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제53화
로젠 도시는 로젠하임 대륙에 진출한 플레이어들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도시였다.
로젠하임 대륙은 1개의 황국이 통치 하고 있는 땅이었다.
황국 아래에 여러 귀족과 왕족들이 잔존하고 있었으나 가장 강력한 권력을 떨치는 건 로젠하임 황족들이었다.
이들의 통치 아래 플레이어들은 여러 퀘스트를 하면서 황족과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노력했다.
“오라버니, 나 목 말라. 피 좀 줄래?”
“내 피는 안 돼. 다른 피 줄게. 곧 사냥 갈 거야.”
베카는 라누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선우 또래 정도?
흡혈 오크의 특성으로 피의 갈증이 꽤 잦은 것 같았다.
선우는 베카에게 피를 줄 만한 퀘스트를 찾아보기로 했다.
“뭔 일이슈?”
“용병 등록을 하러 왔는데요.”
“여기 적고 저쪽으로 갖다 주쇼.”
지긋한 NPC 영감이 곰방대를 물고 한 손으로 용병 등록서를 대충 건네줬다.
“여기 다 적었습니다. 저기서 여기로 갖다 주라고 해서요.”
“어디 보자….”
선우가 찾은 곳은 용병 등록소.
로젠하임 대륙은 플레이어들이 용병으로 퀘스트를 받으면서 아이템을 모으고 돈을 버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었다.
용병의 등급은 F급부터 가장 높은 S급까지 있었다.
등급에 따라 기본급이 달랐는데 선우는 용병 등록소에 등급 판정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잠깐, 당신 아직 등급 판정을 안 받았잖아요? 잠깐만 기다려요.”
등록소의 NPC가 어디론가 가더니 보랏빛이 감도는 수정구를 갖고 왔다.
“여기에 손을 올려두면 마나를 측정해서 용병 등급이 판정돼요. 그러면 기본급이 등급에 맞춰서 받을 수 있고 의뢰도 훨씬 많이 받을 수 있죠. 뿐만 아니라 등급이 높을수록 등급제한이 걸린 임무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 소환술사요? 아니면 마법사요?”
“왜요?”
NPC는 선우 뒤에서 수정구를 신기하게 힐끗거리는 베카를 턱짓을 하면서 물었던 것.
“쟤는 뭐 소환수 같은 거죠.”
“테이밍을 하신 건가?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혹시 당신이 테이밍한 몬스터 아니면 소환을 한 거면 저 몬스터를 대리 측정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오, 그것도 돼요?”
“테이머나 마법사 계열 쪽 인간이라면 아무래도 당사자의 육체만 갖고 잠재된 능력까지 확실하게 파악하기가 조금 어렵거든요. 하지만 저 몬스터. 저걸로 측정하면 정확하게 나오죠.”
인피니티 로드의 소환술사, 테이머 등 몬스터로 전투를 하는 직업들은 플레이어 자체적인 능력만 갖고 정확한 잠재력을 파악하는 건 어려웠다.
얼마나 강력한 몬스터를 소환하고 테이밍을 할 수 있는지가 플레이어의 진짜 숨겨진 잠재력까지 테스트할 수 있는 잣대로 여긴 것.
“그런 거라면 얘를 테스트하죠. 야, 베카. 이리와.”
“오라버니, 이게 뭔데?”
선우는 흥미로운 눈을 하고 있는 베카의 귀에 대고 속삭거렸다.
“여기다 손을 대면 피 마시고 싶은 갈증이 없어진대.”
“진짜?”
베카는 말 끝나기 무섭게 수정구에 손을 올려놨다.
“5초만 기다려요.”
등록소 NPC가 수정구를 보면서 옆에 놓인 마나 측정기계를 들여다봤다.
“오라버니, 아무렇지도 않은데?”
“5초만 기다리면 없어져.”
선우의 말을 듣고 베카는 묵묵히 기다렸다.
“끝났습니다.”
베카가 손을 떼자 마나 측정기에 수치가 나타나고 있었다.
삐빅-
삑-
“응? 뭐지? 고장 났나?”
등록소 NPC는 눈을 치켜뜨고 마나 측정기계를 다시 조작했다.
삐빅-
삑-
“어라?”
“왜 그러는데요?”
“아, 그게 S급…이 나왔습니다.”
“우와! 진짜요?”
NPC는 얼떨결에 S 랭크가 적힌 액세서리를 줬다.
알파벳 S가 적힌 반지였다.
“이걸 착용하고 다니시면 로젠하임 대륙에서는 S급 용병이라는 징표가 됩니다. 그러면 수고하십쇼.”
“고맙습니다. 베카, 가자.”
“오라버니, 저거 하면 갈증이 없어진다며? 나 목 마르다고.”
베카의 말투가 조금 신경질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기다려. 곧 맛있는 걸로 먹여줄게.”
“진짜지? 아니면 나 혼자 마시러 다닌다.”
선우가 베카를 데리고 사라지는 걸 빤히 지켜본 NPC는 용병 등록소 게시판에 선우의 랭크를 게시했다.
[로젠하임 용병 등록소]
플레이어 김선우
등급: S
직업: 소환 혹은 테이밍 계열
“거 신기하네. 어떻게 오크가 S급이 나오지? 저 정도면 보스 몬스터를 혼자서 죽일 수 있는 급이라는 건데”
몬스터를 데리고 다니는 테이머, 소환술사들은 플레이어의 랭크보다 훨씬 높은 랭크의 몬스터를 가끔 얻을 수 있었다.
펫이 나오는 몬스터 알 혹은 유니크 퀘스트를 통해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비법을 알게되면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S급 몬스터를 몇 번 봤지만 오크는 또 처음이군. 세계는 넓구나.”
NPC는 다시 졸린 눈을 비비며 낮잠에 빠졌다.
* * *
선우는 용병 등급을 받자마자 퀘스트를 받으러 용병들이 찾아가는 의뢰소에 갔다.
“자, 다음!”
우락부락한 체격의 근육질인 사내가 호통을 치듯 외쳤다.
“김선우, 등급은 S입니다.”
“으응? 자네가?”
의뢰소의 NPC인 사내가 선우를 이리저리 살펴봤다.
“진짜네.”
등록소에 등록된 선우의 용병 정보를 확인한 사내는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S급이니 이 대륙에서 무슨 임무든 다 할 수 있을 걸세. 돈 좀 버시겠구만. 하하하하!”
“돈 좀 만질 만한 임무를 좀 주십시오.”
“마침 그런 임무가 하나 들어와 있지. 관심 있는가?”
“예!”
선우의 대답이 끝나자 알림이 들려왔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로젠 산맥 북동쪽 숲의 오우거 무리를 퇴치하라.]
등급: 유니크
난이도: A+
설명: 로젠 산맥의 북동쪽 숲에 오우거 무리들이 나타나 근처 마을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오우거들은 중장갑으로 무장한 지능이 높은 하이 오우거 족으로 판명되었으며 로젠하임 황궁은 이 몬스터들을 퇴치하려고 토벌대를 여러 차례 보냈으나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용병들이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지금은 오우거 무리들의 악명만 높아질 뿐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절망에 빠진 마을들을 구해주시겠습니까?
퀘스트 제한: 퀘스트를 받은 지 한 달 이내 클리어 하지 않으면 퀘스트 소멸.
보상: ?
단번에 퀘스트가 나왔다.
그것도 유니크 퀘스트였다.
‘시작하자마자 A+급 난이도의 퀘스트를 받았어. 역시 S급 용병으로 등록된 효과인가?’
선우는 만족스러웠다.
다른 몬스터도 아닌 오우거 사냥이면 베카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니까.
더군다나 하이 오우거 족이면 일반 오우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사나우며 높은 지능을 가진 몬스터들 아닌가?
선우가 퀘스트를 수락하자 의뢰소 NPC가 말을 이어갔다.
“부디 살아만 돌아오시게. 하하하!”
“걱정 마십쇼.”
선우는 자신 있게 대답하고 로젠 산맥 북동쪽 숲으로 향했다.
숲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베카에게 오우거들의 신선한 피를 마실 수 있게 해줄 거라고 하자 흡혈박쥐가 선우를 붙들고 초고속으로 비행을 했으니까.
가는 중에 선우는 여느 때처럼 레벨 업 알림을 들을 수 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음 레벨 업까지 남은 시간은 24시간입니다.]
[체력과 마력이 모두 회복됩니다.]
[보상으로 아이템 사용권 1장을 지급받았습니다.]
[지급 받은 사용권은 쓰지 않을 시 24시간 뒤 자동 소멸됩니다.]
공성전이 끝나고 난 뒤 선우의 레벨은 72였다.
선우는 흡혈박쥐에 붙잡힌 채 공중에서 눈앞에 나타난 화면을 매만졌다.
“이번엔 뭐가 나올까?”
아이템 사용권을 쓰자 새로운 아이템이 인벤토리에 나타났다.
[고추폭탄]
등급: 레어
분류: 폭탄
공격력: 250
폭발범위: 투척 지점에서 반경 50미터.
효과: 폭탄이 터지는 순간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의 100배 농도의 고춧가루로 만든 액체가 폭발한다.
액체에 닿는 순간 피부가 얼얼하고 근육이 일시적으로 둔해지며 냄새를 맡는 순간 코에서 재채기가 끊이질 않으며 입에 들어간 순간 소릴 내지 못할 정도로 맵다.
주의: 아군에게 던지지 마시오.
고추 폭탄은 마치 피망같이 생긴 빨간 청양고추 같았다.
수량은 1개.
“이걸로 오우거 놈들에게 써 먹으면 재미있을 거 같군. 영상으로 써야지.”
흡혈박쥐에 매달린 채 선우는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을 준비했다.
* * *
“휴우, 여기군.”
“오라버니. 오우거는 어디 있어?”
“기다려봐. 여기 발자국이 있으니까. 따라가… 야, 베카. 어디 가는 거야!”
“내가 놈들을 찾아올게.”
베카는 흡혈박쥐를 타고 갑자기 공중으로 솟구쳤다.
“키아악!”
흡혈박쥐가 주둥이를 벌리고 초음파를 사방으로 발산했다.
초음파는 보이진 않지만 숲 속에 은신해 있을 오우거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저거 참 신기한 능력이군.’
선우는 먼저 영상 카메라로 베카의 흡혈박쥐의 초음파 발사 장면을 짧게 촬영했다.
그리고 스트리밍 방송을 켰다.
“시청자님들 모두 반갑습니다. 공성전 끝난 게 엊그제인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거 같을까요? 하하하.”
선우의 방송이 시작되자 얼마 안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 쥔장님 ㅎㅇ
-ㅎㅇ요! 그런데 쥔장님 로젠하임 대륙 진출했다고 영상채널에 공지 올리신 거 봤어요. ㅊㅋㅊㅋ
-방장님 벨론 접고 로젠하임으로 가셨네요. 거기는 용병 놀음만 잘하면 외제차 굴리는 건 우습단 곳인데 기대하겠습니다.
-이분 아이로드 컴퍼니랑 전속 계약하셨다고 뉴스 본 거 같은데
-허걱! 방장님 아이로드 컴퍼니랑 계약하셨어요? 쩐다. ㄷㄷㄷㄷㄷ
-아이로드 컴퍼니랑 계약했으면 돈벼락 맞으시겠네요!
-돈벼락으로 태닝 가능한 급이지. 아이로드 컴퍼니면 ㄷㄷㄷㄷ
-와우, 진짜 아이로드 컴퍼니로 가신 거? 대박!
-근데 저기 어디지? 오우거 숲 아닌가?
시청자들은 선우가 있는 곳 배경을 보면서 단번에 어디인지 알아냈다.
“예, 정확하십니다. 시청자님들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이곳은 오우거 숲입니다. 그것도 하이 오우거 족들이 출몰하는 1급 사냥터죠. 제가 지금 퀘스트 중이거든요. 여기서 하이 오우거 족들을 소탕하는 걸 보여드릴게요!”
선우의 말이 끝나자 채팅방이 들끓었다.
-ㄷㄷㄷㄷㄷㄷ 하이 오우거면 저 숲에서 젤 센 몹들인데 지금 솔플을 하신다는 건가?
-방장님 로젠하임 오셔서도 미친 플레이는 여전하시군요. ㄷㄷ
-하이 오우거 잡는 퀘스트면 개어려운 건데 이거 어떻게 로젠하임 오자마자 받으셨죠?
-엄청나다. 하이 오우거 퀘스트는 대부분 A 랭크 용병 등급 받아야 받을 수 있는 건데. 그 밑으론 받지도 못하는 퀘스트고.
-쥔장님 솔플이 기대됩니다! 어떻게 혼자 잡을 수 있는지 영상 찍으시면 대박날 거예요!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올라가는 것이 채팅방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선우는 꾸벅 인사를 하면서 대답했다.
“이제 제가 하이 오우거를 찾으러 가보겠… 응?”
선우의 발바닥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기분 탓인가?’
선우가 다시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려는 순간.
쿠궁!
이번엔 더 크게 진동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근처의 숲이 강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마구 흔들거렸고 새들이 벌떼처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쿠궁! 쿵!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선우만 이 소릴 들은 게 아니었다.
-오 ㄷㄷㄷㄷ 님들 방금 들으셨음?
-오우거닷!
-하이 오우거들이 벌써 냄새 맡고 몰려오는 건가?
-스피커 바꿨더니 돈 값하네. 방송 사운드가 쩌니까 듣기만 해도 긴장감이 ㄷㄷㄷㄷㄷ
-쥔장님 빨리 무기 꺼내요!
시청자들의 닦달을 들으며 선우는 플레임 블레이드 대신 고추 폭탄을 꺼냈다.
‘응?’
“쿠와아아!!”
무시무시한 포효가 울려 퍼지며 전방의 침엽수림이 커튼처럼 확 제쳐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