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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레벨업-52화 (52/200)

# 52

제52화

늑대인간은 관에서 나온 오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와악!”

오크는 눈을 부비적거릴 뿐 별다른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파앗!

늑대인간이 아가리에서 핏물을 토하며 암컷 오크의 목을 노렸다.

터턱!

오크는 늑대인간의 목을 붙잡고 바닥에 메어쳤다.

“크릅, 크르릅!”

늑대인간이 양손으로 목을 붙잡고 발버둥 쳤다.

오크는 차분한 눈빛으로 늑대인간을 바라보며 팔뚝을 물어뜯었다.

“크아오!”

늑대인간이 발버둥 쳤다.

오크는 늑대인간을 부둥켜안고 팔뚝의 피를 쭉쭉 마셨다.

늑대인간이 순식간에 말라붙은 미라처럼 변해버렸다.

“휴, 맛있군.”

오크의 피부가 갑자기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난 오크는 핏물 호수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꺄악! 피다! 피!”

재빨리 달려가더니 핏물에 머릴 처박고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선우는 그 광경을 지켜봤고 알림을 듣고 있었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이 봉인에서 풀려났습니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이 플레이어에게 귀속됩니다.]

“휴우, 일단 무사히 깨우긴 했군.”

선우가 핏물을 마시고 있는 오크에게 다가갔다.

“저기….”

“꿀꺽꿀꺽.”

오크는 대답도 안하고 피만 벌컥벌컥 마셨다.

굳이 피 먹는 오크 건들 생각은 없다.

선우는 오크가 배터지게 피를 마시도록 놔두기로 했다.

라누 족장의 말대로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오랜 세월 관에 봉인되었기에 피의 갈증이 심할 거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왜 한 마리지? 나머지는 어디에 있지?’

황금 안개 부족과 달리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한 마리가 다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른 관들은 보이지 않았다.

“휴, 맛있다. 피 너무 맛있다.”

오크가 비로소 고개를 들더니 입가를 적신 피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리고 손등을 혀로 핥으면서 선우를 노려봤다.

“으응? 인간이네.”

“아, 난 니 주인이다. 내가 저거 열어줬거든.”

선우가 손가락으로 관 뚜껑을 가리켰다.

오크가 빤히 보더니 웃음을 뱉었다.

“주인? 그러면 나한테 피를 얼마나 줄 수 있는데?”

“내 피 말고 다른 피는 다 줄게.”

“진짜야?”

“응.”

선우의 찰떡같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크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베카.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의 족장이지.”

베카는 암컷 오크임에도 탄탄한 근육질을 지녔다.

붉은 피부로 입가의 핏물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눈빛은 영롱한 빛을 냈고 짧은 단발도 붉은색이었다.

턱 밑에는 아기 주먹 같은 혹이 달려 있었다.

선우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일까?

의외로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는 베카였다.

“그런데 네가 부족장이면 나머지 부족원들은 어디에 있어?”

“걔들은 나 없인 못 나와.”

“그게 무슨 소린데?”

“이렇게 해야 나올 수 있거든.”

베카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손가락에 핏방울이 나오자 바닥에 흩뿌렸다.

투두둑.

그르륵!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더니 사방에서 관이 솟구쳤다.

순식간에 공동묘지처럼 관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덜컹!

덜커덩!

관 뚜껑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크윽….”

“쿠르르….”

초췌한 오크들이 나오고 있었다.

“킁킁, 응? 이건 피?”

“피다!!”

오크들은 핏물 호수의 냄새를 맡자마자 모두 달려들었다.

첨벙!

풍덩!

오크들이 핏물 호수에서 정신없이 피를 들이마셨다.

심지어 호수의 수심이 낮아지더니 발목만 잠길 정도로 줄어들었다.

“후아… 이제 살 것 같다.”

“족장님. 여기는 어디요? 그 빌어먹을 마법사 놈들이 만든 동굴인가?”

베카의 부족원들은 마치 소환수들처럼 나타났다.

“오, 야, 넌 다른 부족하고 좀 다르구나. 쟤들을 소환한 거야?”

“내 허락 없이는 나오지 못하거든.”

부족원들이 하나 둘 베카 곁으로 모여들었다.

“두목, 이 자는 누군가? 마셔도 되나?”

“맛있는 피 냄새가 난다.”

“다들 조용!”

베카의 목소리에 부족원들이 흠칫 하더니 조용해졌다.

“이 자는 나를 봉인에서 꺼낸 최초의 인간이다. 모두들 이 자에겐 얌전히 대하도록.”

“아, 두목을 꺼내준 사람인가? 미안하다.”

“미안.”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 오크들은 모두 뻘줌한 표정을 지었다.

베카는 부족원들 앞으로 나오더니 선우에게 물었다.

“오라버니가 우리들에게 신선한 피를 먹여줄 수 있다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

오크들끼리 형제라 일컫는 건 익히 알려져 있었다.

베카는 암컷이어서 그런지 선우에게 오라버니라고 호칭을 했다.

“그래, 맛있는 피 실컷 먹여줄게. 걱정 마.”

선우는 호언장담을 했다.

어차피 로젠하임 대륙의 성들을 먹으려면 전투는 필수.

‘흡혈 오크는 처음인데 이걸로 영상 찍으면 돈 좀 만지겠군.’

머릿속에 돈으로 가득한 선우였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혹시 니들 수영 잘 하냐?”

“수영?”

핏물 호수는 아래로 연결된 물이 계속 들어오면서 차오르고 있었다.

“왜 해야 되는데?”

“내가 저기로 헤엄쳐서 들어왔거든.”

베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턱 밑에 달려있는 혹을 매만졌다.

“꾸르륵.”

“응?”

선우는 베카의 턱밑의 혹을 다시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혹이 아니었다.

혹처럼 생긴 것은 조그만 박쥐였다.

박쥐가 날개를 접고 베카의 턱 밑에 거꾸로 매달린 채 웅크려 있었던 것.

다른 흡혈 오크들도 마찬가지로 턱 밑에 박쥐들이 있었다.

“얘들이 있으면 얼마든지 편하게 나갈 수 있어. 뭐하러 헤엄을 쳐?”

베카는 박쥐를 어루만졌다.

“키악!”

박쥐가 기지개를 펴듯 날개를 펼쳤다.

그러더니 베카의 턱 밑에서 떨어져 나왔다.

“크왁!”

신기하게도 박쥐가 베카의 몸에서 떨어지자 몸이 엄청나게 커졌다.

황소만한 크기로 거대해진 박쥐는 두 눈이 없었고 들창코는 붉은 핏빛이었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주둥이에는 톱날 같은 송곳니가 가득했다.

박쥐의 머리통에는 피가 굳어진 혈석이 투구처럼 단단하게 감싸고 있었다.

“얘들도 흡혈박쥐냐?”

“항상 피를 마시지. 오라버니 덕분에 피로 목욕을 했으니 기분이 엄청 좋아졌거든.”

흡혈박쥐는 날갯짓을 하더니 바닥에 철썩 내려앉았다.

엉금엉금 빠르게 기면서 베카 앞에 등짝을 내밀었다.

베카가 흡혈박쥐 등 위에 올라탔다.

다른 흡혈 오크들의 턱 밑에서 떨어져 나온 박쥐들도 마찬가지로 주인 앞에 등을 내밀었다.

“야, 잠깐. 나는? 내 자린 없는데?”

“내가 데리고 갈 거야.”

“우앗!”

베카가 올라탄 흡혈박쥐가 선우의 양 어깨를 붙들었다.

오크를 태운 흡혈박쥐들이 동시에 날개 짓을 하며 두둥실 떠올랐다.

“키아악!”

흡혈박쥐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벽을 향해 포효를 했다.

기이한 울음소리가 서로 뒤섞이더니 공명을 이루며 벽을 통과했다.

쿠르르릉!

그러자 동굴의 벽이 사방으로 갈라지더니 바깥쪽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와우….”

선우를 붙잡은 흡혈박쥐가 가장 먼저 앞장서며 비행했다.

뒤따라 다른 오크들을 태운 흡혈박쥐들이 베카의 흡혈박쥐를 쫓아왔다.

흡혈박쥐 떼가 무너진 동굴의 벽을 빠져나오자 로젠 산의 풍경이 펼쳐졌다.

선우를 붙잡은 베카는 흡혈박쥐를 몰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 * *

“라누 족장. 오랜만.”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의 오크들과 황금 안개 부족의 오크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황금 안개 부족의 전사 오크인 굴돈은 차가운 눈빛으로 베카를 노려봤다.

베카는 동굴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황금 안개 부족들의 찾아냈었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베카의 흡혈박쥐가 초음파를 사방으로 발산하였고 황금 안개 부족들의 체내에 흐르는 혈액을 감지해냈었다.

그리고 황금 안개 부족들이 움막을 짓고 있는 곳에 선우를 내려놓으며 나타난 것이었다.

“아, 베카 족장이군.”

라누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어느 오크 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했으니까.

“이봐, 오랜만에 동족을 봤는데 그 눈빛이 뭐냐? 피 한 모금 마셔줄까?”

베카의 뒤쪽에서 오크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닥쳐라! 너희들 때문에 괜한 우리들까지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 당장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황금 안개 부족이 각자 도끼를 꺼내들고 으르렁거렸다.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혈석으로 만든 돌도끼를 꺼냈다.

“케헤헤, 흥분시키고 빨아먹는 피는 더 달콤하지.”

“모두들 조용!”

라누 족장의 말에 황금안개 부족은 뒤로 한 발 물러났다.

“너희들도 얌전히 있어.”

베카의 말에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은 입맛을 다시며 돌도끼를 아래로 내렸다.

“우리 오크 부족들간의 앙금과 지난 일은 모두 잊어버려라. 나는 여기 계신 주군을 따라 우리들의 선조가 살던 옛 낙원으로 갈 것이다. 이러한 대의에 동참하여 그대들도 지난 감정은 삭히는 것이 어떤가?”

라누 족장의 말을 듣던 흡혈 오크 한 마리가 코웃음을 쳤다.

“케하! 웃기는 소리! 이봐 라누. 너희 황금 안개 족속들은 옛날부터 항상 근엄한 척, 점잖은 척만 했었지. 난 그게 마음에 안 들었어. 오크끼리는 그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도 적들 앞에서는 동족으로 뭉쳐야 한다. 그걸 누가 먼저 어겼는지 잊었는가?”

“그건 나의 선조들의 실수였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마.”

“실수였다면 지금 당장 목을 내어놔라. 족장의 피를 마셔 천 년간의 울분을 삭혀야겠다.”

“카악!”

라누 족장에게 달려드는 흡혈 오크 앞을 베카의 흡혈 박쥐가 가로막았다.

날개를 펼치며 위협을 하자 흡혈 오크가 멈칫 거렸다.

“내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한 번 더 멋대로 날뛰면 영원히 잠들게 도와주마.”

“아… 누이. 나, 나는 그저….”

베카는 흡혈 오크를 뒤로 한 채 라누 족장에게 다가갔다.

“당신 말대로 천 년 간의 앙금을 여기서 풀기엔 땅이 너무 비좁아. 그러니 그냥 털어버리는 게 낫겠어. 하지만 그 낙원을 찾겠다는 말에 대해서는 좀 더 들어봐야겠는걸? 저 인간이 누군데 그걸 해주겠다는 거지?”

베카는 선우를 힐끔거렸다.

“저 자는 나의 부족들이 살고 있던 벨론 대륙의 오크 성채를 되찾아준 은인이다. 인간들의 핍박과 엘프들의 괄시 속에 나의 부족들이 간신히 얻었던 하나뿐인 보금자리였지. 그곳을 빼앗아간 인간들과 싸워 우리들의 성을 되찾아줬었다. 그런 자가 이젠 옛 선조들의 낙원을 찾아주겠노라고 하였다. 나는 그저 믿고 따를 뿐이다.”

라누 족장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베카는 말문을 열었다.

“흐음, 그런 인간도 있었는가? 의외로군.”

“모든 인간들이 다 적대적이진 않아. 피를 삼키는 바위여, 아직 만나지 못한 다섯 형제들과 힘을 합쳐 낙원으로 가자.”

“걔들도 우릴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야.”

“그건 너희들에게 달려 있다. 언제까지 동족끼리 적의를 드러낼 순 없는 법.”

“좋아, 라누 네 말을 믿어보도록 하지.”

선우는 몰래 액션 카메라를 켜고 황금 안개 부족과 피를 삼키는 바위 부족간의 갈등과 다툼을 계속 촬영 중이었다.

‘크히힉, 돈 들어오는 소리가 라디오처럼 들려오는구나.’

이것은 아주 희귀한 영상 콘텐츠가 될 확률이 높았다.

먼저 선우를 따르게 된 오크 부족들은 기존에 알려진 것이 없었고 여기에 부족간의 숨겨진 이야기가 하나씩 풀리고 있었다.

선우가 영상을 흥미 위주로 편집하고 업로드 시키면?

할리우드를 비롯한 영상 판권을 노리는 자본가들이 선우의 떡밥을 물것이다.

‘일단 쭉 촬영하면서 이야기를 모아봐야지.’

선우는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

“에헴. 라누 족장님. 이제 저도 해야 할 게 좀 있어서요. 보니까 여기에 터를 잡으신 거 같은데 앞으로 볼 일이 있으면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얼마든지요.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로젠 도시로 가려구요.”

선우는 라누 족장과 인사를 나눈 뒤 로젠 도시로 출발했다.

“오라버니, 내가 데려다 줄까?”

“아냐, 넌 쟤들을 감시, 아니지 사고 못 치게 해야지.”

“그럴 필요 없는데.”

베카는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흡혈오크들의 앞쪽에 관들이 움푹 솟구쳤다.

“으으… 누이. 벌써 들어가라는 건가?”

“너희들을 다시 부를 때까지 대기하도록. 천 년간 무엇이 바뀌었는지 곧 알려주마.”

흡혈 오크들은 베카의 명령을 따라 순순히 관으로 들어갔다.

관은 빠르게 땅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감시 안 해도 되니까 내가 데려다 줄게.”

“그래라.”

선우는 뺨을 긁적였다.

베카의 흡혈박쥐가 선우를 붙잡고 음식 서빙 하듯 로젠 도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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