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다리면 레벨업-38화 (38/200)

# 38

제38화

스트리밍 방송의 모든 시청자들이 선우의 입을 주목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에 오크 성을 무사히 방어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보답으로 블랙 스콜피온 길드장 이강철의 아이템 풀세트를 저렴하게 내놓을까 합니다. 물론 저렴하다고 해서 진짜로 싸구려 값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도 명색이 길드 마스터였는데 헐값에 팔기엔 아깝잖아요.”

선우의 말이 끝나자 채팅방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대박!!!! 얼마에 내놓으실 거?

-방장님. 템 하나만 무료 분양 해주심 안 될까염?

-나 학생이라서 돈 없음. 잡템은 걍 무료로 뿌려주셈. 장소 미리 랜덤으로 공지해주시고 ㅇㅇ

-이강철 두 번 죽이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로 블랙 스콜피온 길드장 이강철은 운명하셨습니다.

-강철아 양아치 짓거리해서 모은 템이니까 갈 때 가더라도 넘 슬퍼하진 마랔ㅋㅋㅋㅋㅋㅋ

-휴우… 저 템 가치 폭발할 듯. 공성전에서 길드 마스터 순삭하고 먹은 템들 대부분 스토리텔링 부여로 가치 상승하던데.

-저한테 템 하나만 던지시면 잘 받아먹겠습니다.

선우는 먼저 이강철이 소유하고 있던 아이템들을 정리했다.

목록을 펼치니 다음과 같은 아이템들이 나왔다.

[필격의 검]

등급: 유니크

분류: 무기

타입: 양손검

공격력: 320/320

내구력: 500/500

특징: 쇄도하는 대검. 가속이 붙을수록 순간 공격력 최대 80%까지 증가한다.

옵션: 위력 강화 포인트 1당 추가 데미지 100% 증가.

[불멸의 갑주]

등급: 유니크

분류: 방어구

타입: 중장갑

내구력: 850/850

특징: 착용 시 물리 데미지 감소 50%, 플레이어 체력 스텟 +5 증가

[군주의 건틀렛]

[강철 장화]

[강화 주문서 30장]

[브리타우스의 방패]

[…….]

선우는 이강철이 남기고 간 아이템 목록들을 쭉 살폈다.

‘나한텐 필요 없는 아이템들이네. 싹 다 팔아서 돈 좀 만져야겠다. 얼마 나올까나?’

이강철의 아이템을 들고 선우는 경매장으로 향했다.

“시청자 여러분들. 저도 마음 같아서는 이 아이템들을 공짜로 뿌리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실적으로 그건 좀 어렵습니다. 저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대신 아이템들은 모두 경매장에다 내놓을 테니 관심 있는 유저들께서는 지금부터 1시간 뒤 오크 마을 경매장으로 와주세요!”

오크 마을의 경매장은 상대적으로 벨론 대륙의 다른 마을들에 비해 경매장 수입이 부실했다.

선우는 이번 기회에 오크 마을의 경매장을 활성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오크 마을 경매장은 크게 세금이 들어온 적은 없었지. 엘프의 찻잎을 팔아서 남는 수입이 세금의 대부분이었고…. 이 아이템들로 최대한 관심을 끌어들여서 오크 마을 경매장을 이용하도록 해야지.’

이미 오크 성 공성전으로 1차 관심이 모아졌고 결투에 승리한 선우는 아이템 독식으로 2차 관심이 모아진 상태.

마지막 남은 3차 관심은 오크 마을 경매장에서 폭발할 예정이었다.

“이제 가서 준비를 좀 해둬야지.”

선우는 아이템들을 갖고 오크 마을로 향했다.

* * *

에이플러스 미디어 강 팀장은 전자담배를 물고 초조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진짜 오크 성을 막아낼 줄이야….”

강 팀장은 선우가 혼자서 오크 성 공성전을 하겠다고 할 땐 코웃음 치는 쪽이었다.

아무리 블랙 스콜피온 길드가 중형 길드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 길드는 절대로 아니었다.

선우가 빈집털이로 오크 성을 먹은 건 기발하다고 강 팀장 역시 인정했었다.

하지만 오크 성을 방어하는 공성전은 전혀 다를 거라는 것이 그의 예측.

결국 그마저도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팀장님. 대표님께서 찾으시는데요.”

“응? 아,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는 강 팀장이 한숨을 뱉었다.

“후우… 이거 대표님께 엄청 깨지겠네.”

강 팀장은 대표 사무실로 갔다.

“이봐, 강 팀장.”

“예, 대표님.”

“저번에 강 팀장이 계약 하고 오겠다던 유저가 김선우 아니였어? 내가 그때 얼핏 듣기론 맞는 거 같은데…. 계약했으면 빨리 나한테 보고를 해야지. 오크 성 영상 완전 대박 났잖아. 왜 아직도 감감 무소식이야? 어떻게 된 거야? 계약을 한 거야? 만 거야?”

선우는 강 팀장에게 고기를 얻어먹으면서 에이플러스 미디어 대표와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했었다.

물론 강 팀장이 순순히 자리를 마련했을 리는 없었다.

당시만 해도 선우의 말을 듣고 속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젠장, 망했다. 그냥 헛소리라고 여기고 대표님께 보고도 안 드렸는데….’

강 팀장은 속으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먼저 말문을 연 건 에이플러스 미디어 김 대표였다.

“강 팀장. 왜 말을 안 해? 어떻게 됐냐니까?”

“저기… 대표님. 아직 김선우 게이머하고 계약을 하진 않았고요….”

“뭐? 계약을 안 했다고? 왜?”

“그게 그러니까… 당시 김선우 게이머가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서… 그냥 무시했습니다.”

“무시했다고? 무슨 얘기를 했는데?”

“저 말고 대표님하고 직접 만나서 계약 조건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고… 자신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뭐 그런 것들이요.”

김 대표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강 팀장은 슬그머니 김 대표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가까이 와.”

“저, 대표님. 진정하시죠. 제가 지금이라도 당장 김선우 유저를 잡아오겠….”

“야! 인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어느 천년에 잡아 올 건데? 지금쯤이면 다른 회사들도 서로 데려가려고 물밑작업 한창일 건데 우리가 쓸 카드가 뭐가 있는데? 앙?”

“죄송합니다. 일단 다시 연락해서 꼭 계약 하겠습니다.”

“일단 얘기 들어봐서 원하는 거 있으면 다 들어주겠다고 해. 내가 만나자고 전해.”

“알겠습니다.”

강 팀장이 재빨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 *

오크 마을 경매장은 전례가 없던 인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줄 서요. 줄!”

“님들, 앞에 걸리적거리지 말고 자리나 앉아요.”

모든 플레이어들이 선우의 아이템 경매를 보러 찾아온 것이었다.

대부분 초보 플레이어들이었고 가끔 중형 길드 소속의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고레벨 유저들은 모두 직접 오지 않고 선우가 방송하는 스트리밍을 통해 경매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저 새끼가 진짜….”

“행님. 진정하십쇼.”

이강철은 담배를 연거푸 태우고 있었다.

이미 선우와의 대결에서 패배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인피니티 로드 내의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모든 업적과 명성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를 만들어 돈 만지는 재미로 여기까지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놈에 의해 풍비박산 나버렸다.

애써 키워 올린 길드의 브랜드는 유저들로 인해 짜장 전갈, 양념 전갈 소릴 듣고 있었다.

“야, 담배 하나 더 줘봐.”

“행님. 이미 한 갑 다 태우셨는데요.”

“한 갑 갖고 되겠냐? 니가 지금 내 속을 알아?”

“죄송합니다. 여기 있습니다.”

길드 사무실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잔뜩 불만 섞인 표정으로 들어왔다.

“오빠.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예요?”

“길드 마스터씩이나 되면 뒤처리는 좀 해줘야 할 거 아닙니까? 지금 나머지 길드원들도 쪽팔려서 죄다 게임 접고 캐릭터 다시 키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난리예요.”

“야, 이것들이 진짜 누구 약올리나…. 니들이 캐삭빵 했냐? 내 앞에서 헛소리들 하지 마라. 지금 내 속을 니들이 알기나 해?”

“아니 오빠. 지금 그게 문제야? 오빠야 길드 마스터니까 캐삭빵 걸고 대결한 거 그냥 삭제하면 되지. 우린 뭔데? 우리가 오빠랑 같이 김선우하고 캐삭빵 했어? 안 했잖아. 근데 우리가 지금 피해를 보는 거 생각 안 해? 길드장 맞아?”

“뭐? 피해? 이것들이 미쳤나. 무슨 피해? 니들이 무슨 피해를 보는데?”

이강철을 보면서 길드 소속된 여자 유저들이 소릴 빽 하고 질렀다.

“귓속말로 처음 보는 새끼들이 열 받게 한다고!!!”

“뭐라고 열 받게 하는데? 그러면 찾아가서 조져. 니들 원래 그거 잘했잖아. 왜 이제 와서 앙탈이야? 가서 피케이 뜨라고.”

“피케이? 걔들이 그거 무서워서 지금 이러는 거 같아? 우리가 지금 무슨 대접 받는지 알기나 해?”

“뭔 소릴 듣고 왔는데?”

여자 플레이어들이 서로 한숨을 뱉었다.

“아…씨… 쪽팔려 진짜.”

“뭐냐니까!”

여자 플레이어 하나가 이강철에게 소릴 빽 질렀다.

“양념 전갈 한 마리 배달 되냐고 자꾸 처 물어보잖아!!!”

“오빠, 난 짜장 전갈하고 양념 전갈 머가 더 맛있냐고 하더라. 아니 한 두 놈이 그러는 거면 그냥 가서 조져버리겠는데 우리가 블랙 스콜피온 소속인 거 이미 커뮤니티에 다 뿌려졌다고. 닉네임 다 까발려져서 사방에서 지랄들을 하잖아!!”

이강철은 불을 붙이려던 담배를 부러뜨렸다.

블랙 스콜피온 길드로 잘나가던 시절에는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길드 명을 밝힌 뒤에 온갖 횡포를 다 부리던 이들이었다.

사냥터 통제, 던전 통행료 상납, 아이템 강탈, 보복 PK부터 시작해서 그 외 양아치로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하고 다녔었다.

그러다 어떻게 선우와 엮이고 나서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후우… 미안하다.”

“오빠, 이건 미안하다고 될 일이 아니야. 나머지 길드원들 생계는 좀 책임지시죠?”

“강철 오빠. 진짜 애들이 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속에 할 말 많거든? 오빠만 속 타는 줄 알아? 우리도 쪽팔려. 김선우하고 대결에서 진 건 오빤데 쪽팔린 건 우리들이라고. 오빠야 캐릭터 삭제하고 몰래 다시 키우면 되지. 우리는? 지금까지 키워 올린 캐릭터 다 삭제하고 각자 새로 시작할까? 이게 지금까지 열심히 한 우리가 받는 보상이야?”

이강철은 할 말이 없었다.

인피니티 로드에는 엄청난 자본이 흘러 들어왔다.

캐릭터 삭제라는 것은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해서 키워 올린 자신의 업장을 제 손으로 없애버리는 것과 같았다.

문제는 선우로 인해 블랙 스콜피온 길드의 명성이 박살났다는 것.

만약 길드 마스터가 캐릭터 삭제를 걸고 결투를 해서 패배해도 기존의 길드 명성이 우스꽝스럽지 않는다면 길드원들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었다.

서로 길드 마스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내부다툼이 빈번한 것은 인피니티 로드의 또 다른 재미였으니까.

그런데 블랙 스콜피온은?

“아, 씨… 나 지금 문자 받았어. 오빠. 내가 지금 본 문자 뭐라고 적혀있게? 읽어줄까? 저기요, 거기 블랙 스콜피온 길드죠? 짜장 전갈하고 양념 전갈 반반세트로 빨리 갖다 주세요. 오빠가 갖다 줄래?”

이강철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때 블랙 스콜피온 길드원들의 귀에 들려오는 낯익은 웃음소리가 있었다.

- 우와아아!!! 여러분들 보셨죠?!! 방금 이강철 아이템 하나가 또 팔렸어요!!

선우의 스트리밍 방송을 누군가 몰래 스마트폰으로 틀어놓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두 살기 어린 눈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향했다.

“오빠… 지금 그 새끼 방송이 보고 싶어요?”

“행님… 좀 실망입니다.”

“아니야! 이건 내 아이템이 그냥 얼마에 팔리는지 좀 궁금해져서, 내가 다시 살려고 본 거라고.”

“와, 이 오빠 진짜 깬다. 길드원들 실시간 개망신 시켜주면서 본인은 캐릭터 다시 키울려고 아이템 시세 미리 파악해두고 계셨다? 아~ 지금까지 플레이어 피 빨면서 모아둔 총알 넉넉하시겠네. 우리랑 급이 다르시다.”

“됐고, 나 더는 이런 쓰레기 길드에 소속된 거 자체가 짜증나니까 탈퇴할 거야.”

“오빠, 캐릭터 다시 키우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하시고요. 우린 이 시간 부로 블랙… 아니지 짜장 전갈인지 양념 전갈인지 하는 길드 탈퇴할 거니까 당신이나 캐릭터 새로 만들면서 장사 하던가 마음대로 해!!”

길드원들은 이강철을 정신없이 볶아댄 뒤에 사무실을 나갔다.

휑한 사무실에 이강철의 후배만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행님, 괜찮으십니까?”

“야, 내 아이템들 시세 다 기록하고 있냐?”

“예, 그런데… 가격이… 좀 세네요….”

“후우… 얼마씩 팔리고 있냐?”

후배가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 속에 선우를 보여줬다.

-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강철이 쓰던 검이 오크 마을 경매 역대 최고가 1억 5천만 원에 팔렸습니다!! 역시 아이템 콜렉터님들 돈 쓰는 스케일이 장난 아니십니다!! 보너스로 이강철이 쓰던 강화 주문서 10장 끼워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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