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제40화
선우는 유한과 만났다.
유한은 잘 차려진 갑옷과 등에는 창을 메고 있었다.
아누비스의 길드 문양이 새겨진 마크가 오른쪽 가슴에 붙어 있었다.
“형, 진짜 오랜만이네요.”
유한이 선우의 허리에 찬 플레임 블레이드를 보더니 감탄을 했다.
“오, 이게 그 칼이네요. 플레임 블레이드 맞죠?”
선우의 플레임 블레이드가 칼집에 꽂힌 채 번쩍이고 있었다.
유한은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와, 직접 보니 아우라가 장난 아니네요. 형, 이건 어디서 먹었어요? 아르콘 대륙에도 이런 칼은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만들었다.”
“에? 진짜요? 형이 만드셨다구요? 혹시 대장장이 클래스예요? 전사인 줄 알았는데….”
“클래스는 전사인데 그냥 스킬로 좀 만지작거렸지.”
“헉! 진짜로 이 칼을 대장장이 스킬로 만드셨다고요?”
유한은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이 형, 나한테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은데…. 이 칼을 대장장이 스킬로만 만들 리가 없어.’
플레임 블레이드는 유한 뿐 아니라 아르콘 대륙의 아누비스 길드원들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는 칼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레비아탄 길드, 벨론 대륙의 라이온 팽 길드와 블러드 스컬 길드까지 선우의 공성전 동영상을 본 길드라면 규모를 막론하고 플레임 블레이드를 주목하고 있었다.
“형, 이거 어떻게 만드셨는지 조금만 알려줄 수 없으세요? 보상은 확실히 해드릴게요. 정보료 얼마 정도 후하게 쳐드리면 알려주실 수 있어요?”
“비밀이다.”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장장이 발론의 능력은 지금까지 선우 외엔 알고 있는 플레이어가 없었다.
여기에 선우 자신의 타임 딜링 능력까지 더하면 철저히 숨기는 것이 앞으로 더 큰 이득을 가져오는 지름길.
뭐 하러 자신의 히든카드를 노출시킬까?
선우는 가치 없는 일에는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다.
플레임 블레이드를 공개한 것은 모두의 관심을 끌어들여 선우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목적이 컸다.
솔로 플레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지금처럼 선우가 올리는 영상 콘텐츠에 시청자들이 열렬히 관심을 보내고 지지하는 것이 선우에겐 수입으로 직결되고 있었다.
이걸 뭐 하러 남들과 나눌까?
혼자서 벌어들일 수단이 하나 둘 많아지고 있었는데.
“에이, 형. 그러지 말고 조금만 알려주세요. 아이템 강화 레시피라던지, 대장장이 스킬을 뭘로 조합을 했는가 디테일한 소스 몇 가지만 알려주시면 시원하게 보상 해드릴게요.”
“야, 유한아. 그건 내 밥줄인데 알려주면 쓰겠냐? 궁금하면 니네 아누비스 길드 마스터에게 물어보던가. 니들 잘 나간다며?”
선우는 아누비스 길드가 어느 정도의 길드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아르콘 대륙 제패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길드.
인피니티 로드 전체 길드 랭킹 12위에 해당하는 초대형 길드였다.
아누비스 길드의 간부들은 평균 레벨이 700에서 800대였다.
인피니티 로드에서 지금까지 플레이어들이 퀘스트를 깨고 대륙의 정보를 밝혀내고 영지를 개척한 것은 아르콘 대륙까지였다.
나머지 4개의 대륙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
지금 이 순간에도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길드부터 금수저들이 조직한 길드까지, 모든 플레이어들이 자본을 들이부어 미지의 대륙을 개척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길드장님은 아르콘 대륙 통일 시키려고 지금 정신이 없어요. 말도 못 붙입니다.”
“나도 지금 시간이 없다. 사냥 가야 돼.”
“형! 진짜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 없으세요? 아누비스 길드에 들어오면 형 정도면 금방 공대장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공대장 올라가면 뭐 주는데?”
“예? 그야 뭐 여러 간부들 혜택이 있죠. 길드가 거둬들이는 던전 통행료에서 자기 몫이 올라간다던지, 길드에서 제공하는 아이템을 세트로 맞출 수 있다든지 그 외에 상위 랭커들이 버스 한 번씩 태워주면 경험치 팍팍 먹으니까 레벨업이 엄청 좋아지죠.”
“레벨업?”
선우는 시큰둥하게 다시 물었다.
“형도 아시다시피 300 레벨만 넘어가도 솔플로 레벨업 하려면 속도 진짜 느려지잖아요. 템빨, 버스 아니면 답 안 나오는데 이 두 개를 대형 길드에 가입하고 영상 콘텐츠로 실적 좀만 보여주면 버프 장난 아니게 받거든요.”
유한이 열변을 토할 무렵 선우는 다른 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켄트 성 하고 레온베르거 성이군. 여기 두 개를 먹어치우면 내가 버는 돈은 강남의 건물주가 안 부럽지.’
지금 오크 마을에서 매달 들어오는 세금은 일정하지 않았다.
선우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를 올리거나 공성전 같은 이벤트를 만들지 않으면 세금의 수입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오크 마을에서 매달 들어오는 세금은 아직 초반이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수입을 대충 계산해보면 평균 수입은 500만 원 정도….’
선우는 속도를 좀 더 높이기로 했다.
“형, 제 말 듣고 계세요?”
“응? 아, 지금 할 게 생각났어. 내가 아르콘 대륙 들어갈 때까지 수고해라.”
“예? 그게 무슨… 형! 형!”
* * *
선우는 오크 성으로 왔다.
“발론 님.”
“예, 주군.”
오크 성을 방어했기 때문에 오크 성의 황금 안개 부족들과 대장장이 발론은 선우를 더욱 높이 신뢰하고 있었다.
“전쟁에 쓸 무기들을 지금부터 만들어주세요. 방어 무기가 아닙니다. 공격 무기로요.”
“전쟁에 쓸 무기요? 주군, 어디와 전쟁을 하실 생각이신지….”
“켄트 성을 공략하려고 합니다.”
“예에? 켄트 성을요? 거기는 오크 성과는 차원이 다른 성입니다. 일단 영토가 오크 마을보다 훨씬 넓고 방대합니다. 오크 성은 본래 오크 족들의 보금자리와 같은 곳이기에 오크 마을과 오크 숲 정도가 고작이지만 켄트 성은 달라요. 인간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지배해온 곳인 만큼 영지의 개수도 크고 넓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먹어야죠. 켄트 성을 먹으면 오크 전사들을 훨씬 강력하게 만들 무기도 확보할 수 있잖아요. 여기에 각 영지의 마을마다 거둬들이는 세금까지 더하면 돈이 많아지니까 발론 님께서 무기를 연구할 비용이 엄청 불어날 거예요.”
“그렇기는 하죠. 켄트 성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강력한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오크 성의 대장간으로 한계가 있거든요. 게다가 켄트 성의 규모라면 철혈산성에 있는 제 동족들을 데려와 이주시킬 수도 있을 거고요.”
“바로 그겁니다. 그게 제가 켄트 성을 치려는 거예요. 황금 안개 부족과 발론 님의 드워프 족들이 인간들과 같이 공존하면서 사는 성. 더는 전쟁이 없는 성으로 만들고 인간들과 거래하는 요충지로 만들려고요.”
“그거 훌륭한 생각이군요. 역시 주군이십니다. 제가 도와드릴 것이 있다면 혼신을 다하겠습니다.”
“성을 돌격하는 데 쓸 만한 무기들 위주로 만들어 주세요.”
“염려 마십시오. 모두가 놀랄 만한 걸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발론은 선우의 명을 받고 즉시 작업에 착수했다.
선우는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먼저 블러드 스컬 애들 동향을 좀 살펴볼까?’
켄트 성을 소유하고 있는 건 블러드 스컬 길드였다.
레온베르거 영지를 기습하려다 선우에 의해 물거품이 된 뒤로 블러드 스컬 길드는 한동안 납작 엎드려 있었다.
라이온 팽 길드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블러드 스컬 길드를 보복하지 않고 있었다.
선우는 인피니티 로드를 로그아웃 한 뒤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으음… 블러드 스컬 길드 소속사랑 라이온 팽 길드 소속사가 만나서 풀었나 보군.”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베스트 게시글 중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다.
<블러드 스컬 구사일생 각 나옴.>
내용을 읽어보니 라이온 팽 길드 마스터가 블러드 스컬 길드에게 경고를 하는 정도로 그냥 보복은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단 내용이었다.
라이온 팽 길드가 보복을 하지 않은 배경에는 선우가 있었다.
선우가 떠들어대는 바람에 레온베르거 영지 기습을 준비하던 블러드 스컬은 결국 기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직접 공격을 하지 않고 단지 기습만 준비한 걸로 블러드 스컬을 보복하기엔 명분이 서지 않았다는 것.
“으음, 나 때문에 블러드 스컬이 구사일생 한 거 아닌가?”
선우는 이걸 빌미로 블러드 스컬을 켄트 성에서 끌어내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뭐니뭐니해도 역시 이것만한 게 없어.”
선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캡슐로 들어갔다.
* * *
헬름 던전.
켄트 성 영지에 발견된 던전으로 가장 많은 유저들이 찾는 던전이었다.
규모도 컸지만 던전 내의 몬스터들의 개체 수와 리젠 속도, 경험치, 아이템 드랍 등 모든 면에서 가장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사냥터였으니까.
이곳을 독점하고 있는 길드가 있었으니, 블러드 스컬이었다.
“통행료 내라고요. 여기가 무슨 공짜 던전도 아니고 어딜 그냥 들어가려고?”
던전 입구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선우를 막아선 블러드 스컬 길드원이 칼을 빼들었다.
“잠깐만, 이 새끼… 김선우 맞지?”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그냥 인피니티 로드를 재미있게 하고 있….”
“닥쳐! 이 새끼야! 누굴 속이려고. 던전 각 층 공대원들에게 알린다. 지금 이곳에 김선우가 나타났다. 모두 경계 태세에 돌입하도록. 절대 이 새끼를 던전에 들여보내지 마.”
선우를 알아본 길드원이 기겁하며 귀에 손가락을 누르고 어딘가로 무전을 쳤다.
“아, 거 야박하시네. 들어가서 사냥 좀 하겠다는데 무슨 통행료를 받아? 여기가 니들 돈 받으라고 만든 곳도 아니고 전세 냈냐?”
“꺼져.”
길드원이 극도로 경계하며 선우를 향해 칼을 겨눴다.
선우는 기다렸단 듯이 길드원이 보는 앞에서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시청자님들, 제가 아까 미리 예고한 대로 헬름 던전에 왔습니다. 지금 보이시죠?”
“야, 야, 야! 지금 뭐하는 거냐?”
“방송 중이시다. 참견 말고 칼이나 계속 겨눠라. 칼 내리는 순간 공격 들어간다.”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방송 꺼 이 새끼야. 자, 잠깐. 던전 각 층 공대원들에게 알린다. 김선우 이 새끼 지금 영상 촬영 중이니까 모두 준비해.”
스트리밍 방송을 기다리고 있던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ㅅㅂ 저 새끼들 때문에 헬름 던전 안 간지 오래임.
-방장님. 저것들 좀 치워주시면 안 돼요?
-블러드 스컬 새끼들 켄트 성 먹고 나서 다른 곳에서 세력 야금야금 불리더니 헬름 던전 차지하고 꿀 빨고 있음.
-던전 입구에서 칼 겨누고 있는 꼬라지 보소. 양아치 길드의 자세 ㅇㅈ?
-보나마나 방장님이 통행료 안 내고 들어가려고 했나보네.
선우는 스트리밍 방송을 진행하면서 길드원에게 물었다.
“야, 인간적으로 니네 심하단 생각 안 드냐? 여기는 플레이어들이 모두 쓰라고 만든 곳이지 니들이 독점하라고 만든 곳은 아니잖아. 안 그래?”
“닥치고 꺼져! 꺼지라고!”
길드원은 칼을 들고 있으면서 선우를 극도로 경계했다.
선우는 비무장인 상태.
“와, 보셨죠. 여러분들. 지금 블러드 스컬 길드원이 저한테 칼을 겨누고 꺼지라고 하네요. 저는 보다시피 비무장인데 닥치고 꺼지라니 이거 뭐라고 반응해줘야 되죠? 통행료 내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나오고 있습니다.”
“뭐? 야, 니, 니가 언제 통행료를 낸다고 했어? 그냥 들어가려고 했잖아!”
“와 이제 생사람 잡네. 시청자님들. 제가 처음에 통행료 내고 들어가려고 했거든요. 근데 다짜고짜 저는 안 된다고 꺼지래요. 이거 문제 많은 길드네. 플레이어들 가려 받는 건 여기서 처음 겪어봅니다.”
선우는 능수능란하게 시청자들에게 길드원을 엿 먹이고 있었다.
“다, 닥쳐! 이 새끼야! 누가 생사람 잡는 건데? 모, 모두 잘 들어! 김선우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 당장 간부들에게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