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제58화
선우의 외침이 들렸다.
피라는 한 글자.
베카의 눈에 졸음이 싹 가셨다.
“피? 피!? 어디?”
“저쪽.”
선우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는 베카의 시선.
그곳에는 반란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죽여라!”
반란군들의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베카의 귀에 들려오는 놈들의 심장 박동.
쿵쾅거리는 심장에서 마구 뿜어져 나오는 혈액의 흐름이 베카의 입맛을 자극했다.
“피다!!”
베카가 갑자기 바닥에서 나는 듯이 도약했다.
가장 앞서 달려오던 반란군의 눈에 베카의 형상이 어렴풋이 보이는 찰나.
쑤곽!
베카의 손톱이 반란군의 목젖을 꿰뚫고 들어갔다.
“피!”
푸취직!
빨간 혈액이 사방으로 쭉 하고 터져나왔다.
베카의 입과 코를 적시는 피가 다른 반란군의 눈에도 들어갔다.
“으악! 괴물이다!”
“오크야!”
“죽여버려!”
베카는 가장 먼저 반란군의 목에서 터지는 피를 혀로 핥으며 목을 꿰뚫은 손을 그대로 옆으로 휘저었다.
반란군의 시신이 베카의 손에 매달려 둔기처럼 마구 휘둘러졌다.
뻐억! 뻑!
빠각!
반란군이 쓰고 있던 강철투구는 쇠공처럼 다른 반란군의 얼굴을 짓뭉개버렸다.
신고 있던 강철 부츠는 뒤에서 반란군이 휘두르던 칼을 막은 뒤 다시 앞쪽으로 휘둘러졌다.
휘이익! 뻑! 뻐억!
베카는 반란군의 시신을 마구 휘두르면서 다른 반란군의 입과 코에서 터지는 피냄새를 맡았다.
신선한 피의 향기가 베카를 자극했다.
반란군의 시신을 더욱 거세게 휘둘러댔다.
그럴수록 다른 반란군들의 얼굴이 박살나고 목뼈가 부러졌다.
파앗!
베카는 손에 꽂혀있던 반란군의 시신이 참혹하게 일그러진 걸 확인하고 내던졌다.
그리고 반란군의 시신이 던져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거기엔 다른 반란군들이 있었다.
“으악!”
“무슨 오크가 이렇게 빨… 아악!”
츄걱!
으지직!
베카는 보름달을 본 늑대인간처럼 광포한 행동으로 반란군들을 시체로 만들어나갔다.
반란군들은 칼을 휘두르며 베카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순식간에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동료들의 시체를 보면서 반란군의 기세가 꺾여버린 것이다.
뒤로 물러나면서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니 베카를 막을 순 없는 노릇.
“우아앗!”
베카는 혼자서 미친 듯이 반란군 사냥을 시작했다.
마구잡이로 솟아오르는 피가 베카의 얼굴을 적셨다.
마치 졸린 눈을 차디찬 냉수에 푹 담궜다가 꺼낸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베카는 반란군들의 피를 실컷 마신 뒤에야 동족들을 소환했다.
“얘들이랑 같이 나눠 마셔야지.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흥분해버렸어. 까하하.”
베카의 수인이 맺어지자 갑자기 산속에서 오싹한 관들이 사방팔방 튀어나왔다.
“으악! 이건 또 뭐냐?”
“갑자기 웬 관들이….”
덜커덩!
베카가 소환한 관에서 뚜껑이 떨어져나왔다.
“쿠으으….”
“으르르.”
흡혈 오크 떼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들이 일제히 흡혈박쥐처럼 생긴 들창코를 벌름거렸다.
“피? 피다!”
“피냄새다!”
흡혈 오크들의 눈빛에 생기가 돌고 살기가 어렸다.
“쿠와아아!!”
남은 반란군들을 향한 흡혈 오크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달이 찬 밤하늘 아래 로젠 산맥에 주둔한 반란군의 근거지가 피를 토하며 삼켜지고 있었다.
“훠우, 쟤들 꽤 오싹하네. 이거 촬영 등급 심의 걸리는 거 아닐라나?”
유료 영상으로 팔려고 하는 선우조차 더운 여름철 등골이 오싹한 오크들의 사냥이었다.
“아니야. 어쩌면 등급 나눠서 박리다매로 팔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면 나한텐 더 이득이지. 큭큭.”
즐거워하는 선우는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의 사냥 방식을 더 근접 촬영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뭣이? 그게 사실인가?”
토벌대장 닉슨은 로크를 보며 물었다.
“예, 반란군 근거지를 발견했지만 발각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미끼를 자처하고 동행했지만 안타깝게도 매복하고 있던 반란군에 의해 다시 흩어졌는데… 그만….”
로크는 마음에도 없는 눈물을 흘리는 척했다.
‘이렇게 해야 토벌대장 NPC로부터 인간적인 신뢰도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어.’
철저히 계산적이었다.
물론 로크가 선우를 의도적으로 버리고 온 것을 먼저 돌아온 우르칸은 잘 알고 있었다.
정찰대장은 어떻게 된 사연인지 자세히 물어볼 생각조차 버렸다.
그는 오직 자신이 무사히 살아 돌아왔단 사실에만 안도하고 있을 뿐이었다.
“허, 그러면 어쩔 수 없군. 지금이라도 당장 반란군 기지로 가는 수밖에. 만약 김선우라는 정찰대원이 생포된 것이라면 지금쯤 반란군 놈들에게 고문을 당하면서 정보를 취조당할 거야. 그 시간을 이용해서 우리가 먼저 놈들의 본진을 기습한다. 지금 즉시 토벌대에게 명을 내리고 집결하라.”
“예!”
정찰대장과 로크, 우르칸은 우렁차게 대답하고 막사를 빠져나갔다.
* * *
“후아… 베카, 너 진짜 대단하구나. 이 많은 반란군들을 다 해치워버릴 줄이야.”
“아음, 맛있어. 얘 피보다 쟤 피가 더 시원한 거 같아.”
베카는 여전히 방금 죽인 반란군들의 시체에서 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흡혈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얘들은 일단 몬스터든 사람이든 피를 줬다 하면 말을 잘 듣는 부족이네. 그건 그렇고 전투력이 장난 아닌 걸? 피를 마실수록 더 강화되는 거 같아.’
선우는 새삼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의 오크들의 전투력에 놀라워했다.
황금안개 부족 역시 할 땐 하는 오크들이었다.
하지만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라버니도 마셔볼래? 맛있어.”
“아냐, 난 됐어. 너 많이 마셔.”
베카와 흡혈 오크들로 인해 졸지에 반란군 기지는 초토화가 돼버렸다.
나머지 살아남은 반란군 몇몇이 최후를 맞이하였다.
베카가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 걸 촬영하면서 구경하는 와중에 알림이 들려왔다.
[반란군 토벌 퀘스트를 클리어 하였습니다.]
[혼자서 로젠 산맥에 주둔한 반란군의 본진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로젠 산맥의 반란군을 토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24시간 동안 8시간에 레벨이 1씩 상승합니다.]
반란군 토벌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얻은 보상은 이벤트 레벨 업.
퀘스트를 클리어 한 것만으로도 레벨이 8시간에 1씩 올랐다.
24시간이면 3업이 가능하다.
빠른 레벨 업은 다음 대륙 진출에도 플레이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벨론 대륙은 인피니티 로드 초보자들을 위한 대륙이라고 한다면 로젠하임 대륙부터는 본격적인 숙련자들의 대륙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만큼 신속한 레벨 업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퀘스트 계속 깨다 보면 이벤트 레벨업은 쭉 나오겠지.”
선우는 혼자서 낄낄거렸다.
“1시간에 1씩 레벨이 오르는 이벤트 보상 받으면 하루에 최대 24 업.. 이것도 만약 100 레벨이 넘어가서 오르면 엄청난 성장 속도인데.”
레벨이 오를수록 경험치 분량이 많아져서 레벨업 속도는 더뎌진다.
그런데 선우는 간간히 터지는 이벤트 레벨업으로 성장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다.
“이제 황궁으로 가볼까?”
선우는 혼자 로젠 산맥의 반란군을 토벌해버렸다.
이들은 모두 로젠하임 황궁을 노리고 로젠 도시를 공격하려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선우가 토벌했다는 것은 이번 반란군 토벌대의 공을 혼자서 세웠단 뜻.
틀림없이 황궁에서 이걸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선우에게 이득이 될 만한 것들을 줄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여기는 처리 다 했으니까 의뢰소 가볼까?”
로젠하임에서 용병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은 받은 임무를 완료하면 모두 용병 의뢰소에 임무를 끝냈다고 보고를 해야 한다.
선우는 베카의 흡혈박쥐에 매달린 채 로젠 도시로 향했다.
한편 선우가 자리를 뜨고 시체만 가득 쌓여있는 반란군 근거지로 닉스의 토벌대가 도착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
닉스는 황당한 눈으로 불에 타고 있는 반란군의 주둔지를 살폈다.
토벌대에 가담하여 따라온 플레이어들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망했다. 이거 퀘스트 누가 깨고 간 거 아냐?”
“젠장, 누구지?”
“이걸 혼자 깰 리는 없고 다른 쪽 토벌대에 들어왔던 애들이 먼저 쓸고 갔나본데.”
“아, 젠장, 모처럼 로젠하임 황실 쪽 보상을 받을 수 있나 했는데 이게 뭐냐고.”
플레이어들 중 가장 당혹감을 드러내는 건 로크와 우르칸이었다.
“야, 이게 뭐냐? 반란군들이 왜 다 죽어있는 건데?”
“난들 알아? 에이 씨. 망했어 이거.”
반란군 토벌은 선우뿐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대거 참여하고 있는 퀘스트였다.
그리고 로젠하임 황궁의 명을 받고 시작된 토벌인 만큼 보상은 틀림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큰 보상이 걸린 퀘스트일수록 플레이어들은 물불 가리지 않았다. 로크가 선우를 배신하고 버려둔 채 혼자 도망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단순히 벨론 대륙에서 다른 길드가 소유한 성 빈집털이만 해서는 아니었던 것.
인피니티 로드는 누군가를 망하게 한 플레이어라면 또 다른 누군가를 흥하게 할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만큼 돈을 걸고 온갖 잔머리가 굴러가는 게임이기도 했다.
“후우… 젠장. 내가 이번 퀘스트 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플레이어들의 한탄이 이어지자 토벌대장 닉스가 외쳤다.
“다들 조용!”
순간 침묵이 흘렀다.
“일단 남은 생존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시체를 수습한 뒤 복귀한다.”
토벌대장 닉스의 말에 따라온 플레이어들에겐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에이 X발. 짜증나.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청소나 하라는 거냐?”
“보상은 남들이 먹고 뒤처리는 우리가 다 하네. 와 이 퀘스트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어떤 놈들인지 잡히면 가만 안 둬. 남의 퀘스트 미리 와서 보상 선점하고 튀는 건 양아치들도 미안해서 안 하는 거 아냐?”
모두들 선우 혼자서 반란군 토벌을 했을 거란 생각은 꿈에서도 할 생각이 없었다.
반란군들의 규모로 보아 혼자서 처리할 정도면 로젠하임 대륙에서는 이미 상위 랭커들조차 경계를 할 만한 실력자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그런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굳이 자신들처럼 토벌 퀘스트나 맡진 않는다.
대부분 로젠하임 황궁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고급 퀘스트를 받으니까.
토벌대장 닉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으음… 이걸 대체 누가…. 아니, 그보다도 폐하께서 직접 내리신 명인데 내가 아닌 누군가가 반란군을 토벌했다고 하기엔 나의 체면이 서질 않는다. 오히려 잘된 게 아닌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반란군 놈들을 토벌했으니 이를 폐하께 고하면 틀림없이 큰 상을 내리실 거다.’
* * *
“허어, 자네 실력 대단하네. 반란군 토벌을 혼자서 다 했다고? 어떻게? 무슨 수로?”
“제가 좀 쓸 만한 몬스터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하하하”
선우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잭슨은 신기한 놈 보듯이 대답했다.
“저번에 데리고 다니던 그 오크 같은 몬스터들인가? 뭐 테이머인지 소환술사인지 몰라도 하여간 능력 하나는 인정해줘야겠군. 자, 여기 있네. 이걸 갖고 황궁으로 가 보시게. 그러면 자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거야.”
“이게 뭐죠?”
선우가 받은 건 두 마리의 붉은 사자가 서로를 향해 포효하는 그림이 그려진 동판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얇은 동판은 구리로 만들어졌고 겉은 황금으로 칠해져 있었다.
노란 황금빛에 붉은 사자 두 마리가 더욱 돋보이는 예술품 같았다.
“이건 로젠하임 황족을 대표하는 문양이라네. 그 문양이 그려진 동판을 황궁의 경비병에게 보여주게. 절차 없이 황제 폐하를 직접 만나게 해줄 거야. 왜냐하면 황궁의 명을 직접 완수해낸 자에게만 이 동판을 줄 수 있으니까.”
선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황제를 만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