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64화 (64/200)

# 64

제64화

리치의 방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열 필요는 없다.

베카가 있으니까.

“쿠와악!”

방문 앞에 서 있던 선우.

베카가 흥분을 하며 달려들었다.

타이밍 맞춰 재빨리 옆으로 후다닥 피해버렸다.

콰콰쾅!!

베카의 맨손 공격에 리치의 방문이 박살나버렸다.

벽까지 무너지면서 안으로 들어가 버린 베카.

굴돈과 선우가 양쪽 무너진 벽 끝에서 고개만 슬쩍 내밀고 안을 살폈다.

“베카, 정신이 좀 들었냐?”

안쪽에는 돌무더기와 베카가 엎어져 있었다.

리치의 방문은 두꺼운 석문이었다.

선우는 베카에게 일종의 충격 요법을 선사한 것.

베카는 아직 미동조차 없었다.

“야, 굴돈. 베카 혹시 죽은 거 아냐?”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들은 맷집이 좋습니다. 고작 이런 벽 좀 부쉈다고 죽지는 않죠.”

“그렇지?”

선우가 슬그머니 베카를 계속 불러봤다.

여전히 베카는 엎드려 있었다.

궁금해진 선우가 슬쩍 안으로 들어갔다.

몰래 다가간 선우는 베카의 옆구리를 콕 찔러봤다.

베카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선우는 혹시나 하고 베카의 코에 손가락을 대봤다.

얕은 숨이 나온다.

죽지는 않았다.

그러면?

“기절했네. 하긴 아까 엄청 빠르게 돌진했으니까.”

선우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베카를 깨워볼까?

‘아니야. 혹시 모르니 일단 자게 놔두자.’

선우는 베카를 놔두고 방 안을 살펴봤다.

리치가 잠들어 있다는 방.

생각과 달리 텅 비어 있는 곳이었다.

“야, 굴돈. 여기 리치가 있다면서? 근데 왜 없냐?”

“이곳을 보십시오. 주군.”

굴돈이 방 가운데를 발로 쿡쿡 눌렀다.

다가가 보니 맨홀 뚜껑 같이 생긴 사각형 모양의 문짝이 박혀 있었다.

“지하로 가는 밀실 같은 거군.”

선우는 문을 당겨 열어봤다.

드그득-

문이 열렸고 안에서 곰팡이 냄새가 훅 하고 올라왔다.

“굴돈 네가 먼저 들어갈래?”

“제가 들어가기에는 입구가 너무 좁습니다. 주군.”

“아, 그렇지.”

선우는 다시 머릴 긁적거렸다.

[지하 밀실은 플레이어 1명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지. 나 혼자 들어갔다 올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베카나 잘 돌봐줘라.”

“알겠습니다.”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를 인벤토리에 넣고 밀실 입구로 들어갔다.

* * *

밀실 입구는 어둡고 축축했다.

벌레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이끼가 선우의 귓등을 스쳤다.

“아으, 찝찝해.”

선우는 실시간 방송 촬영과 동시에 밀실의 복도를 계속 걸어갔다.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모두 반응은 비슷했다.

-으… 폐쇄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못 보겠다.

-저기 뭐 있는데 저럼?

-리치의 방 어쩌고 하던데 리치 찾으러 가는 건가?

-리치가 저 던전 보스 몹이죠?

시청자들의 댓글을 보면서 선우는 마침내 복도 끝에 다다르게 되었다.

복도 끝에는 또 다른 석문이 닫혀 있었다.

“후우, 여기도 문이 또 있네. 몇 개가 있는 거야?”

선우는 더는 참을성이 없었다.

인벤토리를 열고 플레임 블레이드를 꺼냈다.

“그냥 단순하게 간다!”

선우가 플레임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콰앙!

화염이 치솟고 폭발이 일어났다.

돌로 된 석문이 박살났다.

“콜록, 콜록.”

뿌연 연기가 일어났고 선우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알림이 들려왔다.

[리치의 방에 입장 하였습니다.]

‘리치의 방은 확실하군.’

석문 안쪽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바닥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대형 거울이 붙어 있었다.

선우는 방 안을 둘러봤다.

“으음,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리치가 잠들어 있는 거지?”

리치가 잠든 방이라면 어딘가에 리치의 흔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선우가 있는 곳은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벽면에 거울만 설치 된 게 고작.

“어디에 리치가 숨었을라나?”

선우는 고요한 방 안을 뒤적거렸다.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모두 숨을 죽였다.

-오, 뭔가 튀어나올 거 같음. ㄷㄷㄷㄷㄷㄷ

-방장님, 뒤! 뒤! 뒤! 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냐? ㅂㅅ

-방장님 거울 앞에 서 봐요. 뒤에 뭐 보일 거 같음 ㅋㅋㅋㅋㅋ

-리치의 방이면 리치가 봉인된 곳인가? 봉인을 풀어야 리치가 나오는 거 아님?

-보스 몬스터가 봉인까지 친절하게 당해서 손님 기다리는 거냐? 무슨 던전이 저럼?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있는 보스 방은 항상 몬스터가 있었다.

리치의 방이라고 하여 리치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으니 관심이 갈 수 밖에.

게다가 선우는 지하 밀실로 통해서 리치의 방을 들어왔으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거 참. 리치는 어디 있는 거냐? 이거 혹시 낚인 건가?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선우는 다시 지도를 꺼냈다.

황제에게 받은 지도는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건 맞는데… 음.”

선우는 바닥을 먼저 샅샅이 훑어봤다.

혹시 또 다른 밀실로 이어지는 비밀 버튼 같은 게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없었다.

허리를 숙여 동전 찾듯이 계속 바닥을 수색하던 선우는 다시 허리를 폈다.

“아구구, 허리 따갑다.”

우연찮게 선우가 허리를 펴고 일어난 곳은 벽면에 붙은 거울 앞.

거울 속에 반사된 선우는 순간 멈칫했다.

“응?”

파앗.

선우가 재빨리 플레임 블레이드를 꺼내 뒤를 돌았다.

“뭐지? 방금 뭐가 있었는데?”

순간 시청자들이 채팅방에서 호들갑이었다.

-미친, 나 본 거 같음. 니들도 봄?

-뭘?

-뭐임?

-아무것도 안 나왔는데 왜 지랄이냐? 어그로 자제 좀. ㅇㅇ

-봤음. 아까 리치 눈깔 봄.

-지랄, 여기 보는 놈들 다 이거 방송하는 주인장이랑 시점이 같은데 보기는 뭘 봐?

-하여튼 이때다 싶으면 구라치고 어그로 끌려는 것들 꼭 있다니까.

시청자들의 웅성거림은 채팅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는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없었던 살기를.

“응?”

선우가 다시 거울 쪽을 살폈다.

얼핏 등 뒤로 무언가 움직임이 포착됐다.

다시 등을 홱 하고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갑자기 플레임 블레이드를 뒤쪽 거울이 있는 곳에다 휘둘렀다.

파-카앙!

쨍그랑!!

거울이 박살났다.

화광이 번쩍 하고 튀었다.

깨진 거울 조각들 사이로 굼실거리는 연기가 보였다.

스으으.

연기들이 바닥 한 곳에 모이더니 사람의 형체를 이뤘다.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보스 몬스터 리치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드디어 찾았군.”

리치는 벽에 설치된 거울 속에 잠들어 있던 것이었다.

거울에는 마법 주문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침입자가 밟으면 자동으로 발동되는 구조였다.

리치는 선우가 마법진을 밟는 순간부터 자신의 방에 침입한 걸 알아차렸다.

거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선우에게 기습적으로 환각 마법을 걸려고 했었다.

선우 앞쪽 거울을 통해 마법을 걸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법을 걸기 전에 선우가 자꾸만 거울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였으니까.

결국 마력이 거울에 반사되며 선우가 눈치를 채버렸고 리치의 기습은 물거품이 된 셈.

스으으.

연기가 섞이며 만들어진 형체에는 검은 로브가 뒤덮였고 얼굴 쪽은 붉은 눈동자만 번쩍였다.

리치는 사람처럼 말을 할 줄 알고 선우는 대뜸 물었다.

“야, 혹시… 아, 그렇지.”

선우는 지금 방송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걸 찾는 걸 보여주지 말고 잠깐 비공개로 물어본 뒤 떡밥만 던지자.’

인피니티 로드의 플레이어들은 실시간 방송 도중 유저가 원한다면 음소거 기능을 설정할 수 있었다.

은밀한 내용을 주고받을 시에는 음소거 기능을 이용해서 짤막한 단어나 대사 한 줄을 시청자들이 듣지 못하게 하고 이로 하여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 수법.

가끔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상위 랭커들도 종종 써먹었다.

하지만 선우는 처음 써보는 거라서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한다.

“시청자님들. 일단 잠깐 음소거를 쓰겠습니다.”

선우가 음소거를 쓴다고 하자 채팅방이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

-뭐임? 왜 갑자기?

-음소거를 왜 써요? 방장님 뭐 하시려고?

-뭐지? 음소거 쓴다는 건 혹시 저기에 뭐 있다는 건가?

선우의 예상대로였다.

음소거를 쓴다는 말을 미리 하자마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높아졌다.

선우는 먼저 음소거를 쓴 뒤에 리치에게 물었다.

“야, 혹시 이곳에 황제의 보검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냐?”

“…….”

리치는 선우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고고하게 서 있었다.

“어라? 설마 대답도 못하는 놈인가? 이러면 안 되는데… 리치 정도면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한 지능일 텐데.”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인 것이냐?”

마침내 리치가 입을 열었다.

음산한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려퍼졌다.

“오? 대답하네. 잘 됐네. 야, 내 말 좀 들어볼….”

선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치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빛이 구체를 형성했다.

위이잉.

투-슝!

“우왓!”

선우는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검은 구슬이 총알처럼 날아가며 선우가 서 있던 곳을 통과했다.

이윽고 뒤편의 벽을 박살내버렸다.

콰르르르.

벽이 무너지며 바닥이 흔들거렸다.

“아우, 무식한 놈. 다짜고짜 공격이네. 역시 일단 족쳐놓고 물어봐야겠군.”

선우가 플레임 블레이드를 리치에게 겨눴다.

리치가 양 손을 펼쳤다.

쿠우웅!

드드득!

바닥이 흔들리며 마법진이 빛으로 일렁거렸다.

벽 전체가 무너지면서 돌이 소용돌이치듯이 마구 일어났다.

돌덩이들이 선우를 감싸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채팅방은 모두 침음을 삼켰다.

보스 몬스터 리치와 선우와의 대결.

갑작스럽게 발생한 승부였지만 그렇기에 더 짜릿한 재미가 느껴졌다.

-와, 리치 마력 쩐다. ㄷㄷㄷㄷㄷ

-저거 스톤 토네이도 아님? 바위 속성 마법 쓰는 걸 보면 솔플로 잡기 위험한 몹일 텐데 방장님 배짱 무엇?

-오, 멋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에도 선우는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눈앞에서 머리통만한 돌덩이가 왔다갔다 거렸으니까.

타캉! 타캉!

플레임 블레이드로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을 쳐내고 베어버렸다.

불꽃에 휩싸이며 조각나는 돌덩이들.

리치는 다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더 많은 돌덩이들이 공중에 떠올랐다.

리치의 손가락이 딱 치는 소릴 냈다.

쩌저적.

돌덩이들이 냉기에 휩싸이며 얼음으로 굳어버렸다.

“바위 속성에 얼음 속성까지 콤보 스킬인가?”

리치의 손가락이 선우를 향해 겨눠졌다.

피슈웅!

돌덩이들이 포탄처럼 날아왔다.

선우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플레임 블레이드를 위로 들어올렸다.

“이야압!”

휘리릭!

콰콰콰콰콰!!!

선우가 플레임 블레이드를 좌우 대각선으로 휘두르며 한 발씩 전진했다.

날아드는 얼음 돌덩이가 플레임 블레이드에 닿을 때마다 폭발하며 사라졌다.

리치의 공격을 서서히 뚫으면서 전진하는 선우.

플레임 블레이드는 계속 날아오는 돌덩이를 방어하고 베어버렸다.

‘지금이다.’

칼질을 하면서 리치에게 다가간 선우는 순간 눈을 번뜩이며 바닥을 차고 도약했다.

파앗!

휘이익!

쓰걱!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면서 선우의 플레임 블레이드는 허공을 갈라버렸다.

마지막으로 눈앞에 보이던 얼음 돌덩이가 터져버렸고 동시에 플레임 블레이드의 칼끝이 리치의 몸통을 찔렀다.

쑤걱!

리치의 몸이 움찔 하고 굳어졌다.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의 검신으로 자신의 마력을 최대한 집어넣었다.

그 다음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고 대각선 아래 방향으로 힘껏 내리그었다.

리치의 몸통이 갈라져버렸고 형체는 검은 연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그어어어.

리치의 붉은 눈동자가 서서히 식어갔다.

플레임 블레이드가 리치의 영혼이 담겨있던 붉은 원석을 깨뜨린 것이었다.

원석에 담겨졌던 영혼이 뿔뿔이 흩어졌고 알림이 들려왔다.

[보스 몬스터 리치를 처치하였습니다.]

[보상으로 황제의 보검의 정보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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