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제71화
선우는 뒤를 돌아봤다.
한 무리의 길드원들이 나타났다.
모두 울룩불룩한 근육질 캐릭터에 머리는 소림사처럼 빡빡 민 플레이어들.
그중 1명이 다가왔다.
“누구시죠?”
“누구긴, 라오딘 길드라고 들어봤냐?”
“가입할 생각 없는데요.”
“아니, 길드 들어오라는 게 아니고 들어봤냐고.”
“그쪽 길드 들어가기 싫다니까요.”
라오딘 길드원들이 서로 어이없다는 듯이 선우를 쳐다봤다.
“아, 이게 진짜 뭐라는 거야? 라오딘 길드 아냐고!”
“알아야 돼요?”
선우의 대답에 결국 말을 잇지 못하는 플레이어.
옆에서 다른 길드원이 나섰다.
“야, 말장난은 그만해. 딴 거 필요 없고 너 황제의 보검 갖고 있다며?”
“어떻게 알았어요?”
“응? 그건 뭐, 다 아는 수가 있지. 일단 우리가 그 보검이 필요해. 순순히 내어줘야겠다.”
“내어주면 나한테 뭐 해줄 건데요?”
“뭐?”
선우의 당당한 물음에 길드원이 저도 모르게 다른 플레이어들 눈치를 봤다.
플레이어들이 입모양을 만들어가며 조용히 입을 뻐끔거렸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달라고 해!’
“응? 아, 그렇지. 뭘 원하는데?”
빡!
“아야! 아, 왜?”
“이 등신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야, 우리가 여기 협상하러 왔어? 황제의 보검 갖고 페르나한테 가야 될 거 아냐. 걔가 지금 투명망토 먼저 찾으면 우리 뒤통수 칠 수 있다고.”
“페르나? 혹시 님들 페르나가 보내서 온 거예요?”
“뭐?”
라오딘 길드원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아~ 그렇구나. 이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네요.”
선우의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뭐, 뭔 소리야?”
갑작스런 선우의 반응.
페르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뭔가 알겠다는 선우의 표정.
이 모든 것을 빤히 지켜보던 라오딘 길드원들.
“뭔 소리냐니까?”
“궁금해요?”
선우의 질문에 길드원들이 버벅거렸다.
“아, 어, 아니.”
“근데 왜 물어요?”
“그, 그게.”
라오딘 길드원들이 당황함을 숨기려 했지만 얼굴 표정은 아니었다.
‘이 새끼 혹시 페르나 하고 손잡은 건가?’
라오딘 길드원들끼리 정신없이 귓속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 야, 쟤 지금 뭐라는 거야? 페르나를 쟤가 어떻게 아는 거지?
- 우리 만나기 전에 페르나하고 만났나 보지. 뭐가 대수라고 호들갑이야?
- 아니, 등신아. 내 말은 김선우가 혹시 우리 몰래 페르나하고 수작을 부린 거 아니냐는 거야.
- 페르나가 우릴 배신한 거라고?
- 그럴 수도 있지. 걔는 우리 길드 소속이 아니잖아.
- 야, 이 바보들아 페르나는 우릴 배신 안 해.
- 근데 김선우가 왜 페르나하고 뭐가 있는 것처럼 저러냐고.
- 일단 물어보자.
- 야, 그렇게 하다가 김선우 미끼 무는 거 아냐?
- 그러면 다른 방법 있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총대를 메고 길드원 1명이 나섰다.
“야, 너 페르나하고 무슨 사이냐?”
“궁금해요?”
선우의 똑같은 질문.
사실 페르나하고 선우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단지 선우는 라오딘 길드원들이 자신을 뭐 때문에 찾았는지 간파했을 뿐.
라오딘 길드원들이 자신을 알고 있고 황제의 보검을 내놓으라는 건 페르나와 한 패라는 증거.
선우가 그걸 모를 린 없었다.
사태를 파악한 뒤 라오딘 길드원들을 먼저 혼란스럽게 하는 건 기본.
그 다음 선우가 원하는 대로 라오딘 길드원들을 가지고 노는 거다.
‘얘들 딱 보니까 멍청해서 써먹기 좋겠는데?’
선우는 이미 한눈에 라오딘 길드원들을 파악해버렸다.
그냥 떡밥처럼 투척한 질문에 죄다 허둥지둥 대는 꼴이란.
“무슨 사인데?”
라오딘 길드원들이 애써 침착한 척 물었다.
선우가 씨익 웃었다.
길드원들은 선우의 웃음에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저놈 왜 웃지?’
‘뭐가 있는 게 틀림없어.’
‘페르나가 우릴 속인 건가?’
각자 길드원들마다 선우의 웃음을 두고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을 즈음.
“페르나에 대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딱 하나. 여러분들을 속이고 있다는 겁니다.”
선우의 대답에 길드원들은 멍 때리다가 뺨 맞은 기분이었다.
“뭐?”
“어라? 설마 눈치 못 챘어요? 페르나가 지금까지 마탑에 들어와서 님들한테 하는 행동들을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아실 건데.”
라오딘 길드원들은 맹꽁이처럼 눈만 껌벅거렸다.
선우는 본격적으로 라오딘 길드원들을 구워삶기 시작했다.
“생각 안 나세요? 잘 모르시겠다면 제가 힌트 한 가지 드릴까요?”
“뭔데?”
이미 선우에게 공이 넘어왔다.
“페르나가 이곳 폐쇄된 마탑에 들어온 걸 님들이 언제 아셨죠?”
“으음, 20분 전?”
라오딘 길드원들은 정확한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20분 전에 여길 들어온 거면 확실히 페르나는 나랑 헤어진 뒤 얘들을 불렀군.’
선우는 라오딘 길드원들이 마탑에 들어온 타임 라인을 파악했다.
나머지는 말을 지어내서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것.
“저는 언제 들어왔을까요?”
그냥 말하면 재미가 없다.
라오딘 길드원들이 추측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와중에 추측이 무성해질수록 라오딘 길드원들은 상상력이 더 해질 거다.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선우가 페르나와 무언가 있다는 의심을 할 것이다.
결국 선우의 의도대로 라오딘 길드원들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너도 우리랑 비슷하게 들어온 거냐?”
“땡!”
선우의 말에 라오딘 길드원들이 깜짝 놀랐다.
“저는 30분 전에 마탑에 들어왔습니다.”
“30분 전이면… 우리보다 10분 더 빨리 들어왔네?”
“그렇죠. 자! 그러면 저는 어떻게 이곳 폐쇄된 마탑에 님들 보다 10분 더 빨리 들어왔게요?”
선우의 질문에 라오딘 길드원들은 우물쭈물 거렸다.
“그건… 모르겠는데?”
선우가 먼저 질문을 던지는 건 목적이 있었다.
라오딘 길드원들로부터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
길드원들의 궁금증이 커질수록 선우가 하는 말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자, 생각해보시죠. 폐쇄된 마탑은 사실 로젠하임 대륙에서 다른 플레이어들 거들떠도 안 보는 곳이잖아요? 몬스터도 안 나와, 아이템도 없어, 그냥 지나가다 1번 슬쩍 둘러보면 땡인 곳. 그게 하도 알려져서 이젠 근처에 와도 굳이 마탑에 들어오는 사람 없죠?”
“그렇지.”
“근데 여기를 갑자기 페르나가 왔어요. 그리고 저도 왔죠. 왜 왔을까요?”
“그야… 뭘 찾으러?”
“맞습니다. 그럼 저하고 페르나는 뭘 찾고 있을까요?”
다른 길드원이 대답했다.
“황제의 보물이지.”
“빙고. 저는 황제의 보검이 있고 페르나는 황후의 반지가 있습니다. 이미 3가지 중 2개는 다 찾았어요. 마지막 1개는?”
“투명망토!”
가장 멍청해 보이는 길드원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딩동댕!”
“예쓰!”
“야, 뭘 이렇게 좋아해?”
“응? 아, 미안.”
길드원들은 다시 선우를 쳐다봤다.
“그러면 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페르나는 저를 이쪽으로 보냈고 님들도 저한테 보냈어요. 맞죠? 그러면 걔는 왜 이 자리에 다 모이게 했을까요? 자기 혼자서 뭘 하려고?”
“으음….”
대충 봐도 멍청해 보이는 근육질 길드원들은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힌트를 드릴까요?”
“뭔데?”
이제 대화의 주도권은 선우가 쥐락펴락하고 있다.
라오딘 길드원들은 선우를 찾아온 목적조차 잊어먹고 선우의 말빨에 홀리고 있었다.
“페르나가 투명망토를 혼자서 찾아낸 뒤에 황제의 퀘스트를 깰 생각이니까요.”
“뭐어?”
“말도 안 돼! 페르나는 우리 라오딘 길드와 동맹이라고!”
가장 멍청해 보이는 근육질 빡빡이가 열이 받았는지 벽을 쾅 하고 부숴버렸다.
“자, 님들. 진정하시고 제 말을 들어보시죠. 인피니티 로드에 영원한 동맹 같은 게 어디 있습니까?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는 곳 아닙니까?”
“그건 그래.”
“그러면 페르나라고 한들 황제의 보물 3개를 다 독차지하면 혼자서 로젠하임 황실 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데 뭐 하러 님들이랑 계속 편 먹겠어요? 냅다 혼자 다 해 먹고 다음 대륙으로 튀면 그만인데.”
“잠깐! 3개를 다 갖고 있다고? 1개는 네가 갖고 있잖아. 황제의 보검의 주인이라며?”
“아, 그거는 지금 저한테 없습니다.”
선우의 대답에 라오딘 길드원들이 모두 입을 벌렸다.
“어, 없다고?”
“거짓말! 거짓말이지!”
“진짜로 없어요. 사실 저도 알고 보면 피해자입니다. 페르나가 님들하고 만나기 전에 제가 먼저 여기에 들어왔다고 했죠? 저는 황제의 보검을 갖고 페르나와 동맹을 한 뒤 황실 퀘스트를 같이 클리어하고 보상을 나눠먹자고 합의를 한 상태였어요.”
“그랬는데?”
“뒤통수를 쳤군!”
멍청한 길드원이 거들었다.
선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힘겹게 손가락을 위로 흔들었다.
“딩,동,댕.”
“크으! 역시 또 맞췄어.”
“야, 이거 바보 아냐? 왜 자꾸 좋아하는 건데?”
“재밌잖아.”
라오딘 길드원들을 보면서 선우는 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에휴, 멍청하니까 아주 큰 힘이 된다.’
선우는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사실 저도 황제의 보검을 페르나에게 뺏긴 상태입니다.”
“뭐? 진짜냐?”
라오딘 길드원들의 동공이 커졌다.
선우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다. 선우는 라오딘 길드를 써먹기 위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중.
라오딘 길드원들은 여기에 놀아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저는 투명망토가 숨겨진 곳이 어딘지를 알고 있죠. 페르나는 모르지만요. 제가 알고 있다는 사실조차 걔는 모릅니다.”
선우의 말에 라오딘 길드원들의 동공은 터질 것 같았다.
“진짜야? 거기가 어딘데? 어디냐!”
“잠깐!”
선우가 이번엔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가져다댔다.
라오딘 길드가 모두 조용해졌다.
가장 멍청해 보이는 길드원만 선우를 따라 손가락을 입술에 붙였다.
“그건 아직 알려드릴 순 없습니다.”
“뭐라고?”
“하지만!!”
선우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불만을 드러내던 라오딘 길드원들이 움찔 하고 놀랐다.
일종의 기선제압이다.
“님들이 제가 원하는 걸 들어준다면. 알려드릴 용의도 있습니다.”
“뭔데? 그게 뭔데?”
“말해봐.”
이쯤 되니 라오딘 길드원들은 선우의 부하가 아닌 충견 수준이었다.
“페르나는 저를 배신하고 황제의 보검을 가져갔습니다. 지금 페르나에겐 2개의 황제의 보물이 있죠.”
선우는 손가락 2개를 펼쳐서 라오딘 길드원들의 눈앞에 촛불처럼 왔다갔다 거렸다.
라오딘 길드원들의 눈이 선우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그런데? 여기서 투명망토를 찾으면 페르나는 원하는 걸 얻게 되죠.”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잠깐, 페르나는 아직 투명망토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며? 그러면 아직 기회가 있는 거잖아.”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전적으로 저를 믿고 따라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라오딘 길드를 배신한 페르나를 처리할 수도 있는 겁니다.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잠깐, 그러면 널 도와주면 네가 얻는 건 뭔데?”
“저를 뒤통수 치고 황제의 보물을 뺏어간 페르나에게 복수를 할 수 있으니까요.”
“아~”
선우가 대충 지어낸 말에 라오딘 길드원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순 없어.”
라오딘 길드원들이 단순무식한 게 선우에겐 행운이었다.
“자, 그러면 님들, 모여봐요. 지금부터 제가 작전을 짤 겁니다. 님들은 절대 의심하지 않고 제 말에 따라주셔야 황제의 보물을 다 얻을 수 있어요. 페르나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무조건 내 말만 믿고 따라요. 할 수 있습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