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제34화
“안 해.”
“뭐? 왜?”
수경은 선우의 단호한 대답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대륙 이동은 뭐,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되니까 지금은 딱히 메리트가 없는 걸.”
선우는 솔직했다.
벨론 대륙은 시작의 대륙이라 불릴 만큼 인피니티 로드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그 다음 로젠하임 대륙 역시 선우가 솔로 플레잉을 하면서 발굴해낼 것들이 많을 것이다.
‘히든 스토리들이 벨론 대륙에만 있을 리가 없어. 중앙 대륙인 센트론까지 각 대륙마다 다 있을 거야.’
선우의 생각은 황금안개 부족 히든 퀘스트를 깨면서 확 달라져버렸다.
만약 황금안개 부족 관련 퀘스트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경의 제안을 덥석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벨론 대륙의 히든 스토리와 퀘스트를 경험한 상태.
굳이 선우가 대륙을 건너뛸 필요는 없었다.
지금으로서 그건 손해나 다름없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봐. 이건 기회라니까. 레비아탄 길드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거 아니야?”
“그건 아는데 지금 나한테는 필요가 없거든.”
“피, 필요?”
수경은 다시 한번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뭐지? 얘 어릴 때 보던 그 김선우 맞아?’
선우와 수경이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였지만 중,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선우를 알고 있었다.
‘얘가 이 정도로 딱 부러지게 자기 거 챙기던 애였던가?’
수경은 선우가 어릴 적 봐오던 모습과 전혀 다른 행동을 보여주자 꽤 당황했다.
반면 선우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다 마시더니 물었다.
“야, 케이크 하나 더 시켜도 되냐?”
“뭐? 아, 응, 그래. 시켜.”
선우가 자릴 비우자 수경은 재빨리 누군가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다시 선우가 올 즈음.
“그러지 말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생각해봐. 레비아탄 길드에 네가 들어오면 진짜 파격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니까. 내가 직접 스폰까지 따내줄게. 레비아탄 길드는 스폰서들도 많아서 골라서 받을 수도 있어.”
“놉. 나 혼자 할 거야.”
“솔플로는 한계가 있다니까. 혼자서 언제 벨론, 로젠하임 벗어나서 아르콘 대륙 진출할래? 인피니티 로드에서 솔플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플레이어들 다 알고 보면 용병 컨셉으로 대형 길드들과 인맥은 굵직하게 엮어둔 애들이야. 레비아탄 길드 들어와서 나도 알게 됐거든.”
“난 혼자서 잘 클 수 있을 거야.”
“하아… 고집은 여전하구나.”
선우는 케이크를 다 먹은 뒤에 다시 음료수를 한 잔 또 시켰다.
“이야, 역시 돈 많은 길드 간부는 다르구나.”
“나중에 생각 바뀌면 연락해. 너 나랑 친구추가 안 했지? 내가 이따가 집에 가서 할게.”
“잘 먹었다. 다음에 또 사주면 좋겠다.”
“야, 김선우. 내가 신청할 테니까 친추는 무조건 맺어. 알겠지?”
“그래, 잘 가렴.”
선우는 휙 하고 집으로 향했다.
수경은 턱을 괴고 창가 밖을 보며 집으로 가는 선우를 쳐다봤다.
“흐음, 내가 모르는 뭔가 믿는 데가 있는 거 같은데….”
* * *
선우는 인피니티 로드로 들어왔다.
“이제 남은 시간은 5일. 막판 렙업 쫙 해버리면 딱인데….”
레벨업 타이머 스킬을 쓰면서 선우는 하루에 1업씩 할 필요가 없었다.
퀘스트만 클리어 하면 레벨업 타임을 앞당길 수 있었다.
비록 뽑기로 나오는 만큼 운이 따라야 했지만.
“또 한 번 뽑아볼까요~?”
선우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레벨업 타이머 스킬을 썼다.
띠링!
띠리링!
알림이 연달아 들리며 뽑기창이 생성되었다.
선우는 물음표 카드 중 한 장을 골랐다.
[타임카드를 뽑으셨습니다.]
[뽑으신 카드의 레벨업 타임은 6시간입니다.]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타임카드]
오벨린 마을에 출몰한 고블린 떼를 토벌하세요. 마을의 경비대장 한스를 찾아 고블린 떼의 정보를 파악한 뒤 모두 처치하세요.
등급: C+
카드 적용 기간: 5일
조건: 고블린 떼 토벌 (0/200)
페널티: 실패 시 오벨린 마을에 공급되는 엘프의 찻잎 수량 50% 감소
보상: 6시간에 레벨이 1 오르며 5일 동안 지속
“오~ 6시간! 20일 전에는 8시간 걸렸는데 이번엔 2시간 득 봤네. 그러면 하루에 4업이고 5일간 지속이면 20렙은 자동 당첨. 공성전 때는 90렙은 되겠군. 듬직하다, 듬직해.”
90레벨이 되면 선우의 스텟은 근력, 민첩, 체력, 마력 모두 90을 찍게 된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360 레벨은 되어야 가능한 수치.
이 정도만 되도 사실상 블랙 스콜피온 길드 마스터 이강철의 레벨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선우 혼자.
공성전이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이번엔 퀘스트에 페널티가 있네. 뭐지?”
선우는 페널티 조건을 확인했다.
“50%나 감소한다고? 그러면 안 되지. 고블린들을 깨끗하게 청소해주겠어.”
오벨린 마을은 켄트 왕국에서 레온베르거 왕국으로 향하는 접경지역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이곳 마을에도 선우가 소유한 오크 성에서 재배하는 찻잎들이 텔른 남작에 의해 공급되고 있었다.
레온베르거 왕국과 가까운 지역이라서 마을에 들르거나 찾는 유저들이 매우 많았다.
그만큼 선우의 찻잎 공급량이 많은 대표적인 마을.
“으음, 이곳에 고블린 떼들이 출몰한다고? 경비대가 있을 건데. 일단 가봐야겠다.”
선우는 서둘러 오벨린 마을로 향했다.
* * *
오벨린 마을.
여전히 마을에는 레온베르거 왕국으로 향하는 온갖 플레이어들로 붐비고 있었다.
“북동쪽 마탑 공략 가실 분! 마법사 환영! 궁수, 전사 가리지 않습니다!”
“아라크네의 거미줄 100개 교환 원합니다!”
“용병단에서 신참 플레이어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분 이쪽으로 오십쇼!”
“길드 가입하고 싶은 님들 제가 원하는 길드 연결해 드릴게요! 수수료는 협의!”
여기저기 플레이어들이 각자 개인 장사를 하기도 하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선우는 오벨린 마을의 경비대장 한스를 찾아갔다.
“한스 대장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손님을 만날 시간이 없다고 전하게.”
“고블린 떼를 퇴치하겠다고 합니다.”
“뭐라고? 들여보내게.”
선우는 한스 대장이 머물고 있는 처소로 들어갔다.
한스 대장은 선우를 보더니 콧수염을 쓸어내렸다.
“자네가 고블린 떼를 처치해주겠다고?”
“옙.”
“용병인가?”
“아니요.”
“기사인가?”
“아니요.”
“그러면… 모험가?”
“아닌데요.”
“…어디 길드에 소속되어 있지?”
“그런 거 없는데요.”
“…자넨 대체 뭔가?”
“오크 성 주인입니다.”
선우의 말에 한스 대장의 눈이 꿈틀거렸다.
“오크 성? 그렇다면 황금안개 부족장 라누가 신임을 한다던 그 인간이 바로….”
“예, 접니다.”
선우가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한스 대장이 다급히 일어나며 말문을 열었다.
“아, 이거 초면에 본의 아니게 무례를 저질러 죄송…하다고 할 줄 알았냐!!”
갑자기 빽 하고 소릴 지른 한스 대장이 어이없다는 듯 선우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다짜고짜 왜 소릴 지르십니까?”
선우는 무덤덤하게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흐음… 이놈 보게? 이 마을에서도 이곳 처소는 분위기가 험악하기로 알아주는데…. 생긴 건 곱상하게 생겨서 배짱 하난 두둑한걸.’
한스 대장은 기합을 넣고 호통을 친 이유가 있었다.
선우처럼 혼자 떠도는 인간들치고 믿을 만한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어느 성의 귀족 자제다, 왕족의 핏줄이다부터 시작해서 길드의 간부다, 기사단장 출신이었다, 용병단장이다 등등 온갖 감언이설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유는?
“고블린들의 현상금이 얼마인지 알고는 왔을 테고….”
“응? 잠깐만요. 현상금이라뇨? 혹시 현상금 걸려 있나요?”
한스 대장은 선우를 보면서 옆에 서 있던 기사를 바라봤다.
“자네, 고블린 현상금 노리고 온 사냥꾼 아닌가?”
“현상금 사냥꾼 아닙니다. 오크 성 주인이라니까요.”
“흐음… 현상금을 노리고 온 줄 알았는데 그러면 돈 안 줘도 된다 이건가?”
“아니죠. 이 아저씨가 무슨 장사를 그딴 식… 아니지. 죄송합니다. 잠깐 흥분해서. 한스 대장님이라고 하셨죠. 현상금이 걸린 거면 고블린을 퇴치한 저에게 주셔야죠. 얼맙니까? 현상금이.”
한스 대장이 콧수염을 쓸어내리면서 의자에 앉았다.
“고블린 놈들의 현상금은… 듣고 놀라지 말게. 자그마치….”
선우가 침을 삼켰다.
“1만 골드라네.”
“우오오!!”
놀라는 척했다.
조금 전 이번 달 말일에 정산될 찻잎 판매 금액을 봤었으니까.
물론 1만 골드면 환전하면 1천만 원 정도 된다.
가벼운 돈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놀라운 현상금은 아니었다.
“1만 골드면 지금쯤 플레이어들이 고블린 멸종시키고 잔치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설치게 놔두고 있죠?”
“하하하! 자네 이 마을 처음이로군. 역시 몬스터 성의 주인놀이를 한들 세상물정 알기는 어려운 법이지.”
“뭐 아직 이곳은 제 영역이 아니니까요.”
“응? 방금 뭐라고 했나?”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선우는 급하게 입을 손으로 싹 막았다.
낮게 중얼거렸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퀘스트 시작도 전에 NPC와 사이가 틀어질 수 있었다.
한스 대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약도를 그렸다.
“자, 이걸 갖고 고블린들이 있는 곳을 가서 처치하고 오게.”
“으음, 저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이거 보니까 고블린들 되게 간단히 잡을 거 같은데 왜 아직도 이걸 처치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건가요? 오벨린 마을 정도면 이미 다 처치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많을 건데….”
“하핫, 자네가 가서 직접 잡아보시게. 왜 고블린 따위에게 1만 골드씩이나 걸려 있는지 잘 알게 될 걸세.”
한스 대장이 콧수염을 매만지며 웃음을 흘렸다.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타임카드 퀘스트를 수령했습니다.]
선우는 약도를 받고 경비 처소를 나왔다.
“으음… 직접 경험해봐라? 무슨 트릭 같은 게 있는 퀘스트인가? 그럴 린 없을텐데….”
선우는 타임카드 퀘스트 등급을 다시 확인해봤다.
“C+면 내가 20일 전에 처음 했던 퀘스트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
기껏해야 고블린 퇴치하는 건데 텔른 남작령의 몬스터 토벌 퀘스트보다 등급이 높았다.
그만큼 가볍게 볼 퀘스트가 아니라는 뜻.
“일단 여기로 가 보면 알 수 있을 테니 가 봐야지~ 아, 물약 좀 사가야겠다.”
* * *
선우는 한스 대장이 그려준 약도를 보며 고블린 떼가 서식하는 동굴을 찾아냈다.
“키륵. 키르륵.”
“키켁! 키이익!”
고블린들이 저마다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교감하고 있었다.
“이럴 때를 위해 20일 동안 만들어둔 스킬이 있지.”
선우는 수풀 속에 숨은 뒤 스킬 창을 열었다.
[인피니티 디텍팅]
등급: 유니크
분류: 크리에이티브
제한: 인피니티 마스터
타입: 지속형
디텍팅 레인지: 20미터/???
효과: 플레이어의 시야에 닿는 무엇이든 자세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스킬. 플레이어의 레벨에 따라 파악 가능한 거리가 제한된다.
인피니티 디텍팅은 선우가 스킬 조각 모음과 인피니티 타이머를 통해 만들어낸 스킬이었다.
기존의 스킬들은 항상 사용권으로 쓰고 24시간 제한이 걸려 있었다.
반면 선우가 타임 딜링의 스킬들로 조합해낸 창작 스킬들은 무한 지속이 가능했다.
자동으로 패시브 되어 있는 인피니티 타이머를 통해 스킬의 사용 시간을 무한정 늘려버렸으니까.
그 결과 20일이 넘도록 선우는 처음 썼던 디텍팅 스킬을 몇 가지 특성을 덧붙여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
“으음… 저놈들은 내가 알던 고블린들이 아닌데?”