대로 흘러갔다.
“좋았어. 이제 베카만 소환하면 된다.”
굴돈과 수하들이 도망치는 플레이어들을 쫓아내며 황궁 입구를 치워버렸다.
황궁의 입구가 뚫려 버렸다.
라오딘 길드원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지금이다!”
파아앗!
목봉을 든 빡빡이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뭐냐 저거?”
선우가 뛰면서 위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베카를 소환했다.
“김선우, 말로 할 때 따라… 으억!”
퍽!
선우를 향해 성벽 위에서 뛰어내린 길드원 1명이 바닥에서 튀어나온 관에 부딪혔다.
옆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이 관 뚜껑이 열렸고 베카가 나왔다.
“베카. 목말랐지? 애들 불러서 저기 문어대가리들 다 피 빨아버려.”
“오.”
졸린 눈의 베카가 번쩍 하고 눈을 뜨더니 부족들을 소환했다.
퍼컹, 퍼컹.
“이건 뭐냐?”
“관이다! 조심해라. 김선우가 무슨 수작을 부렸다.”
황금안개 부족들이 정면으로 밀고 들어오며 라오딘 길드원들과 충돌했다.
“굴돈, 넌 날 따라와라. 베카, 쟤들 다 빨아먹으면 따라와.”
선우가 굴돈을 따라 황궁 입구로 들어갔다.
“으악! 뭐냐! 오크가 왜 이래!”
라오딘 길드원들은 다짜고짜 달려드는 흡혈 오크들을 보더니 기겁했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들이 라오딘 길드원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빡빡머리에 송곳니를 꽂았다.
그리고 뚱뚱한 우유 빨아먹듯이 피를 빨기 시작했다.
“야! 물약, 물약!”
라오딘 길드원들이 버둥거리며 물약을 마시다 흘리고 난장판이 벌어졌다.
“대박이다. 역시 계약하기를 잘했어.”
권정아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황궁 입구에서 벌어진 전투를 촬영하고 있었다.
동시에 선우가 굴돈의 호위를 받으며 황궁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선우는 황궁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중 나온 라오딘 길드원들과 맞닥뜨렸다.
“쳐라!”
황금안개 부족 오크들과 라오딘 길드원들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피가 튀는 육박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