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제70화
선우는 베카의 흡혈박쥐를 타고 로젠하임 대륙 폐쇄된 마탑으로 향했다.
폐쇄된 마탑은 오래 전 흑마법사들의 실험실로 알려져 있는 곳.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황제의 칙령을 받은 마법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에 투명망토가 있다고 했지?”
선우는 마탑의 문 앞으로 갔다.
그러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폐쇄된 마탑은 알 수 없는 위험으로 가득한 금지된 곳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Y/N]
선우는 입장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드그득.
낡고 허름한 문짝은 열리면서 떨어져 나갈 것처럼 부실했다.
어두컴컴한 내부에서 풍겨 나오는 음산한 기운.
눅눅한 바람과 습한 공기가 섞여있었다.
“베카, 고맙다. 나중에 또 부를게.”
“오라버니. 피는?”
“이따가 먹여줄게.”
베카의 소환을 해제했다.
“빨리 투명망토를 찾아야 돼.”
선우가 안으로 들어갔다.
* * *
페르나는 로젠하임 대륙에서 도적 클래스로 잘나가는 플레이어였다.
그의 주특기는 온갖 아이템을 약탈한 뒤 경매장에 고가에 팔아 치우는 것.
“후우, 투명망토가 여기 어디에 있다더라?”
페르나는 지금까지 모아온 정보로 투명망토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투명망토가 있는 곳을 1층부터 샅샅이 뒤지며 8층까지 올라온 페르나.
그가 열심히 투명망토를 찾고 있는 와중에 어디선가 소음이 들렸다.
“누구냐!”
피슝!
페르나가 들고 있던 석궁을 발사했다.
타각! 타각!
석궁의 화살들이 벽에 연달아 박혔다.
파파팍!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페르나가 뒤쫓았다.
“어디 갔지?”
페르나가 한참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쳇, 시간만 버렸네.”
페르나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근처 어둠 속에서 선우가 기어 나왔다.
“쟤가 페르나군. 아직 투명망토를 못 찾은 건가?”
선우는 은밀하게 페르나를 미행했다.
페르나는 마탑의 꼭대기 층인 8층을 뒤지고 있었다.
8층은 여러 마법들이 걸려 있었고 숨겨진 공간들이 많았다.
한참을 뒤적거려도 혼자서 다 찾는 건 불가능.
선우는 페르나가 한 번씩 뒤져보는 곳을 눈여겨 봐둔 뒤 몰래 따라가서 뒤져봤다.
혹시나 놓치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쟤가 1층부터 샅샅이 뒤졌을 테니 투명망토가 숨겨진 곳은 8층이 확률이 제일 높아. 그러니 여기 어딘가에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황후의 반지를 먹어야 되는데.”
선우는 페르나가 황후의 반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선우가 결심을 하고 일어났다.
“야, 야.”
“응?”
페르나가 재빨리 석궁을 겨눴다.
피슝!
타캉!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로 석궁의 화살을 튕겨냈다.
“아우 씨. 맞을 뻔 했잖아! 다짜고짜 활을 쏴대냐?”
“누구냐?”
“난 김선우. 황제의 보검을 가진 몸이지.”
“황제의 보검? 김선우? 설마 네가…?”
페르나의 동공이 커졌다.
선우는 자신이 황제의 보검이 있다는 걸 미리 밝혔다.
“맞아. 나한텐 황제의 보검이 있고. 너한텐 황후의 반지가 있을 거고. 맞지?”
“…그 엘프 족장을 만난 건가?”
“응.”
“흥, 제법이군. 엘리아 숲에서도 엘프 족장을 만나는 건 꽤 어려웠을 건데.”
“뭐, 운이 따라줬지.”
“그건 그렇고 황제의 보검을 갖고 있는 게 진짜면 꺼내봐.”
페르나는 선우가 여기까지 황제의 보검을 갖고 오진 않았을 거라 여겼다.
“황후의 반지를 먼저 보여줘. 그러면 나도 황제의 보검을 보여주지.”
선우의 제안에 페르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다른 수작 부리는 건 이 자리에서 죽을 줄 알아.”
“안 부려. 우린 어차피 서로 원하는 게 같잖아? 넌 지금 투명망토를 찾으러 여기 온 거 아냐? 나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투명망토 빼고 나머지 황제의 보물을 갖고 있다는 건데 서로 같이 찾아서 황제에게 가보는 게 어때?”
선우는 일단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페르나는 석궁을 겨눈 채 대답했다.
“헛소리 집어치워. 황제의 보물은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황제의 보검 가져왔으면 꺼내봐.”
“황후의 반지부터 보여달라니까.”
“집요하기는. 자, 이거다.”
페르나가 석궁을 든 한쪽 손을 펼쳤다.
그의 손가락에 황후의 반지가 끼어 있었다.
반짝거리는 순백의 링과 가운데 미세한 붉은 빛을 띠는 루비가 박혀 있는 반지였다.
“역시 진짜였군.”
“이제 네 차례야. 황제의 보검을 꺼내봐. 만약 거짓말을 한 거면 여기서 쏴 죽여버릴 거다.”
“알았어. 진정해.”
선우는 인벤토리를 열고 황제의 보검을 보여줬다.
페르나의 동공이 흔들거렸다.
“진짜지?”
“흐음, 네가 원하는 게 뭐지?”
선우가 보여준 황제의 보검이 진품이란 걸 페르나가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의 제안.
선우는 여기서 다시 머릴 굴렸다.
“내가 원하는 건 그냥 서로 보상을 나눠먹자는 거다.”
“보상을 나눠먹자고?”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선우는 그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뻥을 칠 뿐.
“무슨 수작이냐?”
페르나가 다시 석궁을 겨눴다.
이번엔 선우도 플레임 블레이드를 들었다.
“딴 수작 부릴 생각하면 여기서 결판을 낸다.”
“결판을 내긴 왜 내냐? 어차피 너한텐 황후의 반지가 있고 나한텐 황제의 보검이 있잖아. 이제 남은 건 투명망토니까 네가 알고 있는 정보와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서로 꺼내서 같이 찾자는 거지.”
“그런 다음엔?”
“황제에게 가서 3가지 보물을 모두 찾았다고 보상을 5:5 로 반띵 하자고. 어때?”
선우는 능구렁이처럼 계속 떠들어댔다.
그럴싸한 말솜씨에 페르나의 경계심이 약간 풀렸다.
“보상을 반으로 나누자고? 내가 싫다면?”
“싫다면 뭐 어쩌겠어? 남은 건 하나지.”
선우의 손에 든 플레임 블레이드가 화광으로 번쩍였다.
페르나는 잠깐 고민했다.
‘저놈이 황제의 보검을 가졌고 엘리아 숲에서 엘리아 족장까지 만났어. 그리고 여기까지 쫓아온 거라면 보통 실력은 아니다. 괜히 여기서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일단 지금은 손을 잡기로 하자. 투명망토를 찾아내는 게 우선이니까.’
페르나가 석궁을 거두며 물었다.
“좋아. 그러면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꺼내봐.”
“너부터 꺼내.”
“야, 장난 하냐? 남의 정보 먼저 쏙쏙 빼먹고 튈 생각 하는 거면 여기서 죽여버릴 거야.”
페르나의 반응을 보면서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를 내렸다.
“내가 아는 정보는 투명망토는 여기 8층 어딘가에 있다는 거다.”
선우의 말에 페르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 네 차례야. 아는 정보를 풀어봐.”
“그걸로 약해. 여기에 있는지 다른 층에 있는지 네가 어떻게 안다고? 더 정확한 걸 꺼내야지.”
“그래? 그러면 손잡기로 한 거 없었던 걸로 하자. 난 내가 아는 정보대로 투명망토 찾을게. 됐지?”
선우가 갑자기 휙 하고 등을 돌렸다.
“잠깐!”
페르나가 선우의 등을 향해 석궁을 겨눴다.
‘역시, 걸려들었군.’
모든 건 선우의 계획대로였다.
투명망토가 8층에 확실히 있는지 선우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페르나가 먼저 마탑에 왔고 8층까지 올라왔다는 건 1층부터 7층까지 모두 수색을 마쳤다는 증거.
그러니 선우는 일단 확실하지 않아도 던져본 것이다.
페르나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왜? 할 말 있냐?”
선우는 다시 페르나에게 물었다.
이쯤 되니 결국 페르나는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투명망토가 8층에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다.”
‘역시 사실이었군.’
선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페르나는 계속 술술 불기 시작했다.
“투명망토가 8층에 있는 건 맞는데 정확한 위치는 아직 발견 못했어.”
“그렇군. 그렇다면 너랑 나랑 아는 정보는 결국 비슷하단 거네. 일단 같이 찾는 게 어때?”
페르나는 선우를 보며 망설였다.
‘무슨 속셈이지? 하지만 뭐 상관없지. 일단 저놈이 황제의 보검을 가진 게 확실하니 틈을 봐서 빼앗아야지.’
페르나는 선우가 황제의 보물을 갖고 있는 걸 확인한 상태.
이제 남은 건 둘 중 누가 자신이 가진 걸 지키고 상대의 보물을 빼앗느냐다.
선우는 페르나에게 다가왔다.
“일단 네가 8층 어디까지 수색했는지 알려줄래? 서로 나눠서 수색하자. 그리고 뭐 발견한 거 같으면 귓말하기로 하고.”
“좋아.”
페르나는 일단 선우에게 자신이 찾아본 곳을 모두 알려줬다.
그리고 각자 흩어졌다.
‘멍청한 놈. 일단 길드 애들 빨리 불러 모아야지.’
페르나는 혼자 킬킬거리며 어디론가 향했다.
* * *
“야, 페르나. 그게 확실해?”
“진짜야. 황제의 보검을 내 눈으로 봤다니까.”
“좋아. 그러면 놈은 지금 어디에 있지?”
“내가 수색했다고 너희들한테 보내준 8층 지도 있지? 거기서 내가 수색한 곳만 뒤지고 있어.”
“알겠어. 넌 계속 찾아봐. 우린 김선우에게 간다.”
선우가 한참 8층 마탑 어딘가를 수색하고 있을 즈음 페르나는 길드원들과 은밀한 만남을 진행 중이었다.
이들은 모두 라오딘 길드의 소속된 플레이어들이었다.
페르나는 라오딘 길드의 의뢰를 받으면서 가끔 고가의 아이템을 약탈하거나 훔친 뒤 커미션을 받아 챙기는 일을 해줬다.
말하자면 일종의 동맹 관계.
라오딘 길드는 로젠하임 대륙에서 황실 관련 퀘스트를 가장 많이 한 길드였다.
다음 대륙으로 진출하기 전 마지막 남은 황제의 보물 퀘스트를 클리어하려고 사활을 건 상태.
이들이 황제의 보물 퀘스트를 하려는 건 외부 계약 건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이번에 황제의 보물 퀘스트 다 클리어하고 나면 판권 계약 팔리는 건 확실해?”
“당연하지. 길드장이 이미 구두 계약까지 완료한 상태야. 1차 미팅도 끝냈고. 남은 건 황제의 보물을 모두 모아서 퀘스트를 깨는 거야. 그것만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로젠하임 대륙에서 싹쓸이한 황실 관련 퀘스트 내용하고 편집해서 영상 판권을 팔 수 있다고.”
“엄청난 판권료에 로얄티까지 두둑한 초대형 계약이야. 이것만 제대로 팔면 우린 한동안 게임 접고 놀러 다녀도 돼.”
페르나가 물었다.
“그러면 너희들 그 계약 완료하면 나한테 콩고물 떨어지는 거 잊어먹지 않았겠네?”
“하하! 야, 페르나. 지금까지 우리랑 작업한 게 얼만데? 그걸 왜 잊냐? 걱정 마라. 길드장이 두둑히 챙겨줄 테니까.”
페르나와 라오딘 길드원들 사이에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럴 테지.”
“일단 우린 김선우에게 가서 황제의 보검을 뺏어올 테니까 넌 투명망토만 찾아.”
“알았어.”
라오딘 길드원들은 선우가 있을만한 곳으로 향했고 페르나는 다시 투명망토 수색에 나섰다.
* * *
“야, 저놈이지?”
“맞아, 쟤가 김선우야. 방송 하는 거 봤어.”
“황제의 보검을 들고 있는 거 같진 않은데.”
“일단 죽이면 아이템 떨어지잖아. 황제의 보물은 인벤토리에 들어 있어도 죽는 순간 무조건 떨어지게 되어있어.”
“좋아. 그러면 저놈을 치자.”
라오딘 길드원들이 각자 흩어졌다.
한편 선우는 투명망토를 수색했다고 하는 부분들을 뒤적거리며 무언가 단서를 발견했다.
단서라기보다는 힌트에 가까운 정보였다.
선우는 우연찮게 벽에서 떨어져 나온 벽돌을 치우다가 안쪽에 숨겨진 조그만 상자를 발견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눈앞에 반투명한 화면이 나타났고 다음과 같은 정보가 들어 있었다.
[8층 마탑에 봉인된 마수의 방을 찾아라.]
‘마수의 방?’
선우는 일단 정보를 넣어두기로 하고 상자를 숨겼다.
남들이 찾을 수 없도록 숨겨놓은 뒤 일어나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어이, 네가 김선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