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제56화
다음 날 아침.
선우는 일어나자마자 커뮤니티를 확인했다.
커뮤니티에는 온통 선우가 올린 하이 오우거 퀘스트 영상 관련 이야기로 가득했다.
“역시, 예상대로군. 그러면 영상 채널은 어떠려나?”
선우의 개인 영상 채널도 마찬가지였다.
“무료 영상 조회수도 대박이지만 유료 영상이… 6만?”
하이 오우거 퀘스트에서 고추 폭탄 하이라이트가 편집된 유료 영상 콘텐츠.
다운로드 수치를 확인해본 결과 무려 하루만에 6만 명이 넘게 다운로드를 받았었다.
영상 1편당 500원인 걸 감안하면 3천만 원에 육박하는 액수.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시청자들은 많았기에 인피니티 로드의 영상 판매량은 엄청났다.
“역시 영상은 자극적인 게 짱이지.”
하이 오우거 퀘스트 영상을 선우만 올린 건 아니다.
인피니티 로드 플레이어들 중 로젠하임 대륙의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올리는 영상이 하이 오우거 였다.
선우의 영상과 다른 유저들의 영상의 가장 큰 차이는 콘텐츠의 내용.
고추 폭탄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템으로 동시에 3마리의 하이 오우거를 제압하는 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사냥법이었다.
그렇기에 선우의 이번 유료 영상은 로젠하임 대륙의 다른 유저들은 물론이고 길드, 대형 에이전시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선우는 다시 인피니티 로드로 들어갔다.
“베카, 일단 쉬고 있어. 아니지. 낮잠 조금만 자둬라. 이따가 깨우면 그때 맛있는 피를 먹여줄게.”
“진짜야? 그러면 나 꼭 깨워야 한다?”
“알았어. 깨워줄게. 근데 널 다시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이걸 손으로 만지면 날 다시 소환할 수 있어.”
베카는 자신의 품속에서 액세서리 아이템 한 개를 선우에게 줬다.
아이템을 받자 홀로그램 창 1개가 나타났다.
[베카의 귀걸이]
등급: 유니크
분류: 액세서리
특징: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의 오크들을 다스릴 수 있는 부족장의 귀걸이다.
부족장을 소환하여 오크 부족들을 다룰 수 있다.
붉은빛이 반짝거리는 바위 조각 같은 귀걸이였다.
귀걸이를 자세히 보니 빨간 피부의 오크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포효하는 모습이 새겨진 귀걸이였다.
“이걸 귀에 걸고 있다가 날 부를 땐 만지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그렇네. 알겠어.”
선우는 베카가 준 귀걸이를 오른쪽 귀에 걸었다.
[베카의 귀걸이를 착용하셨습니다.]
알림이 들리는 순간 베카는 수인을 맺더니 관을 소환했다.
“난 자러간다, 이따 봐.”
베카가 관에 들어가자 관 뚜껑이 닫혔고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이제 퀘스트 좀 하러 가야지.”
선우는 로젠 도시로 향했다.
* * *
“파티 모집합니다! 근접 딜러 한 분요!”
“마법사 구해요! 초보 사양! 고렙 우대!”
“길드원 신참들 모집 시작했습니다! 기본 아이템 풀 세트로 제공해드리고 버스 시원하게 태워드려요!”
“흑단목 지팡이 세트 팔아요!”
로젠 도시는 로젠하임 대륙의 유저들로 북적거렸다.
선우는 이곳에서 새로운 퀘스트를 찾고 있었다.
로젠하임 대륙은 벨론 대륙에 비해 퀘스트를 받기 매우 수월했다.
용병으로 등록된 플레이어라면 누구든 의뢰소를 찾아가면 되니까.
“또 왔군. 혹시 하이 오우거 무리를 혼자서 소탕한 용병 아니신가? 낯이 익다 했더니만 저번 임무 이야기는 잘 들었소. 보기랑 달리 굉장한 친굴세. 하하하.”
이번엔 다른 의뢰소 담당자였다.
얼굴은 번개가 내려친 것 같은 흉터로 칼자국이 나 있었고, 가슴에는 기사단 출신을 알 수 있는 황궁 관련된 문양이 새겨진 휘장을 달고 있었다.
“난 잭슨이라고 하네. 이번에 의뢰소로 새로 발령을 받았지. 은퇴를 하니까 역시 좋아. 편하고 안전한 일을 할 수 있으니까. 하하.”
잭슨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선우에게 찾아온 목적을 물었다.
“새 임무를 받으러 왔는데요.”
“으음, 자네 등급을 보니 S급이었지? 이번에 들어온 의뢰는 등급에 비해 조금 낮지만 방심해서는 안 될 임무라네. 해보겠는가?”
“물론이죠.”
선우가 대답하자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나타나며 퀘스트 알림이 들렸다.
-용병 의뢰소의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반란군을 토벌하라]
등급: A
분류: 연계 퀘스트
제한: A 등급부터 수락 가능
임무: 로젠하임 황궁에 반발하여 대륙 지방의 귀족들이 사병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의 목적은 황족 제거 및 대륙의 주인을 교체 하는 것입니다.
로젠하임 황실에서 이를 알고 기사단을 보냈으나 고전을 면치 못하고 패하였고 다른 지방의 귀족들이 이 소식을 듣고 황궁을 배신, 반란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규모가 날이 갈수록 불어나자 황궁에서는 고급 용병들을 모집하여 반란군 제압을 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당신이 토벌해야할 반란군 지역은 로젠 산맥입니다.
이곳에 숨어든 반란군들이 로젠 도시로 은밀하게 침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이들을 찾아 토벌하세요.
퀘스트 진행 시작: 로젠 도시의 반란군 토벌대장 닉스를 찾아가세요. 닉스는 로젠 도시의 서쪽 입구에 위치한 용병대 처소에 있습니다.
보상: ?
반란군 퀘스트였다.
선우는 직감적으로 새로운 콘텐츠의 가능성을 알아차렸다.
‘이건 연계 퀘스트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이거 하나로 끝날 리가 없어. 그리고 황실과 관련된 퀘스트라면 나중에 로젠하임 황궁 퀘스트가 나올 지도 몰라.’
벨론 대륙과 로젠하임 대륙의 차이점은 세력 구도에 있었다.
여러 개의 왕궁과 성으로 이뤄졌던 벨론 대륙과 달리 로젠하임 대륙은 오직 1 황국의 통치 체제였다.
따라서 대륙 전체가 로젠하임 황궁의 권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귀족들은 때때로 황궁에 대해 도전장을 내밀 때가 있었고 로젠하임 대륙의 유저들이 가장 많이 써먹는 콘텐츠 역시 바로 이 반란과 토벌에 대해서였다.
그만큼 대륙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전투와 전쟁이었기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높았다.
다만 많은 플레이어들이 즐겨 쓰는 콘텐츠일수록 진부해질 위험도 높았고 식상하단 반응도 많았다.
‘이건 나름 머릴 잘 굴려서 영상을 만들어야겠는걸. 일단 반란군 토벌부터 해봐야지.’
선우는 반란군 토벌대장 닉스를 찾아갔다.
* * *
“용병 임무는 해본 적 있는가?”
닉스는 퉁명스런 어조로 선우에게 물었다.
꽤 많은 전투가 최근에 있었는지 얼굴엔 사나운 기색이 역력했다.
“있습니다. 하이 오우거 무리를 소탕해봤습니다.”
“흐음, 오우거들이야 뭐 실력 있는 용병들이면 어렵지 않게 소탕할 수 있지. 어쨌건 민폐를 끼칠 만한 애송이는 아닌 것 같으니 토벌대원으로 임명하겠네.”
닉스의 말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반란군 토벌대원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로젠하임 대륙에 일어나는 모든 반란군 토벌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오게. 토벌대가 훈련하는 곳으로 데려가주지.”
“바로 토벌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흥! 다짜고짜 처음 보는 놈을 토벌대에 끼워줬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알고? 자네가 용병인지 토벌대의 정황을 살피러 염탐하러 온 반란군 첩자인지 알 게 뭔가? 잔말 말고 따라와.”
닉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토벌대의 훈련장으로 선우를 데려갔다.
“모두 제 자리!”
“반복해라. 배웠던 걸 반복하는 것만이 실전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길이다.”
“잘 봐둬라. 검술은….”
훈련장은 각 토벌대의 훈련을 담당하는 훈련 교관들이 토벌대에 참가한 용병 플레이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오, 이런 곳도 있기는 했구나. 재미있겠는 걸?’
반란군 토벌은 토벌대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제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로젠 산맥은 넓고도 광활한 야생의 땅.
그 안에 숨어든 반란군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었고 위치조차 불분명했다.
그런 와중에 토벌대를 함부로 움직이면 적들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기습을 당할 우려가 있었다.
닉스 대장은 잠시 훈련장에 토벌대를 대기시킨 뒤 마무리 훈련에 들어간 상태였다.
“모두 주목! 새로운 신참이 들어왔다. 토벌대원들은 열렬히 환영해주도록!”
짧고 간단한 선우의 소개 인사다.
닉스 대장은 자기 할 말만 한 뒤에 선우를 내버려두고 휙 어딘가로 가버렸다.
“에… 반갑….”
“어이, 뭣들 하고 있냐? 빨리 훈련들 해!”
훈련장의 교관들은 NPC들이었다.
토벌대장 닉스 또한 NPC.
하지만 사람들처럼 감정과 저마다의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들에게 있어 인피니티 로드에 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은 낯선 이면세계에서 온 이방인처럼 여기고 있었다.
NPC 교관들의 말에 선우를 구경하던 다른 유저들은 각자 훈련을 시작했다.
아마도 훈련장 안에서도 또 다른 퀘스트가 있는 걸까?
“이봐, 신참. 거기서 혼자 뭐하고 서 있는 거냐? 반란군 토벌하겠다는 놈이 남들 훈련하는 거 구경만 할 거냐? 빨리 따라와라.”
“아, 예.”
선우가 따라간 곳에는 연무장이 있었다.
퀘스트를 하러 온 다른 유저들이 목검과 목창으로 대련에 열중했다.
“주무기는 뭐냐?”
“검입니다.”
“받아라.”
선우가 목검을 들고 연무장 위에 올라섰다.
“처음부터 대련인가요?”
“실전은 코앞이다. 애송이에게 일일이 기본기부터 친절하게 가르쳐줄 시간이 있을 것 같은가?”
NPC 교관의 엄숙한 목소리.
다른 유저들이 선우를 힐끗거리며 수군댔다.
“야, 저 사람 혹시 어제 영상 올린 걔 아냐?”
“누구?”
“그 왜 있잖아. 하이 오우거 혼자서 잡는 거. 빨간 피 폭탄 같은 거 뿌려서.”
“아!! 나 봤어 그거. 진짜 걔야?”
“그렇다니까. 내가 얼굴 여러 번 봤는데 걔 맞아.”
“오, 근데 여기는 왜 왔지?”
“반란군 퀘스트 하러 왔나보네. 쟤도 보나마나 황실 퀘스트를 노릴 걸?”
“로젠하임 대륙인데 그거 안 하려는 유저가 누가 있냐? 다 그걸 해야 다음 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선우는 이들의 수군거림을 대충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연무장 위에는 자신이 상대해야 할 다른 NPC가 올라와 있었으니까.
목검을 들고 있지만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상대는 연무장의 NPC였다.
“준비는 됐나?”
“됐습니다.”
“좋아, 그러면 시작한다. 대결은 둘 중 하나가 목검을 놓치거나 바닥에 등이 닿았을 때 끝이 난다. 그 외에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시작!”
“으아앗!”
연무장 NPC가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시작부터 거센 공격이 밀려왔다.
타각! 탁! 탁!
선우는 목검으로 NPC의 공격을 이리저리 흘려 막았다.
“이야압!”
NPC의 공격을 흘려낸 선우가 반격에 나섰다.
목검을 아래에서 위로 대각선으로 올려 그었다.
타각!
NPC의 목검이 선우의 목검에 부딪혀 옆으로 휘청거렸다.
동시에 따라 들썩이는 몸통이 선우의 눈에 보였다.
파앗!
퍽!
선우가 발로 NPC의 다리를 걷어찼다.
한쪽 다리가 위로 붕 뜬 NPC.
파밧!
선우가 NPC의 나머지 다리의 발목을 베듯이 내려쳤다.
따악!
“크악!”
NPC가 바닥을 뒹굴었다.
“용병 승!”
“우와아.”
대련을 지켜보던 유저들 사이에서 감탄이 나왔다.
“…보기보단 제법이군. 토벌대원으로 민폐를 끼치진 않겠어.”
NPC 교관 역시 표정은 미동조차 없었지만 만족스럽다는 대답을 했다.
“따라와라. 이제부터 자네는 반란군 토벌에 앞서 정찰대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정찰대요?”
“그렇다. 정찰대는 로젠 산맥에 숨어있는 반란군들의 규모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오늘 밤에 움직일 것이다. 선발대의 정찰이 끝나는 즉시 토벌이 시작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